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20705e | 이호욱展으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서울시_서울문화재단_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갤러리 이즈 GALLERY IS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52-1(관훈동 100-5번지) Tel. +82.2.736.6669 www.galleryis.com
이호욱과 오윤, 그리고 사회 ● 이호욱의 작업은 줄곧 사람과 관계된 것들이다. 처음에는 학교, 동네 등 주변 사람들의 일상 표정들을 순간 포착했다. 다양한 직업, 연령, 성별, 상태의 인물들은 각자의 상황과 처지에 따른 생생한 모습을 나타냈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문득 인생의 유한성을 환기한 듯, 그처럼 다양한 개성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에게 획일적으로 부여된 인생의 공통 운명을 표현했다. 당시 작업은 간단한 설치나 스케치 등 소박한 형태의 초기 습작들이었고, 주제 맥락 역시 다소 비약적이라 할 만큼 과정에 대한 설명이 제시되지 않았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의욕적인 시선들은 이후 지속될 그의 관심사와 후속 작업들의 방향을 압축적으로 예시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그것은 사람과 그들이 지닌 공통 운명에 관한 소위 '휴머니즘'이란 단어로 포괄될 수 있는 주제였다.
이후 사람에 대한 본격적인 탐색을 시작한 이호욱은 비단 자기 주위의 동시대인들뿐 아니라, 오늘날을 이루기까지 그 배후가 된 과거의 다양한 사람들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는 사람에 대한 그의 관심이 종횡으로 확대되면서 역사와 사회라는 차원으로 확장되기 시작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형식적 측면에서는 과거 다양한 인물사진 이미지를 디지털 카메라, 스마트폰, 모니터 등 디지털 매체의 윤곽 속에 제시함으로써 두 이미지 간의 시대적 격차를 부각시키는 방법을 취했는데, 실제로 화면 속에 그려진 디지털 장치와 다시 그 안에 그려진 아날로그 시대의 사진들은 서로 강렬한 시각적 대비를 형성했다. 하지만 작가의 의도는 단순히 두 시대 사이의 격세지감을 강조하는데 있지 않았다. 오히려 그처럼 획기적인 시대 변화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초월해 면면히 이어지는 사람들의 기본적인 숙명 그리고 그에 토대한 정서적 유대와 공감, 동정을 환기시키고자 했다. 그가 말한 대로 과거 사진 속 인물들은 앉거나 선 자세, 대열을 이룬 암묵적 규칙 등에서도 오늘날의 행동 양식과는 많이 다르고, 그들이 선택하고 처했던 배경 공간 역시 특정 시대상과 관련된 것들이 많지만, 그 속에 담긴 사람들의 다양한 상황, 표정들은 여전히 인생이 회피할 수 없는 여러 희로애락의 감정과 삶의 스토리, 사연들을 전달하고 있었다.
이후 또 다른 연작에서는 화면을 상하로 이분한 구도의 작업을 시도했다. 이것은 이전 작업들에서 자주 활용하던 과거 기념사진들의 구도 형식에서 착상을 얻은 것이었다. 작가는 흔히 오래된 건축과 조형물들을 배경으로 촬영된 예전 기념사진들, 특히 그 배경과 인물 간의 관계를 보며 마치 '어른이 (자식을) 지키고 선 듯한 느낌'을 느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후 작업에서는 화면 앞 주제 인물들 뒤로 그 유래가 되는 선조 혹은 선례 인물들이 함께 배치되었는데, 그렇게 한 화면 안에서 상호 맥락을 이루는 인물군은 대부분 역사적으로 인과, 전승 관계를 나타냈으나, 그렇다고 반드시 친연 유사 관계를 이루는 것은 아니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상호 모순 갈등 관계를 이루며 모종의 풍자적 의미를 띠기도 했는데,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같은 화면 속에 하나의 맥락으로 제시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아마도 이는 사람의 공통 운명에 관심을 가진 작가의 입장이 무의식 중에 작용한 것이라 생각 되는데, 마치 우리의 혈연관계가 그러하듯 설령 모종의 갈등과 모순이 존재하더라도, 그들은 여전히 쉽게 부정 혹은 결렬될 수 있는 관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즉 부단한 소통과 이해, 반성과 재해석을 통해 마침내 하나의 유기적 맥락을 이뤄내야만 하는 것이 각 사람의 인생과 사회에 주어진 운명인 것이다.
