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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4_0814_목요일_06:00pm
전시오프닝 & 출판기념회 & 봄로야 공연
*bomroya.com에서 드로잉북 & 음반 구입 안내를 보실 수 있습니다.
관람시간 / 12:00pm~06:00pm / 월요일 휴관
알떼에고 Alter ego 서울 마포구 망원동 399-44번지 www.facebook.com/spacealterego
라인 강가의 이름 모를 철새들. 유럽의 어느 골목길에서 맞닥뜨린 고양이. 바람 한 점 없는 여름날 마당 나뭇가지에 널어둔 셔츠. ● 너무나 빨리, 아무렇지 않게 지나쳐버린 일상의 작은 경험들은 기억의 끝자락까지 떠밀려갔다 예기치 않은 순간에 불현듯 다시 되돌아온다. 굳이 기억해내려 하지 않아도 마음에 떠오르는 모호한 감정의 수식어처럼, 나타났다 사라지고 그러기를 반복한다. 봄로야(Bom, Roya)는 그렇게, 사라지기 쉽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는 기억의 형태들을 수집한다. "사라의 짐"이라는 이름을 달고 수집된 기억의 흔적들은 너무나 평범해서 불확실하기에 애당초 그것을 다시 떠올린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때문에 라인 강이었는지 센 강이었는지, 줄무늬 고양이였는지 점박이였는지, 남자 셔츠였는지 아니면 여자의 것이었는지 조차 장담할 수 없는 기억의 형태들을 봄로야는 애써 다시 추적한다.
떠오르고 가라앉고, 덮이고 드러나고 ● 드로잉 연작 「기억의 재수집」에는 사라지기 쉬운 기억에 대한 작가의 상념이 고스란히 배어있다. 그는 먼저, 수없이 사라졌다 되살아나는 기억의 양가적(ambivalent) 운동성을 뜻하는 단어들을 나열했다. 떠오르고 가라앉고, 덮이고 드러나고, 도피하고 맞서고, 소멸되고 타오르고, 비어있고 차있고, 주고 받고, 흩어지고 뭉쳐있고, 분리되고 겹치고... 상반된 단어가 긴밀하게 엮인 것처럼, 두 개의 그림이 하나의 짝을 이루는 「기억의 재수집」은 기억의 이중적 표상들 사이를 끊임없이 교차하고 있다. 각각의 형태는 완전하게 기억에 대한 하나의 경험만을 지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통제에서 벗어나 기억의 태생적 불확실성을 인정하려 애쓴다.
문득, 그것이 갑자기 왜 생각났을까. 기억은 일상이 남기고 간 잔상이다. 우리의 감각이 이미 경험했듯이, 오랜 자극에 의한 잔상은 보색(補色)으로 남는다. 짐작컨대, 봄로야가 『사라의 짐』 프로젝트에 유독 보색을 많이 사용한 것도 그 잔상 때문이었을 것이다. 「기억의 재수집」과 또 다른 드로잉 연작 「살구빛 인생」에서, 작가는 지난 시간들에 대한 보색의 잔상들을 기억해냈다. 「나무의 빈자리」, 「화분 기둥」, 「그때 불었던 바람」 등의 제목을 달고 있는 각각의 드로잉은 일상에서 떨어져나간 과거의 불확실한 기억이며, 어떤 특정한 상황(시간, 장소, 만남 등)에서만 반복적으로 출몰하는"실재의 잔상"인 것이다. ● 매일매일 똑같은 하루가 반복되듯, 사라져 가는 기억도 어떻게든 반복된다. 어쩌면 기억은 잊지 않으려 반복하면서 잊혀져가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예컨대, 기억에 관한 봄로야의 드로잉 연작은 쉽게 사라지지 않거나 붙잡아두고 싶은 기억에 대한 기록이지만, 스스로도 그 기억에 대한 감정과 형태와 색마저 명확하게 알아차리지는 못한다. 결국 다시 수집된 낡은 기억들은 현실의 조건 속에서 재탄생한 것으로, 실은 형태도 색도 잃어버린 과거의 수수께끼 같은 환영일 뿐이다. 