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로 그리다

박병철展 / PARKBYUNGCHUL / 朴炳澈 / painting   2014_0409 ▶ 2014_0506

박병철_patityasamutpada_110×8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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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4_0409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09:00am~06:00pm

메리골드호텔 MARIGOLD HOTEL 서울 마포구 양화로 112 Tel. +82.2.332.5656 www.hotelmarigold.co.kr

煙氣의 미학-박병철의 근작 ● 10세기 인도의 학자이자 탄트라(tantra)의 수행자 아비나바굽타(Abhinavagupta)는 "최고단계의 미적 체험은 자아 그 자체가 순수한 우주를 체험하는 것이다. 이 단계에서는 주체와 객체라는 이원성은 내향성을 통해서 사라지게 되며, 기본 심리 상태는 잠재 의식화 된다. 보편화된 '이것(this)'은 보편화 된 '나(I)'와 하나가 된다." 라고 한다. ● "자신의 몸을 태워 촛불이 그려주는 춤에 매료되었다. 태우면서 연기로 사라지는 동시에 종이에 흔적을 남기는 것. 새벽 첫 공기를 마실 때처럼 풀리지 않은 숙제의 답을 찾은 듯했다. 촛불은 그 모양이 붓을 닮았다. 당분간 이 촛불이란 붓으로 화면위에서 자유롭게 붓질을 하기를 멈추지 못할 것 같다. 내가 갈망하던 세상에 없는 것을 그리는 것이므로..." (박병철)

박병철_patityasamutpada_130×89cm

하이데거(Heidegger, Martin)는 그의 저서『예술작품의 근원』에서 "예술작품은 그 자신의 고유한 방식으로 존재자의 존재를 개시한다. 작품 속에서는 존재자의 존재로서의 진리, 즉 개시(Er ffnung)요 들추어 냄(Entbergen)으로서의 진리가 일어난다."고 한다. 작품은 세계를 열고 대지(大地)를 불러 세워 존재자의 숨어있지 않음이 산출되는 가능성이요 상태라고 한다. 박병철의 작품들은 촛불을 태움으로서 보여주는 이미지이다. 그에게 있어서 연기(煙氣)는 자신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그 모습이 속해있는 이 세계가 존재하고 또 지속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미지는 더 이상 단순한 은유가 아니며, 잘 아는 것에서 잘 모르는 것으로 존재론적 가치를 지닌다.「연기(煙氣)로 그리다」는 이렇듯 그 대상이 정신에 암시하는 본질적 실체에 접근해 나가는 과정이다. 보헤미안(bohemian)의 느낌을 풍기는 그는 하이브리드(hybrid)적 접근방식의 근작에서 잡종과 변이에 대한 피상적인 표상의 단계를 넘어 현시대 문화적 충돌과 변이에 대한 비평적 인식을 담지하고 있다. 혼성(混成)의 사전적 개념(의미)의 하이브리드란 둘 이상이 서로 섞여서 이루어진다는 뜻으로, 이 섞임에서 새로운 무엇인가가 만들어짐을 의미한다. 원래 이질적인 요소가 서로 섞인 것으로 이종(異種), 혼합, 혼성, 혼혈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박병철_patityasamutpada_91×91cm
박병철_patityasamutpada_110×91cm

박병철은 일상생활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사물의 이미지들을 결합하여 그로테스크(grotesque)한 화면을 만들어내는 그는 인간, 동물, 식물을 주제로 원근법적 재현의 한계를 넘어선 많은 수의 회화, 드로잉, 몽타주(montage)를 제작한다. 이를 통해 자신만의 그로테스크한 화면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박병철 작업의 수행의 특징을 추론할 수 있으며, 그의 작업은 시각적인 인식과 우리가 혼란스러운 세상을 보고 이해하는 방식에 관한 것이다. ● 박병철의 작업은 단순히 사회에 대한 혁명(revolution)이 아닌, 종의 형질이 변형되는 진화(evolution)를 통해서 진행된다. 전통 문화와 신문화가 접합할 때 혹은 서로 다른 문화영역이 교배될 때 고유의 전통성이 사라지고 동질화마저 거부되어 유전적인 변형과도 같은 기형의 이미지로 남게 되는 하이브리드의 이면을 짚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의 작품은 연기(煙氣)의 조절에 의한 공간적 깊이, 빛과 어두움의 상관관계도 독특하게 보여주고 있지만 무엇보다 이번 전시회의 작품들에서는 작가가 얼마나 개방적인 공간성을 모색했나 하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 박병철의 이러한 변화적인 요소들은 새로운 차원의 공간 개념을 시사하고 있으며, 또 한편으로는 촛불의 순간을 통해 연기(煙氣)의 흐름을 그려내고 있다. 근작「연기(煙氣)로 그리다」는 순차적인 자리바꿈을 통해 시공의 통일적 재현을 달성한 역동적 회화 원리에 시간을 표현하고 있다. 세상은 멈추어 있는 것이 아니라 부단한 움직임과 변화 가운데 있다는 것이다. 연기로 뒤덮힌 화면은 단순한 회화작품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생명체가 끝임 없이 운동하고 활동하는 느낌이 일어난다. 역동적인 공간은「연기로 그리다」의 한 특징이며, 이러한 역동성이야말로 연기의 공간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박병철_patityasamutpada_130×90cm
박병철_patityasamutpada_91×116cm

박병철의 근작「연기(煙氣)로 그리다」는 연기(煙氣) 미학의 순간적인 찰나에 대한 첨예한 의식을 가지고서 어떤 계시적인 질서에서 해방되어 자유롭게 주제를 창조하고 다양한 관점에 따라 해석하게 하였다. 그 결과 작품에 등장하는 인간과 사물들은 모든 공간적인 배경에 자연스럽게 배치되어 연기(煙氣)가 자리 잡은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파악하고 이를 통해 순간적 존재가 화폭 속에서 영구화될 수 있게 하였다. 그런 의미에서「연기로 그리다」는 시간의 흐름 속에 역동성을 강조하는 박병철의 연기(煙氣) 미학을 가장 명료하게 부각시킨 작품으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 현대미술에 있어서 차용, 위조와 표절, 패러디(parody)와 패스티시(pastiche)등은 서로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점점 더 그 범위를 넓혀 새로운 의미를 생산해 내고 있다. 구분 기준 또한 애매해지고 있어 이에 대한 비평적인 문제 제기와 통찰이 절실히 요구되는 실정이다. 그렇지만 감정과 구조와 상상력이란 어떠한 예술작품에도 존재하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감정이 없는 예술은 우리를 감동시킬 수 없으며, 어느 정도의 구조가 없으면 질서가 없어진다. 또 상상력이 없는 예술은 지루할 것이다. 박병철의 근작에서는 이해 불가의 영역으로 흐르는 현대미술의 바탕에 깔려 있는 변화의 조짐과 그 혼돈(chaos)의 의미를 읽어낼 수 있는 하나의 초석이 되기를 기대한다. ■ 김인철

Vol.20140409b | 박병철展 / PARKBYUNGCHUL / 朴炳澈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