물론 이러한 입장은 한 사회 속에서 이미 발생했거나 발생 중인 갈등과 문제 상황을 애써 무마시키려 한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사람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깊어질수록 사회적 문제 의식이 뚜렷해지고 동시에 해결 방안의 모색 역시 한층 신중해진다는 것이다. 이번 전시를 통해 소개된 작품들은 바로 이러한 의식을 반영한 작품들이라 볼 수 있다. 작가는 그 어느 때 보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 벌어진 시사 사건들을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리고 그와 관련된 자신의 입장을 구체화 하기 위해 유년 시절 그의 계몽 스승인 1980년대 민중미술가 오윤(吳潤, 1946-1986)의 판화 인물 형상들을 재소환하고 있다. 오윤은 작가에게 있어 대학 선배이자, 어린 시절 그가 애독했던 현실주의 아동문학 『이원수 문학전집』의 삽화 작가였고, 대학 입학 후 여러 인물 군상들을 그리는 과정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참고했던 예술적 스승이다.
작가는 이번 전시의 제목을 『오윤 예찬』이라 명명하고 있다. 누구에 대한 '예찬'을 공개적으로 표명하는 일이 요즘 같은 시대로서는 다소 부담스럽고 심지어 회의적으로 들릴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오윤이 이미 30년 전 작고한 과거 인물임을 감안할 때는 일종의 복고적인 선택이란 느낌마저 든다. 한편 주목할 만한 것은 이번 작품들에서 작가가 취한 화면 형식인데, 말하자면 이전의 '상하 구도'가 역전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점이다. 전에는 화면의 '상–하단'이 시대 순서에 따라 '선–후대'의 관계로 구성되었으나, 이번에는 오늘의 현실이 배경, 20년 전 작고한 오윤의 '망령'들―판화 인물 이미지들이 전경 요소로 위치하고 있다. 이처럼 시간을 거스른 표현 방식은 아마도 현실에 대해 우려하는 작가의 초조하고 무력한 심리의 반영일 것이다. 현실에 대한 비판과 분노가 복고라는 퇴행적 코드를 통해 표출되는 것은 역대 회화사상에서도 종종 보이는 사례였기 때문이다. 물론 과거의 영웅을 호출해 오늘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과학적, 이성적인 사고는 아니다. 이는 마찬가지로, 필요하다면 주술과 전통까지도 포괄할 수 있다는 '총체적 리얼리즘'을 주장했던 오윤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엇갈려 왔던 것과도 관계가 있다. 그러나 오윤이 항변했듯 리얼리즘 미술의 공리주의적 사고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면, 또한 리얼리즘이 하나의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고 사회적 미술의 진정한 목표가 무엇인가를 환기한다면, 주술과 전통이 지닌 적극적 기능, 즉 한민족의 경우 소위 '전투적 신명'(성완경)이란 정서를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현재 이호욱의 그림에 나타나는 오윤의 판화 인물 이미지들은 과도한 정치와 이데올로기적 짐을 짊어진 채 해석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어쩌면 작가에게 있어 오윤의 판화 이미지들은 그가 어릴 적 접했던 '현실주의 아동문학의 삽화'라는 연장선상에서 활용되고 있는 것일는지 모른다. 물론 작가가 다루고 있는 구체적인 사건들이 '아동문학 삽화' 수준에서 다뤄질 만큼 가벼운 사안들은 아니다. 그러나 작가는 '신명'이라는 전통 문화 코드와 삽화라는 대중친화적 언어로 이미 한국 시민들에게 친숙함을 구축한 오윤의 판화 이미지들을 이용해, 최근 일련의 사회 문제들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환기시키고, 너무 첨예하고 대립적이기 보다는 충분히 개방적인 자세로 대화와 소통을 시도하려는 것이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차원의 대화와 환기는 일정한 한계를 갖고 있기도 하다. 때문에 작가 본인이 스스로 '소셜 리얼리즘'을 지향한다고 하는 이상, 이후 남겨진 예술적 과제들을 어떻게 더 해결해 나갈 것인지는 계속해서 지켜봐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 이보연
Vol.20141217e | 이호욱展 / LEEHOWOOK / 李鎬旭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