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pture scape

전은숙展 / JEONEUNSUK / 全恩淑 / painting   2015_0303 ▶ 2015_0331 / 백화점 휴점시 휴관

전은숙_커피빈새벽_캔버스에 유채_161×97cm_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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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30am~08:00pm / 금~일_10:30am~08:30pm / 백화점 휴점시 휴관

롯데갤러리 일산점 LOTTE GALLERY ILSAN STORE 경기도 고양시 일산구 장항동 784번지 롯데백화점 B1 Tel. +82.31.909.2688~9 www.lotteshopping.com blog.naver.com/ilsan_lotte

capture scape ● 작가 전은숙은 삶의 면면을 즉각적으로 '캡쳐'한 풍경을 선보인다. '캡쳐'는 흔히, 영상에서 중요하거나 인상적인 장면을 잡아낼 때 행하는 것인데, 작가는 이를 두고 장면을 포획 혹은 얼려 버린다고 설명한다. 삶의 일면을 '캡쳐'하는 것을 언급함에 있어 작가는 제주도 여행에서의 경험을 든다. 작가는 차창밖에 보이는 인상적인 나무가 있는 장면을 보고선, 내려서 바깥을 체험하는 대신, 앉은 그 자리에서 그 나무의 모습 그 자체를 '캡쳐'했고 그것이 바로 「애월」 이란 작품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앞선 것이 '시각적' 자극, 민감함이라 했다. ● 시간에 흐름에 맡기는 것은 스토리가 남는다. 반면 작가는 기억의 시각적 메모를 하고, 경험의 중간에 이를 캡쳐하여 맥락에 앞서는 장면을 풍경으로 구성하는 것이다. 사실상 풍경은 원래 있는 것이 아닌 프레임화 된 장면으로 가능해진다. 장면을 절단해 규정짓는 '프레임'과 다르게, 캡쳐는 시간의 흐름에서도 탈주한 '이미지' 그 자체로 더욱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 진정한 여행은 그들의 삶을 체험하는 것 이라고들 한다. 거리를 두고 관조하는 다시 말해 그들의 삶이 배경이 되는 여행사진이 아닌, 그들의 공간과 시간 속에 개입하는 것이고 보통은 그것이 '여행을 제대로 즐기는 것' 이란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작가 전은숙은 반문한다. 결국 세상의 모습은 바라보면서 경험하기 마련이지 않은가? 우리는 그렇게 더 많은 세상을, 나와 다른 삶의 모습을 가능한 한 많이 경험하게 되는 조건을 취하는 것이다. 공간에 대한 장면은 관조했을 때 만 그 진가를 알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어딘가에 속해 있을 땐, 그 공간에 속에서 내가 어디쯤인지 어떤 모습인지 알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야기다. 작가는 그렇게 삶의 모습을, 삶의 주변 모습을 관조하고 일순간을 화면으로 옮긴다. 여행 중에 찍은 사진, 주말의 여유를 즐기는 클럽과 바, 혹은 지인 스마트폰에 있던 이미지 등 작가가 캡쳐한 이미지를 선택하는 등 풍경을 취하는 기준은 다양하다. 물론 작가의 생활모습과 그 반경이 여실히 드러난 풍경들은 수영장, 번쩍이는 클럽, 제주도의 나무, 꽃다발, 가까운 지인들의 모습 등은 익숙한 도시생활의 면면을 드러내 몽환적이면서도 번잡하고 때로는 된장(?)스럽기도 한데, 그래서인지 그 풍경을 관조하면서도, 그 속에 존재했을 법한 작가는 그림과 삶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이를 일치 시키고 있다.

전은숙_애월_캔버스에 유채_72×72cm_2015
전은숙_reset rinu,_캔버스에 유채_91×116.5cm_2015
전은숙_coffee flower_캔버스에 유채_31×41cm_2015

