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준展 / JOHAEJUN / 曺海準 / installation.drawing   2013_1128 ▶ 2013_1211 / 월요일 휴관

조해준_어깃장 난 아들-1979년부터 1990년까지_ 종이에 인쇄, 코멘타리 드로잉 시리즈_각 45×31cm×9_20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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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3_1128_목요일_06:00pm

제55회 청년작가초대展

주최 / (재)우진문화재단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우진문화공간 WOOJIN CULTURE FOUNDATION 전북 전주시 덕진구 전주천동로 376(진북2동 1062-3번지) 1층 전시실 Tel. +82.63.272.7223 www.woojin.or.kr woojin7223.blog.me

증언자 예술가 수집가 사이망각하려고 하는 것은 포로생활을 연장시킨다. 그러나 구원의 비밀은 기억이다. (바알 셈 토브) 1. 역사의 폭풍과 증언자 예술의 목소리는 증언의 목소리가 될 수 있을까? 예술은 주어진 사실이나 사건을 그대로 전달하기 보다는 번안하거나 각색함으로써 작가의 흔적을 새겨 넣는 태생적인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에 반해 증언은 말하는 자의 경험과 이해의 한계 속에 갇혀있다 하더라도 사건에 참여한 당사자라는 점에서 역사적인 사실을 지향한다. 때문에 증언의 목소리가 역사와 현장을 기록하고자 한다면, 예술의 목소리는 그것을 너머서는 바깥의 시선을 담고 있으며, 증언이 당사자의 것이라면 예술의 목소리는 제삼자의 것이다. ● 이탈리아계 유대인인 프리모 레비는 24네 살의 젊은 나이로 파시스트 민병대에 체포되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감금되었다가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생존자이다. 인간이기를 포기당한 2년여의 시간은 그토록 그리던 집으로 달려간 그에게 제일 먼저 책상에 앉게 글을 쓰게 만들었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 『이것이 인간인가』(1947)라는 책이었으나, 이 책은 2,500부의 초판본조차 거의 다 팔리지 않으면서 서서히 잊혀져갔다. 그러나 그는 기억하기를 멈출 수 없었고 말하기를 멈출 수 없었다. 그로 인해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들을 찾아서 여기저기를 유랑민처럼 떠돌았으며, 숙소로 돌아와서는 타자기를 붙들고 불면의 밤과 싸웠다.

조해준_미군과 아버지-초상_종이에 연필 드로잉_각 48×32cm×33_2009~13

기회가 찾아온 것은 파괴된 도시가 재건되고 사람들의 생활도 안정을 찾게 된 십여 년 후였다. 사람들이 그의 책들을 읽기 시작했고 의견과 격려를 담은 편지들이 쇄도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그는 두 번째 유랑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자신의 이야기를 듣기위해 구름처럼 몰려든 전 세계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러는 와중에도 그는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으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작가라고 불리고 있었다. 어찌되었든 이제 그는 유명인사가 되었으며, 그의 책들은 수십 가지의 언어로 번역되어 불티나게 팔렸고, 각종 인터뷰와 강연요청, 수상 소식들이 봇물을 이뤘다. 그러나 1987년 4월 11일, 여느 때 만큼이나 조용하고 평온한 날이었던 그날, 68세의 그는 자택의 베란다에서 뛰어내려 삶을 마감했다. 최악의 절망적인 상황에서조차 생(生)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그가 황금빛으로 마감되어가는 인생의 절정기에 그 희망을 놓아버린 것이다. ● 레비의 자살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슬픈 사실 한 가지는 증언자는 결코 제삼자가 되기를 원치 않는다는 것이다. 레비는 "꼭 살아남아 우리가 목격하고 참아낸 일들을 정확하게 이야기해야 한다는 의지가 생존에 도움을 주었다"(프리모 레비, 『이것이 인간인가』, 이현경 옮김 (돌베개, 2007), 307쪽.)고 말했다. 그런 그가 어느 순간 자신이 증언자가 아닌 예술가의 목소리에 매료되고 있으며 증언하기 보다는 글쓰기에 집착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것은 자신의 존재 이유를 박탈할 만큼 두려운 것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글쓰기가 그를 인도해가는 소설(non-fiction)이라는 장르는 지금까지의 모든 증언들을 무화시킬 수 있는 치명적인 허구의 예술이 아니던가? ● 그리하여 문제는 다시 예술에게로 넘어간다. 문학이 되었든, 음악이 되었든, 아니면 그림이 되었든 예술은 증언과 동일한 선상에 놓일 수 없다. 그리고 예술의 목소리가 아름다움이라는 심미적 형식을 취하게 되면 될수록, 비탄과 공포의 목소리는 현실적인 힘을 잃어갈 수밖에 없다.

