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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6_0315_수요일_05:00pm
갤러리 토포하우스2층 제2전시실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4번지 Tel. 02_722_9883 www.topohaus.com
심정아, 동화같은 세상의 어귀로 ● 심정아씨의 작품은 싱그런 스토리로 넘쳐난다. 심정아씨의 작업실을 방문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퍼뜩 손때가 묻은 '소쿠리'를 떠올렸다. 갖은 채소나 곡식을 주어 담는 대나무로 만든 바구니 말이다. 심정아씨의 소쿠리에는 채소나 곡물로 채워진 대신 '자전적 이야기들이 그득하다. ● 재료는 흔히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이다. 장난감들이나 고물, 궤짝, 물통, 천 조각, 유리, 집기들로 이뤄져 있다. 비록 상체기가 나 있고 썩고 상한 물건들일지라도 작가를 만나면 근사한'예술품'으로 둔갑한다. 가공과 채색, 위치이동을 통해 오브제들은 과거의 '우중충한 존재감'을 떨쳐버리고 멋지게 탈바꿈한다.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으면서 오브제들은 작품의 주된 동인(動因)으로 참여하게 된다. ● 눈의 즐거움을 위해 다른 것들을 생략한 인상파 이후에, 미술은'이야기'를 상실했다고 말한다. 문학과 종교와 역사를 추방한 뒤 미술은 떨어지는 황혼만을 쳐다보며 시름시름 앓아왔다. 그러한 것들을 미술가들이 추방했다고 해서 영구히 상실한 것은 아니다. 태양을 손바닥으로 가린다고 해서 태양의 존재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작가는 방치되어 있던 것들을 원래 자리로 되돌려주고 있다. 거창하고 화려하지 않지만 가슴에서 우러나온 진실된 이야기들로 우리를 '공감의 스테이지'로 이끌어내고 있다. 무감각한 현대미술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는 얼떨떨할 수도 있지만 그다지 기분 나쁘지 않은 초청임에 틀림없다. 미술에는 영원한 사조도, 수법도, 양식도 없다. 다만 참되고 진실한 것만이 영원히 남을 따름이다.
「슬픔속에 갇힌 그녀」는 나도 받아들일 수 없고 다른 사람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청춘의 한 때를 겨냥한다. 비춰지지 않는 거울, 읽히지 않는 점자로 된 편지, 그리고 연결되지 않는 구슬로 묶여진 목걸이는 나의 한 모퉁이를 갉아먹었던 힘들었던 시절을 표현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벽을 만들어놓고 모나드의 존재로 살아가는 현대인의 외로움과 고독을 자전적 스토리로 바꾸어 드러냈다.
「눈물방울을 위한 뮤직박스」에선 눈물의 소중함을 다뤘다. 고여 있는 눈물방울과 함께 음 조절기, 현, 밥을 주는 태엽을 부착하여 눈물을 음악적 구성으로 옮겼다. 정호승시인의 말처럼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 같다. 심정아씨가 나타내는 눈물은 어떤 감상적인 기분의 결과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받아들일 때의 순결한 감정을 말한다. '사랑'의 감정을 작가는 아름다운 음악으로 풀이하였다. ● 「새와 의자」는 '새가 되고 싶은 의자'와 '의자가 되고 싶은 새'를 묘출한다. 의자의 팔걸이와 뒷면은 하얀 새의 깃털로 수부룩이 덮여있다. 알다시피 의자가'쉼'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면, 깃털은 어디든 자유로이 날아다니는'떠남'의 의미를 지닌다. 안주하고 싶은 마음과 그것을 박차고 일어나고 싶은 마음이 이중주를 연주하고 있는 셈이다. 작가는 사람 안에 잠복되어 있는 두 갈등적 요소를 의자와 새와 같은 상징적 이미지로 적출해냈다.
그런가 하면 「스카이워커」,「흰 바다의 추억을 기리는 댄스」는 각지를 돌며 느꼈던 여행의 추억을 들려준다. 「스카이워커」는 멕시코로 선교를 갔을 때 밤하늘의 찬란함과 오묘함을 보고서 세상의 아름다움을 고백한 것이다. 벽에서 긴 손이 뻗어 나와 넌지시 밤하늘의 별자리를 짚고 나무박스를 열면 뜻밖에도 별들이 감상자를 맞는다. 멕시코 하늘아래서 느꼈던'세상이 이렇게도 아름답구나'는 감동의 순간을 회상하며 그 감동의 소용돌이를 형용한 것이다. ● 「흰바다의 추억을 기리는 댄스」는 터키의 소금호수를 갔을 때 백설기같은 흰 바다의 정경을 묘출한 작품이다. 더 이상 나쁠수없는 환경에서조차 실낱같은 위로를 발견하는 작가의 감수성이 놀랍다.
이와 함께 심정아씨는 이번 개인전에 기독교 신앙으로 부양된 작품을 몇점 내놓았다. 「기도는 겨울의 심연에 있는 나무들처럼 아름답다」는 작품을 보면 고(故) 대천덕 신부가 세운 기도원'예수원'의 기억을 되살려 냈다. 그곳에서 산책하며 보았던 나무들, 허름한 교회, 램프, 십자가 등을 미니에이추어로 갖다놓거나 프린트하거나 그려 넣었다. 순수한 영혼으로 사물을 볼 때 모든 사물은 아름답다. ● 「영혼의 목욕」은 침례로 영혼의 죄 사함과 구원을 얻는 성례(聖禮)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흰 가운이 욕조에 담겨져 있는데 이 욕조에서 물이 올라와 가운을 적시도록 되어 있다. 물이 우리를 깨끗하게 씻으며 구원한다거나 물 자체에 깨끗케 하고 중생시키며 새롭게 하는 힘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침례를 통하여 우리의 죄 사함과 의로움, 영생에 대한 지식과 확신을 받는다는 것이다. 믿음의 외적 표징인 세례를 심정아씨는 마음에 새기면서 세례 받았을 때의 기쁨과 감격을 되살려냈다. ● 작가는'인생의 여로(旅路)'를 걸으면서 만나는 아픔과 애환을 애써 숨기지 않는다. 그 아픔과 애환을 사랑으로 견디며 삶의 행로를 오늘도 묵묵하게 걷는다. 뭐랄까, 그가 꿈꾸는 마음은 변하는 세상의 변하지 않는 정적(靜寂)의 중심이다. ■ 서성록
Vol.20060318a | 심정아展 / SHIMJUNGA / 沈廷雅 / 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