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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인천아트플랫폼 INCHEON ART PLATFORM 인천시 중구 제물량로 218번길 3구 Tel. +82.32.760.1000 www.inartplatform.kr
제자리에서 떠나는 상상의 유목 ● 예술은 현실에서는 불가능하거나 실행하기 힘든 희망사항을 받아주곤 한다. 예술을 하는 것 자체가 현실에 더 불만을 가지게 할 소지도 있지만, 그러한 불만의 해소 역시 예술이 제공하는 것 중의 하나이다. 예술가는 단순한 몽상가를 넘어서 자신의 상상을 구체화할 수 있는 독특한 수단과 방법을 가진다. 물론 그러한 수단과 방법의 획득과 유지를 위해서, 정작 자신이 왜 예술을 시작했고 하고 있는지에 대한 최초의 중요한 질문을 잃어버리는 경우도 허다하지만 말이다. 예술가는 그러한 수단과 방법을 통해 현실과는 다른 차원을 지시하면서 지금여기를 조금씩 변화시킨다. 희망으로 출발한 작업은 그 과정의 몰입도가 커지면서 실제의 소원성취 못지않은 만족이 가능할 수도 있다. 그래서 과정 자체가 목적이 되는 예는 예술에서 흔하다. 실제는 그자체로 있는 법이 없으며, 강한 지향성들과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경지연이 그리는 풍경은 그러한 희망사항이 투사된 장소들이다. ● 정사각형 캔버스에 담겨진 풍경들은 사방으로 뻗어나갈 수 있으면서도 자족적인 완결 감을 가진다. 1m x1m 크기의 같은 규격과 형식을 가지는 단자적 세계들은 확장 가능성이 있다. 세상 사람들의 희망사항을 그런 식으로 다 모은다면 밤하늘에 뿌려진 별처럼 많아지리라. 현실이 절망적일수록 멀리 있는 희망의 빛은 더욱 빛날 것이다. 설치형식으로 건 그림들 앞에서 관객은 여기에 머물다가 저쪽으로 옮겨갈 수 있으며, 장면 전환은 신속하다. 구글에서 검색한 무채색 톤의 자료는 지도와 풍경, 실제와 상상의 중간 단계로 재탄생한다. 칙칙한 현실은 원색과 야광 색을 비롯한 비현실적이고 화려한 색채로 거듭난다. 전시장은 고화질의 총천연색 꿈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듯하다. 풍경의 참조대상인 지도는 모노톤이지만, 형형색색의 젤리나 사탕같이 반짝거리는 미디움으로 변형시킨다. 현실이 씁쓸 한만큼 환상은 달콤할 것이다. 현실이 밋밋한 만큼 환상은 강렬할 것이다. 바람 빠진 풍선 같은 현실은 상상의 바람에 의해 부풀어 오른다. 작가는 상상으로 충전된 기구를 타고 세계 곳곳을 넘나든다. ● 경지연의 작품에서 유토피아는 조형적 언어를 통해서도 실현된다. 그녀의 그림은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꿈꾸는 여행자의 신기루같이 화려하게 불타오른다. 작가는 생활인으로서 발목 잡힌 현실을 뒤로 한 채 떠나 버린다. 그 순간만큼은 현실로부터 잠시 면제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마법의 양탄자같은 과정은 관객에게도 반복될 수 있다. 이번 전시 작품의 출발점이 된 것은 작가가 가봤던 장소와 가보고 싶었던 장소를 구글 어스 맵으로 찾아본 것에서 왔다. 여기에는 타인의 희망사항도 포함된다. 가보고 싶은 곳은 갖고 싶은 것만큼이나 욕망의 순수한 현상 형태이다. 현대의 정신분석학 이론은 우리의 경험치가 알려주듯, 욕망은 결코 만족될 수 없다고 강조한다. 작업은 실제의 여행(journey)을 대신하는 마음의 여행(trip)이다. 제자리에서 떠나는 상상의 유목이다. 이러한 다차원적인 여행에는 위에서 내려다보는 전지전능한 시점 또한 포함된다. 이러한 여행에 동반되는 서사는 구구절절한 여행담이 아니라, 작가가 즐겨 읽는 마술적 사실주의 소설에서 왔다.