조해준_미군과 아버지-초상_종이에 연필 드로잉_48×32cm_2009~13

2. 이야기 수집가로서의 예술가 ● 조해준의 작업이 갖는 독특성 중 한 가지는 섣불리 증언이 되고자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의 작업들은 증언에 대해 다루고 있지만, 그것은 차라리 이야기 수집가의 멈출 수 없는 수집벽에 가깝다. 조해준은 "독일로 이주하면서 내 자신이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주목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들의 개인적인 경험과 기억을 정리해서 아버지에게 전달하면서 일종의 '이야기 수집꾼'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2013년 9월 14일 조해준과의 인터뷰.)고 말한다. 그 자신이 독특한 희귀 서적들의 수집가였던 벤야민의 말처럼, 수집가의 진정한 정열은 자신의 엄선된 취향과 선별이 "구세계를 새롭게 탄생시키고자"(발터 벤야민, 『문예 비평과 이론』, 이태동 옮김, (문예출판사, 1997), 73쪽.)하는 열망과 관계된다. 수집이란 과거의 물건들에 다시금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들의 목록을 새롭게 구성함으로써 옛것을 현재의 것으로 전유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야기 수집가로서의 조해준의 작업은 스스로 증언자가 되기보다는 증언자들의 이야기를 모으고 기록하고 이미지화하는 감식가가 되려고 한다. 다시 말해, 자신이 선별해 낸 이야기들 너머에서, 그것들의 목록 속에서, 자신의 새로운 발견을 보여주려 한다. ● 처음, 이야기의 수집은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세대 간의 간극을 좁혀보고자 하는 대화의 시도에서 비롯되었다. 어린 시절의 기억에서 아버지는 반항과 애정이라는 모순적 감정의 대상이었으며, 이런 점에서 대화는 어린 시절의 상처를 공개하고 치유하는 과정이면서 서로에게 닫혔던 마음을 열어놓는 화해의 시도였다. 그러나 곧 그의 방향은 자신의 기억이 미치지 않는 더 먼 과거로, 아버지의 개인사와 가족사를 이해하는 것으로 옮겨가게 된다. 아버지의 인생을 이해하는 것, 그것은 우리 세대가 경험하지 못한 역사의 저편이면서 동시에 나의 존재가 시작되어 나온 뿌리를 캐내는 일이다. 아버지와의 구술 드로잉이라는 형식을 취한 2002년부터의 공동 작업들은 그리하여 일제 식민통치 하에서 겪어야 했던 가족의 아픔을 거쳐서 한국전쟁 당시의 피난민 시절과, 예술가의 길을 포기하고 미술교사가 되었던 일, 교육자로서의 소소한 자긍심과 회환들을 담아내게 된다.

