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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5_0109_금요일_06:00pm
1차 / 2015_0109 ▶ 2015_0130 연장 / 2015_0202 ▶ 2015_0227
기획 / 조관용 진행 / 황희승(살롱 아터테인 전시팀장) 홍보 / 조성은(미술과 담론 기자)
관람시간 / 02:00pm~06:00pm / 일,공휴일 휴관
살롱 아터테인 salon ARTERTAIN 서울 서대문구 홍연길 32(연희동 708-2번지) Tel. +82.2.6160.8445 www.artertain.com
이 전시는 '한 가닥의 선들-생명에서 사물로'라는 주제로 기획한 "1인 기획전"이다. 이 전시는 "한 가닥의 선들 - 생명에서 사물로"라는 주제로 작품을 선별하고, 전시 장소인 살롱"Salon Artertain"의 주변의 경관을 주제에 맞게 작품을 새롭게 제작하여 전시를 구성하고 있다. 이 전시는 작가가 작품을 제작한 연도를 따라 "작가의 의식의 흐름"에 초점을 맞추는 개인전이 아니라 기획자와 참여 작가가 함께 주제를 논의하여 기획한 전시이다. 이 전시는 한 가닥의 붓털로 머리카락과 수염들을 그린 작품들과 한 가닥의 붓털로 살롱 "Salon Artertain"의 주변 장소들을 사생하여 그린 작품들로 전시를 구성하고 있다. ● 살롱 "Salon Artertain"의 주변 장소들은 70년대와 80년대의 산업화의 물결과 함께 지어진 주택들과 건물들이 있는 곳이다. 주택들은 지어진 지 오래되어 산업화의 관점으로 보면 낙후되어 보이며, 서울의 여느 장소들과 마찬가지로 오랜 건물을 허물고 새롭게 건물을 지어야 한다는 논의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지역이다. 개발 그리고 다시 재개발.....재개발의 논의는 내가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살고 있는 아현동과 같이 이곳에서도 계속해서 끊임없이 회자되고 있다. 내가 아직도 아현동에 살고 있다고 애기하면 그 지역에 대해 아는 사람들은 묻는다. "거기는 재개발되지 않나요?" "그 동네도 재개발되면 집값이 오를 텐데요?"라고 말한다. 그런 이야기는 20년 넘게 들으니 이제는 새로울 것도 없다.
그 보다는 내가 살고 있는 반대편 아현 2, 3동이 2006년도에 재개발에 들어가 그곳에 살던 모든 사람들이 하나 둘 씩 다른 곳으로 이주를 했다. 바로 주택이 들어설 것처럼 사람들을 이주시켰던 그 곳에 6년 넘게 방치되다가 2년 전부터 공사를 해 이제는 건너편의 산꼭대기가 안보일정도로 아파트와 상가들이 들어차 있다. 재개발이 시작된 지 9년이란 세월이 지나 그곳에 건물이 들어선 것이다. 재개발된 지금 그곳에는 예전에 살던 주민들이 얼마나 다시 들어와 살고 있을까? ● 그곳이 재개발로 지정될 무렵 나는 어릴 시절에 그곳에서 살았던 작가와 간적이 있었다. 집들이 비어 있고 가재도구들이 나 뒹굴며, 전쟁이 휩쓸고 간 폐허와 같은 그곳을 여기저기 돌아다니던 그 작가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거리고 있었다. 그 눈물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그 작가에게는 어린 시절의 추억이 영원히 없어져서 흘리는 눈물이었을까? 그 문제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건 어쩌면 자신의 실존의 일부, 조금 더 과장해서 말하자면 신체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느낌은 아니었을까. ●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바로 뒤쪽의 동네도 집들을 허물고 재개발을 하고 있다. 그 동네도 재개발의 이야기가 나온 지 한 20년 가까이 되었지만 이제야 재개발에 들어간 것이다. 재개발은 이제 서울 시내의 어느 지역을 가도 새로울 것이 없다. 재개발이 되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은 주민들에게 경제적으로 조금 더 부유해지고, 조금 더 깨끗한 건물에서 살게 되니 나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재개발이 진정으로 그곳에 살고 있는 주민들을 위한 것인가? 