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과 밥 Water and steamed rice

이해민선展 / LEEHAIMINSUN / 이해旼宣 / drawing.painting.installation   2013_1123 ▶ 2013_1205 / 월요일 휴관

이해민선_동네 열 바퀴를 돌면 열 개의 풍경이 있다_가변설치_2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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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민선 홈페이지_blog.naver.com/moolbaab

초대일시 / 2013_1123_토요일_05:00om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월요일 휴관

아마도예술공간 서울 용산구 한남동 683-31번지 Tel. +82.2.790.1178 amadoart.org

섬세한 동맹 ● 끈으로 칭칭 감겨있는 각목과 생화, 앙상한 나뭇가지와 부러진 나무젓가락, 누렇게 시들어 버린 잎사귀가 간신히 묶여있는 초록빛깔 플라스틱 빨대. 이해민선의 근작은 일상에서 지나치기 쉬운 세밀한 풍경들에서 시작한다. 그가 작품을 통해 포착해내는 풍경은 익히 우리가 알고 있는 그것과 사뭇 다른 범주를 향해 있다. 아파트 발코니의 미니정원과 수조에서부터 길가의 화단, 골목 주차장과 대문 앞을 지키는 화분 등이 그것이다. 좀 더 면밀히 살펴보면, 작가의 시선은 본래의 맥락에서 벗어나 새로운 환경에 터를 잡거나 주어진 환경 안에서 이질적인 존재들과 예기치 않은 만남을 덤덤하게 받아들이면서 나름의 생존방식을 터득해나가고 있는 자연의 모습에 닿아있음을 알 수 있다. ● 풍경이라 하기에는 너무나도 작고 미약한 것들, 이질적인 대상과의 인위적인 구성과 조합 안에 자연과 사물이 맞물려 공존하는 상황. 이해민선의 작업은 외관상 동식물과 기계, 자연과 사물이 혼합된 형태로 나타나는 특징으로 인해 자연과 인공, 자연과 문명의 대치 구도를 표현한 것으로 읽히기 쉽다. 하지만 그의 작업은 흥미롭게도 자연과 인공처럼 거대한 개념이 상충되어 나타난 상황 자체보다는, 두 개념이 공존하는 가운데 예기치 않게 도출되는 생명성의 문제, 혹은 서로 다른 성질의 것들이 적응해가며 하나의 형태 안에 균형을 이루는 상황에 좀 더 초점이 맞춰져있다. '물과 밥'이라고 명명된 이번 전시의 제목 역시 이러한 작가의 관심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것은 물과 쌀이 지닌 각각의 물질성보다 두 재료로 밥을 짓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외부 요인의 개입 가능성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두 재료 간의 상호작용을 염두에 둔 상징적인 제목이라 하겠다. 때문에 그의 작업에서는 대상의 선택문제 만큼이나 그것이 결합된 모습이나 그로 인해 탄생하는 독특한 형태와 특징들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해민선_동네 열 바퀴를 돌면 열 개의 풍경이 있다_가변설치_2012~3_부분

이를테면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는 「직립식물」 연작에서 단단한 나무젓가락을 지지대로 하여 가녀린 나뭇가지가 힘없이 묶여 있거나, 잎사귀가 시들어 말라버린 나무줄기가 선명한 초록색의 빨대에 끈으로 총총 감겨져 있는 모습은 자연물과 인공물의 대립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인위적으로 가공된 나무젓가락은 살아있는 나무를 지지하면서 나무가 자라는 방향을 제어하거나 그것의 생명을 효과적으로 지속시키는 재료가 되고, 총천연색으로 위장한 비닐빨대는 나뭇잎보다 더 새파랗고 싱싱한 색깔과 자태로 힘없이 늘어진 줄기를 받들고 있는 형국이다. 언뜻 보면 부자연스러운 조합일지 모르나, 태생적 기원이 다른 두 대상은 어쩔 수 없이 맺은 동맹관계 안에서 서로의 성질을 받아들이고 적응해가면서 나름의 균형을 찾은 모습이다.

