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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4_0618_수요일_05:00pm
작가와의 만남 / 2014_0710_목요일
도슨트 서비스 상시 운영 / 단체 관람시 예약 문의_Tel. +82.2.310.1924
주최 / 신세계백화점
관람시간 / 10:30am~08:00pm / 금~일_10:30am~08:30pm / 백화점 휴점일 휴관
신세계갤러리 본점 SHINSEGAE Gallery 서울 중구 소공로 63 신세계백화점 본점 신관 12층 Tel. +82.2.310.1924 shinsegae.com
추락이 아닌 탈락의 세대에게 ● "바로 그렇습니다. 어떤 평범하고도 진부한 진실을 집요하게 외쳐 대기 시작하면, 그 진실은 곧바로 어리석음이 되어 버리는 법이죠." 움베르토 에코, 「책의 우주」 중에서. 공감의 문턱에서 ● 윤동천의 개인전 『병치-그늘』은 분노와 불안 속에 살아가는 젊은 세대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동시에 무기력한 기성 세대에 관한 내용이기도 하다. 윤동천은 지속적으로 현실의 저지대로부터 창작의 가능성을 자문하고 진단하는 작가다. 그는 묻는다. 당신이 무엇을 보고 읽고 따르고 사는지에 관해서. 그는 되묻는다. 우리가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하지만 그 어리석음이 반드시 나 혼자만의 탓이 아니라 사회를 지배하는 힘이 나와 우리를 어리석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재차 묻는다. 그의 작업 세계는 회화, 사진, 판화, 언어, 설치 등 다양한 매체와 물질로 구성되고, 모순적 화법과 풍자적 장치에 의해 언뜻 보면 우매한 개인을 과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개인과 사회 사이의 비대칭적 힘의 자장을 드러낸다. 예를 들어 오늘날의 자본가란 좋은 집과 차를 소유한 사람이라기보다 노동을 생산 유통 순환시키는 경계를 초월한 지주를 가리킨다. 그들은 21세기의 표상이자 세계 어느 곳에서나 환대를 받고 전 지구가 자신의 집과 다르지 않다. 항공기술과 여행 산업의 발달은 과거 여행의 시대에서 여행 상품의 시대로의 전환이 일어나자 자연스레 숙박 산업이 활발해지는데 이러한 산업의 연쇄성은 자연스레 비물질적인 감정 노동자, 비정규직의 양산으로 이어진다. 오늘날 빈곤은 단순히 경제적 상황이 아닌 미래를 상상하고 희망을 갖기 어렵다는 것이다. 미래를 위한 희망은 미디어 속의 허구 세계에서나 가능한데, 이 세계 안에서 재현된 희망의 주연들은 대개 초월적 지주들이 대부분이다. ● 어차피 자본주의의 논리는 생산의 과잉에 의해 유지되는 사회를 의미한다. 그러니 잉여물이 생산되는 것은 불가피한 현실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오늘날 이른바 '잉여 세대'로 일컬어지는 젊은이들은 단순히 자본주의의 순환 논리만으로 해석되는 존재라 부를 수는 없을 것 같다. 사회학적 관점으로 볼 때 잉여 주체의 탄생은 자본주의 체제에 완전히 종속된 자아와 무관하지 않다. 잉여 주체는 이러한 체제에서의 안락한 생존에서 실패한 존재로 인터넷의 가상 세계의 망에서 주로 생활하기에 자칫 시스템 안에 존재하지만 시스템과는 분리된 모순의 상태로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사회 참여적 성격을 띤 것처럼 보이지만 현실에 대한 분노를 '비판을 위한 비판'처럼 비생산적인 감정을 증식시키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고용 불안정 상태가 장기화 되자 잉여 주체가 양산되면서 이제는 부정할 수 없는 사회문제로 대두된 상태다. 정부는 이러한 노동 조건의 한계를 유동성 또는 유연함으로 해석, "위기가 기회"라는 경구로 가리면서 자아의 실현이 가능하다고 부추기려 하지만 잉여 주체의 현실은 비정규직 상태에서 일자리를 좇아 여기저기로 떠도는 부유하는 '불안한 노마드'로 살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 잉여와 같은 새로운 이질적 주체들은 사회적으로 더욱 고립되는데, 그 이유 중 하나로 리차드 세넷에 따르면, 현대 사회는 차이로 유발될 수 있는 불안감을 줄이려는 성향의 인간형을 생산했기 때문이다. 문화적 획일화가 강조되는 사회에서는 개인간의 '구별'은 존중 받지만 이질적 존재는 '차별'받는 정서를 가진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금융자본의 논리는 성공한 삶이란 모든 것을 다 가진 주체일 경우에만 해당된다. 삶의 서사가 사라진 시대에서 타자란 이야기가 없는 사람들, 사회적 정치적 맥락에서 누락된 사람들을 지시하는데, 잉여 세대란 인종이나 젠더와 같은 서구남성이성애중심주의가 생산한 운명적 타자가 아니라, 경제 중심 사회 체제가 요구하는 삶으로부터 실패한 사람들을 지시한다. "나는 당신을 진정한 친구라고 생각한다"(2014)는 갤러리 외부의 윈도우에 설치된 문구로 오늘날 인간 관계에 관한 질문이자 백화점 고객들에게 건네는 질문이기도 하다. 작가는 이 작업이 '소외', '고립'이란 사회문제에 대한 반응으로 시작되었으나 최근 세월호 사건을 겪으면서 우리 시대의 믿음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고 전한다. 