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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4_0410_목요일_06:00pm
갤러리 마리 로르 드 레코테 Galerie Marie Laure de l'Ecotais Au fond de la cour 49 rue de Seine, 75006 Paris Tel. +33. 1.43.25.81.89 www.galerieaufondelacour.com
작품을 빠리행 비행기에 태우기 위한 준비 중인 내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기삿거리는 바로 '돌'이다. 조그맣고 고요하기만 했던 작은 마을로 사람들이 열광하며 모여들고 있고 외국에서 방문하는 이들이 있다고 한다. 이 돌을 보기위해, 발견하기 위해 적확히 얘기하면 갖기 위해서. 한창 주목을 받고 있는 이 돌은 그냥 돌이 아니라 우주에서 떨어진 돌이었기 때문이다. 태양계를 떠돌던 먼지, 티끌이 지구 표면에 부딪치고 남아 땅에 닿아 운석이라 불리는. 공교롭게도 이시기에 운석이 멀지 않은 곳에 떨어지고 꼬리를 물며 몰리는 인파의 모습과 함께 돌이 부각되어 미디어에 등장하고... 이 사건은 새삼스럽게도 주된 재료인 돌과 이 시대 사회적 현상에 대해 발언하고자 하는 내 작업에 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된, 내겐 나쁘지 않은 소식이었다. 그렇다면 왜 운석이 중요할까? 바로 지구를 포함한 태양계의 진화 즉, 태양계가 어떻게 시작됐는지 알 수 있고, 또 다른 행성을 이룬 물질의 종류를 찾아 그 행성에 생명체가 사는지에 대한 비밀도 밝혀낼 수 있다고 한다. 여기에 희소성의 가치까지 더해진다. 이 희소성이 지닌 재화가치로 인하여 군중이 모이고 있는 듯하다. 운석이 우주의 비밀을 캐낼 수 있는 핵심자료이듯이 작가인 내게 주요소재인 가방, 명품가방이 욕망이라는 주제를_개인적이거나 사회적인_ 풀어내는 키워드이다. 여자의 가방, 명품을 연구하다보면 현대사회의 욕망계가 어떻게 시작됐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다양한 욕망을 살피다 보면 현시대의 문화적 기제들, 이데올로기, 사회구조와 가치까지 확장하여 읽어낼 수 있다.
30대 초반의 어느 날, 삶의 전환점에서 가방은 자신의 무게를 느끼게 했고 그것이 지닌 동動성과 무한한 잠재력을 발견하는 계기를 나에게 던져 주었다. 커졌다가 그 후에는 가벼워지면서 가방이 어떻게 생애의 궤적에 흔적을 남길 수 있는지... 가방이 어느 정도까지 환기된 삶을 나타내고 상징하고 가끔은 충동질하는지를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공감할 것이다. 프랑스의 사회학자인 장클로드 카프만(Jean-Claude KAUFMAN)이 말한 "여자들이 자유로워질수록 여자의 가방은 무거워진다"라는 말을 빌려와 본다. 내 작업에서 가방의 무게는 가방주인의 사회적 역할과 관련된 일상적인 속박의 무게이기도 하다. 실제 내 돌가방은 무겁다. 가방, 핸드백이라는 소재는 겉보기보다 제기하는 문제가 많고 복잡하다고 말하고 싶다. 가방은 누구에게서나 삶의 중심에 있고 자신의 이미지구축과 밀접한 연관이 있고, 정체성을 드러내는 모든 측면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가방이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를 직접적이고 철저하게 드러내는 것은 아니지만, '자기이미지' 구축과의 관련은 있어 보인다. 자기이미지는 우리가 우리 스스로에 대해 만들어내는 이미지, 남들이 우리를 우리의 진정한 모습대로 혹은 우리가 원하는 모습대로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 내보이는 이미지이다. 정체성이란 지속적인 의미 생성 과정에서 기인한다. 개인들은 자신들에 관한 흩어진 이미지 조각들을 붙이고 재통합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기 이야기를 하고 또 해야 한다. 프랑스의 폴 리쾨르(Paul RICOEUR)는 여기에 '서사적 정체성' l' identité narrative 라는 명칭을 붙였다. 가방은 이 이미지에 부합해야 하고, 그 안에 들어가야 한다. 우리의 이미지를 변형시키지 않고, 가능하다면 미화시켜 주면서 말이다. 가방이 갖은 모순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방의 단순한 실용적 기능과 자기 이미지의 가치를 드높이는 화려한 과시품 역할 사이의 모순일 것이다. 그런데 역사적인 면에서 부인들의 가방은 남들과 구별되려는 의지에서 탄생했다고 할 수 있다. 귀족들의 사치품과 귀중품 영역에서 말이다. 그리고 가방에는 오늘날도 여전히 이런 기원이 깊이 새겨져 있다.