이해민선_연립식물_가변설치_2013
이해민선_팔꿈치를 주운 나무_가변설치_2013_부분

이질적인 대상이 결합하고 화해하는 과정을 거쳐 하나의 독특한 형태와 풍경을 만들어 나가는 것은 작가의 기존 작업에서도 잘 드러난 특징 중 하나다. 그의 작업에서는 아파트 도면이 해체, 결합되면서 움직이는 로봇이나 동물이 되고(「로봇 드로잉」과 「덜 죽은 자들」연작, 2003-2011), 어항 안에 생명유지를 위한 갖가지 설비들이 모여 하나의 풍경을 이루거나(「A Scene Package」연작, 2008), 꽃과 잡초를 비닐이나 끈으로 동여맨 각목 뭉치가 정체와 용도를 알 수 없는 기이한 생명체로 등장하고(「직립식물」연작, 2010), 기계를 작동시키는 힘의 세기와 통제방식이 소림무술 속의 다양한 동작과 결합되어 나타난다(「기계와 기예」연작, 2009). 흥미로운 것은 이렇게 이질적인 대상들이 사물 지닌 형태나 힘의 원리에 따라 새로운 형상으로 결합되는 가운데 움직임이나 에너지, 인간적인 면모 등과 같은 생명성을 반영하는 요소들이 작품 안에서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가느다란 직선이 교차하는 건물의 설계도면은 털이 휘날리는 강아지가 되고, 동력분무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살은 무술가의 필살기로 변화하는가 하면, 살아있는 식물과 가공된 식물이 접목된 정체불명의 생물체가 앉거나 서있는 모습이 그림 속에 등장한다. 여기서 소위 생명성이라는 것은 생명 그 자체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이 지닐 법한 속성들, 예를 들어 움직임이나 사라는 것, 반응하는 것 등의 속성을 가리킨다. 이러한 생명성은 이질적인 것이 완벽히 서로에게 적응하여 하나의 생명처럼 기능하는 조건을 담보로 한다. 설치 작업인 「팔꿈치를 주운 나무」(2013)는 길을 오가다 우연히 발견하게 된 식물의 잘려진 가지를 주워 만든 일종의 오브제 형태의 드로잉이라고 볼 수 있다. 각목과 식물을 검은 색 끈으로 묶어서 이들이 서로의 형질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을 기괴한 생명체의 형상을 빌어 표현했던 과거 드로잉 작업의 연장선이라고 볼 수 있다. 다양한 굵기와 형태를 지닌 나뭇가지에 맞춰 작가는 플라스틱 마개나 빨대를 끼워 넣거나 고무줄, 파란색 비닐을 돌돌 감아낸다. 풀칠이나 접착제 없이 이어 붙여진 대상들은 고유의 성질을 그대로 유지한 채 표면의 질감이나 모양에 따라 쉽게 흩어지지 않을 서로 간의 접합점을 찾아 적절한 자리를 잡아간다. 지극히 평범하고 미미한 대상의 결합이지만, 상호의존적인 관계 아래 놓인 재료들은 저마다의 완벽한 조화와 균형 속에 안정을 찾은 모습이다. 이러한 결합체는 가느다랗게나마 숨이 붙어 있는 자연물과 인공재료가 만나 탄생했기에, 완전히 살아있지도 죽어있지도 않는 상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맴도는 존재가 된다. 작가의 네 번째 개인전 제목이자 작품의 제목이었던 '덜 죽은 자들'은 바로 이러한 문제에 대한 작가의 사유가 십분 반영된 것이기도 하다.