그림처럼 소설은 그것에 몰입되는 시공간, 즉 그 자체가 여행을 하는 듯한 경험을 준다. 상상의 여행지는 유명한 유적지부터 산과 바다, 사막과 강, 고향과 대도시 등 다양하다. 작품 「로마에서의 기적+콜로세움」은 1997년에 작가가 여행했던 곳이다. 콜로세움을 내려다보는 시점이지만, 실제 여행자의 시점으로는 불가능한 전지적 시점으로 회상되었다. 그런가 하면 그러한 시점은 구체적 대상을 추상화시키기도 한다. 「기적을 파는 착한 사람 블라카만+카파도키아」은 터키의 한 지역을 그린 것인데, 하늘에서 본 조망에 의해 돌이나 나무 같은 것들이 추상적으로 조형화된다. 「독수리들이 사는 곳+히말라야」는 인간에게 쉽게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 험난한 산세를 가진다. 길과 산봉우리 등, 안 칠해진 부분이 많은데, 그것은 독수리만 살 수 있는 고원의 설산을 표현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미지의 장소라는 의미이다. 「꿈을 빌려드립니다+괌」은 세계에서 모여든 관광객의 욕망에 맞춰 잘 개발 된 환태평양 지역 특유의 밝고 따스함, 풍요로움과 화사함이 특징이다. 남의 꿈을 대신 꿔주는 사람이 등장하는 마르케스 소설의 제목을 따와 지인의 희망사항을 대신 표현했다. ● 「망각에 묻힌 배+우유니」는 볼리비아의 소금사막을 그린 것으로, 우기가 되면 물이 차면서 하늘과 바다의 구분이 없고 위아래가 비쳐서 대칭이 되는, 그자체가 환상적인 지형을 가진다. 푸르름을 감싸는 노란 가장자리가 촉촉한 환상의 지대를 보호, 또는 침범하는 듯이 보인다. 「난 단지 전화를 걸러 온 것 뿐이예요+아마존 강』은 남편 만나러 가는 길에 전화 한통을 하려고 차를 얻어 탔다가 정신병원에 끌려가 거기에서 생을 마감한다는 마술적 사실주의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다. 빠져나올 길 없이 미로같이 구불거리는 지형은 얼토당토않은 상황이 펼쳐지는 착종된 무대가 된다. 아라베스크처럼 소용돌이치는 밀림과 피부색깔로 밝게 보이는 아마존 강의 복잡한 모양새는 강렬함과 차가움을 결합시킨다. 이국적인 곳만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선물+충주시 노은면 연하리」는 친정집이 있는 시골길을 표현했다. 아마존이나 로마에 비한다면 지척에 있는 곳이지만, 먼 곳에 가지 못하는 같은 이유로 가까운 곳도 가기 힘든 현실이 있다. 한복 빛깔의 잔치 같은 분위기가 있는 한편에, 그리움으로 메아리치는 공감각적인 선들이 펼쳐진다.
