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11117g | 신홍직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4_0402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인사아트센터 INSA ART CENTER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3층 Tel. +82.2.736.1020 www.insaartcenter.com
'노마드'적 사유, 표현의 자유로움과 체험의 다채로움-신홍직의 '유럽풍경'연작 ● I. 신홍직의 최근작인 일련의 '유럽풍경'은 노마드적 사유의 산물로 보인다. 유목민의 삶처럼 하나의 틀 속에 갇혀 정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이주하려는, 벗어나려는 시공간적인 이동욕망을 실현하는 노마드(nomade)적 사유를 작품으로 드러낸다. 이러한 노마드적 삶의 패턴은 이미 디지털 테크놀로지에 의해 정보를 동시에 편재적으로 공유하는 '이동성'(mobility)에 의해 일상적으로 경험하고 있지 않은가. 다만 신홍직은 디지털적이라기 보다 아날로그적이며, '이곳'에서 '저곳'으로, 몸으로써 이동하는 삶의 현장체험에서 비롯하는 노마드적 사유의 작품행위이다. 따라서, 그가 택한 '유럽여행'은 '이곳'에서 풀리지 않는 모종의 궁금증을 지니고 떠난 물음의 기간이며, 그런 나머지 '저곳'에서 해답을 얻었고, 마음이 열리면서 정신과 표현의 자유와 해방을 경험한 셈이다. 매슬로우(Abraham H. Maslow)가 '존재의 심리학'에서 말한 일종의 '절정체험'을 한 것으로 보인다. 절정체험(peak experience)이란 한 개인의 삶에 있어서 최고로 고양된 만족과 환희의 순간이며, 깊은 몰입과 황홀감, 경이, 외경, 시공간 초월을 수반하게 된다. 그러한 계기는 사랑의 느낌, 신비로움과 무한, 미적 지각, 창조적 순간, 지적 통찰, 대자연의 아름다움 등에 매료될 때 일어난다고 한다. 2010년 3월 이후, 그간 3차례에 걸친 '유럽여행'은 그에게는 '시각적 절정체험'의 기회였으며, 작품에 있어서도 변화와 변모를 가져온 계기가 된 것이다. 마치 폴 클레(Paul klee)가 튀니시아 여행으로 '빛과 색채'에 대한 놀랄만한 발견의 체험을 하고 난 뒤, '색채와 내가 하나가 되는 순간이었으며, 비로소 나는 화가이다'라고 한 것과 다름없겠다.
II. 그의 첫 여정은 2010년 3월, 서유럽으로부터 동유럽에 이르며, 주로 미술관을 탐방하여 주요 작품들을 만난 것이다. 특히 감명을 받았던 것은 파리의 오랑주리미술관에서 마주친 '카임 슈틴'(Chaim Soutine 1893-1943)과 '모리스 위트릴로'(Maurice Utrillo 1883-1955)의 작품, 그리고 퐁피두센터에서 있은 '루시안 프로이트'(Lucian Freud 1922-2011)의 대회고전 관람이다. 이들의 작품이 공유하고 있는 점은 인간의 삶과 조건에 대한 '있는 그대로'의 진실, 가공되지 않은 '날것'을 과감하게 드러내는 그 적나라한 '표현의 자율성'과 '야생적 감성'에 있다. 그는 이들을 통하여 인간이 지닌 잠재된 무한한 표현성과 또 다른 회화의 가능성의 여지를 보았다고 한다. 특히 대상에 대한 규제되지 않는 개방된 시선, 그리는 행위에 대한 자유로운 유연성을 감촉한 것 같다. 그 다음으로 동유럽의 체코, 문명화로부터 유리된 중세마을 '체스키 크롬로프'에서는 유구한 세월과 함께 형성된 인간적 삶의 결과 정감이 환기하는 편안함과 화평을 느꼈다고 한다. 두 번째 여정은 2012년 10월, 남프랑스의 아를르에서 모나코를 거쳐 이탈리아 북서부 해안에 있는 '친퀘테레'의 '베르나차'와 '베니스'에 이른다. 특히 지중해와 맞닿아 있는 절벽위에 조성된 어촌마을 '베르나차'의 무구한 풍광은 색채와 형상의 다채로움에 대한 풍요로운 체험을 가져오게 했다. 세 번째 여정은 2013년 10월말, 발칸지역의 '크로아티아'의 중세의 유적이 보존된 아드리아 해안마을 '두브로브니크'와 국립공원 '플리트비체'를 방문한 것이다. 특히 지중해와 아드리아해의 해안마을이 지닌 아기자기하면서도 자연스러운, 그러면서도 무한하게 열려진 천연의 풍광은 그로 하여금 '이곳'과 다른 '풍경의 발견'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작품의 행로에 많은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III. 그의 '유럽풍경'연작은 스쳐지나가는 일과성의 현장스케치와 같은 것이 아니다. 감명 깊게 가슴에 담아 두었던 '저곳'에서의 풍경체험을, 돌아와서 연작의 형식으로 되새김질하면서 회화적으로 다시 '이곳'에서 재구성/재해석한 풍경이 되고 있다. 마치 현장의 풍경에서 발견하고 체험한 것과 다를 바 없는 '감흥'과 '표현의욕'을 유지하고 몰입하여 작품화한 점이 주목된다고 하겠다. 그래서인지, '유럽풍경'들은 전과 달리, 마치 그리는 순간이 '절정체험의 순간'이듯이 자유스럽다. 흡사 매슬로우가 절정체험자들의 특성으로 들고 있는 성향들을 그의 작품에서 엿보는 것 같다. 예컨대, 그 성향이란 더욱 자발적이고 표현적이며, 천진난만하고, 기교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 편하게, 더욱 자연스러워서 단순하며, 망설이지 않고, 평범하고, 다정하며, 꾸밈없고, 즉각적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의 작품 또한 전반적으로 생생(生生)한 기운이 화폭에 충만하여 생동하고 있다. 그래서 맑고 밝으며 경쾌하다. 물기를 머금은 순색의 유채들은 조화를 이루어 빛을 발하고 있으며, 순발력 있는 여러 필치들의 어울림은 '감흥'(感興)에 실려 춤추듯이 거침없는 대범함과 함께 유연하고 섬세하며 자유롭다. 일체의 구속에서 풀려나온 듯, 자율적인 생명력의 발로에 다름없는 표출의 몸짓과 호흡이 있다. 따라서 모처럼 붓과 손과 의식이 하나로 통합된 이른바 사람의 기운이 흐르는 필치의 화폭을 마주하게 된다면 과언일까.
