●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21024g | 곽아현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5_0428_화요일_05:00pm
후원 / 서울시_문화체육관광부_알파색채(주) 주최 / 2015KPAM대한민국미술제 운영위원회 기획 / 사단법인 한국전업미술가협회 www.kpaa-all.or.kr 02)732-9820~1
관람시간 / 11:00am~08:00pm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Hangaram Art Museum, Seoul Arts Center 서울 서초구 남부순환로 2406(서초동 700번지) Tel. +82.2.580.1600 www.sac.or.kr
감정에 관한 기록 ● "난 진정, 내안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그것을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헤르만 헤세 Hermann Hesse) 인간은 그 작은 몸에 거대한 무한의 우주를 품을 수 있는 신비한 존재, 독립된 하나의 세계다. 곽아현의 작품은 이 신비한 세계, 그 내면에 대한 관찰로부터 시작된 기록이다. ● 지금은 내적인 것들이 외적인 것들의 객이 되어가고 있는 시대, 더 나은 상태를 향해 진보해야하는 세계관이 유일한 답인 양 목적성에 집중하며 전진하는 시대다. 그 헐떡임의 공명으로 '감정'이라는 존재의 입지는 점점 협소해 지고 있고 사회는 우리를 향해 진정한 풍요 속에 살고 있는 것이라며 애써 독려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길을 잃어가고 있는 감정을 향해 꿋꿋하게 아리아드네의 실을 쥐어주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사람과 사람이 섬처럼 떨어져 나가는 외로움. 진정한 소통의 부재에 대한 갈증일지 모른다. 성숙한 인간에게는 제한되어져야 하는 감정도 많아진다. 절제된 감정을 사이에 두고 독립된 하나의 세계가 또 다른 세계와 진정으로 만나는 접점을 공유할 수 있을까! "예술은 단순한 자기감정의 표현이 아니다. 예술은 자기감정의 '전달'이기 때문에 자기감정에 '대해' 전달함으로서 듣는 사람의 공감적 감흥을 얻는다. 이때 전달되는 공감의 내용이 곧 예술의 의미부여다." (수잔K.랭거 Susanne K. Langer) 그녀는 미학자 수잔K.랭거의 말처럼 감정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 진정 그녀 안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그 감정의 서술인 예술적 언어를 통해 누군가와 공감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
감정을 기록하는 그녀의 그림은 바람처럼 분다. 흐르고 춤추고 흩날린다. 잠시 평면에 머물다가 곧 하늘을 향하게 될 새의 몸짓처럼 퍼덕인다. 그녀의 그림은 모노톤의 연필 선, 형태 안에 툭툭 던져진 무심한 터치들이다. 꾸밀 줄 모르는 드로잉처럼 감정의 민낯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 몇 작품들은 식물과 건물을 비현실적 크기로 병치시켜 초현실주의를 떠올리게 하거나 탄탄한 리얼리즘적 묘사를 통해 작업을 풀어나가는 방식을 조형적 형식에 집중 한 듯 보여 지게 한다. 그러나 이런 조형적 해석마저도 인간이 공들여 쌓은 역사적 시간, 그리고 그것과 공존하는 강렬한 생명에너지의 본질, 그것들을 향했던 작가의 감정기록을 극적으로 보여 지게 하는 이차적 장치에 지나지 않는다. 초록 잎사귀를 붉게 표현하는 것도, 오브제의 재현을 의도하는 기술적 묘사 보다 생기를 주는 표현적 묘사를 주로 하게 되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 감정에 집중 된 그녀의 그림은 그런 이유들로 보는 이에게 솔직하게 가닿고 소심하게 구겨져 있던 시들한 감성을 붙잡아 일으킬 수 있다. 그러나 감상자로 하여금 그녀와 동일한 감정에의 공유를 강요하지는 않는다. 단지 공감하고 소통 할 수 있도록 '감정의 존재'를 일깨워 주는 예술적 역할을 수행하는 것, 그것이 예술을 통해 할 수 있는 그녀의 몫이다. ● 그녀의 그림 속 나무나 잎, 뿌리, 초록 생명을 반추하다보면 언제나 자신의 자리에서 대단한 에너지를 가지고 삶에 대해 붉게 투쟁하고 있는 사소해 보이는 것들의 긍정적 에너지를 발견하게 된다. 어쩌면 그것을 기록해 내는 그녀의 감정들에 참으로 동의하게 될지도 모른다.
