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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고운 블로그_goun83.tistory.com
초대일시 / 2013_1120_수요일_06:00pm
본 전시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시행중인 『Emerging Artists: 신진작가 전시지원 프로그램』의 선정작가 전시입니다.
관람시간 / 11:00am~06:00pm
갤러리 도스 GALLERY DOS 서울 종로구 팔판동 115-52번지 Tel. +82.2.737.4678 www.gallerydos.com
유령들의 귀환 ● 11월, 기온이 뚝 떨어지면서 차가운 바람이 분다. 그렇지 않아도 몸이 으슬으슬한데, 폭력과 죽음을 기묘하게 다루고 있는 이미지는 사뭇 무겁고 진지한 기운을 내뿜고 있다.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그림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 말투는 친절하지도 달콤하지도 않다. 그림은 마치 햄릿의 죽은 아버지의 유령처럼 신비롭고 비장하게 말한다. 어떤 이는 이런 건 자신의 취향이 아니라며 쉽게 등을 돌릴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유령은 그 자리에 남아서 당신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유령이 돌아오는 것은 우리에게 할 말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는 적절한 애도가 이루어지기 전에는 결코 떠나지 않을 것이다. ● 서고운의 작품은 일상적인 장면을 재현하지 않으며, 신화적이고 상징적인 알레고리들이 멋진 색채와 함께 얽혀있다. 충분히 식별할 수 있는 이미지들이 파편처럼 조합되어 있기 때문에, 관람자는 그것들을 연결하여 어떤 서사를 구성해보려고 노력하지만 그럴 듯하게 추리하기란 쉽지가 않다. 다행히도 작가는 "이게 도대체 뭘 그린 거죠?" 라는 다소 무례하고 유치한 질문을 기꺼이 환영한다. 하지만 작가의 설명조차도 속 시원한 해답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집트 사람들의 비밀은 이집트 사람 자신에게도 비밀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작가는 자신이 왜 이런 이미지를 구상했는지를 짐작해볼 수 있는 경험을 들려줄 수는 있겠지만, 그런 사연이 그림의 신비를 모두 밝혀주진 않는다. 그림 속에 나타난 알 수 없는 시공간과 충격적인 사건들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빠져들었던 토끼굴이라는 심연처럼, 관람자를 또 다른 세상으로 끌어들인다. 그 곳은 작가의 무의식이 만들어낸 내면의 공간이겠지만, 서고운이라는 한 개인 안에 닫힌 공간이 아니다. 그녀가 자신의 밑바닥에 감추어둔 해골이 어느 새 나와 함께 기도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에 대해 설명하지 못한다. 여기는 도대체 어디이며, 우리는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가.
서고운의 그림은 호, 불호가 분명히 나뉘는 스타일 같다. 어떤 이는 헤어나지 못할 정도로 푹 빠져들지만, 다른 이는 보자마자 이미지들이 기괴하다며 고개를 돌린다. 솔직히 나는, 오늘날 영화나 현대미술 작품들의 자극 수위를 생각해 보건데, 서고운의 작업이 그 정도까지의 거부 반응을 불러일으킨다는 걸 잘 이해할 수 없다. 여하튼 자신이 멜로 영화의 취향을 가져서 모든 액션이나 호러 장르의 영화라면 덮어놓고 무조건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과 액션이나 호러 영화 중에서 어떤 작품이 더 좋은 작품인지에 대하여 깊이 있게 대화할 수 있을까? 