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Decade of Cursive Writing 광초10년

최헌기展 / CUIXIANJI / 崔宪基 / installation   2013_0915 ▶ 2013_1013 / 월요일 휴관

최헌기_A Decade of Cursive Writing 광초10년展_원전미술관_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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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3_0915_일요일_05:00pm

제작 / GUYAN 기획 / LIANGKEGANG

관람시간 / 10:30am~05:30pm / 월요일 휴관

원전미술관 元典美术馆 Yuan Art Museum 北京.朝阳区.望京广顺北大街丽泽西园112号 No.112 Lizexiyuan, North Guang shun Street Wangjing Chaoyang District, Beijing, China Tel. +86.10.6475.3932 www.yuanartmuseum.com

直觀으로부터 槪念으로, 表現으로부터 設置로 - 自由로운 表現과 抵抗精神 ● 崔憲基의 初期繪畫에서 볼 수 있는 表現의 激烈性은 現在 그가 하고 있는 作業을 理解하는데 重要한 모티브(motive)를 提供하고 있다. 對象의 再現을 拒否하는 卽興的이면서 大膽한 筆致, 畵面 위에 生動하는 두터운 質感과 色彩는 거친 同時에 自信感에 차있다. 이러한 自信感은 그의 氣質로부터 나온 것임에 分明하다. 表現으로 향한 熱情은 藝術家의 美德에 속하며, 그의 獨創性을 確固하게 하는 要素 중 하나이다. 表現主義的인 風景으로부터 出發한 그의 繪畫는 1997년경 앵포르멜(Informel) 傾向에 이르러 마침내 抽象繪畫로 發展한다. 主觀的 感情을 卽刻的으로 表出하는 표현주의와 앵포르멜 繪畫가 어느 면에서 激情的으로 보이지만 그 속에 自由로운 個性의 豁達함이 넘쳐나고 있으며, 이런 特徵은 設置 傾向의 作業에도 나타나고 있다. 崔憲基의 初期繪畫로부터 最近의 設置作業에 이르기까지 作業過程에서 두드러진 特徵은 旣成의 觀念에 대한 懷疑와 挑戰意識이다. 예컨대 描寫보다 表現이 두드러진 繪畫는 寫實主義 傳統에 대한 反動으로써 繪畫 自體를 反省하고자 한 의도를 드러낸다. 이런 種類의 繪畫를 그는 추운 겨울의 얼어붙은 白頭山에서 孤獨과 싸우며 제작했다고 한다. 눈 덮인 自然에서 그는 景物을 捕捉하여 그것을 畵面에 再現한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를 격렬한 붓질(stroke)과 原始性을 內包한 色彩, 두터운 마티에르(matière)로 표현한 것이므로 이 작품은 槪念보다 直觀에 依存해 制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최헌기_A Decade of Cursive Writing 광초10년展_원전미술관_2013
최헌기_A Decade of Cursive Writing 광초10년展_원전미술관_2013