「쓸모없는 노력의 박물관+타임 스퀘어」는 많은 사건사고가 벌어지는 뉴욕의 한 거리를 마치 빼곡한 서가처럼 표현했다. 세상에는 책에 기록될만한 많은 사건들이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많은 사건들은 묻혀버리고 만다. 지도에서 보이는 것처럼 수직수평의 좌표축에서 매달려 있는 현대인이 감내해야하는 그 수많은 사건사고들은 그 자체가 '쓸모없는 노력의 박물관'(크리스티나 페리 로시)처럼 보인다. 화면 아래 빈 공간을 향해 뚝뚝 흘러내리는 물감자국은 그 모든 쓸모없는 노력들이 자아내는 허무함을 나타낸다. 매순간 현실의 저항을 이겨내며 지속하고 있는 화업은 쓸모 있는 노력에 속하는가/ 아닌가. 타임 스퀘어와 작가가 살고 있는 인천 작전동 지역을 접붙인 형태의 작품은 현대 도시의 삶에 편재하는 구조적 질서의 동형성을 보여준다. 경지연이 작품제목을 따오곤 하는 마술적 사실주의 (Magical Realism)는 라틴 아메리카 문학의 특징으로 지적된다. 마술과 사실이라는 배타적인 두 항목이 예술 속에서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 마술적 사실주의가 라틴 아메리카처럼 정치적으로 불안한 지역에서 활발하다는 것은 환상과 현실의 관계를 단적으로 암시해준다. 예측불허의 현실은 임박한 위험신호이자 안전하고 쾌적한 환상으로의 도피를 추동한다. 조형적인 면에서 위성사진을 활용한 것은 사실에 해당되지만, 비현실적 서사와 색채로 변형한 것은 마술에 해당된다. 경지연의 작품은 현실로부터 출발하지만, 화려하고 기이한 상상의 무대로 펼쳐진다. 상상의 무대는 가보고 싶은 장소와 중첩된다. 작가는 그 장소의 모델을 지도에서 찾는다. 축약된 현실에 가감하여 새로운 풍경으로 만든다. 원근법적 풍경이 아니라 유동적 표면으로 이루어진 화면은 북유럽 르네상스식의 풍경이나 동양화처럼 지도와 풍경의 중간쯤에 있다. 거기에는 칠해지지 않은 빈 바탕이 종종 발견된다. 화려한 색과 구불거리는 형태로 구성된 지형도와 공존하는 공백은 마치 옛 지도에서 미지의 지역을 표현할 때처럼 공백으로 남겨둔다. ● 옛 지도에 있었던 위험지대의 괴물들은 흡사 괴물을 만났을 때의 촉수를 세운 신경 세포 같은 모습으로 나타난다. 화려한 색채를 입고 생경하게 구불거리는 선들은 정해진 방향이 없는 괴물적인 선이다. 이 괴물적인 선은 지도를 따라가기 보다는 지도를 만든다. 조르주 장은 『기호의 언어』에서 지도는 자연적이거나 인위적인 기호를 사용하여 세상을 보여주는 표현수단이라고 정의한다. 조르주 장은 '한 표시가 단지 다른 어떤 것을 대신 표현할 경우, 그 속에 기호의 개념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대개 지도가 그런 성격을 가지고 있다'(포르루아얄 논리학)고 인용한다. 기호/지도에 대해 인간은 두 가지 다른 태도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단지 그림을 감상하는 것처럼 지도를 보는 태도이고, 다른 하나는 지도를 용도에 따라 읽는 태도이다. 『기호의 언어』에 의하면, 초창기 지도를 만들 때부터 전통적인 지도제작술은 실체를 모방한 기호를 선호했다. 실체를 모방한 그림으로 지도를 그리는 지도제작사는 동시에 화가였다. ● 그는 사람들에게 위치를 정확하게 알려주는 열쇠보다는 세상을 보여주는 그림을 제공하고 싶었을 것이다. 지도 제작은 보다 추상적이고 과학적인 방향으로 진보되었지만, 이런 욕구가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았다. 경지연은 도구지도가 아닌, 그림지도의 역할을 회복시킨다. 물론 그 지도는 기호로서 읽히기도 하는데, 관객이 읽어야내야 할 기호의 지시대상은 물리적이기 보다는 마술적 사실주의 계열의 문학작품을 비롯한 상상으로 이동된다. 지도라는 모델에는 기호적 성격이 있지만, 기호의 지시대상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 자유로운 배치는 기표작용과는 무관하다. 해양 또는 육지의 지형도와 중첩될 수 있는 구불거리는 선은 무엇과도 연결 접속할 수 있을 만큼 유동적이다. 지표들은 복잡한 증후들이다. 그것은 현실을 복제한 것이 아니라 변형한 것이고, 현실이 포괄할 수 없는 바깥과의 통로를 마련한다. 그러나 현실과의 끈을 완전히 놓지는 않는다. 강한 희망은 현실로부터 솟아난 것이지, 허구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다.