조해준_북조선: 북한 밖에서 비추어 본 풍경_ 종이에 연필 드로잉, 나무, 아크릴_120×290×40cm_2011_부분

만일 조해준의 작업이 이러한 가족사의 수집에만 만족했다면 그것은 굴곡진 한국 근대사의 한 단편을 드러냄으로써 그 속에서 부침을 거듭했던 한 가족의 연대기를 보여주는 것으로 멈췄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여기에서 비로소 본격적인 수집의 매력에 사로잡히게 되었으며, 본격적인 이야기의 목록들을 작성하고 펼쳐내기 시작한다. 레비는 자신도 모르게 증언에서 예술로 옮겨갔지만, 조해준은 그와 반대의 이유에서 동일한 길을, 즉 증언에 대한 매료 때문에 예술의 길을 펼쳐나간다. 그리고 자신만의 수집 원칙들을 세공해가기 시작한다. 그의 수집 목록들을 열거해보면, 「놀라운 아버지 -구술 드로잉 시리즈」(2005)에서 본격적으로 확장되어 나가기 시작한 이야기의 가지들은 「불가도이치: 독일 밖에서 비추어 본 풍경」(2009~2010), 「북조선: 북한 밖에서 비추어 본 풍경」(2011), 「정읍: 일제강점하의 식민통치 시기부터 한국전쟁까지」(2011~ )로 이어진다. 우리는 여기서 조해준이라는 수집가의 선별 원칙이 한 개인의 경험과 인식을 다른 개인들의 경험과 인식과 맞닥트리게 함으로써, 그리고 받아쓰고 묘사하게 함으로써 전쟁과 분단, 이데올로기라는 역사의 거대한 흐름과 조우하게 만드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은 단순히 대한민국이라는 한 나라에만 국한되는 것도 아니고 특정한 역사적 사건을 경험한 특정 세대에만 속한 것도 아닌, 보다 큰 인간에 대한 조망, 보다 큰 세계의 역사에 대한 관찰을 향한다. ● 랑시에르는 『문학의 정치』에서 "역사의 무명인은 역사인식에 대한 몇몇 개념들이 허울에 불과하다는 것을 명확하게 표현한다. 이들은 너무나 자주 기념한 나머지 신화가 된 역사의 영웅들이 아니다. 이들은 개인적인 운명 속에서 그 시대를 현시하는 사람들이다"(자크 랑시에르, 『문학의 정치』, 유재홍 옮김 (인간사랑, 2009), 300쪽.)라고 말한 바 있다. 조해준의 작업은 역사에 대한 반영인 보통의 개인을 주목한다. 그들은 증언자가 되기에는 어쩌면 너무나 평범한 사람들이고 고귀한 투쟁을 예감하기 보다는 비루한 삶에 더 바짝 다가선 사람들이다. 개인의 이야기는 역사(대문자 역사)(불어에서 'la histoire'는 이야기와 역사라는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라는 거대한 폭풍의 한 부분에 속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별성과 특수성의 역사이다. 이런 점에서 개인의 이야기는 역사에 대한 객관적 증언이 되기에는 경험과 이해의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조해준_북조선: 북한 밖에서 비추어 본 풍경_ 종이에 연필 드로잉, 나무, 아크릴_120×290×40cm_2011_부분

그러나 바로 이 한계가 조해준이라는 수집가를 매료시킨 열정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무명인의 삶에는 역사가들이 증명할 수 없고 정치학자들이 주목하려 하지 않는 예술의 원리, 아리스토텔레스가 '개연성과 필연성의 법칙'이라 명명했으며, 벤야민은 '사적 유물론'이라고 불렀던 그런 살(chair)의 무거움, 욕망과 실존의 드라마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플라톤이 화가에게 영감(靈感)을 박탈하고 시인을 추방했을 때, 거기에는 어쩌면 예술에 대한 가장 적확한 이해가 들어있는지도 모른다. 예술은 이념이나 진리에 봉사하기에는 지나치게 반항적이고 게으르며, 물질적인 생의 조건에 지나치게 얽매여있다는 점을 말이다. 그러나 동일한 그 이유 때문에 예술은 역사나 정치의 도구가 되기를 거부할 수 있으며, 철학과 거리를 둘 수 있고 스스로 자기 자신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이야기 수집가로서의 예술가가 자신의 목록들로 모아들이는 것들은 역사의 증언이기 이전에 삶에 대한 증언이 될 수밖에 없는 이야기들, "능동적인 삶들과 미천한 삶들 사이의 차이를 폐기한"(자크 랑시에르, 위의 책, 307쪽.)이야기들일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 한 예로, 한국 근대사에 드리운 식민지 시기의 치유되지 못한 상처는 이데올로기에 대한 갈등을 낳았고, 오늘날까지도 대한민국 현대사의 가장 아픈 부분으로 자리하고 있다. 역사가 전쟁과 폭력이라는 칼바람으로 거세지면 누군가는 재빨리 그 폭풍에 몸을 싣고 앞자리를 차지하고, 누군가는 폭풍을 막기 위해 온 몸으로 저항한다. 그러나 역사의 흐름에서 한 번도 자기 목소리를 가질 수 없었던 대다수 무명인들은 바짝 몸을 낮추어 폭풍을 견디어낸다. 시인 김수영이 노래한 것처럼 풀들은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흔들리며 눕고, 동쪽이든 서쪽이든, 남이든 북이든 풀들이 누웠던 자리는 지워지지 않는 흔적으로 남는다. 그래서 동쪽으로 누웠던 풀들과 서쪽으로 누웠던 풀들 사이에는 서로 다른 상처와 경험이 자라난다. 조● 해준의 구술 드로잉 시리즈들은 그렇게 풀들이 누었던 자리를 최대한 보존하려는 이야기 수집가의 목소리를 취하고 있다. 그리고 이야기와 이야기의 조우 속에서, 증언과 증언의 중첩 속에서 그것 너머의 아직 가닿지 못한 어떤 대화를 요청한다. 이승만의 반공주의 구호와 박정희 정권의 경제개발 총력전을 경험했던 세대에게 생존을 위한 단결보다 자유와 민주주의의 가치를 우선시했던 이후 세대와의 만남을 주선한 것은 이에 대한 한 가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독재정권의 타도를 외치면서 민주화를 열망했던 작가 8명의 인터뷰를 받아쓰는 아버지에게 젊은 세대의 경험과 목소리는 자신이 지녀온 신념을 검토해 나가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간접적인 목소리가 됨으로써 자신의 경험 바깥으로 나아가는 문을 열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조해준이 교차시키는 각각의 시선과 이야기들은 그리하여 기억 속에 자리 잡은 한 개인의 일화이지만 계속되는 대화 속에서, 계속되는 만남 속에서, 한 세대를 넘어서는 역사와 역사 너머의 인간에 대한 보다 더 큰 그림이 되고자 한다.