常識에의 叛亂 ● 그러나 形式의 革新 못지않게 作品의 內容 역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사실은 그의 작업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것임에 분명하다. 이를테면 마르크스(Karl Marx), 레닌(Vladimir Ilyich Ulyanov Lenin), 毛澤東의 초상사진 사이에 자신의 모습을 촬영한 사진을 넣고 그것을 여러 겹의 천으로 싼 작업은 그가 어린 시절부터 眞理라고 배워왔던 社會主義思想에 대한 懷疑를 迂廻的으로 表現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여러 겹의 천으로 둘러싼 이 초상사진 위에 '6x9=69', '?=!!!'와 같은 難解한 符號들을 記入함으로써 學校에서 學習을 통해 '注入된 思想'이 과연 眞實인지에 대한 疑問을 提起하고 있는 것이다. 6x9는 69가 아니라 54임은 常識에 屬한다. 그런데 그는 普遍的인 常識을 顚覆시켜 6x9가 69가 될 수 있음을 주장한다. 그런 점에서 그는 造形의 反亂者일 뿐만 아니라 常識을 뒤엎는 冒險을 敢行하는 異端者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詭辯論者이거나 不可知論者는 分明 아니다. 많은 藝術家들은 崔憲基처럼 常識에 대한 이러한 謀叛을 통해 世界와 現象에 대한 認識을 擴張하는데 貢獻했다. 또한 그가 根據없는 懷疑論者가 아님을 歷史的으로 重要한 人物과 함께 自身의 寫眞을 나란히 붙여놓은 것에서도 찾을 수 있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學習된 思想대로 思惟하거나 行動하지 않고 스스로 思考하고, 決定하는 主體者임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最近 그는 이러한 내용의 作品에 形態가 分明하지 않은 人物의 실루엣(silhouette)을 添加하고 있는데, 이 비워진 人物은 곧 觀覽者를 의미한다. 이 作品에서 作家의 意圖는 보다 明確하게 나타나고 있다. 거울과도 같은 이 畵面 앞에 서는 순간 觀覽者는 歷史的 人物들과 作家 사이에 있는 自身의 모습을 發見하게 된다. 觀覽者의 모습을 投影하는 畵面이 없을 때, 觀覽者는 단지 作家의 이야기를 듣는 聽衆에 지나지 않지만, 作品 속에 自身의 모습을 비춤으로써 그는 이제 聽衆이 아니라 話者, 즉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存在가 된다. 그래서 이 作品은 作家가 제기하는 '나는 내가 배우고 믿었던 것에 대해 懷疑하고 있는데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라는 質問에 대해 觀覽者가 主體的이면서 能動的인 입장에서 解釋할 수 있는 可能性을 열어놓고 있는 것이다. 만약 나의 이 主張이 一抹의 說得力을 지닌 것이라면 半透明의 천(布) 위에 意圖的으로 잘못 적어놓은 '公式'이나 符號 역시 觀覽者의 自由로운 解釋을 위해 열어놓은 可能性의 餘白이라 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최헌기_A Decade of Cursive Writing 광초10년展_원전미술관_2013
최헌기_A Decade of Cursive Writing 광초10년展_원전미술관_2013

狂草書體의 遊戱와 實驗 ● 崔憲基의 作品을 構成하는 要素 중에서 숫자나 曖昧模糊한 符號만큼이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마구 휘갈겨 쓴 글씨와 거울, 그리고 古典的인 額子이다. 먼저 휘갈겨 쓴 文字는 숫자만큼이나 解讀하기 힘든 것이기는 하지만 그 形態가 草書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파악하기란 어렵지 않다. 崔憲基의 解讀하기 어려운 草書에 對한 記憶은 文化革命의 時代로 거슬러 올라간다. 當時 少年이었던 그는 마을 어른들이 大字報를 作成하는 것을 보고 그 意味에 대해서는 알 수 없었지만, 종이 위에 휘갈겨 쓴 글씨가 視覺的으로 멋있고 아름다웠다고 回顧한다. 즉, 그는 어린 시절부터 그 大字報를 通해 草書, 특히 狂草의 造形美를 터득하였던 것이다. 事實 唐代에 狂草의 大家로 알려진 張旭의 <自叙帖>을 보면 글씨에 담긴 意味 못지않게 二次元의 平面空間 위에 굵고 힘에 넘치는가 하면 끊어질 듯 이어지는 線들이 만들어내는 調和로운 構成이 보는 사람의 感歎을 자아내게 만든다는 事實을 발견할 수 있다. 崔憲基는 천 위에 아크릴 물감으로 마치 豁達하면서 自由奔放한 狂草를 쓰듯 書體를 聯想시키는 文字를 적어 넣고 있으나 엄밀한 의미에서 이것은 記錄된 문자가 아니다. 그것은 글씨도, 記號도 아닌 造形的인 考慮의 結果란 점에서 그것은 記意가 省略된 記表인 것이다. 따라서 그가 휘갈겨 쓴 文字를 解讀하려는 試圖는 必然的으로 失敗할 수밖에 없지만, 그것을 文字로 보지 않고 그의 作品을 形成하는 하나의 造形要素로 볼 때 空間을 掌握하거나 占有하고 있는 밝게 빛나는 原色의 律動이 畵面을 얼마나 生動感 넘치게 만드는지를 발견할 수 있다. 그의 畵面에 이런 草書體가 등장한 것은 2002년경으로 마치 화면 위에 드로잉을 하듯 자유로운 遊戱의 하나로 시작한 것이었다. 이 광초를 떠올리게 만드는 자유로운 드로잉은 물과 같은 溶媒劑(medium)를 거의 섞지 않고 물감을 原液 그대로 붓에 찍어 화면 위에 그린 것이기 때문에 立體感이 두드러진다. 속이 비치는 천이나 비닐 같은 材料를 活用하면서 글자들은 서로 겹쳐져 더욱 解讀하기 힘든 것이 된다. 그러나 바탕의 이미지를 통해 그의 主題가 東西의 融合, 傳統과 現代의 만남, 男과 女의 和合, 理念의 衝突과 和解를 指向하고 있으며 글자를 구성하는 이 선들이 서로 對立的인 두 世界를 連結하는 실과 같은 役割을 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최헌기_A Decade of Cursive Writing 광초10년展_원전미술관_2013