사진 이미지로서의 구글 어스 맵은 그것이 표현한 것과 흡사한 유사물이다. 작가는 최초의 참조대상에 많은 주름을 주었다. 그것은 오랫동안 축적된 지질학적 모양새를 가지고 있지만, 랑그를 비롯한 예술적 언어자체가 무한의 겹으로 이뤄져 있다. 소쉬르는 의미의 토대를 이루는 항구적이고 보편적인 관계들을 '수세기에 걸쳐 쌓인 것들의 장엄한 퇴적의 광경'이라고 비교한 바 있다. 미지의 지역을 채우는 미지의 언어들은 뻔한 일상의 현실을 소격시킨다. 지금여기에 고착시키는 그 강한 중력과 관성을 이기고 출발하려면 그만큼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상상력이 그 에너지가 된다. 프로이트는 『문명속의 불만』에서 문명속의 불만을 해소시키는 환상의 역할을 지적한다. 프로이트는 예술이 '문명의 환상'이라는 점에서 종교와 버금가는 반열에 놓는다. 프로이트는 문명이 자연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해주고, 인간의 상호관계를 조정해 주는 목적에 이바지하는 규제와 성취의 총량을 가리킨다고 말한다. 문명은 본능을 승화할 것을 요구한다. ● 예술가 역시 승화라는, 문명이 본능에 강요한 변화를 거부하기 힘들다. 가장 솔직해야할 작품에서도 승화에의 강박관념, 즉 자기검열에의 흔적이 발견된다. 자아와 초자아는 곳곳에 뻥뻥 뚫린 균열을 합리화하려하고 노력하지만 역부족이다. 그런 면에서 경지연은 상상의 고삐를 그대로 놓아두는 편이다. 생경한 색과 불안정한 형태는 어떠한 일관된 의미를 상실한 채 가상적 지형학을 점령한다. 작가는 예술이 아니라면 할 수 없는 것을 하고자 한다. 다른 것으로도 할 수 있는 것을 예술을 통해 하려는 것이 오히려 부조리하리라. 억압된 본능은 예술에서 출구를 찾는다. 『문명속의 불만』은 예술이 문화적 요구에 따라 우리가 오래전에 단념했지만 아직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원망에 대한 대리만족을 제공하고, 따라서 문명을 위해 욕망을 희생한 사람의 불만을 달래기에는 가장 적합하다고 한다. 공상을 통한 만족의 선두에 서있는 것은 예술작품을 즐기는 것인데, 미를 즐기는 것은 감각을 가볍게 도취시키는 독특한 성질을 갖고 있다. ● 강한 희망으로 인해 생겨난 환상은 정신병적 망상과 비슷하다. 프로이트는 현실부정과 함께 하는 원망 환상이 고립된 형태로 나타나는 것을 '아멘티아(Amentia)' 즉 행복에 넘친 환각적 정신착란 상태라고 정의한다. 경지연의 작품에서 환상은 현실과 밀접하다. 더욱 복잡다단해지는 현실은 이성과 광기를 근접시킨다. 현대인의 상징적 우주 자체가 편집증적 속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상징적 우주는 무언의 명령으로 가득하다. 경지연은 우리가 어디에 서있는지를 확인하는 가장 기본적인 도구인 지도를 활용하지만, 곳곳에 불연속적인 간극을 부여한다. 지형도의 곳곳은 비워져 있다. 이 빈 곳은 비존재의 취급을 받는 무언의 광기가 숨어있는 곳이다. 지형도 속의 공백처럼 광기는 합리적 주체에 불연속적인 간극을 만들어낸다. 합리화된 사회는 연속성을 강요하지만 빈 곳은 있다. 빈 곳은 빈 곳으로 내버려 둬야 한다. 기존 현실의 재현이 아닌 생성이 그 빈 곳에서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실증적 현실은 실증하기 힘든 예술을 부차적인 것으로 밀어낸다. 가장자리에 있는 예술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질 들뢰즈의 『감각의 논리』에서 회화의 임무를 '보이지 않는 힘을 보이도록 하는 시도'로 정의한다. 코드화되어 있지 않은 보이지 않는 힘은 공백이나 얼룩으로 나타날 수 있다. 경지연의 작품에서 강렬한 희망사항에서 비롯된 광기는 화면 곳곳에 빈 공백과 그 위에 돌발적인 흔적들을 낳는다. 들뢰즈에 의하면, 돌발흔적이란 비의미적이고 비재현적인 선들, 지역들, 흔적들, 그리고 얼룩들 전체이다. 돌발흔적은 혼돈이며, 대재난이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질서 혹은 리듬의 싹이기도 하다. 돌발흔적은 마치 다른 세계의 솟아남과도 같다. 기지의 세계에서 미지의 세계로의 도약이 일어나는 경지연의 작품은 그자체가 다양한 변모의 장이다. 자동기술에 가까운 구불거리는 선들은 하나의 형에서 다른 형으로, 하나의 색에서 다른 색으로 넘어간다. 이러한 변형은 물리적인 이동 없이도 지금 여기를 탈주하게 한다. ■ 이선영
Imaginary Nomadism in Place ● Art at times embraces wishes impossible or unattainable in reality. Artistic work stimulated by wishes may give as much satisfaction as realizing these wishes when an artist is absorbed in their work. The scenes Kyung Ji Yeon portrays are places brought about by such wishes. A scene contained on a square canvas may ramble with its own self-completeness. Achromatic materials she searches on Google come into being as something between map and landscape, reality and imagination. Unnatural flashy colors such as primary and luminous colors bring new life to a drab reality. Found at the venue are high-definition, full-color images unfurled like a panorama. ● The artist travels around the world, riding in a balloon charged with imagination. Her splendid painting is like a mirage dreamt of by a desert traveler in an oasis. The magical process of her work may be