조해준_북조선: 북한 밖에서 비추어 본 풍경_종이에 연필 드로잉_27×39cm_2011

3. 딜레마와 변주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 수집가로서의 예술가에게는 한 가지 딜레마가 있다. 자신이 수집한 이야기들에 자신의 서명을 넣을 수 없다는 점이다. 게다가 수집된 이야기들은 그것이 이미 전술(前述)된 것들이라는 점에서 과거의 시간에 속한 것들이다. 그래서 이야기 수집가로서의 예술가를 고민에 빠뜨리는 중대한 문제는 작가의 위치와 역할에 대한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오늘날 작가라 불릴 수 있는 것에 대한 유일한 확신은 무엇일까? 뒤샹 이후 생산자로서의 작가는 종말을 고했으며, 서명자로서의 작가 역시 시대적으로 유의미한 발견과 차이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단지 자기만족이나 자기기만으로 끝나버릴 위험을 안고 있다. 그렇다면 예술 일반에 대한 논의는 논외로 치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자리를 내어주는 작가에게 있어 자기 자신에 대한 긍정은 어떻게 확신될 수 있을까? ● 일련의 구술 드로잉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조해준은 텍스트 기술과 이미지 생산의 그 어떤 것도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는다. 인터뷰의 내용은 각 경험의 주체들인 타인들에게 속한 것이고, 그것을 문자화하고 이미지화 하는 작업 또한 대리-재현되고 있다. 게다가 설치작품들인 「기념수」(2003)와 「낙선작」(2007)에 이르면 작가만의 고유한 스타일이나 독창성을 식별할 수 있는 표지는 완전히 다른 사람(아버지 조동환)에게로 넘어가서 우리는 작가 조해준의 작품들이 아닌 다른 이름의, 무명인에 가까운 다른 작가들의 작품들을 접하게 된다. ● 어쩌면 바로 이 시점에서부터 조해준은 작가라는 위치설정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작가의 사라짐이 강도를 더해 가면 갈수록 찾아드는 정체성에 대한 불안과 함께 그것에서 발견한 새로운 희열이 기존 방향과는 다른 작업들로 그를 유도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그가 시도한 두 가지 작업들은 수집가이면서 예술가였던 발터 벤야민의 시도를 떠올리게 만든다. 파리에서의 망명시절에 그를 알게 된 한나 아렌트에 따르면 벤야민은 완전히 인용문으로만 구성된 작품을 쓰고자 하는 야심을 가지고 있었다. 수집가가 품을 수 있는 최고의 열정은 이렇듯 과거의 낡아빠진 조각들을 재배치하고 재조합함으로써 완전히 새로운 하나의 예술품을 만들어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러한 작업 속에서 수집가는 예술가의 경지에 오르게 된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벤야민 자신이 밝힌 것에 따르면 수집가는 자신의 높은 취향에 맞는 수집품을 찾을 수 없어서 스스로 작가가 되기도 한다. 이 경우 예술가란 기존의 예술품들이 만족스럽지 못하기 때문에 스스로 만들어 내고자 하는 수집가라고 해야 할 것이다.