이렇게 작가가 캡쳐한 삶의 단편들은 호방한 붓질로 표현이 되는데, 유화가 '재차 터치를 입혀 두께를 쌓아 평면에 입체감을 주는 것' 임을(물론 전통적인 의미에서)상기할 때, 어찌 보면 작가는 유화를 가장 유화 같지 않게 다룬다. 작가가 캡쳐한 풍경들은 본연의 색을 넘어서는 색감을 단호한 터치로 표현되는데, 화면 전체가 아닌 부분을 보면 그 파편화된 이미지 자체는 색면회화의 한 부분인 듯 하면서, 전체 풍경의 모습은 표현주의 회화의 한 장면을 상기시킨다. 투명하게 개어진 물감은 넓은 붓으로 배경을 채우고 있는데, 묽은 투명감이 겹쳐진 전은숙의 회화는 깊은 공간을 투명한 레이어의 중첩으로 표현하여 서로 다른 시간대와 장소가 겹쳐진 비현실적인 풍경을 그려낸다. 사진과 회화의 관계는 20세기 이후 사진을 바탕으로 그리는 회화란 측면에서, 사진과 회화의 논쟁은 그 꺼리가 신선하지는 않다. 하지만 전은숙은 사진으로 캡쳐된, 아니 이미 그전에 작가의 눈으로 선택된 풍경을 사진의 도구를 빌어 회화로 옮겨질 때, 그 색감과, 형태감 그리고 공간감을 재구성하는 작가만의 필터가 작동된다. 그건 마치 즉각적으로 이뤄지는 반응 같은 것인데, 매우 신중하게 고려되기보다는 속도감 있는 필체로 표현되고 있다. 전은숙이 캡쳐한 풍경은 화면으로 옮겨지는 동시에 삶이면서 풍경이고, 사물이면서 빠르게 스친 한낱 붓질인 셈이기도 하다. ● 이런 과정에서 캡쳐 풍경은 '줌 인-아웃'을 통해 관조하는 시선이 갖는, 자칫 정적인 노곤함을 떨군다. 19cm 의 정방형 캔버스에서부터, 100cm가 넘는 캔버스까지 다양한 사이즈의 평면을 다루는데, 책만한 크기의 캔버스에 그려진「꽐라」의 꽉차게 들어찬 인파들은 순간 붉은 조명아래 숨막힐 듯한 공간을 환기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다. 어지간한 벽에서는 이정도의 사각형은 점과 같다. 작가는 이 '점'으로 캡쳐한 풍경을 옮겨와 보는 이로 하여금 공간의 전치를 경험하게 한다. 반면 「cafe flower」는 실제보다 확장된 크기의 캔버스에, 꽃잎 하나하나가 속도감 있는 터치로 표현되어 있는데, 화면을 꽉차게 그려진 꽃다발은 중첩된 꽃잎의 촉감을 드러내 마치 눈 앞에 드리워진 꽃다발을 연상케 한다. 도심의 높은 빌딩에서 내려다본 교차로의 풍경을 보도 블럭, 도로위의 자동차, 그리고 도로 안내선이 죽죽 내리그은 면으로 그려낸 「scene hotel」은 'bird eyes view' 의 시선을 느끼게 하여 지상의 다양한 모습을 마치 동등한 사물처럼 표현된다. 이렇게 멀고 가까운 공간은 작가의 캔버스에서 만나 현실과 분리된 이미지로서만 존재하는 것이다. 면면이 터치로 표현된 풍경이 또 하나 있다. 호텔 세면대에서 내려다본 장면인 「renu scene」은 유일하게 작가가 반복적으로 선택한 모티브인데, 내려다본 욕실의 바닥과 세면대는 화면을 반반씩 채우고 있다. 푸른색 타일은 네모진 붓질로 묘사되어, 그곳이 욕실인 것은 중요치 않은 듯, 네모의 반복이 가져다주는 시각적 자극이 공간의 전후를 뒤섞어, 그닥 특이할것 없는 일상의 욕실공간을 현실과 분리된 흥미로운 이미지로 캡쳐해낸다.

전은숙_rinu scene_캔버스에 유채_116.5×91cm_2015
전은숙_scene hotel_캔버스에 유채_96×193cm_2012
전은숙_b day ceremony_캔버스에 유채_91×116.5cm_2012

"캡쳐 풍경"에서 사람은 어떤가? 몇몇 그림에서 등장하는 장면에서 우리는 종종 사람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일종의 점경인물로서, 그 공간에 부합하는 '어떤 것' 으로서의 사람일 뿐이다. 「지긋이」는 제목 그대로 '지긋하게' 기대있는 여자의 몸짓을 그렸다. 여기엔 은연중 기대되는 'S'의 풍만함보다는 몸의 곡선을 그대로 훑은 듯 한 붓의 자취가 남아 있다. 어떤 양감표현도 없이 '지긋이'는 순식간에 그어진 납작한 붓질만이 물성으로만 남아 마치 사물인냥, 공간을 점유하는 어떤것 그이상도 이하도 아닌 소재가 된다. 꽤나 대작에 속할법한 「커피빈 새벽」은 공간과 그곳에 놓인 의자와 테이블, 거기를 둘러싼 세 명의 여자가 모여, 그들의 대화내용이 무엇인지도 상상할 수 있을 만큼이나 익숙하고도, 자칫 뻔한 풍경을 보여준다. 하지만 천장에 비춰진 공간의 이미지와 공간이나 사람 할 것 없이 같은 두께와 방법으로 스친 붓질은 일순간 이 풍경이 납작하게 압축되나 싶으면서도 각각의 면면이 겉도는 듯, 동일한 목소리를 내 시선을 끈다. 중심과 주변, 주제와 배경의 구분이 없어, 그래서 시끄러운지, 그녀들의 수다가 시끄러운지 왕왕거리는 듯 싶다가도 두터운 붓질로 뭉개진 얼굴들이 보인다. 공간 표현에 비해 다소 적은 입체감으로 가능한 얼굴묘사는 가뿐히 스쳐듯 묘사를 생략하며 지나가는데, 그 풍경 속에 '누구'가 있었는지 보다 '누군가가 있다' 는 것, 그 인상으로 작가는 삶의 모습을, 세상을 그리고 있다. ● 작가는 왜 뚫어지게 보지 않고 주변에서 관찰하고 순간을 기억할까?. '우리는 모두 삶의 주인공이어야 한다' 고 선각자는 말하고 있다. 청춘을 위로하는 수많은 미디어에서 달콤하게 혹은 단호하게 다그치지만, 사실 우리는 나 밖의 것을 관조하면서, 그들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이방인일 수 밖에 없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작가는 주변을 대상화 하고 공간속에 모든 것을 동일한 시선을 던진다. 이렇게 이방인임을 자처하고 삶의 면면을 이미지로 치환하여 풍경으로 관조하는 것. 이것이야 말로, 삶을 붙잡는 과정이자 작가 전은숙이 '풍경' 그리기를 지속하는 이유인 것 같다. 이렇게 삶과 이야기에서 캡쳐된 현실의 이미지는 작가의 필터에 의해 오롯히 회화로써 재구성되고, 편집되어 새로운 그림책을 써나가고 있다. 이미지는 상상을 가능케 한다. 페이지를 넘길 때 마다 저마다의 이야기에 맞게 그림이야기를 이어가는 것. 이렇게 작가가 누군가가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도록 단서를 꾸준히 제공해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 장윤주

Vol.20150308f | 전은숙展 / JEONEUNSUK / 全恩淑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