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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5_0121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토포하우스 TOPOHAUS 서울 종로구 인사동11길 6(관훈동 184번지) 1층 제2전시관 Tel. +82.2.734.7555/+82.2.722.9883 www.topohaus.com
Broken beauty는 자신보다 더 높은 가치인 진, 선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진, 선에게 복종하고 봉사하는 미이다. Broken beauty는 단순히 보기 좋고 예쁜 것에 머무르기를 거부하면서 사랑, 진실, 선과 같은 더 높은 가치를 위하여 스스로를 손상시키고 상처투성이가 되기를 자처한다. 또한 인간의 실존상황 속에 가득 차 있는 'brokenness'들을 부정적인 것으로 간주하지 않고 넉넉히 품어냄으로써 삶의 궁극적 실재를 포착하고 전달하는 데 있어서 힘과 가치를 발휘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 안에는 인간의 삶을 손상된 상태로부터 회복의 상태로 이동시켜주고, 인간영혼을 허무와 죽음의 상태로부터 희망과 생명의 상태로 '변형(transformation)'시켜주는 '구속(redemption)'적 능력이 담겨지게 된다.
「Broken beauty-vessels」는 '깨어짐'의 의미를 일상의 삶 속에서 경험하도록 이끈다. 깨어졌으나 다시 붙여진 그릇들은 삶 속의 'brokenness'들을 진실되게 보여주고자 봉합된 흔적들과 일부 조각들이 상실된 모습들을 숨기려 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것을 통해 미가 형태적 이상미보다 진실과 더 긴밀하게 연결될 때 더 진한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다시 붙여진 그릇들은 물을 담는 기능성은 상실했으나 빛을 담는 그릇이나 생명(식물)을 담는 그릇으로 사용됨으로써 새로운, 더 가치로운 정체성을 부여받게 된다. 그리고 붙인 틈 사이로 빛이 투과하면서 아름다운 실루엣을 만들어내고 빠진 조각과 틈들을 통해 배수가 이루어짐으로써 새로운 차원의 미를 부여받게 된다.
"누군가를 위해 뜨거운 눈물을 흘려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차갑고 어두운 밤에 고요히 자신을 태우는 양초의 희생처럼 누군가를 마음 속에 불을 밝혀줄 수 있을 것이다" ● 헐벗은 얼굴의 부름과 응답 - 헐벗은 진실의 아름다움 엠마누엘 레비나스 Emmanuel Levinas는 타자의 얼굴은 텅빈 얼굴로 온다고 말한다. 텅빈 얼굴이란 고아나 과부의 얼굴처럼 사회에서 모든 의미를 박탈당한 얼굴을 말하는데, 바로 그런 얼굴이 우리의 모든 지식이 무색해지는 텅빔으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타자의 상한 얼굴, 그 '헐벗고(unveiled)' '깨어진(broken)' 얼굴은 일상의 연속성을 중지시키고, 일상의 순간에 상처를 내면서 우리 안에 감춰져 있던 결핍이 드러나도록 만든다. 헐벗은 타자의 얼굴에서 발산되는 '헐벗은 진실의 미'는 우리의 마음에 수치와 부끄러움을 불러일으키고 인간실존의 진실에 대해 돌아보게 만든다. 그것은 우리들 내면의 brokenness들을 들추어내듯 조명한다. 그래서 헐벗은 얼굴과의 대면은 끔찍할 정도로 고통스러운 경험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경험이 우리의 영혼에 변화를 불러일으키게 될 때, 우리는 놀라운 내적변형(inner transformation)을 경험하게 된다. 타자의 얼굴을 직면하게 된 인간은 비로소 자신에게 집중되어 있던 존재의 무게 중심을 자신에게서 타자로 옮겨놓을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얼굴이 부르는 부름에 응답하지 않을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 「Unveiled faces 헐벗은 얼굴들」, 「Broken faces 깨어진 얼굴들」은 헐벗음과 깨어짐이 주는 고통으로 인해 뜨거운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고 있다. 그러나 드러나는 그녀 안의 결핍, 상처와 연약함은 보는 이의 영혼 깊은 곳을 찌르며 다가온다. 그녀의 상황, 고통이 우리의 상황, 고통을 조명해준다. 그것은 진실의 얼굴이 진실의 얼굴을 깨우는 경험이다. 얼굴과 얼굴이 마주하는 뜨겁고 강렬한 경험인 것이다. 그녀의 얼굴에서 우리는 고통 속에 감추어진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된다. 여기서 '헐벗음'이란 'unveiled', 즉 겹겹으로 쓰고 있던 베일들을 모두 벗어버림을 의미한다. 우리는 스스로가, 그리고 공동체와 사회가 씌운 베일들을 하나 둘 벗어나가면서, 참된 생명과 사랑을 향해 가는 순례의 여정을 계속해 나가야 한다. 「Rose scarred faces 장미상흔이 새겨진 얼굴들」에 상흔처럼 박혀있는 장미꽃잎은 고통 없이는 품어낼 수 없는 생명, 그리고 사랑을 상징한다. 인간을 비로소 인간답게, 그리고 진실로 살아있게 만들어주는 그 소중한 가치들을 품어내기 위해, 우리는 오늘도 끎임없이 고통 앞에 우리의 삶을 내어놓아야만 한다. "우리가 얼굴을 찾을 때까지"말이다.
