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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5_0318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pm~06:30pm
백송갤러리 BAIKSONG GALLERY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31-8 (관훈동 197-9번지) Tel. +82.2.730.5824 www.artbaiksong.com
검은 숲, 그리고 Forêt spectrale ● 변연미의 검은 숲 연작은 무겁고 비극적인 실존의 덫을 환기시킨다. 그 느낌은 연원을 알 수없는 어둡고 어딘가 치명적인, 혹은 내 존재와 분리될 수 없는 세계의 어느 끝자락 풍경 같은 불안함으로 다가 온다. 이런 불안은 체계적이지도 않고 논리적이지도 않다. 그래서 부조리하다. 또한 변연미의 검은 숲은 그 숲 속의 명백한 논증들에도 불구하고 일상적인 숲의 범주를 벗어나 있다. 따라서 그 숲의 모습은 시각적인 유미의 대상이 아니라 결계를 한 모종의 권력처럼 존재한다. 인간의 실존에는 자체적인 뿌리가 없다. 오히려 그 뿌리 없음이 실존의 근원처럼 여겨진다. 즉 자연의 일부로서 존재할 뿐이다. 변연미의 검은 숲은 이러한 측면에서 다시 우리를 자극한다. 정원처럼 만들어진 동산에서 지내는 동안 모든 경외심을 상실한 뒤 느닷없이 스스로의 존재에 대해 묻는 자연에 대한 당혹스러움과 낯섦이 그것이다.
나무는 뿌리, 줄기, 가지, 껍질, 잎이라는 다섯 가지의 표면적인 상수를 가진다. 변연미의 회화에서 다루어지는 주된 물질적인 요소들도 이 나무의 상수가 만들어내는 타성적인 이미지의 반경에 의존한다. 하지만 그 이미지를 감각적으로 수용하고 나름의 회화로 재구성하는 방식은 굉장히 특징적이다. 변연미는 기존의 관습적인 도구와 과정을 일체 내려놓고 독립적인 절차를 따라 회화를 구성한다. 그 결과 일정한 이미지의 상수값이 존재하지만 들여다보면 예상치 못한 메커니즘에 의해 상수값이 흐트러지는 일순, 혼란스러움을 경험하게 된다. 이것은 환원 불가능한 조건과 상응한다. 우리가 탁자 위의 맥주캔을 일별하든지, 벽에 걸린 괘종시계를 바라봤을 때 그 대상의 합목적성을 의심하는 경우는 없다. 맥주캔의 고리를 따면 시원한 액체가 들어있으며 괘종시계의 시침과 분침이 수직으로 겹쳐져있으면 정오를 나타내고 있다는 사실은 관습적으로 일원화된 규칙이기 때문이다. 이런 일상의 규칙은 삶을 정연하게 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삶의 방식을 표면적인 것에 매달리게 하고 기저의 형이상학적인 고민들을 약화시키기도 한다. 또한 언제든 환원 가능한 단순성을 가진다. 더구나 회화에서의 이미지는 일상의 관념을 대칭적으로 이동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의 배후를 탐색하는 것이 되어야한다. 대개의 경우 그 배후는 심원하고 쉽게 호명되지 않으며, 논의의 대상이면서 단정할 수 없는 비합리적인 요소를 가진다는 것이 정설이다. 또한 전술한 임의의 지평과 맞닿아있다. 변연미의 회화에서 나타나는 환원 불가능한 제스처는 여기에 초점이 맞춰져있는데, 그 방식은 강박적으로 지시하는 경우가 아닌 스스로를 표현의 일부로 섞여들게 하며 근원의 주변에서 이미지의 태동을 관찰하며 조력하는 것이다. 따라서 결과적인 화면은 이중의 프레임을 제시한다. 비교적 현실적인 창과 그 창을 통해 불러들인 비합리적이고 유동적인 감각적 경험이 동시에 나타나는 것이다.
변연미가 줄곧 전시명으로 사용하고 있는 검은 숲은 자신의 작업의 전모를 암시한다. 검다는 것은 어두움이며,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경외감을 내포한다. 주지하듯 우주의 대부분은 알 수 없는 검은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 루돌프 오토(rudolf otto)가 적시한 누미노제(numen)도 실은 그 근원을 들여다보기가 불가능한 검은 것의 광막함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즉, 변연미에게 검은 숲은 관찰하고 위안을 불러내는 지점이 아니라 숲 너머의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침묵에 닿아있다. ■ 홍순환
Vol.20150318f | 변연미展 / YOUNMIBYUN / 卞蓮美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