재개발은 어느 곳이나 대부분 그곳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입장에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인 수지 타산이 맞아야 진행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재개발의 논의가 장기화될수록 그 지역은 점차 투기지역으로 바뀌며, 그곳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이 얼마만한 가치가 있는 지를 끊임없이 세뇌당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단순히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이 얼마인지라는 문제에서 멈추지는 않는다. 한번이라도 재개발 지역에서 살아서 자신의 집이 얼마인지를 끊임없이 생각하면서 사는 사람들은 삶의 방식과 태도가 점차 "내가 이 사람을 만나면 무슨 이득이 있을까?" "저건 얼마짜리인가?" 라고 묻게 되며, 삶의 방식과 태도는 점차 경제적인 가치에 기준을 두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은 이제는 경제적으로 성공하면 떠날 곳이라고 생각하여 더 이상 애착을 갖지 않게 되며, '이웃사촌'이나 '공동체'라는 말은 점차 무의미한 말로 들리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서울시내뿐만 아니라 전국 어디를 가도 '개발'이나 또는 '재개발'이라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 그렇기에 서울 시내에 있는 재개발된 지역으로 이주해 온 사람들에게 '이웃사촌'이나 '공동체'라는 말은 무의미한 말일지도 모른다. 일상의 삶이 그들에게는 경제적인 문제와 직결되어 있으며, 그것은 생존과 직결되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까지 삶의 모든 것들을 경제적인 가치로 환원하며 살아갈 것인가? 흔히 도시인들의 삶은 여기저기 이주하면서 살기에 드넓은 대초원에서 목축을 하면서 살아가는 유목민들의 삶과 닮아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도시인의 삶의 태도와 방식과 유목민의 삶의 태도와 방식과 똑같을까? 중앙아시아의 유목민들이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보며 도시의 사람들과 같이 삶의 모든 것들을 경제적인 가치로 환원하며 살아갈까?
"한 가닥의 선들 - 생명에서 사물로"의 전시는 단순히 한 가닥의 붓털로 머리카락을 그리는 이야기가 아니다. 또한 "'Salon Artertain'"의 전시장은 작가가 한 가닥의 붓털로 그린 그림들을 전시하여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는 너무나도 외곽에 위치해 있고 전시장 규모도 7평 남짓한 공간에 불과하다. 한번이라도 한 가닥의 붓털로 물감을 적셔 캔버스 위에 선(線)을 그어보면 그 누구라도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이다. 작가가 7평 남짓한 공간이라도 이곳에서 전시하기 위해 그 동안 한 가닥 붓털로 그려온 그림들을 전시한다고 하면 작가를 아는 친한 주변 동료들은 "미쳤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올 것이다. 그리고 이 전시를 기획한 사람에게는 돌아올 말은 작가를 기획자의 입장에서만 생각한다고 적개심 어린 시선으로 볼 것이다. 게다가 아무리 작은 1, 2호 짜리의 캔버스라 할지라도 "'Salon Artertain'"의 주변 경관을 그리면 어떻겠냐고 유도를 하였으니 말이다. ● "한 가닥의 선들 - 생명에서 사물로"의 기획전은 엄밀히 말해 한 가닥의 붓털로 우리 신체의 일부인 머리카락을 그리는 이야기는 아니다. 머리카락으로 작업을 하는 작가들은 오정일 작가이외에도 국내에도 몇 명의 작가들이 있으며, 외국에도 있을 것이다. 