transferred to viewers. Prior to starting her works, she searches the places she has been to and places she wants to travel to on Google Earth. Her work is a mental trip replacing an actual journey. It is imaginary nomadism. There are diverse imaginary destinations: mountains, seas, deserts, rivers, hometowns, and metropolises. Magical realism from which Kyung appropriates her work titles is a style of Latin American literature. ● The two exclusive factors, magic and fact melt away naturally into art. Magical realism stalks politically unstable regions like Latin America, which suggests the relation between illusion and reality. An unforeseeable reality is a signal for impending danger, encouraging us to escape into a safe, agreeable illusion. The use of satellite photographs is included in the realm of fact whereas their transformation into unrealistic narratives and colors belongs to the sphere of magic. Her fluid scenes are somewhere between a map and a landscape like Northern European Renaissance landscapes or Oriental painting. ● Empty spaces without color are often found here. The spaces coexisting with a topographic map made up of splendid colors and meandering shapes are left empty like an unknown place on an old map. Meandering lines applied in flashy colors are monstrous lines forming a map rather than following a map. A map has a symbolic character but has no fixed referent. An unrestricted arrangement is irrelevant to any signifying work. The meandering lines are too fluid to be connected to anything. Indicators are intricate sings. They are not a reproduction of reality but a transformation, presenting a passageway to the external world. ● Wishes are not completely divorced from reality. Strong wishes derive not from fiction but from reality. Imaginary topography is formed with awkward colors and unstable forms losing any consistent meaning. The artist would like to create something nobody can do without art. Relishing beauty slightly enraptures our senses, and an illusion caused by strong wishes is like a state of delusion. Sigmund Freud defined "amentia" as an illusion appearing in an isolated state along with a denial of reality, that is, hallucinatory mental derangement. ● Kyung Ji Yeun makes use of maps with which we confirm our location, lending discontinuous gaps to her painting. Many parts of her topographical maps are empty. Some madness is hidden behind such empty spaces. What's possible there is not a representation of reality but its creation. In The Logic of Sense (Logique du sens), Gilles Deleuze clarifies that "The task of painting is defined as the attempt to render visible forces that are not themselves visible." An unforeseen mark in painting is like soaring of another world. Her work itself, in which a leap from a known world to an unknown world is made, is a forum for diverse variations. Meandering lines that seem rendered in automatism display a transition from one form to another, one color to another. We can escape here through these variations without any physical movement. ■ Lee Sun-young
Vol.20141102g | 경지연展 / KYUNGJIYEON / 慶智娟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