서고운이 작가로서 선택한 방향에 대해서 인정하면서, 이 방향에서는 무엇이 더 가치 있는 작업일까를 논의하는 것이 공회전과 같은 에너지의 낭비를 줄이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아직은 미술사의 계보학적인 추적을 통하여 기존의 어떤 사조, 어떤 작가와 비교하며 공통점과 차이점을 밝혀보는 분석의 작업을 보류한다. 물론 그녀의 작품 뒤로 예전에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작품들이 그림자처럼 겹쳐져 어른거리는 걸 감지한다. 그것을 원본성과 모방이라는 다소 고리타분한 관점에서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왜 굳이 오늘날 한국에서 살아가는 젊은 작가가 이러한 이미지에 매료되고 그것을 재생산하는가를 생각해보는 것이 더욱 흥미롭다고 여긴다. ● 작가에 대한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작품만 본다면, 「희생자들」이나 「위령의 날」처럼 이국적인 풍물들이 많이 등장했던 그녀의 예전 작업들은 제3세계 출신의 어느 작가가 고향의 문화를 반영한 그림이라고 여길 수 있다. 또한 「검은 거울이 있는 풍경」이나 「유폐된 공간에서」 와 같은 집단적 죽음의 현장은 언젠가 어디선가 누군가에게는 있는 그대로의 역사에 대한 재현물일 수 있다고 생각해본다. 그것은 작가의 무의식적 창작 행위가 만들어낸 가상적 시공간에 허구적 사건이지만, 작가에게는 자신에게는 현실보다 더욱 생생한 이미지였을 것이다. 허구적 진실성, 나는 바로 그 지점이 작가가 일종의 특유한 진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 작지만 단단한 발판이라고 생각한다. ● 서고운의 작가 노트를 넘겨보다가, 초현실주의자들에게는 초현실 자체가 바로 그들이 살아가는 현실보다도 더욱 진실되고 실재적인 현실이었음을 통찰력 있게 직시하는 짧은 구절을 찾아냈다. 그녀가 적어보낸 그 문장에는 일렬로 늘어선 한글 문자 사이에 알파벳으로 적힌 REAL 이라는 한 단어가 껴있었다. 그것을 리얼이라고 읽을지, 레알이라고 읽을지 별 상관도 없겠지만, 그리고 어쩌면 그것은 어떤 소리로도 읽을 수 없는 하나의 이미지로서의 REAL일지도 모르지만, 여하튼 그 문장은 한국어와 외국어라는 두 언어의 층위 사이에 불편하게 걸려있는 모양새, 오직 그렇게 불안정하게 걸쳐진 위상을 통해서만 가능한 방법으로, 초현실주의적인 그림이 지닌 진정성을 증언하려고 시도하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서고운 작가가 자신의 삶의 터전보다도 낯선 여행지의 강렬한 경험에서 작업의 영감을 얻는다는 인상을 받았고, 사실적인 역사보다는 전설이나 신화에 기반하고 있다고 느꼈다. 일상의 현실에 묶여있는 우리가 미지의 시공간으로 강렬하게 접속하는 것은 흥미롭지만, 나는 혹시나 작가가 지금, 여기에서 도피하며 다른 세상만을 동경하는 것은 아닌지에 살짝 의구심을 가졌었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 신작으로 등장하는 「마지막 대륙」을 보면서, 그녀가 창조하는 시공간은 여러 의미의 차원이 중첩되어 있으며, 그 중엔 우리가 지금, 여기라고 인식하는 차원이 당연히 포함되어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그 표현 방법은 알레고리로 이루어져있기 때문에, 관람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을 낳을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이 세상을 거부한 다른 세상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며, 직설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이 세상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고 보인다.
