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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3_1116_토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6:30pm
공아트스페이스 GONG ART SPACE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8-21번지 3층 Tel. +82.2.730.1144/735.9938 www.gongartspace.com
강현선 이중도시 Dual City : 욕심나는 상실, 탐나는 아픔, 그 이중적인 이중성 ● 1. 아파트 키드의 생애: 파크에서, 파크로 둘러싸인, 파킹된 삶. "파크라이프를 습관적으로 엿보는 사람에게 자신감이란 선택사항"로 시작하는 블러Blur의 노래 "Parklife"는 강현선의 이번 전시에 꽤나 접근성 좋은 진입로가 되어준다. 90년대 영국의 장기불황으로 인해 넘쳐나는 청년실업자와 그들의 무료한 일상을 지칭하는 말인 파크라이프가 강현선의 작품 "Park Life"를 통해 현재 한국 사회상과 특정 아파트 브랜드가 연상시키는 이미지와 만나면 또 다른 음색의 커다란 공명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강현선의 전시가 소환하는 대표적 이미지는 기준이 마련되고 물질적으로는 살만한, 그러나 살맛은 안 나는 획일화된 일상으로 대표되는 아파트 키드라는 삶이다. ● 다른 사람, 다른 것들에 자신을 비교하고 비춰볼 때만 자신이 어떻게 다른지 알 수 있는, 자기정체성이란 자신감과 더불어 분양외 옵션인 아파트 키드는 공감이라는 키워드로 작품의 이중적 의미를 찾아내고 이를 몸으로 체화하는 것이다. 바로 이럴 때 작품 속 I’Park는 주거공간으로서의 파크 외에도 다른 유사한 파크들에 둘러싸인 몰개성적인 개인을 뜻하기도 하며, 부재하는 목적어를 기다리는 주어와 동사로 이루어진 미완성 문장인 "나는 무엇을 파크하는가 I Park What?"까지 아우르는 다층적 의미를 띄게 된다. ● 비디오 영상에 담긴 너무 규칙적이라 반감마저 생기는 동일한 형태의 창속을 엿보고 있자면 언뜻 달라 보이는 인물들이 사실은 몇 가지 같은 동작을 시차를 두고 반복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게 된다. "Rear Window" 라는 작업 속 창 하나 하나가 알고 보면 동일한 사건의 다른 시점을 다른 창을 통해 상영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습관적 엿보기꾼만 이런 디테일을 관찰할 수 있을 것이다. 언뜻 보면 지나치고 말, 시선을 반사시키는 건축물의 매끈한 파사드에도 굴하지 않고 이를 집요하게 응시하는 사람에게 이런 창들은 일종의 거울 같은 자기 반영의 공간이 되어 주는 셈이다.
2. 상태state가 되는 공간space - "이중도시"속 인물들은 흔적을 남기지 않고는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없는 모양이다. "74 hours"와 "110 hours"속의 무심히 서있는 단정한 복장의 남자 옆에는 납작하게 주저앉은, 바닥에 널부러진 평면적 신체들이 발견된다. 어쩌면 자신의 평면적 일상을 이 납작하게 짓눌린 이 종이인형 같은 형상으로 마치 허물 벗듯이 벗어버리고 이 남자는 마침내 깊이를, 입체성을 획득한 것은 아닐까. 아파트 키드의 이중적인 이중성, 즉 엿보는 것에 지쳐 자신도 들키고 싶은 비밀을 만들어내어 응시를 받는 대상이 되고픈 열망의 발현으로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이처럼 "이중도시"에서는 "Prince of Persia"속의 전사 이미지와 도시 건축물의 사실주의적 병치에서 나타나듯이 다른 시공간의 잔상이 현실 속에 너무나 태연하게 공존한다. 데리다는 텍스트 내부에 자리하는 여백과 텅 빈 공간속에서 의미들이 "재표지 될 수 있으며 이것이 성사될 때에 우리는 주지주의적 비평의 한계선을 긋게 되는 셈이다"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강현선의 "Prince of Persia" 작품은 어떠한 맥락이나 캐릭터화 없이 감상자가 스스로 의미와 시공간을 재-표지 하도록 해준다.
3. 환승중인 이중적 공간으로서의 예술, 두 번 갈아타는 이중적 시선 - 작품에 의해 한 공간 안에 소집된 사건과 시대상, 문화적 맥락들은 감상자의 개인적 상태와 만나 또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게 된다. 공고히 서있어야 할 아파트의 축대가 실상 잔잔하게 그러나 선연히 흐르는 물결임을 알아보는 순간 강현선의 작품은 온순한 전복성 또는 살짝만 손댄, 티 안 나는 세련된 위반을 표현한다. 물론 이런 이중성은 습관적 엿보기꾼의 쪼개지고 훼손된 응시가 표면에 흠집을 낼 때만 가능한 것이다. 이런 제한적 접근성은 아파트 키드의 삶이란 것 자체가, 엿보기꾼의 취미를 지속시키는 것 자체가 일종의 뚜렷한 사회경제적 전제조건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 지난 세기말 브릿팝이나 인디음악등 특정한 문화상품을 소비할만한 시간적(학생이라는 신분) 여유 또는 문화적 취향이 있었던 사람만 파크라이프라는 단어의 다층적 의미를 다 느낄 수 있을 테니까. "이중도시"는 이런 사람의 체화된 응시embodied gaze와 몸을 두 번 갈아 타고 공간space이란 출발역에서 개인적 상태state라는 종착역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 진주영
Vol.20131125i | 강현선展 / KANGHYUNSEON / 姜泫先 / mixed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