진정으로 내안에 있는 그것을 살아 보려고 할 때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새롭게 찾아온 세계에 자신을 동화시키기 위해 시간을 필요로 하고 있다. 마음을 두는 법을, 풍경을 바라보는 법을, 언어를 선택하는 법을, 호흡하는 법을 이제부터 하나하나 조정하고 다시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무라카미 하루키 Murakami Haruki) 새로운 세계에서는, 아니 새로운 세계를 만나려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속 주인공처럼(다행히도 소설 속 주인공과 우리의 형편은 많이 다르지만) 다시 배워야 할지도 모른다. 그녀의 그림을 통해 빠른 보폭에 맞추던 발을 조금 달래고 우리만의 속도를 찾아 걷다 보면 변한 것 없는 늘 그렇고 그랬던 세계에서 마음에 드는 세계(독립된 하나의 인간이든, 자아든, 모든 인간을 아우르는 거대한 그릇이든) 하나 쯤 발견하게 되지 않을까? 혹 '부분'이라도 발견하여 그것을 사이에 두고 누군가와 기꺼이 함께 소통 할 수 있기를 바람 해 본다. ■ 오나서
감정에 관하여 ● 인간이란 존재는 참으로 오묘하다. 각자가 생각하는 것, 느끼는 것들은 당연히 다른 거겠지만 같은 것을 두고도 남들이 생각하고 느끼는 사실과 당사자가 생각하고 느끼는 사실이 판이하게 다르기도 하니 말이다. 상황에 따라 느껴지는 경중의 차이이거나, 살아온 환경과 경험들 또한 나름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런 차이가 존재함에도 생각의 회로나 코드, 감성에 있어서 상당부분이 교차되고 교류와 교감이 충분히 생성된다면 이건 "내가 칠판에 점을 찍었는데 내가 눈을 감고 다시 칠판에 점을 찍어 방금 찍은 점을 맞출 확률이 바로 나와 너희들이 만나게 될 확률과 너희들은 지금, 지구, 그것도 대한민국, 그것도 서울, 그것도 ××고등학교, 그것도 1학년 4반에서 그런 확률로 만나게 되는 것이다."라는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의 배우 이병헌의 대사처럼 엄청난 절묘함으로 마주한 특별한 인연 정도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사람마다 다를 수 있는 감정의 정도라는 것이 간혹 어떤 개인사의 원인으로 인해 인생에서 피할 수 없는 소용돌이가 되어 객관전인 이성을 지배하고 말 때, 우리는 좀 더 평화적인 해결을 위해-나 자신이 우선 살기 위해 어떤 방식의 표현을 선택할 것이며, 적절한 각자의 행복을 위해 본능적인 사회성을 동원하여 누군가와 교류함으로써 운 좋게도 적절히 융화시키고 해소해 낼 수 있는 그런 통로를 발견하는 것에 대해서도 매우 고심하게 된다. 'Nevertheless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면 말이다. 당연히 죽지 않으려면 살아내야 한다. 스스로의 의지와 결단만으로 어떻게든 살아내야 하는 것이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는 선인들의 말처럼 벗어나려 발버둥 치면 칠수록 더욱 옥죄는 감정의 불문율을 너는 마음을 비운 채 풍덩 뛰어 들 것이냐, 아니면 괴로움에 몸서리치며 평생을 불평불만 속에서 어둠을 핑계 삼아 스스로를 혹사 시키며 시달리기만 할 것이냐. 인간은 누군가가 필요하고 그 누군가가 존재함으로써 여러 가지 종류의 감정들이 생겨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생명체는 혼자가 아님이 확실하고 여러 감정들은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들인데, 그것들은 어떻게, 어디로, 누군가에게서 섞여지고, 변화하고, 치유되고, 해결되며, 해소될 것인가. 사랑, 죽음, 행복, 즐거움, 고통, 괴로움 등 이 모든 것들은 상쇄될 수 없는 인간의 굴레 속에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 A:rK
Vol.20150428c | 곽아현展 / KWAKAHYUN / 郭雅賢 / painting.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