작가는 분명히 자신의 관심사를 유지해오고 있다. 진짜인지 아닌지 확증할 수 없는 기이한 현상들,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서 이것과 저것의 사이에서 탄생한 괴물들을 서고운은 꾸준히 다루어왔다. 작가는 스스로가 그것들에 매혹당해 있는 만큼, 그녀의 그림은 기이한 괴물이 되어서 보는 이를 매혹시키려고 한다. 그녀는 어둠 속에서 그저 야릇하고 어렴풋하게 느껴지는 것을 생생한 이미지로 만들어 우리 눈앞에 출몰시킨다. 이미지의 힘이란, 보는 이가 그것이 단지 이미지일 뿐이라는 것을 뻔히 알고 있더라도 여전히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그 심리적 에너지가 격렬한 폭발을 일으킬 때에는 기묘한 아름다움마이 뿜어져 나온다. 서고운은 이미지 자체가 지닌 그 힘을 믿으면서, 여러 이미지들이 화면으로 튀어나와 그들의 방식대로 떠들어대도록 허락하기 위해 애쓴다. 이미지들이 얽히며 만든 이야기가 설령 우리들의 일상적인 어법에 맞지 않더라도, 이미지가 스스로 말하고 있다는 느낌을 보존해주려는 의지를 놓치지 않는다. 그러니 굳이 내가 끼어들어서 그들의 이야기를 정리정돈하지 않겠다. 이미지가 스스로 말하도록 내버려두자. 나는 그것들이 꼭 전해야할 이야기가 있기 때문에 화폭 위로 돌아온 유령들이라고 믿는다. ■ 신혜성
사라진 모뉴먼트 전시를 준비하며 ● "그대들은 다 어둡고 조심스럽다. 인간이여, 누가 그대 심연의 밑바닥을 헤아렸으랴. 오, 바다여 누가 그대의 내밀한 풍요를 알고 있으랴. 그토록 지독하게 그대들은 비밀을 지킨다." (보들레르 『인간과 바다』) ● 내가 작업 앞에서 해야 할 것은 계속 의지를 갖고 지켜야 할 것이 남았는지 생각하고, 어떻게 하면 의지를 상실하지 않을지 고민하는 것이다. 그 고민은 큰 캔버스 앞에 서면 훨씬 더 큰 고백의 의미를 가지게 된다. 작업에의 의지는 엄청난 파괴력을 가지고 있는 연약한 존재이거나 혹은 아주 단단해서 구부러지지 않고 부러져버리는 것일 수도 있다. 나는 꾸준히 내 스스로에게 묻는다. 의지의 힘은 언제 어디에서부터 시작되는가? 그것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사라지는 것들을 붙잡을 수 있는가? 상실된 것들이, 발견과 경탄이, 혹은 곤혹스러움과 나약함이, 괴로움과 고통이 아름다울 수는 없을까? ● 진실한 아름다움은 늘 도처에 존재하고 나는 끊임없이 사물과 세계를 관찰한다. 그러나 파괴와 상실, 불안과 소멸의 위험이 함께 한다. 우리는 그 안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며 자신만의 신전을 만들며 방어하거나 그 신전을 무너뜨리고 스스로 장렬하게 전사한다. 우리는 매 순간 선택의 기로에 서 있고, 극단적으로 이분화 되어있는 질서의 틈에서 가까스로 벗어나보려 하지만 결국 깨닫는 것은 자신의 연약함이다. 우리는 이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 무엇을 남기고 무슨 말을 하고 또 무엇이 되기를 바라는가? ● 사라진 모뉴먼트는 사이성의 알레고리 전시에서 잠깐 언급되었던 죽은 기념물들(Dead Monuments)을 연결해주는 모티프이다. 모뉴먼트는 기념비적인 것 혹은 기념물을 의미하지만 소유지나 경계를 표시하기 위해 막대기나 기둥, 돌을 배치하는 의미로도 쓰인다. 분명 존재하고 있으나 쉽게 파괴되고 사라지는 많은 것들을 바라보며 나는 거대한 슬픔과 애도를 감출수가 없다. 그리고 또한 우리는 나약함의 도처에서 부조리와 상실을 받아들인다. 결국 앞서 말했던 그 의지는 이 무수한 모뉴먼트들 -속이 텅 비어버린, 의미가 사라진- 을 부숴뜨리고 경계에서 사라져가는 것들을 구출해야만 한다. 비록 스스로 장렬하게 전사한다해도 말이다. ■ 서고운
Vol.20131119h | 서고운展 / SEOGOUN / 徐고운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