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090827a | 강승희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3_1016_수요일_06:00pm
홍익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 청구展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요일 휴관
아트스페이스 에이치 ARTSPACE H 서울 종로구 원서동 157-1번지 Tel. +82.2.766.5000 www.artspaceh.com
예술가는 창작자인가? 당연한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오랫동안 고민해왔던 부분이 아닐 수 없다. 현대미술에서 거론되는 대다수 작가들은 물론이고 시간을 거슬러 보아도 이 카타고리 안에 넣을 예술가들이 떠오르지 않는다. 모나리자로 유명한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자연에서 미를 발견하고 시각화하였을 뿐이다. 모더니스트 마네의 경우도 친구 보들레르에게는 상상력이 빈곤한 작가였다. 하지만 보들레르는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 마네에게 부족했던 상상력은 사실 마네에게는 필요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중요한 것은 마네가 확장해 놓은 세계이다. 최소한 그의 세계에서는 예술가들의 중요한 가치로 평가되었던 상상력은 대접을 받지 못한다고 할 수 있다.
예술은 시대를 반영한다. 한 시대를 풍미한 예술들은 그 시대의 사회상을 비추는 거울이 되곤 했다. 하지만 예술가들의 목적이 사회상이나 반영하는 소극적인 것일까? 예술이 시대를 반영할 수 있는 것은 예술이 그 사회에 대한 예술적 대응이기 때문이다. 각자의 문제의식 속에서 자신만의 어법으로 대응한 결과 시대적 가치와 지향, 시대상 등을 반영한 결과물로 남게 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결과물은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것이다. 모래 위에 나뭇가지로 삼각형을 그린 후 이를 모래로 다시 덮는다고 해도 우리의 의식 속의 삼각형을 지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그리고 이곳에 관심이 많으며 이런 관찰과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사색과 표현이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을 뚜렷하게 해 준다고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곳에 대한 인식론적 접근을 통해 이것도 예술일 수 있을까를 제안하는 것이다.
과거 예술의 영역이었던 가치와 기능들은 이제 다른 매체들이 대신하여 대중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있다. 전시장보다 영화관에 사람이 많은 이유가 이 때문이 아닌가. 또한 예술가들은 다른 어떤 매체보다도 사회적 영향력이 작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한국사회에서는 그렇게 보인다. 그런 점에서 나의 작품은 누군가를 계도하려는 메시지를 담고 있지 않다. 내가 누군가를 깨우쳐 이끌어 줄 수 있다고 믿지 않으며 예술가라는 존재가 그런 층위에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나의 관심은 사회적 비판보다는 소재에 대한 관람객의 관념적 태도이다. 방대한 이미지와 상징 코드들이 가득한 캔버스를 독해하기 위해서 소재를 카타고리화하며 주제로 접근하려는 우리의 의식을 통해서 각자의 의미는 재구성되어진다. 나는 이 과정이 흥미롭다.
나선은 나선형(螺旋形)을 의미하는 말로 개인적인 역사의식을 담고 있다. 비슷해 보이는 현상이 반복적으로 되풀이되는 역사를 두고서 하나의 점으로 모이고 있는 나선형을 띄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왔다. 파놉티콘(panopticon)은 영국의 철학자이자 법학자인 제러미 벤담이 제안한 일종의 감옥 건축양식을 말한다. 파놉티콘의 어원은 그리스어로 '모두'를 뜻하는 'pan'과 '본다'를 뜻하는 'opticon'을 합성한 것으로 벤담이 소수의 감시자가 모든 수용자를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감시할 수 있는 형태의 감옥을 제안하면서 이 말을 창안했다. 현대 사회의 구조적 측면을 다양한 관점으로 접근하면서 빈번하게 사용되는 열쇳말로 지금, 이곳을 상징하는 용어로 관람객들과 의미를 교차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나선의 파놉티콘은 통제와 권력 보다는 비인간적 부분에 초점을 모았다. 직접적으로 고통을 주지는 않지만 치명적인 증상. 무뎌진 감각으로는 현실의 좌표를 찾는 일이 생각보다 어려운 세상이다. 다양한 사건과 사고, 쟁점과 이슈, 담론들로 버무려진 넘치는 이미지들 속에서 개념화시키는 일은 관람객의 몫이다. 통증보다 살아있음을 강하게 환기시키는 것이 또 있을까 생각해 본다. ■ 강승희
Vol.20131017f | 강승희展 / KANGSEUNGHEE / 姜承希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