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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4_1113_목요일_07:00pm
본 전시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시행중인 『SeMA Emerging Artists: 신진작가 전시지원 프로그램』의 선정작가 전시입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공휴일 휴관
갤러리 압생트 Gallery Absinthe 서울 서초구 서래로 5길 86(반포동 112-10번지) B1 Tel. +82.2.548.7662 www.galleryabsinthe.com
공간 사이를 매만지다 ● 공간을 감지하는 것은 몸을 통한 체험이다. 공간은 보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고, 그 과정은 의식적인 관찰보다 무의식적인 감지에 의해 수행된다. 다시 말해 공간의 지각 과정은 전체적 분위기와 인상을 직관적으로 인지하는 것에서 출발하며 이후 세부사항이나 배경지식을 확인하는 것으로 진행된다. (유하니 팔라스마(김훈 옮김),『건축과 감각』, 시공문화사, 2013, 20쪽.) 이수진이 공간에 접근하는 방식 또한 이 같은 무의식적인 지각에 기반한다. 그간 이수진의 작업은 미술관, 갤러리, 스튜디오, 역사적 현장을 망라하며 공간을 해석하는 다양한 방식(공간의 물리적 속성에 주목하거나 사회문화적 맥락을 드러내는 것)을 보여주었지만, 그녀가 공간에 발을 들여놓는 방식은 언제나 개념적 지식보다는 정서적 인상이 선행하는 것이었다. 청계천 주변의 공방이나 상가에서 주워온 유리조각으로 만든「Nonfiction Landscape-Glass Landscape」(2010)는 해당 장소의 사회경제적 관계에 앞서 낮의 활기가 사라진 텅 빈 거리가 자아낸 생경하고 낯선 풍경에서 시작된 것이고, 보안여관의 전면 및 내부를 흰색 폴리프로필렌 밴딩라인으로 뒤덮은「유연한 벽」(2011) 역시 영감의 기원은 80년이 넘은 장소의 역사성보다 2층 창문을 통해 드리워진 햇살의 띠였다. ● 버려진 한옥과 오래된 아파트 단지라는 두 장소를 탐사한 이번 전시 또한 해당 장소가 품어내는 심리적 에너지가 작업의 출발이 되었다. 옥인동의 한 낡은 한옥을 방문한 작가는 빠르게 상업화되는 주변 환경과 대조적으로 시간이 멈춘 것처럼 적막한 폐가의 분위기에 압도된다. 사람이 떠난 빈자리는 빠른 속도로 증식하는 잡풀이 차지하고 있었고 남겨진 물건들은 천천히 부식되며 시간의 흐름 속에 방치되어 있었다. 작가는 공간의 분위기에 조응하는 일시적 오브제들을 설치해 떠도는 빈 집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했다. 방울과 거울로 된 두 개의 안테나는 야생화된 집의 마당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를 투영하고 사물들의 에너지를 중계한다. 집 안에 버려져있던 베틀은 대들보에 매단 실타래로 형상화되어 사라진 가족의 역사와 기억을 증언한다. 한편 전시의 다른 축인 둔촌동의 아파트 단지는 작가가 어린 시절 살던 장소다. 성인이 되어 이곳을 재방문한 작가는 방치되어 수풀이 된 조경에서 공포와 신비를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기묘한 감정을 체험하게 된다. 숲이 자아낸 상상에 대한 응답으로 작가는 나무 사이에 끈을 매고 잡아당기거나 화단의 타일 틈새에 잼을 바르는 사소한 개입을 행했다. ● 특정 공간의 물리적 실제성(actuality)에 절대적으로 기대는 이와 같은 장소특정적 개입이 해당 공간을 떠나 갤러리라는 또 다른 공간에서 재구성되었다는 것이 이번 전시의 가장 중요한 의미다. 실제로 이수진의 과거 작업은 거의 현장 설치에 기반하고 있었고, 작가로서 이름을 알리게 된 대표작들도 건물 전체를 관통하는 대규모 공간 설치들이었다. 앞서 언급한 보안여관의「유연한 벽」이나 건물 내외부를 붉은 색 사견막으로 휘감은「The Deep Stay」(2012~2014) 연작이 대표적인 예다. 이런 대형 공간 드로잉은 해당 공간의 물리적 구조를 조형적으로 인지하게 해주고 작가가 재구성한 심리적 흐름을 따라 공간을 새롭게 경험하게 만든다. 더욱이 현장 설치는 일회적이지만 해당 장소의 역사성이나 아우라를 고스란히 품고 갈 수 있다는 강점을 가진다. 하지만 대형 설치 작업은 스펙터클이 지닌 위험을 피하기 어렵다. 압도적인 시각적 쾌락이 의도한 공간의 재의미화를 뒤덮기 때문이다. 