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페이지 : 움직이는 책 프로젝트

봄로야展 / Bom, Roya / painting   2012_0927 ▶ 2012_1014 / 월요일 휴관

봄로야_어린왕자_종이에 디지털 프린팅_43×63cm_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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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2_0927_목요일_06:00pm

전시오프닝 & 출판기념회 & 봄로야(with 영휴&현민) 공연

* bomroya.com에서 이번 전시와 출판 과정을 보실 수 있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8:00pm / 월요일 휴관

서울문화재단 서울시창작공간 서교예술실험센터 SEOUL ART SPACE SEOGYO 서울 마포구 서교동 369-8번지 Tel. +82.2.333.0246 cafe.naver.com/seoulartspace www.seoulartspace.or.kr

0페이지 : 움직이는 책 프로젝트 (moving book project)는 9월 발간될 책 『0페이지 책』의 시각물을 전시함과 동시에 출판기념회 및 봄로야 공연, 나아가 일반인 참여가 가능한 지점을 모색해보는 개인전이다. ● 0페이지는 존재하지 않는 장소다. 숫자 0일 수도, 글자와 글자 사이의 구멍일 수도, 페이지와 페이지 사이의 빈 여백일 수도 있다. 작가에게는 첫 페이지를 쓰기 전의 마음가짐이며, 독자에게는 첫 장을 읽기 시작하기 전에 받는 책 전체에 대한 느낌이다. 또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다 읽고 난 후의 감상 덩어리이다. 책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 덩어리이다. 같은 책을 두 번, 세 번 읽는 반복의 형상이다. 같은 문장을 계속 읽었을 때 사라지는 서사 뒤에 비춰지는 어떤 이미지 덩어리다. 내 현실과 심정이 책에 새겨지는 이미지 덩어리이기도 하다. 『은밀한 생』의 작가 파스칼 키냐르가 묘사한 대로 "책들은, 그것이 아름다운 것들일 경우 영혼의 방어물은 물론 갑자기 허를 찔린 생각의 성벽들을 모두 허물어뜨린다."-p.49 0페이지는 성벽이 허물어지고 나와 책이 다시 탄생하는 생의 시작점이다. (『0페이지 책』, 프롤로그 중)

봄로야_나의 라임 오렌지나무_종이에 디지털 프린팅_43×63cm_2012
봄로야_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_종이에 디지털 프린팅_43×63cm_2012

이따금, 언어는 섬세한 조각이다. 그 조각들은 부드러워 찌르지 않고도 몸 깊숙이 박힌다. 그렇게 박힌 조각들은 내가 아니면서 나이기도 하다. 도저히 빠지지 않을 작정으로 깊숙이 박힌 그것들을 우리는 오래 잊고 살다가 문득, 희미한 통증으로 기억해낸다. 그럴 때, 우리는 아득해진다.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 그런 언어를 쓰는 사람을 하나 알고 있다. 그 사람은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부르고, 글을 쓴다. 아니, 그림을 쓰고, 노래를 그리며, 글을 부른다. 아니… 어떤 방식도 그 사람에겐 가능하다. 그이에게는 모든 것이 동일하다. 그이에게 모든 것은 가능하다. 그러니까 그는 언어의 부드러운 조각들을 우리의 가까운 곳에 뿌려놓는다. 동시에 모든 방향으로 열린, 그 사람의 작업을 겪을 때, 나는 내 것이 아닌 감정 속으로 걸어 들어가기도 하였다. 그 감정의 배경에는 이상하게 아름다운 것들이 자라고 있다. 울창한 가능성. 미완이어서 완성이 되어버린, 영역을 지우고 새롭게 만드는 과정의 숲. 기쁘게 헤맬 자신이 생긴다.

봄로야_생의 한가운데_종이에 디지털 프린팅_43×63cm_2012

나이면서 내가 아니기. 내가 아닌 나를 내 안으로 끌어들이기. 어떤 세계는 무한히 가능하다. 이때 그 세계를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이 내겐 없다. 더 정확하게는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그래도 굳이 더듬대야 한다면, 나는 그곳을 이렇게 적을 것이다. 모든 것을 포섭하는 심연. 너무 깊어서 그것이 슬픔인지 기쁨인지 감지해낼 수 없지만, 아득해지고 동시에 따뜻해지는 은밀한 감각. 상대를 황홀하게 만드는 느낌의 세계, ● 그러니까 어떤 책을 펴들었을 때, 부유하는 글자들 속에서 불현듯 떠오르는 문장들, 눈을 감고도 선연히 떠올릴 수 있는, 가닿은 적 없는 풍경, 만난 적도 없이 그리운 당신과 당신들. 이를 통해 낯익은 체험으로 걸어 들어가고, 그 체험으로부터 의미를 찾아, 부드럽게 조각내는 방식. 그런 감정의 미학을 봄로야는 알고 있다,고 믿고 싶다.

봄로야_자기 앞의 생_책에 혼합매체_각 18.7×12.8cm_2012
봄로야_어린왕자_책에 혼합매체_각 22.3×15cm_2012
봄로야_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_책에 혼합매체_각 21×15cm_2012

그렇지 않다면 이 황홀한 통증의 작업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점과 점 사이, 나는 울었고 밤을 보냈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어느 밑줄에선 비 냄새가 났다. 눈이 내리는 단어 앞에 서 있었던 적도 있었다. 뜨거워지는 체열처럼 어떤 문장들을 떠올렸고, 그것은 나의 것이 아니었지만, 몸 속 어딘가에서 너의 것이라고 말해주고 쓰다듬고 안아주는 어떤 품이 있었다. 나는, 그때만큼은 나 혼자가 아니었다. 그렇게, 나를, 두지, 않았다. 생의 궤도가 겹쳐, 나는 우리의 것인 심장이, 뛰는 것을 느꼈다. 그것이 ● 나의 체험인지 당신의 체험인지, 그리하여 어느 날 그것이, 우리의 기억이 될는지 아직은 모른다. 어쩌면 영영. 하지만 봄로야가 건넨 부드러운 파편이 내게로 온 것이 분명하다. 이따금, 내것이 아닌 풍경에 이토록 선명히 반응을 하는 것을 보면. ■ 유희경

Vol.20120927b | 봄로야展 / Bom, Roya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