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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5_0319_목요일_05:00pm
기자간담회 / 2015_0319_목요일_11:30am 세미나 / 2015_0319_목요일_02:00~03:30pm_세미나실 도슨트 / 02:00pm, 04:00pm(단체는 사전에 전화예약)
기획 / 성곡미술관 학예연구실 후원 / 중국CTS그룹 한국중국여행사(주)
관람료 일반(만 19세 이상) 5,000원 / 청소년(만 7~19세) 4,000원 어린이(만3~7세) 1,000원 / 20인 이상 단체 1,000원 할인 * 문화가 있는 날 매달 마지막 수요일 관람료 2,000원 할인 (최초 10명 관람객들에게 성곡 과거 전시 도록 1부씩 증정) 65세 이상 어르신, 7세 미만 어린이 무료입장 장애인, 국가유공자 단체관람료 적용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입장마감_05:30pm / 월요일 휴관
성곡미술관 SUNGKOK ART MUSEUM 서울 종로구 경희궁길 42(신문로 2가 1-101번지) Tel. +82.2.737.7650 www.sungkokmuseum.com
성곡미술관은 2015년 새해 첫 전시로 작가 최헌기의 화력 30년을 돌아보는『최헌기 崔憲基』展을 개최한다. 지난 2009년부터 선보이고 있는 중견중진작가집중조명전의 일환인 이번 전시는 작가의 데뷔 초기 작업으로부터 최신작에 이르기까지 총 40여점을 엄선하여 반회고적으로 선보인다. 작가의 삶과 예술에 대한 반성적 성찰과 치열한 자기 탐구의 여정에 다름 아닌 이번 전시는 작가의 깨어 있는 이성과 관점 그리고 예술가로서의 소명을 확인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최헌기: nothing if not critical ● 이번 전시는 최헌기의「자화상」으로부터 시작한다. 모두 세 개의 화면으로 구성된 초대형 자화상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일반 자화상과는 달리, 그의 화면에는 이른바 작가의 '얼굴'이 없다. 대신 흐릿하게 형태가 일그러진, 한국의 태극기와 중국의 오성홍기 그리고 북한의 인공기 등이 자리하고 있다. 이들 이미지가 분명하지 않은 것은 최헌기 스스로의 자기 검열, 즉 작가의 나약한 의지에 따른 판단과 결과라기보다는, 1994년 이 작품이 선보일 당시 중국내 예술창작의 자율성이 어느 정도 허용되고 있었는지를 역설적으로 미루어 짐작하게 한다. 20여년만의 조심스런 외출이자, 퍼포먼스가 될 이번 출품은 작가 자신의 뿌리와 존재를 조국, 한국에서 분명하게 확인하고자 하는 또다른 열정과 바람에 다름 아닐 것이다. ● 최헌기의「자화상」을 비롯한 대부분의 작업은 자신의 근원에 대한 고민이자 확인, 또는 삶과 예술의 정체성에 대한 회의와 탐색을 모티프로 풀어낸 회화적 비망록이자 여정이다. 그것은 자기 정체성 규명에 대한 해법을 찾으려는 일차원적인 단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당대의 사회적, 정치적 현실과 시대정신에 대한 끊임없는 회의와 반성으로 나아가고 있다. 또한 불분명하고 모호한 삶의 경계에 대한, 예술의 경계와 역할에 대한 작가로서의 지적(知的) 고민을 예의 돌아보고 스스로 지적하는 과정이다. 그의 예리하고 날선 비판의식은 이러한 주제의식과 당대정신에만 집중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회화적인 조건과 예술의 정의, 그리고 이들의 미래적 비전과 만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최헌기의 작업은 깨어 있는 이성과 관점, 한편으로는 인식(recognition)의 변화와 그 세월을 보여준다. 자신과 사회, 예술에 대한 반성적 인식이다. 작가는 이를 안목(眼目)이라고 푼다. 그는 입버릇처럼 '예술은 안목'이라고 강조한다. 나름의 정의(definition), 혹은 입장(goût)을 분명하게 가지고 가는 것이 예술가의 덕목이자 삶의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그의 작업은 인식과 안목, 입장이 상호 교차, 길항하면서 빚어내는 협화음이다. 예술을 포함한 세상의 모든 정의, 규정, 인식에 대한 지적, 혹은 비판적 지지를 보내면서 인식의 전환을 스스로 모색한다. 최근 그가 취하는 삶과 예술의 모티프나 형식의 변증법적 순환, 세속적 고민의 끝은 '공허(空虛)'라는 감정을 향해 시나브로 소급되고 있어 보인다. 인생 후반에 들어서면서 비움의 미학을 실천하려는 지성적 태도를 견지하고 있음이다. 이러한 과정은 전술한 바와 같이 마음의 본향은 분명하지만 물리적으로 한곳에 머무르지 않으려는 자유로운 영혼과 기성의 가치에 굴하지 않는 특유의 안티정신을 꽃피웠다.