더불어 이 작업은 상인이 고객과 맺는 관계를 비유하지만 그 이면에는 상품으로 채워진 만신전인 백화점에서 '사회적 예술' 이 소개되는 모순을 강조한다. 이 같은 역설은 되레 과잉 소비, 즉 잉여적 상태에서 유지되는 자본주의의 현실을 부풀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일상을 향해 ● 윤동천은 설문조사를 기반으로 한 통계학적 수치를 색으로 환원하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제시한다. 그는 아름다움에 관한 보편성과 같은 칸트주의 미학보다는 획일화된 자본주의 체제와 연결된 개인의 가치관을 색으로 치환해 비교 분석하기를 즐기는데 이러한 태도는 그의 예술이 내적 긴장으로부터 기인하는 초월적 세계관이 아닌 현실을 기반으로 한 일상적 삶과 연결되어 있음을 나타낸다. "희망의 색"(2012-2014)은 한국, 일본, 스페인 세 국가의 다양한 세대로부터 희망을 표상하는 색채에 대한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콜라주한 통계학적 작업으로 지난 전시 「탁류」(2012)에서도 선보였던 "좌우합작 사례연구"(2011)과 마찬가지로 색채 심리와 사회정치학적 관계를 구체화한다. 「조건부 무작위」(2005)에서는 참여자들에게 주어진 색 안에서 자신이 선호하는 색을 선택하도록 한 "색상선호도 표"(2005)와 그들이 주사위를 던져 무작위로 나온 숫자와 연결된 색을 배열하는 작업을 선보인바 있다. 이 작업은 창작에 관한 이중적 태도(자율성과 타율성)를 실험한다. 그 이유는 우선 참여자는 미술적 재능과는 무관하게 우연의 법칙에 의해 작품이 완성되는 경험을 갖게 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미 주어진 상태라는 조건의 한계 상황이 획일화된 체제에 속한 개인의 한계를 비유하고 있는 듯하다. 어쩌면 지배적인 사회 체제 내에서 평범한 개인에게 주어진 가능성이란 이미 한계를 가진 상태 안에서만 작동되기에, 오히려 자신의 어리석음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 체제의 폭력성이 강조된다고 해석할 수도 있겠다.
윤동천은 그리기보다 화면 안에 재현이 아닌 힘의 움직임을 물질적 상태로 제시한다. 레이저 커팅 기계를 이용해 종이 표면을 그을려 '상흔-이미지'를 생성한 "촛불-태우다'(2014)는 촛불 집회 장면 사진을 인터넷에서 수집한 후 종이 표면에 일종의 화상을 입힌다. 과연 오늘날 한국인에게 '촛불'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의 판화는 상흔이 되어 기호를 감각적 실체로 전환한다. 또 다른 작업 "기성세대를 위한 도구들"(2012)은 다듬이 방망이, 야구 배트, 빨래 방망이, 자, 주걱, 망치 등의 실루엣을 레이저 커팅으로 새긴 작업이다. 윤동천에게 상식적인 사물들은 그의 작업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 사물들은 반 미학적 장치로써 레디메이드와 같이 탈맥락의 의미를 갖지만, 더불어 정치적 레디메이드로써 재맥락화된다는 점은 흥미롭다. 「탁류」에 소개된 "의미 있는 오브제"(2012) 연작에서는 세제, 살충제, 파리채를 통해 혼탁한 한국의 정당 정치를 우회적으로 풍자한 바 있다. ● '희망'이란 화두는 "희망 알약 3종 세트 (연애, 결혼, 취업)"로 이어지는데, 일명 "3포 세대"가 가질 수 없는 가치에 관해 묻는 작업이다. 연애, 결혼, 취업은 인간의 본능이자 사회적 요구와 자아의 욕망이 현실과 만나는 문턱으로 비유할 수 있다. 윤동천은 단순히 이러한 가치를 체념해야 하는 젊은 세대의 비애를 재현하지만은 않는다. 이번 전시가 백화점 내부에서 진행된다는 사실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어쩌면 소심한 공격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정작 작가의 질문은 세속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을 비판하기보다 획일화된 가치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오늘을 사는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의 현실을 제시하고 있다. 간혹 예술가와 정치가 그리고 지성인들은 평범한 사람들을 계몽하려 한다. 왜 그렇게 살고 있냐고? 도전하라고 부추기거나 위기를 극복하는 것은 다르게 생각하고 실천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결국 자기 계발의 성공담과 다를 것 없는 이러한 주장들은 아름다운 삶이 얼마나 정치적일 수 있는지 상냥하게 소개해 줄 뿐이다. 거절할 권리는 누구에게나 주어질 수 없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공이 아니라 오늘을 위해 일하기 때문이다. 윤동천은 1988년 3월 11일 첫 개인전을 앞두고 "어떻게 그릴까'보다는'왜 그리는 가'를 숙고해야만 했다. 한 무더기의 요란한 수식어를 요하는 이 시대. 이를 온 몸으로 부딪히고 앓는 사람들. 그들을 볼 때마다 내가 택한 삶은 과연 올바른가 고민했었다"고 적고 있다. 그리고 그의 고민은 현재까지 진행 중인 것 같다. ■ 정현
Vol.20140621c | 윤동천展 / YOONDONGCHUN / 尹東天 / 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