초현실주의자들이 그토록 빠져들었던 것처럼. 당신의 기억, 당신의 짐 ● 봄로야의 『사라의 짐』 프로젝트는 사라져가는 기억을 재수집한 드로잉 연작들, 타인과의 관계를 기반으로 한 32점의 드로잉, 그리고 그가 만든 노래 8곡이 수록된 음반과 그 노랫말을 이용한 드로잉으로 구성되어 있다. 타인들의 기억을 수집하여 그린 「당신의 짐」은, 자신과 연루된 적 없는 누군가의 낯선 기억을 불러와 그것에 색과 형태를 입히는 일련의 과정을 거친다. 타인의 기억을 그려준다는 말이 다소 무모하게 들리지만, 전시를 앞두고 작가는 타인들을 향해 지속적으로 메시지를 남겼다. 당신의 짐을 풀어주세요. ● 그의 메시지에 응답하는 방법은, 제시된 70개의 색 중 자신의 사라져가는 기억과 관련된 색 하나를 골라서 사연과 함께 작가에게 보내는 것이다. 봄로야는 그렇게 수집한 32개의 희미한 진술과 그것을 떠올리는 임의의 색채만을 가지고 타인의 기억들을 되살렸다. 형태나 색깔마저 지워진 채 암전된 망각의 강을 향해 사라져가는 모두의 기억을 그는 다시 회복시킨다. 저마다 몇 가지의 어휘와 색으로 서툴게 묘사한 기억들은 많은 것을 누락시키고 있지만, 이렇게"건드려진"기억들의 장면들은 바르트(Roland Barthes)가 말했던"떠도는 섬광"처럼 종종 우리의 의식을 예리하게 관통한다. 때문에 색이 바래고, 종이가 구겨지고, 글씨가 뭉개지는 일련의 드로잉 과정을 보듯, 미리 계산된 어긋남과 우연의 기술은 간혹 우리를 기억의 심연에까지 이르게 한다. ● 그러나 한편,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봄로야는 32명의 타인들과 서로의 기억을 공유함으로써 모두의 기억을 아무렇지 않게 지울 수 있는, 다가올 어느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가 쓴, 전시제목과 동명의 글 「사라의 짐」에서, 그는 그"기억의 덩어리"를 유령처럼 희미하게 일상에 들러붙어있는"짐(Jim)"이라 불렀다. 그 글의 주인공인 사라의 눈에는 매일매일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들, 알 수 없는 고독과 불안의 형태들이 더 이상 사라지지 않고 집요하게 따라다닌다. 떠나보내야 혹은 상실해야(loss) 할 것을 그리하지 못하고 붙잡아두는 삶은 우울(melancholia)하다. 그래서인가, 봄로야는 실체 없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기억의 잔상들을 색과 형태로 고정시켜 그것에 이름을 붙인다. 이제 더는 사라질 것도 희미한 것도 아닌"짐"이 되었지만, 바로 그 순간이 기억에 대한 강박적인 불안에서 우리를 잠시 해방시켜준다. ● 봄로야의 개인전 『사라의 짐』에서는, 유독 작업에 임하는 그의 오랜 사유를 엿볼 수 있다. 추상적이면서도 지극히 사적 영역인"기억"에서 출발한 작가의 예민한 상상력은, 타인과 공유할 수 있는 감정의 경험으로까지 확장됐다. 이는 그동안 그가 줄곧 다뤄왔던 글, 노래, 드로잉 등을 통해, 기억이라는 심리적 경험이 생성해내는 여러 가지 시각적 표상으로 나타났다. 봄로야의"사라의 짐"은, 언제 사라질지도 모르는 기억에 대한 불안함 뿐 아니라, 동시에 그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라짐의 순간에 대한 열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 안소연
Vol.20140814c | 봄로야展 / Bom, Roya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