Stigmata - 구속적 아름다움 ● 그리스도는 최후의 만찬 때 누룩이 들어있지 않은 빵을 손에 들고 신에게 감사를 드린 후 그 빵을 '찢으셨다(broke)'. 눈 앞에 놓여 바라봄의 대상이던 빵은 찢어짐으로써 치명적인 손상을 입게 된다. 그러나 그 찢어지고 손상된 빵은 비로소 여러명이 나누어 먹을 수 있는 상태가 된다. 그것은 멀리서 욕망하며 바라보기만 하던 접시 위의 빵이 아니라, 직접 만지고 먹도록 자신을 내어주는 빵이 된 것이다. 성육신하고 십자가에 달린 신은 멀리서 동경하며 바라보기만 하는 신이 아니라 직접 만지고 먹을 수 있게 된 신, 찢어진 신, 상처입은 신이다. 그것은 사랑을 위하여 결핍과 손상을 스스로 선택하였기에 빛을 발하게 되는 초월적 차원의 아름다움을 발산한다. 그리스도는 인간의 죄악 때문에 짖이겨지고 치명적으로 break되었다. 그러나 그가 사랑 때문에 허용한 상흔들로 인해 인류는 나음을 받게 된다. 우리는 놀랍게도 그 손상된 상흔투성이의 구원자, brokenness를 가득 품고 있는 구원자로부터 새로운 차원의 미가 발산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그것은 멀리서 동경하며 바라보기만 하던 저 높은 곳의 신적 아름다움, 즉 서구의 전통적인 미학체계가 추구해오던 이상미와는 극명하게 대비되는 미이다. 그것은 바라보기만 하던 미가 아니라 직접 만지고 먹을 수 있게 된 미, 찢어진 미, 상처입은 미인 것이다. Broken beauty, 그것은 break됨으로써 나누어지고 먹혀질 수 있게 된 broken bread처럼, 스스로를 찢음으로써 나누어지고, 그럼으로써 놀라운 힘을 발휘하게 되는 미, 즉 "break됨으써 가능해지는 미"이다. 그것은 사랑 때문에 허용한 'brokenness'들을 자기 안에 품게 됨으로써 인간 영혼의 깊은 곳에 강렬한 감동을 불러일으키며 흡수되어지는 미, 'brokenness'를 품게 됨으로써 놀라운 치유와 회복, 부활의 힘을 발휘하게 되는 미이다.
Stigmata란 '성흔(holly scar)'을 뜻하는데, 그리스도의 손과 발, 몸에 새겨진 상처의 흔적들을 의미한다. 중세의 제단화들을 보면 stigmata가 선명한 그리스도의 모습을 강조해서 그린 경우들이 많았는데, 신도들은 그림 속 상흔들을 바라보는 동안 깊은 회개를 동반한 영적 감동과 치유를 경험할 수 있었다. 그것은 자신을 위해 수난받은 이의 상흔을 응시하는 동안 강렬한 내적 카타르시스를 통한 치유에 이르게 되는 종교적 차원의 경험이다. 「Stigmata」는 종교적 차원의 경험을 기반으로 하여 그것을 보편적인 치유의 경험으로 확장시켜 제시하는 영상작품이다. 감상자들은 부드러운 빛이 통과하도록 설치된 상처의 흔적들을 바라보는동안 상처와 관련된 개인적, 혹은 공동체적 기억들을 환기하게 되고, 상처의 흔적들이 아름다운 빛의 흔적들로 다가올 때 치유를 경험하는 동시에 새로운 차원의 미적 경험, 즉 "broken beauty-손상된 것으로부터의 변형 속에서 발견되는 미"를 경험하게 된다. ■ 심정아
Vol.20150121e | 심정아展 / SHIMJUNGA / 沈廷雅 / 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