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Member

김종준展 / KIMJONGJUN / 金宗俊 / painting   2013_1118 ▶ 2013_1130 / 일,공휴일 휴관

김종준_트로이 목마_스테인리스 스틸_가변크기_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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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공휴일 휴관

갤러리 숨 GALLERY SUM 전주시 완산구 우전로 225 삼성안과·이비인후과 1층 Tel. +82.63.220.0177 www.seyes.co.kr/gallerysum.php blog.naver.com/gallerysum

『Re-Member』전의 작업들은 2008년 숨겨진 한국사회의 속살을 드러내며 한국 독점자본주의 아이콘이 된 '행복한 눈물'로부터 시작되었다. 현실사회에서 '우리에게도 행복한 눈물이 있는가'라는 질문은 그 작품이 제작될 당시 지녔던 가치와 의미들이 과연 현재까지도 동일한 것인가에서 출발한다. ● 미술이 갖고 있는 대중적인 것들에 대한 관심은 오랜 역사를 아우르며 시대에 따라 다른 관점들을 표현해 왔다. 팝아트 작가들에게 주목할 만 한 건 세계대전 이후 급격히 달라진 사회에 대한 관점 변화였다. 그것은 특수한 당시 상황에서 일상과 사회를 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미학적으론 고급예술과 대중예술의 경계를 허물었다는 것, 형식의 틀을 깨려 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팝아트는 진보적이고 실험적이었다. 하지만 오늘날의 팝아트는 상업문화와 소비문화에 완전히 수렴되었고, 더 나아가 체제나 주도층의 취향이나 미각을 맞추기 위한 다양한 방식으로 꾸며진 상품의 각축장이 되어 버렸다. 앤디 워홀의 복제 이미지나 올덴버그가 모방한 기성품은 '예술품'이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오늘날 예술이라는 미명하에 확산되고 파생되어 대중적인 상품이라는 '괴물'이 된 것은 아닐까? 이러한 팝아트에 대한 상기는, 변화된 시대가 잉태한 예술에서 의미를 찾아내 '괴물'이 되는 것을 막고 다른 관점의 가치와도 기꺼이 공유할 수 있는 해석된 시각이 필요하다는 것을 환기시킨다.

김종준_이판사판 야단법석_세라믹_가변크기_2013

『Re-Member』전의 주된 이미지들은 만화를 있는 그대로 차용한 리히텐슈타인의 이미지를 재차용하였다. 하지만 글자를 의미 없이 형상화한 리히텐슈타인과는 달리, 다른 관점으로 본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적극적인 맥락 전환을 시도하였고 작품의 내용을 전복시켰다. 이는 제시된 언어의 의미를 통하여 미국 팝아트의 속성 중 하나인 '가벼움'과 '속물주의'에서 벗어나 삶의 진정한 시각을 회복하고, 대중매체가 쏟아내는 이미지들이 왜곡하는 이데올로기의 실체를 드러내고자 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상징적 기호로써 바코드와 훈민정음은 정보의 통제와 관리, 더 나아가 언어를 통하여 사상을 전파하고 개인의 의식까지 다국적으로 조작하려는 감시체계와 근대언어의 실체를, 도트의 달러는 자본주의와 상업문화 속 예술의 모습을 적시하고자 도입한 것이다. 또한, 팝아트 작가들이 상업적, 예술적 성공은 이룩했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한 미술품 소비의 대중화를 구현하기 위해, 오늘날 발전된 '복제기술'로 새로운 방식의 복제 이미지를 만들었다. ● 이것은 원본도 모사도 아니다. 이것은 재현이 아닌 새로운 생성이다. 이것은 완성도 미완성도 아니다. 이 이미지들은 더 이상 상품이기도 예술품이기도 원하지 않는다. 단지 소비문화 속 명품과 기술복제시대의 복제품에 대한 의미를 '새삼스럽게' 돌아보고자 했고, 대중에게 우리 시대의 현실을 담은 '사실'적인 '예술품'을 '주체'적으로 향유하고 소비할 기회를 주고자 했던 것이다.

김종준_참을 수 없는 사랑의 가벼움_스테인리스 스틸_가변크기_2013

『Re-Member』전의 또 다른 의미는 '자세히 보기'이다. '자세히 보기'는 '가치중립적'이고 '비사회적'인 미국 팝아트에 대한 비평적 관점에 영국을 포함한 기존 팝아트의 본질적 성과와 미학을 발전적으로 접근한 것이다. 또한, 기존의 몇몇 작가들에게 보이는 팝적 요소들에 대한 미학적 의미를 비판적 시각으로 표현함으로써 진정한 삶의 미술을 제안하려 한 것이다. ● 그래서 '자세히 보기'는 '미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한다. 이는 현대미술이 '무엇이 예술인가'에 대한 작품의 기준을 부정하고, 레디메이드나 개념예술처럼 '언제, 어떻게 예술이 되는가'라는 물음으로 전환함으로써 발생한 원죄 때문이다. 이것은 미술의 의미를 어렵게 만들고 대중을 소외시켰다. 그리고 팝아트는 오늘날 '시장 미술'까지 도달했다. 이러한 미술에 대한 산책은 서양근대미술의 성과와 동시대 미술이 도달한 다양한 지점들을 살펴보면서 과연 현실에서 미술은 무엇이고 언제 미술이 되는지에 대한, 즉 지금까지 미술이 제기한 것들이 이룩해낸 '사실'과 '현실'이 무엇인가에 대한 반추이다. 특히 팝아트에 대한 실험은 한국미술이 특정 미술의 아류가 되는 것을 거부하고, 자신의 고유한 언어로 동시대 미술에 동참하기 위한 지형을 탐색하는 시작점이 되었다. 이 같은 탐색은 미술에 대한 심층적 이해와 정리를 전제하지 않고서는 한국미술의 새로운 시작은 없다는 생각으로 연결된다.

김종준_Image Duplicator_캔버스에 피그먼트, 아크릴채색_70×58.5cm_2011

우리는 주체적으로 사고를 전환해야 한다. 단순한 발상의 전환이 아니라 존재와 생명, 시간, 공간, 생성, 소멸에 대한 이질적 사유가 요구된다. 온전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지금 일어나고 있는 삶의 의미를 생성해야 한다. 이것과 저것이 구별되지 않고, 상대되지 않을 때 비로소 삶의 중심이 되어 무궁한 변화에 호응한다. 그것이 바로 다른 척도에 의한 새로운 사유로 창조 되어지는 새로운 삶의 예술이다. 생명의 예술이다. 존재의 예술이다. ● 현실은 과잉으로 넘쳐난다. 과잉의 시대에 사는 우리는 웬만해선 만족하지 못한다. 이미지의 과잉, 언어의 과잉, 상품의 과잉, 소비의 과잉, 욕망의 과잉, 경쟁의 과잉, 논리의 과잉, 소리의 과잉 속에서 의미를 왜곡하는 현란한 기표들에, 소리만 요란한 잡음들에 매일같이 혼란해하고 우리는 점점 허상으로 인해 가벼워지고 있다. 계속 과잉으로 달려갈 것인가. 만족은 불만족에서 출발하고 욕망으로 달려간다. 우리는 침묵으로부터 오는 고요한 속삭임을 잃어버렸다. ●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환영과 실상에 대한 깨달음이다. 다양한 삶과 생명에 대한 내면의 성찰과 통찰이다. 우리의 내면이 밖으로 나가 현실을 헤맨 나머지 안으로 들어오는 길을 잃어버리기 전에. ■ 김종준

Vol.20131118e | 김종준展 / KIMJONGJUN / 金宗俊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