또한 이 전시는 한 가닥의 붓털로 머리카락을 그려 주목을 받기 위한 것도 아니다. "한 가닥의 선들 - 생명에서 사물로"의 기획전은 경제적인 가치가 모든 것의 잣대가 되는 도시의 삶에서 "느리게 살아가기", "모든 사람을 배려하며 살아가기"라는 문제가 얼마나 쉽지 않은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기획전은 오정일 작가가 한 가닥의 붓털로 머리카락과 수염을 그려놓은 작품들과 한 가닥의 붓털로 "'Salon Artertain'"의 전시장의 주변 경관을 그려놓은 작품들로 전시되어 있다. 전시장이 7평 남짓에 불과할지라도 이 기획전에 출품된 전시 작품들은 오정일 작가가 거의 10여년 가까이 심혈을 기울인 작품들 대부분이 전시되었다. 한 가닥의 붓털로 한 올 한 올 머리카락을 정성을 들여 그린 머리카락이라면 그럴듯한 전시장에서 하는 것이 물론 일반적인 상식이다. 하지만 그의 작업은 결코 경제적인 가치로 환원되는 전시장에서 준비하여 전시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일상의 삶을 끊임없이 경제적인 가치로 환원하게 되는 재개발과는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 머리카락의 작업은 오정일 작가가 앤드류 와이어쓰 앤드류 와이어쓰(Andrew Wyeth, 1919 - 2009), 20세기 중반에 미국에서 활동한 사실주의 작가, 「Farm Road」는 앤드류 와이어쓰가 1971년에서 1987년에 걸쳐 그려 워싱턴의 내셔녈 갤러리에서 전시한 헬가 그림시리즈들 중에 1979년 그린 그림이다. 의 「Farm Road」의 영향을 받아 그리기 시작하지만 앤드류 와이어쓰의 「Farm Road」와 같이 인간과 자연을 하나의 실체로서 그리기 시작하는 것은 한 가닥의 붓털로 머리카락뿐만 아니라 수염과 일반적인 사물까지도 그리고 있는 것이다. 한 가닥의 붓털로 그린 그의 선(線)들은 렘브란트의 「야경」에 나오는 등장인물들과 같이 주변에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 렘브란트는 등장인물들을 어둠속에 비치는 조명을 통해 일종의 신성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오정일 작가는 머리카락뿐만 아니라 일반 사물들에 까지도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오정일 작가는 머리카락뿐만 아니라 일상의 사물의 배후에서 빛나는 에너지를 포착하여 그리려고 하였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앤드류 와이어쓰가 인간과 자연을 하나의 동일한 실체와 같이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과 일치하고 있는 것이다. 머리카락이 사실 신체의 일부이기는 하지만 손톱과 같이 머리카락도 자고 일어나면 빠지기에 사람들은 자신의 일부라고 흔히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이러한 생각에서 유물론자가 아닐지라도 인간과 자연을 하나의 동일한 실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자연의 모든 것들도 근원적으로 인간과 같이 동일한 의식을 지니고 있다는 논쟁은 인도 철학의 정수인 샹카 철학과 베단타 철학이 오천년에 걸쳐도 결코 결말이 나지 않은 문제이다. ● 하지만 이 기획전은 개발과 재개발로 이어지면서 끊임없이 모든 사람들과 사물들을 경제적인 잣대로 몰아가면서 획일적으로 판단하는 것에 대해 "우리는 언제까지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의 삶도 경제적인 잣대로 가늠하여 판단하는가?"라고 질문하는 데에 있는 것이다. 10년 넘게 한 작업이 7평도 되지 않는 전시장에서 겨우 전시를 할 수 있는 작품들에 얼마의 가격을 매길 수 있을까? 아니면 작가가 얼마나 게으르면 10년이 되도 7평도 되지 않은 전시장을 겨우 채울 정도인가? 작가가 얼마나 작업을 하지 않았으면, 제대로 된 전시장에 초대를 받지 못하였을까? 과연 우리는 이 기획전을 보며 그렇게 단언할 수 있으며, 경제적인 가치로 타인의 삶을 판단할 수 있을까? ■ 조관용
Vol.20150109d | 오정일展 / OHJEONGIL / 吳正一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