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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3_0925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30am~06:00pm
스페이스 컴 space CUM 서울 종로구 홍지문길 27 Tel. 070.8228.2398 gallery.spacecum.net
오늘도 친구 어머니의 폐암 소식을 접했다. 요즘 들어 더 자주 듣게 되는 몸의 아우성들. 삶의 기억과 시간들은 늘 그렇듯 갑작스럽게, 그리고 아주 이기적으로 그 존재를 드러낸다. 무한한 시간을 머금은 대지의 흔적들처럼 우리의 몸에도 시간과 기억이 하나 둘 씩 기록된다. 나의 몸에도 몇 개의 크고 작은 흉터가 화석처럼 남아 있다. 종종 그것을 살펴보고 매만지며 시간을 되돌리고, 후회하고, 또 안심한다. 지워지지도 않을 뿐 아니라 지울 필요도 없는 내 기억의 명백한 증거들.
사진 속의 크고 작은 흉터와 선명하게 남은 바늘자국은 몸의 고통과 사건의 기억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다. 이 물리적인 흔적은 동시에 심리적인 그것을 은유하는데 그것은 몸과 마음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는 안과 밖, 처음과 끝의 구분이 없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끝없이 순환한다. 심리학에서 쓰이는 신체화(somatization)라는 용어처럼 정신 에너지가 신체적 증상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그로 인한 육체의 고통은 또 다시 정신 에너지에 영향을 주게 마련인 것이다.
전시장의 포도주와 기름, 붕대는 2000년 전 선한 사마리아인의 예화를 실현시킨다. 신약 성경의 이 유명한 이야기 속에서 강도 만나 피를 흘리며 다 죽게 된 어떤 사람에게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말에 태워 주막에 데려다 준 이는 신앙의 모범이었던 제사장도, 레위인도 아닌 멸시받던 유대인 혼혈, 사마리아인이었다. 전시는 착한 행동에 대한 교훈도 격려도 아닌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의 선함은 행동 자체보다도 타인의 아픔과 처지를 느끼고 볼 수 있는 시선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천대받던 사마리아인이 버려지고 홀로 된 고통이 무엇인지 알기에 강도 만난 이를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의 깊이를 가질 수 있었던 것처럼 몇 번의 수술과 고된 치료의 경험들은 나에게도 타인의 아픔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분명한 시작점이 되어 주었다. 나의 상처와 흉터를 훑기 바빴던 카메라는 이제 타인을 향한다. 그들의 삶의 증거를 기록하고, 소독하고, 치유한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모은 200여벌의 옷가지들은 한 때 그들의 몸을 감싸던 것이었지만 이제는 타인의 상처를 싸매는 붕대가 되었다. 옷을 내어준 이들의 의도가 그렇던, 그렇지 않던 간에 모두 붕대가 되어버린 그들의 옷처럼 우리의 삶도 나의 의도와 상관없이 위로가 되고 또 받기도 한다. 어쩔 수 없이 교차되는 서로의 시선들, 그리고 우리의 삶. 타인을 향한 작은 시선들이 이곳에서 시작된다. ■ 이지향
Vol.20130926c | 이지향展 / LEEJIHYANG / 李知鄕 / sculpture.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