IV. 그가 다룬 작품을 풍경지별로 나누어 보면, ①남프랑스(오베르, 에즈) ②베니스 ③융프라우 ④체스키 크롬로프 ⑤친퀘테레(베르나차, 마나롤라, 포르트피노, 코르닐리아) ⑥두브로브니크 ⑦플리트비체 ⑧벽(파리, 체코, 베니스, 친퀘테레 등)이다. 이 가운데서 특히 연작으로 많이 다루고 회화적/조형적으로 천착하여 괄목할 만큼의 성과를 보여준 것은 단연 친퀘테레의 '베르나차' '마나롤라'(color village)를 들 수 있고, 다음으로 '두브로브니크'와 여러 곳에서 취재한 '벽'을 소재로 다룬 것이라고 하겠다. '벽'연작은 여행지에서 만난 인상 깊은 건물(카페, 뮤지엄, 가게, 주택 등)의 외벽의 특정한 부분을 클로즈업하여 평면적으로 회화화시킨 것이다. 벽의 구조와 색은 물론, 창문들의 생김새, 출입구의 표정, 서성이거나 지나가는 인물, 앉아 있는 이들의 차림새와 동작, 창가의 인물, 무심한 주변의 소품들(나부끼는 빨래, 나무)을 적확하게 명쾌한 필치로 화폭에 형상화/조형화하여 전개한다. 특히 벽면을 넓게 '색면화'하여 연접하는 각각 다른 '창문들'과 대화하듯 색채로 구성한 화면은 풍부한 회화성을 얻고 있다. 두텁고 농밀하게 자리 잡은 색면위를 스치듯이 겹쳐지나가는 필적들의 미묘한 어울림이 생성시키는 질감들은 '저곳'의 인간적인 삶의 호흡과 결을 지니고 정겹게 한다. 이처럼 일련의 '벽'연작은 그의 '유럽풍경'의 기본적인 형상구조로서 파악되며, 이후 '베르나차' 'color village'(마나롤라) '두브로브니크'에 와서 회화적/조형적으로 구성미를 지니고 통합되어지는 것을 보게 된다.
V. 그가 인상 깊게 포착한 '체스키 크롬로프'와 '두브로브니크'는 중세시대의 마을로서, 자연적인 지형과 함께하는 각양각색의 개성을 지닌 건물들이다. 조감적인 시선으로 볼 때, 특색을 지닌 지붕과 모양, 다른 규모, 골목이 어우러져 그 자체로 훌륭한 '회화적/조형적 풍경'이 될 수 있다. 더불어 '강'과 '바다'와 함께 열린 시야로 다가서는 풍광이라면 가히 또 다른 '풍경의 발견'이 가능하지 않겠는가. 이런 맥락에서 만나게 되는 지중해변의 어촌마을 '친퀘테레'(Cinque Terre, 다섯개의 마을이라는 뜻)는 회화적 표현의욕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였으리라. 전체적으로 이들 마을은 해안의 바위 절벽위에 다닥다닥 붙여 지은 크고 작은 집들로 정겹게 형성되어 있는데, 특이한 것은 이들 집 하나하나가 파스텔톤의 각가지 색으로 단장되어 지중해의 짙푸른 쪽빛 물색과 어울려 마치 '동화적 풍경'을 연상시킨다고 한다. 그는 이 이국의 그림과 같은 '회화적 풍경'을 마주하고, 그동안 갈무리해왔던 표현의 욕구를 스스럼없이 표출하고 있다. '이곳'에서 체험하지 못했던, 이전과 다른 색채와 형태의 다양한 변화와 조형적 구성을 빌려서, 대범한 동세와 섬세한 필치가 경쾌한 흐름을 타고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큰 화면에 그려지고 있다. 윤기 있는 유채색필(油彩色筆)로 난만하게 그린 마을은 부분들이 모여 전체를 이루어 흡사 무리지어 핀 꽃들의 '화원'(花園)과 같다. 또 깊고 짙푸른 물빛은 이들을 넓게 포용하여 생생함을 배가한다. 그리고 조감적인 원경의 풍경 속에 함께하는 점경의 인물, 배, 파도의 움직임은 마치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빛'을 머금고 일체화되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생명체로 화하고 있다. 그리하여 '친퀘테레'의 '베르나차'와 'color village'는 그의 '유럽풍경'의 회화적인 성취의 대단원이 되어 주고 있으며, 또 다른 가능성을 예감할 수 있는 면모들을 지니고 있다. ■ 옥영식
Vol.20140404a | 신홍직展 / SHINHONGJIK / 申洪直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