이해민선_직립식물 : 오래된 쌍둥이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2×162cm_2013
이해민선_직립식물 : 겨울_종이에 아크릴채색_73×91cm_2013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이질적인 대상이 서로의 형질에 적응해가는 유기적 결합구조 안에서 하나의 생명처럼 생존해가는 모습을 독립된 사물의 형태로 제시했던 것에 머물지 않고, 이를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 주어진 환경에 적응해가는 인간의 모습으로 확장해나가고 있다. 아마도 여기에는 그 간에 몇 차례에 걸쳐 이뤄진 짧은 해외 체류의 경험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듯하다. 독일 남서부에 위치한 슈투트가르트와 호주 시드니에서 머물렀던 4개월간의 경험은 평소 주변 환경에 대한 관심이 남다른 작가에게 중요한 자극이 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인터뷰를 통해서 작가의 눈과 사유는 그 지역에 자리한 수목의 종류와 형태에 머물러 있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방인으로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가 만만치 않은 상황, 특히 슈투트가르트에서 머문 한 달간의 시간 동안 작가의 눈길을 끈 것은 작가가 머문 마을 주민들의 무관심한 표정과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그들의 얼굴, 그리고 유구한 시간을 거쳐 온 숲의 고목들이다. 유독 노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마을에 머물다보니 낯설음은 배가 되었을 테고, 하루 빨리 도시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산책을 통해 주변의 환경을 최대한 면밀히 관찰하고 그에 익숙해지는 방법이 작가에게는 최선이었을 것이다. 숲 속 구릉의 경사면을 따라 굽어 자란 나무, 나무의 거친 표면, 숲의 주인처럼 하루의 많은 시간을 벤치에서 보내는 노인들, 그들의 굽은 등과 주름으로 가득한 얼굴은 작가가 가장 가까이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풍경이었고, 이러한 자극들은 자연스레 작품으로 옮겨져 작가의 근작을 이루게 된다. 작가는 커다란 종이를 야외로 가지고 나가 주변에 보이는 나무를 감싸고 그것의 표면을 연필로 긁어 옮겨 나이든 인물의 표정을 담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이 때 그림 속 인물은 특정한 인물을 모델로 한 것 아니며, 작가가 나무의 표면을 연필로 떠내는 압력에 의해 인물이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이해민선_나와 말하지 않은 사람_나무에 프로타쥬_30×30cm_2013

이렇게 프로타주 기법을 통해 인물의 초상을 담은 「나무」연작, 일명 '노인'시리즈는 자연물과 인공물이 결합된 사물로 제시하는 차원을 넘어, 새로운 환경인 자연과 그 안에서 적응해하는 인간의 모습을 적극적인 행위의 차원으로 발전시킨 결과로 볼 수 있다. 최종 결과물에 있어서도 「직립식물」연작이나 「팔꿈치를 주운 나무」가 생명성을 지닌 하나의 유기체적인 사물의 형상을 이뤄냈듯이, 작가가 환경에 직접 부딪혀가며 적응해가는 과정이 「나무」연작에서는 생명을 지닌 노인의 초상으로 직접 제시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작가에게 생명성이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대상이 다른 대상과 맺는 다양한 형태의 관계 속에서 저마다의 특성을 유지한 채 서로 균형을 맞춰가며 적응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발현되는 일종의 살아있는 현상이며, 대상 간 관계도 자연과 문명, 인간과 사물, 인간과 환경의 영역으로 무한 확장될 수 있는 것이다. 이밖에도 습관처럼 반복되는 산책을 통해 주변풍경에 대한 단상을 드로잉으로 기록한 작품 「동네 열 바퀴」에서도 이러한 작가적 관심은 테이블의 높낮이에 따라 단일 혹은 중첩된 형태로 다양하게 전시되는 풍경 속에 녹아있다. ● 이처럼 이해민선은 일상에 존재하는 가장 평범하고 연약한 것들에 대한 관심, 그들이 서로의 특징을 유지, 존중하면서 맺고 있는 상호의존적인 관계, 그러한 관계의 메커니즘 속에 발아되는 생태적 현상에 관한 문제를 섬세하고 예리한 시각으로 포착해내고 있다. 가장 연약하고 평범한 존재들이 사회와의 맺는 다양한 형태의 관계 속에서 서로를 존중하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모습. 아마도 작가는 일상의 주변 곳곳에 숨어 있는 작은 풍경들 안에서 발견한 삶의 모습을 섬세하고 담백한 필치로 묵묵히 기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 황정인

Vol.20131123d | 이해민선展 / LEEHAIMINSUN / 이해旼宣 / drawing.painting.installation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