이런 환영의 공간에서 관객은 공간을 몸이 아닌 눈으로 체험한다. 다시 말해 몸과 공간이 협응하기보다 공간이 시각의 지배 아래 종속되는 것이다. 또한 현장 설치는 관객의 적극적인 협조를 전제로 한다. 이 문제는 섬세한 독해를 요하는 작업의 경우 특히 두드러지는데, 자세히 살펴보아야만 존재를 감지할 수 있는 작업은 차분한 마음 상태와 훈련된 눈, 예민한 감각을 요구한다. 실제 공간에서 세부에 행한 작은 개입은 전체 공간의 규모 아래 묻히기 쉽고, 미묘한 정서적 떨림 또한 포착되지 않고 흘러가기 일쑤다. 이수진이 공간 개입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재구성하기로 결심한 것은 현장 설치라는 형식이 지닌 이 같은 한계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 현장 작업의 재구성은 두 가지 방식으로 구현되었다. 우선 갤러리 공간은 물리적으로 현장 설치가 번역되어 재창조되는 장이 된다. 낡은 한옥과 아파트 단지의 체험은 갤러리 공간으로 전이되어 재배치된다. 각 장소의 기억은 때로는 사진으로, 때로는 영상으로, 때로는 오브제로 응축된다. 방울로 만든 안테나를 그대로 가져온「찬란한 새벽공기의 노랫말」(2014)처럼 형태에 변화가 없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의 작업은 새로운 공간에 맞게 재구축되었다. 역시 안테나였던 거울로 된 팔면체 탑은 낱개로 해체되어 새로운 설치를 투영하고, 대들보에 감겨있던 실타래는 공간을 가로지르는 세 가닥의 외줄로 재탄생된다. 여기서 갤러리 공간은 서로 다른 시공간을 뒤섞는 혼성의 장이다. 물리적으로 분리된 한옥과 아파트 단지는 갤러리 공간에서 교차되며 섞인다. 안테나와 수풀이 어우러진 한옥 마당의 사진 옆에 한 남자와 줄다리기를 하는 아파트 단지의 수풀 사진이 배치되고, 아파트 단지의 숲을 탐색하는 영상 옆에 한옥의 대들보에 매달린 실타래 사진이 놓인다. 각각 한옥, 아파트 단지, 갤러리에 속한 세 개의 시공간은 서로를 넘나들며 또 다른 의미의 차원을 열어놓는다. ● 한편 미디어 공간은 현장 작업을 또 다른 차원에서 번안한다. 초점거리를 조절할 수 있는 카메라의 기능과 흐름의 강약을 조절할 수 있는 편집의 힘은 관객과 작가의 거리를 최소화한다. 우리는 작가의 눈을 따라 장소를 훑고 그녀의 몸으로 공간을 느낄 수 있다. 이는 작업의 섬세한 결을 전달하기 어려웠던 이전 현장 설치의 딜레마에 대한 해답일 수 있다. 과거 그녀의 공간 드로잉들은 빛과 그림자가 스며들도록 재료의 소재와 색깔을 고심하고 힘의 배분을 정교하게 조율한 결과였으나, 스펙터클한 외형으로 인해 특유의 내밀한 시선이 충분히 드러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공간의 뉘앙스를 포착하는 영상의 장점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 것은「빈집 낚시」(2014)다. 홀로그램 종이와 아크릴 조각으로 만들어진 표창을 기와 사이, 벽체 구멍, 천정, 창가 등 바람이 통하는 틈새 공간에 놓아둔 이 작업은 문자 그대로 '빛이 되어주는 사건들'이 된다. 미묘한 빛의 움직임에 반응해 색색의 그림자를 드리우는 이 인상적인 시적 밀어는 버려진 공간의 일상적 아름다움을 접사로 포착해낸 카메라 덕분에 아름답게 만개한다. 분위기나 심리를 세심히 전달하는 근접 촬영의 힘은 또 다른 영상 작업인「빛이 되어주는 사건들 # 1~3」(2014)에서도 빛을 발한다. 클로즈업된 손과 팔은 보는 이로 하여금 나무 사이에 매단 줄을 잡아당기거나 나뭇가지에 붙인 껌을 길게 늘이는 작가의 행위에 동참하게 만든다. 관객은 작가와 함께 공간의 탐사에 참여하면서 해당 장소를 느끼는 작가의 감정에 공명한다. ● 끊어질 듯 이어지는 껌과 뽑힐 듯 당겨지는 끈. 이들은 현실과 비현실, 인공과 자연, 허물어짐과 유지됨,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아슬아슬하게 잇는다. 갤러리 공간에 걸쳐진 세 가닥의 외줄은 한옥과 아파트 단지, 갤러리 압생트 사이를 지나간다. 이 엇갈리는 시공간의 풍경 속에서 실상 이수진이 잡아당기는 것은 어떤 틈새, 곧 사이다. 지극히 일상적이고 사소한 순간이 품고 있는 무한한 경이와 아름다움. 그녀의 시선을 멈추게 하는 것은 바로 이 찰나의 순간이고, 바로 그 사이가 그녀가 공간을 매만지는 이유일 것이다. ■ 문혜진
Vol.20141110h | 이수진展 / LEESUJIN / 李秀珍 / installation.vid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