傳統과 現代의 融化를 向하여 ● 最近 그는 화면 위에 그렸던 문자를 立體로 세우는 實驗을 하고 있다. 화면 위에 그려진 글씨가 겹쳐지면서 空間感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 그는 글자의 形態를 立體로 만들어 화면 앞에 세움으로써 작품을 완전한 設置로 만들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입체로 구현된 狂草形態의 글씨가 바닥 위에 세워지는가 하면 天障으로부터 쏟아져 내려 고전적 분위기를 풍기는 황금색 액자 속에 쌓인다거나 혹은 瀑布가 떨어지며 일으키는 泡沫처럼 액자에 쌓인 글자들이 액자 밖으로 튀어나가는 듯한 일련의 興味津津한 實驗的인 設置作業을 통해 평면으로부터 완전한 空間設置 作業으로 發展하고 있다. 여기에 동원된 새로운 素材가 거울이다. 그러나 崔憲基의 거울은 古代 그리스 神話에서 水面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眩惑당하는 나르키소스(Narccisus)처럼 自己破滅的인 것은 아니다. 이것은 空間을 無限大로 擴張시킬 뿐만 아니라 內容的으로는 그의 最近 作業이 追究하는 反影과 反省을 强化하는 裝置가 된다. 즉, 마르크스, 레닌, 毛澤東의 초상조각 사이에 넣은 거울을 통해 觀客에게 解釋의 餘地를 열어놓았던 것처럼 거울은 나와 世界를 連結하는 窓인 것이다. 崔憲基의 實驗은 展示場 自體를 하나의 藝術作品으로 構成하는 方式에서 劇的인 飛躍을 한다. 展示場 入口를 큰 액자인 것처럼 꾸미고 그 문을 통해 들어오는 사람들을 비디오카메라로 撮影하여 正面의 壁에 投影하기 때문에 이 문을 통과하는 사람들은 모두 自身의 모습을 보며 入場하게 된다. 즉 모든 觀客은 作品의 一部이자 主人公이 되는 것이다. 이때 비디오카메라는 거울이 발전된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최헌기_A Decade of Cursive Writing 광초10년展_원전미술관_2013

또한 바닥 위에 뉘어놓은 액자 위에 매단 거울은 傳統과 現代를 同時에 비쳐주는 일종의 時間旅行을 위한 타임머신과 같은 기능을 담당한다. 그는 일어선 문자, 거울 등을 통해 平面과 立體, 傳統과 現代, 自我와 世界와의 調和와 疏通을 추구하고 있다. 자유로운 抵抗精神을 지닌 그가 어떻게 傳統과 隱密하게 만나고 있는가 하는 점은 그의 작품에서 중요한 모티브가 狂草라는 것에서도 알 수 있으나, 캔버스를 대신하여 천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 설치에 있어서도 傳統的인 簇子의 形式을 聯想시키는 方法을 使用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화면 속에 登場하는 太極과 같은 圖像 등을 통해 確認할 수 있다. 傳統을 낡은 것으로 여겨 廢棄하거나 혹은 반대로 그것을 무조건 尊崇해야 할 價値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전통에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는 崔憲基의 이러한 態度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 바로 法古創新의 精神이다. 나에게 있어서 崔憲基의 이러한 姿勢는 그의 作業世界를 理解함에 있어서 核心을 이루는 것이다. 만약 그가 形式的 實驗만을 追求한다면 나의 觀心을 끌 수 있었을까. 崔憲基는 傳統과의 斷絶을 試圖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創作의 資産으로 活用함으로써 내용과 형식의 강화는 물론 자신만의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내용이 없는 형식은 空虛하고, 형식이 없는 내용은 초라하다. 최헌기는 그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어느 한쪽으로 편중하지 않는 작업을 통해 자신의 고유한 언어를 창조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점이 내가 그의 작품에 가지는 믿음이자 그를 좋은 작가로 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 최태만

Vol.20130917c | 최헌기展 / CUIXIANJI / 崔宪基 / installation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