한편으로는 미술의 시장경도 현실에 대한 깊은 회의도 작용했다. 2004년 이후 붓을 거의 포기하고 현실과 거리를 둔 채 재료에 대한 반복적 실험과 세상에 대한 관조적 입장을 견지했다. 건강하지 못한 평가와 정당하지 않은 미술계의 병적인 징후, 그것이 점점 깊어만 가는 미술현실에 대한 회의, 그것에 대해 당장 아무것도 할 수 없음에 대한 무력감, 깊은 회의와 반성은 스스로를 질료에 대한 탐색으로 빠져 들게 하였다. 물감의 물성을 몸으로 만나고 그것을 과감하게 강조하면서 회화의 조건을 회의하고 탐색했던 지난 추상작업이 보다 생산적으로, 발전적으로 이어진 것으로 이해된다. 주로 파라핀과 실리콘 등을 캔버스에 얹는 등의 작업이었는데, 이들 공업용 재료들을 화면 가득 도포하거나 부분적으로 더해가면서 새로운 자신만의 회화적 실험 가능성을 조심스레 모색해나갔다. 과연 예술이란 무엇인가? 회화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등과 같은 기왕의 질문을 반복적으로 강조해나갔으며 보다 적극적으로 회화조건을 건드려 나갔다.
성곡미술관 2관 1층에서 만나는 초대형 설치작업,「붉은 태양」은 사회주의 사상가들의 이런저런 말들과 자본주의적인 욕망이 공허하게 뒤엉킨 기형적 풍경을 보여준다. 용도 폐기된 사상 만능의 사회질서와 물질과 명품 만능의 자본주의 사회상이 얼키설키 뒤엉킨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들 사상가들의 지난 언설은 명품으로 치장된 거짓 태양을 마치 구름처럼 감싸듯 맴돌며 호위하고 있다. 참으로 아이러니컬한 형국이다. 최헌기는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양태이자, 미래의 모습이라 할 수 있는 태양, 혹은 지구라는 브랜드 볼을 중심으로 비판적 환상계를 연출해냈다. 양립할 수 없는 가치들이 공존하고 있는 세상, 세계 속에서 자신은 물론, 예술, 관객의 안목과 가능성을 묻는다. 어디로 향해야 할지, 무엇이 올바른 기준이며 맞는 가치, 실천인지를 생각하도록 인도하고 있다.
작가는 이 모든 해답이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있음을 자신의 반투명한 자소상을 통해 넌지시 제시한다. 붉은 기운으로 살아 숨 쉬고 있는 뜨거운 심장을 작가 자신의 몸을 통해 반어적으로 강조했다. 마음과 열정은 뜨겁지만, 특정 사조나 이념, 시장에 포획되어 몸과 입이 움직이지 않는 작가 자신의 반성적 모습이자, 그것을 바라보는 관객 자신의 모습일 수 있다. 죽은 사상가의 시대, 현실을 직시하며 당대정신을 담아내는 예술가의 역할을 방점을 찍듯 강조하고 있다. ● 기성과 함께 기존의 가치와 정의를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고 인정하기보다는 동시대의 현실과 당대정신과의 현실적 조화 속에 이들을 다시 새겨보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으로 보인다. 과연 판독 불가해한 난독의 사회를 지적한다. 소통을 의도하는 것이 예술이라면 최헌기는 불통을 통해 참다운 소통을 생각해보는 역설(逆說)을 역설(力說)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들어 이러한 역설은 더욱 강조되고 있다. 불통의 시대, 예술의 기능과 예술가의 역할을 총체적으로 제고하고 있음이다.
최헌기는 자연에 그림이라는 호흡을 섞어내며 구속 없이 자유의지로 자라났다. 땅으로부터 땅과 함께 하며 자란, 이른바 지기(地氣)를 받고 자란, 기감(氣感)이 센 작가다. 전모를 소개할 수는 없지만, 이번 전시에 소개된 그의 예술실천은 세상에 대해 자신의 정체성, 예술의 정체성을 역설적으로 확인하려는 지성적인 노력에 다름 아닐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예술이란 무엇인가? 예술가란 무엇인가? 등과 관련한 본질적 질문과 고백, 갈등을 담아낸 그의 연인, 모나리자는 그에 대한 질문을 거꾸로 던져 놓고 저렇듯 대답 없이 미소만 짓고 있다. 질문을 던져 놓고 답을 주지 않으려했던 마치 고대 철학자처럼 말이다. 우리는 과연 최헌기의 작업을 통해 무엇을 사유할 수 있을까?
자화상을 많이 만들며 그리는 작가 최헌기. 어쩌면 그의 모든 작업은 자화상일 것이다. 모든 작업은 그의 사유와 욕망, 비판의식이 꼿꼿하게 살아 있는, 잠들지 않은 영혼에 다름 아니다. 그는 자신의 욕망을 애써 전복시켜나가며 자신을 포함한 세상의 일방적 정의와 기준, 해석에 반대해왔다. 이러한 예술과 삶에 대한 서사적 열정은 경계인으로 살아온 지난 역경을 반성적으로 극복하려는 변증법적 의지에 다름 아니다. 그러한 역경을 돌아보고 잊지 않으려는, 나아가 건강한 미래적 비전을 지향하는 그의 생활충동, 지식충동, 예술충동과 실천의지는 원초적 고향인 한반도라는 원형감정에 닿아 있다. 이러한 원형감정은 그의 지난한 고민과 예술지향이 요약된 미래적 태도에 다름 아닐 것이다. 그의 깨어 있는 이성과 관점에 박수를 보낸다. ■ 박천남
Vol.20150320c | 최헌기展 / CUIXIANJI / 崔宪基 / painting.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