조해준_아랍의 봄: 아랍 밖에서 비추어 본 풍경_ 2채널 다큐멘타리 필름, 칼라(00:35:00), 16점의 구술드로잉, 포스터, 모니터 2대, 7개 의자, 가변설치_2013

이와 비슷하게 작가의 위치설정에 대한 조해준의 탐색이 취하는 한 가지 방식은 작가의 사라짐을 의도적으로 극대화함으로써 수집가로서의 예술가가 되는 것이다. 그의 최근 작품들 중 하나는 40년 가까이 평택 미군기지 근방에서 미군들의 초상화를 그려온 또 다른 작가에게 아버지의 드로잉을 보여주고 실물 초상화처럼 그리게 하는 작업이다. 기억 속의 이미지를 끄집어내는 드로잉 작가와 그것을 40년이라는 경험의 무게 속에서 구체적으로 재현하려는 초상화 작가의 관계에서 조해준이라는 사람의 위치는 하나의 수집품이 다른 수집품과 만남으로써 만들어내는 새로운 이미지에 환호하는 그런 관찰자의 위치에 가깝다. 그는 매개하고 기획하는 자이기는 하지만 이 과정의 어떤 효과나 결과도 제어할 수 있는 위치를 가지지 않는다. 조해준은 이와 관련해 "사람들의 일생을 관통하는 어떤 연결의 순간을 통해서 무엇인가가 탄생된다. 그것은 우리가 익히 알거나 보고 들어온 것과는 다른 어떤 이상한 풍광을 만들어 낸다"(2013년 9월 14일 조해준과의 인터뷰.)고 밝힌바 있다. 이처럼 작가는 수집하고 이어붙이는 것에 열광적으로 탐닉함으로써 기존의 문맥과는 다른 새로운 빛을 던져줄 수 있는 예술가가 되기도 한다. ● 반면, 「사이의 풍경」(2012)과 「아랍의 봄」(2013) 같은 비디오 작업들에서 작가는 수집가의 위치를 벗어나 직접적인 접촉을 시도하고 내용이나 효과, 의도 등을 제시하는 직접적인 목소리가 되고자 한다. 경험과 단절된 허구의 이야기를 만들고 이미지의 재현이 아닌 연기의 방식을 취한 「사이의 풍경」은 작가 자신이 '영화'라는 분류를 제시한 것처럼, 레비가 역사에 대한 증언에서 소설가로 옮겨간 것처럼, 완전한 창작으로서의 이야기를 새롭게 만들어낸다. 「아랍의 봄」 역시 과거의 기억이 아닌 현재의 사건을 주제로 삼고 이 사건을 직접적으로 이해하고 해석하는 다양한 인물들의 인터뷰를 교차 편집의 형태로 담아냄으로써 기존의 수집가로서의 위치를 버리고 오늘 여기를 탐색하는 다큐멘터리를 시도한다. 두 작품 모두에서 우리는 작가가 침묵하기를 멈추고 이야기하는 자, 질문하는 자로 등장함으로써 수집하기를 멈추고 창작자로 등장하는 발견할 수 있다. ● 그러나 "누가 말하건 무슨 상관인가?"(사무엘 베케트의 말이다. 미셸 푸코가 「저자란 무엇인가?」라는 강연회에서 이 말을 인용하면서 강연을 시작해 새롭게 주목을 받았으며, 푸코의 이 말을 다시 조르조 아감벤이 「몸짓으로서의 저자」에서 인용하고 있다. 참고한 저서는 조르조 아감벤, 『세속화 예찬』, 김상운 옮김 (난장, 2010), 89쪽.) ● 여기에는 여전히 누가 말하건 무슨 상관인가라고 말하는 누군가가 있다. 말하기를 멈출 수 없는 사람, 글쓰기를 멈출 수 없는 사람들이 우리 곁에 존재하는 한 수집가이건 예술가이건 우리는 그들과의 대화를 계속할 것이고 그 가운데 우리가 꾸는 꿈, 보다 더 자유로운 역사를 위해 변화하고 움직이고 흐름에 저항하고 합류하면서 나아갈 것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이야기를 결코 멈추지 않는 것이다. ■ 이은정

Vol.20131128b | 조해준展 / JOHAEJUN / 曺海準 / installation.draw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