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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4_1203_수요일_05:00pm
기획 / 통인화랑
관람시간 / 10:30am~06:00pm / 화요일 휴관
통인옥션갤러리 TONG-IN Auction Gallery 서울 종로구 관훈동 16번지(인사동길 32) 통인빌딩 5층 Tel. +82.2.733.4867 www.tongingallery.com
'형식 없는 정돈', '자유분방한 절제', '느슨한 성실함', '낙천적인 고뇌'... 며칠 전 그의 작업실을 방문하고 돌아온 날 밤, 그를 생각하며 떠올린 이미지들이다. 어찌 보면 이율배반적인 단어들의 조합이 언뜻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중용지도(中庸之道)의 경지에라도 오른 듯 치우침 없이 자유롭고 편안한 그의 모습 속에서 발견한 이 이미지들은 흥미롭게도 그의 작품을 대면할 때마다 떠오르는 심상들과도 많이 닮아있다. 크고 시원스러우면서도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밀도감 있는 붓의 터치나, 조용하면서도 화면 전체를 압도하는 과감한 원색조의 색감은 그에게서 느껴지는 이미지만큼이나 매력적인 그만의 작품 스타일이다. 그의 캔버스 속에 담긴 풍경의 소재는 구도나 색채가 특별하거나 시각적으로 주목할 만한 대상인 경우가 드물다. 그가 주목하는 것은 대상과의 교감이다. 그것이 순간적으로 생겨났든 오랜 시간을 거쳐 만들어졌든 그건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는 타고난 관찰력과 인내심을 갖고 대상과의 소통을 시도한다. 세상에 많고 많은 자연물 중에서 그에게 선택 받은 대상은 이윽고 자신의 속내를 조심스레 캔버스 위에 털어놓기 시작한다.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는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 혹은 한 달이 지나 캔버스의 빈 공간이 사라지는 어느 시점에선가 작가 개인의 이야기로 화제가 바뀌어있다. 그래서일까? 그의 풍경화 속에는 작가의 시점 뿐 만아니라 작가 자신이 포함되어있다. 때로는 화면 전체를 뒤덮은 엷은 터치의 잿빛 구름아래, 때로는 화면 중앙에 홀로 서있는 검푸른 나무의 두터운 등 뒤에... 그의 풍경화 속에서 숨겨진 자화상을 찾는 일은 그래서 흥미롭다. 그의 그림을 보면 그의 근황을 알 수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작품 속 대상을 향한 끊임없는 관심과 소통을 위한 노력의 흔적이 바로 그의 작업 과정이자 또 결과물인 이유이기도하다.
그가 자연을 바라보는 시선은 근본적으로 긍정적이며 포용적이다. 너무나 흔해서 눈길조차 가지 않는, 때로는 말 못할 상처를 품고 가슴앓이를 하는 일상의 풍경이 그와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은 거룩하기마저 하다. 켜켜이 쌓인 두터운 안료 사이사이에 녹아있는 인내의 생채기들은 더 이상 고통의 상징이 아니다. 그에 의해 새로운 가치와 의미를 부여받은 선택된 대상은 이제 새로운 피조물이다. ■ 김한신
보여지는 대로 보기 ● 2년 전 고향 철원으로 작업실을 옮겼다. 나는 고등학교 때까지 철원에서 나고 자랐다. 그래서 철원의 광활한 들, 청명한 하늘, DMZ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야생의 자연을 항상 접할 수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거의 25년을 고향을 떠나서 타지 생활을 하며 작업했다. 어린 시절의 경험들은 강한 향신료와 같아서 고향을 떠나서도 내 작업의 주제는 자연 속에서 해답을 찾는 시도였다. 아마도 익숙한 것들에서 본질적 아름다움을 찾기를 원했던 것 같다. 그러나 항상 느끼지만 자연은 순순히 우리에게 그 본질적 아름다움을 보여주지 않는다. 우리에겐 자연과 마주 할 때 알게 되는 심리적 취약점이 있는데 자연은 본래 자신의 힘을 명확히 드러내지 않으며 우리에겐 자연의 자장 좋은 부분들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도 없고, 자연 속에서 겪는 경험의 중요성을 항상 받아들이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 처음 철원 풍경에서 느낀 감정은 낯설음과 고독함 이었다. 내가 어렸을 때 느꼈던 고향의 풍경은 풍요롭고 따뜻하며 향기가 가득한 곳 이었는데, 그동안 많은 것들이 변해 있었다. 모내기철이나 수확기에 들에서 그렇게 많이 보이던 사람들은 이제는 보이지 않고 진한 노란색의 벼는 더 이상 보기 힘들어 졌다. 점심때면 뜨거운 햇살아래 여기저기 새참을 들고 다니던 어머니들의 모습도 볼 수 없고 광활한 들엔 비닐하우스와 정미소들이 들어서서 자연스럽지 않아졌다. 어렸을 때 느낀 강렬한 감성을 표현하고 싶어서 내려온 이곳에서 더 이상 내가 찾고자 하는 것들이 보이지 않는다. 이곳 철원에서 나는 무엇을 찾아 표현해야할지 알 수 없었다. 캔버스를 들고 들로 숲으로 산으로 그림을 그리러 다녔지만 그곳에서 내가 예전에 느꼈던 따뜻한 아름다움은 발견할 수 없었다.
철원에서 사생을 하며 1년이 지날 때 나는 내가 찾고자 하는 아름다움의 오류를 발견했다. 왜냐하면 나는 그동안 대상(자연)을 '보고싶은 대로'보며 작업했다. 그것은 내 머릿속에 자리한 아름다움에 관한 어떤 기준이 자연을 '보고싶은 대로'보게 만들었던 것이다. 예를 들어 나의 어린시절 고향은 풍요롭고 따뜻하며 향기 가득한 곳 이라는 아름다움의 개념이 오히려 내가 지금 대면하는 철원의 자연스러움을 볼 수 없게 만들었던 것이다. 소설가 김훈은 '인간에게 삶 이상으로 중요 한게 없다. 살아서 목숨을 부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철원 사람들은 내가 떠난 25년 동안 이곳에서 목숨을 부지하기위해 치열한 삶을 살았던 것이다. 그러면서 철원의 자연은 사람들의 의해서 새롭게 변해가고 있었다. 내가 어린시절 경험한 이상화된 개념의 철원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데 나는 내가 '보고싶은 대로' 그 아름다움을 찾아 표현하려 했던 것이다. 아름다움은 어떤 이상화된 개념이 아니라 변하는 우리의 삶 속에 녹아있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인 것 같다. ● '보여지는 대로'보기를 시도 하면서 나는 새로운 대상을 발견했는데 숲(지뢰밭), 얼어붙은 땅, 논으로 가는 길, 새벽안개, 들에 핀 민들레, 말라버린 해바라기 그리고 황혼의 빛 이었다. 이러한 대상들이 정말 철원의 진정한 모습이고 이곳에서 살지 않고는 발견할 수 없는 삶의 본질적 아름다움이라 생각한다. 내가 '보고싶은 대로' 보며 자연을 마주할 때 보다 '보여지는 대로' 보며 자연을 대할 때, 그러니까 내가 물러날 때 자연은 내게 더 많은 이야기를 한다. 그림이 너무 개념화 된다면 오히려 그것은 우리의 삶과 동떨어진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삶과 분리된 작업은 진정성이 결여된 작업이라 생각한다. 삶이 개념화 할 수 있는 일인가? 그저 견디며 사는 것이지... ■ 배병규
Vol.20141203a | 배병규展 / BAEBYUNGKYU / 裵炳奎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