가방에게는 양면의 삶이 있다. 가방 속은 내밀함과 비밀로 타인의 시선과 판단에서 자유롭고 그 주인만의 것이다. 하지만 가방의 겉면에서는 선택한 자기이미지를 추구하고 그 형태, 스타일, 소재, 상표가 중요시된다. 여기에 명품로고와 이니셜이 새겨지면 사회적 지위를 보여주는 강력한 증표가 될 것이다. 이 때 가방은 당당하게 과시된다. 자아를 단언하고 사회적 구분을 나타내며 말이다. 다른 이들의 시선 앞에 우리는 더 강해진 듯, 아름다운 가방을 갖는 것은 자신감을 강화해주는 심리적 무기로 무장하는 셈이다. 공공연하게 모습을 드러낼 때의 빛나고 눈부신 삶, 이것이 가방의 또 하나의 삶이다. 가방이 갖는 상징, 이것의 유쾌한 뒤섞임은 그 자체로 내게 즐거움을 주고 있다. 현대사회의 인간의 삶과 욕망을 드러내고 '말걸기'를 꾀하는 나의 작품 앞에 서면 관객은 마치 진짜 명품백을 대하는 듯하다. 간단하고 쉬운 암호로써 새겨 넣은 크고 작은 명품로고, 이니셜의 중복성이 착시를 일으키나 보다. 명품로고는 현대사회의 욕망 그 자체이며 그것을 강렬하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현대 사회가 생산해낸 소비재의 이름, 간판 등은 이미 상징적 기호이고 시각적 언어이기에 미술작품을 보며 심리적으로 대등하게 대하게 되는 다른 예들처럼 말이다. 또한 그것이 예술이란 옷을 입으면 파장은 배가된다. 내 작업 속 명품가방 LUXURY STONE이 자연 속에 굴러다니는 돌을 채집한 것임을 알고서부터는 그것이 얼마나 역설적이고 모순된 존재인지 눈치 채기 시작한다. 자연의 엑기스인 돌로 '현시대 욕망의 결정체=명품'으로 설정하여 풀어내는데 있어 주목을 받지 않은 채로 그냥 존재하던 돌은_앞면과 뒷면의 차이, 그 경계를 두는 등_역설에 역설이 겹쳐지도록 하기에 중요한 재료이다.
운석이 아닌 이상, 쓸모없는 것이라 여겨지는 돌. 흔하고 전통적인 조각재료인 돌중에서 나는 한 자리에 머무르다가 기계로 싹둑 잘려온 돌보다는 자연의 풍파와 세월 속에서 수없이 뒹굴고 머물기를 반복하며 이미 자신이 아닌 것을 떨쳐내고 온전한 자신으로 강의 하류, 길가에 자리한 돌을 데려온다. 분명 크고 컸을 삶을 상상하고 어디에 살았는지 얼마나 열정을 쏟았을지, 어떤 경험을 했을지를 상상 해보는 것에서부터 작업이 시작되기에. 그 만남에서 마치 자연의 흔적을 품은 자신을 알아봐달라며 나에게 직접 말을 걸어오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각자의 돌이 있었던 장소와 마주한 순간을 모두 기억한다. 무른 돌과는 달리 화강암 즉, 강가의 돌은 단단함이 상당하다. 모순적이게도 이는 한없이 약하기도 하다. 내게 강하면서도 약한 이중성은 매력으로 다가온다. 정이나 가는 못으로 살짝 닿기만 해도 쪼개져 색깔과 모양이 다른 여러 가지 알갱이를 품은 제 속을 드러내 보인다. 수없이 광을 낼수록 드러내 보이는 겉돌과는 다른 속살의 색깔과 결... 어루만지지 않았으면 드러나지 않았을, 감추고 있었을 심연의 모습이다.
돌의 물성과 나의 기질이 노동을 통하여 시각화되는 작업 속에서 20대에는 돌을 억압의 대상으로 다루고 정복하려 했으나 이제는 대화하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가방의 형태를 찾아가는 것 역시, 처음 대면했을 때의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돌가방에 대한 작업 시, 완성된 형태의 조형미에 대한 의도와 어떤 로고를 어떻게 배치해 새겨넣을지에 대한 밑그림은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의 조각 행위는 그냥 돌에 또 하나의 신분 즉, 명품과 예술의 가치를 부여하는 하는 것이지만 이는 가만히 있어도 좋은 자연의 가치를 훼방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온 후, 쌓이는 재료의 파편들과 그것을 다루는 나의 손놀림을 뒤돌아 바라보게 되는 버릇이 생겼다. 여기에 가는 바늘로 세밀히 명품로고를 새기고 금속재질이 추가되며 그 돌가방은 더불어 '동경의 대상' '성공의 상징'으로까지 이어간다. 내 손에 들어와서 깎고 갈고 쪼아지는 시간을 거치며 신화적인 위상을 얻었다는 듯. 우리는 규정된 사회와 문화의 맥락에 영입되기 위해 자신에게 어떤 기호를 새겨야 하는 것일까? 아무것도 새겨 넣지 않을 수는 없는 것일까? 그 자체로는 너무 밋밋한 것인가? 라는 질문을 던져본다. (2014년 3월) ■ 양문기
Vol.20140427c | 양문기展 / YANGMUNGI / 梁文基 / 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