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있는 풍경- 엄마의 방

이지숙展 / LEEJISOOK / 李芝淑 / mixed media   2013_1208 ▶ 2014_0206

이지숙_엄마의 방-이기적 유전자_테라코타에 아크릴채색_98×75×4cm_2012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21207f | 이지숙展으로 갑니다.

이지숙 홈페이지_http://leejisook.weebly.com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우모하갤러리 UMOHA GALLERY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서천동 281-2번지 명선교회 Tel. +82.31.202.0061 www.myungsun.or.kr

부산에 계신 엄마의 전화에 그냥은 없었다. 무소식이 희소식인양 지내는 엄마와 나는 늘 그렇고 그런 해결할 문제를 담은 통화만이 오고 갔을 뿐이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엄마는 혼자 하는 일들에 대해 힘들어하고 있었다. 소소한 쇼핑서부터 병원에 다니는 일까지.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였지만 엄마의 마음속엔 늘 갖고자하는 것들이 자라나고 있었다. 나 중학교 때였던가? 엄마는 하나 둘 자개로 된 가구들을 들이기 시작했다. 장롱, 문갑, 화장대 등등 남는 벽이 없을 때까지 자개로 된 그것들로 꾸역꾸역 방을 채워나갔다. 난 자개로 된 모든 것들이 싫었다. 끝이 보이질 않는 엄마의 물욕을 대변하는 그 무엇 같아서. 가끔 그런 생각을 했다. 엄마를 엄마와 딸이라는 관계로 만나지 않았다면 보고 살지 않았으리라. 나이에서 오는 연륜도 푸근함도 소녀감성의 엄마에게는 기대할 수 없는 버거운 것이었다. 예술의 어느 한 분야에 묻혀서 살았어야했다. 엄마는... 생선전에 각 잡고 쑥갓과 고추로 그림 그리느라 하루 종일 전을 붙여도 한 접시, 김치를 담아도 다섯 포기 이상은 상상도 못하셨고 딸 셋의 손에 잣, 실고추, 깨를 각각 들려놓고 포기마다 그 위에 그림을 그리셨다. 집안 식구가 아니고는 같이 밥 먹는 자리조차 항상, 한 번의 예외 없이 불편해하셨다. 난 늘 엄마를 원했다. 수줍은 여자, 감수성이 예민한 여자가 아닌 엄마를. 그랬던 거다. 기억하기 시작한 아주 오래 전부터 난 늘 엄마를 원했지만 엄마는 가끔, 불현 듯 엄마임을 내비치곤 이내 언제 그랬냐는 듯, 한 사람의 여자로 돌아가곤 했다.

이지숙_엄마의 방-강의와 삼작노리개_테라코타에 아크릴채색_81×90×3cm_2012
이지숙_엄마의 방-나는 죽음을 이야기하는 의사입니다_테라코타에 아크릴채색_74×64×4cm_2013
이지숙_천리향이 있는 방-사람아 아 사람아_테라코타에 아크릴채색_30×24×2cm_2013

작년 여름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한 책 , 「엄마를 부탁해」 그 책 속에서 나는 내가 그간 엄마 앞에 쌓아올린 차가운 담벼락을 보았고, 거기엔 언제 열었는지조차 기억할 수 없는 빗장이 채워진 문을 보았다. 싸늘한 나를 만났고 한 사람의 여자를 만났다. 엄마이기 이전에 한 사람, 천상 여자. 엄마! 엄마이기를 거부했던 한 여자의 모습! 인생은 시간이 가지는 절대적인 삶의 무게를 겪지 않으면 그 본연의 모습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나보다. 거울 앞에 선 내게서 그 때 마흔 넘어선 엄마의 모습을 본다. 18살 딸에게서 그 때 엄마를 바라보던 냉소적인 시선의 나를 본다. 끊임없는 존재의 순환을 마주하는 순간이다.

이지숙_엄마의 방-경대_테라코타에 아크릴채색_64×48×3cm_2012

10년 전 쯤, 몇몇 여성 작가들이 어머니를 그리고 만드는 모습을 마주한 적이 있다. 그 땐 몰랐지. 내가 엄마를 이야기하게 될 줄은. 그 자리에 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에 대한 노래. 엄마의 방. ■ 이지숙

Vol.20131208f | 이지숙展 / LEEJISOOK / 李芝淑 / mixed media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