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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3_0913_금요일_06:00pm
퍼포먼스 / 2013_0913_금요일_07:00pm 서도창 공연 / 공연자_이지녀 노랫가락_창부타령_복빌이타령(쑹거타령)
후원 / 스페이스 윌링앤딜링_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람시간 / 02:00pm~08:00pm / 주말_12:00pm~06:00pm / 월요일 휴관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SPACE WILLING N DEALING 서울 용산구 이태원2동 225-67번지 B1 Tel. +82.2.797.7893 www.willingndealing.com
허은경 작가가 2013년 9월, 윌링앤딜링에서 보여줄 것은 '역공간(Liminal Space)'이다. 역공간이란 외부와 내부를 드나드는 경계의 공간 어디쯤을 의미한다고 하니 이는 이분법적 사고로부터 좀 더 벗어난 유연한 사고체계를 시각화 하는 작업이라 할 수 있겠다. 이 공간 속에서는 제단(祭壇)을 연상시키는 설치가 이루어진다. 자개와 칠기 기법이 사용된 바닥 구조물 위로 실리콘으로 만들어진 둥근 형상들이 놓여지는데 이들은 마치 몸이 덜 형성된 채로 멈추어버린 외눈박이 태아처럼 보인다. 즉 '기형'으로 취급받을법한 형상이다. 그 위로 벽면에는 검은 먹 드로잉이 두텁게 그려져 있다. 전체가 검은 색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수많은 형상의 선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선들은 단순히 반복적으로 그려져 겹쳐진 것이 아니다. 한국 전통의 유기적인 무늬들이 뒤얽혀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들이 겹겹이 쌓여서 만들어진 이 커다란 검은 면은 마치 다른 세계의 공간으로 관람객이 빨려가듯 다른 곳을 들여다보는 창처럼 보인다. 바닥의 오브제들, 즉 기형의 형상들은 드로잉으로도 구현되었다. 푸른색의 주인공들은 우주와도 같은 공간을 배경으로 하나씩 서로 다른 모양을 띄고 그려지는데 이는 또 다른 10점의 드로잉인 '시월태음(十月胎音)' 시리즈로 연장된다. 이 시리즈의 화면 속에서는 크고 작은 원 이미지가 반복적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태아의 생성과정에 따라 만들어지는 세포분열과 조합을 기하학적 형태와 반복적 리듬감으로서 표현한다고 볼 수 있다. "시월태음"은 세상의 에너지와 인체의 관계 속에서 생성되는 생명력에 대한 연구와 실천인 원극학(元極學)을 기반으로 한 사상이다. 원극학에서 태음(胎音)은 인간의 활동에 대한 정보암호이며 사람의 생명활동은 모두 태음에서 시작된다고 본다. 태아가 모체 내에서 생장, 발육할 때 매월 한 가지 음(音)씩 10개의 태음이 생산된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는 마치 우주의 기원을 기록하듯 태음에서 음의 부호체계를 분석해, 천지인을 인식하는 10글자의 총결인 옴,금,미,벽,질,팔,압,은,화,정(中音-안,진,미,삐,지,바,야,인,화,띵)으로 구성된다. 허은경 작가의 드로잉에서 이러한 글자들이 적용되며 이 글자들을 둘러싼 작고 반복되는 기하학적 원형을 반복하고 겹치면서 해당 월의 환경 속에서 생명이 형성되어가는 과정을 들여다보게 한다.
작가가 사용하는 재료에 주목해 보면 그의 작업 전체에 흐르고 있는 환경문제에 대해 감지할 수 있다. 초기 작업부터 나전칠기와 자개 등을 사용하여 회화작업에 혹은 입체 조형물의 표면에 적용하였으며 이들은 천연 소재이다. 가끔 작업실을 방문하면 이제 막 칠해놓은 나전칠기 작업을 볼 수 있었는데 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 빛이 점점 선명해지고 그 색감의 느낌이 한층 깊어진다. 이는 한번 표면에 칠해진 후 그냥 놔두었을 때 저절로 생기는 변화이다. 이처럼 자연스러운 발색이 스스로 진행되도록 하는 것은 어찌 보면 이 재료가 시간의 흐름과 함께 변화하는 마치 하나의 생명을 다루는 일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천연재료들에 둘러 쌓인 실리콘 오브제들을 '기형'을 나타내는 이상 형태이다. 플라스틱의 반짝이는 거대한 눈알 같은 것이 팔 다리도 온전하지 못한 몸뚱이의 머리 부분에 박혀 있고 이들은 스스로 지탱하지 못하고 그야말로 너부러져 있는 듯 보인다. 이들은 색감이나 재질 등에서 매우 인공적인 느낌이다. 이들이 자개, 칠기 등의 이질적인 재료에 둘러 쌓인 채 놓여있는 전체 풍경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환경을 자연스럽게 만들어낸다.
장르를 불문하고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나는 시각적으로 황당한 것들이 난무할 듯 한 이야기에 대한 판타지가 있다. 어렸을 때는 귀신 이야기나 추리소설, 혹은 등을 좋아했는데 알 수 없는 것에 대해 상상 할 수 있는 것들이 무궁무진하였기 때문이었으며 지금 요괴 이야기나 SF류의 애니메이션에 열광하게 된 것은 나의 상상력을 뛰어 넘는 엄청난 이야기들에 대한 이미지들을 눈앞에서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처음 허은경 작가의 이미지에서 받았던 인상은 이러한 열광적 놀라움과 연관했던 것 같다. 그래서 작가와 만날 때 마다 펼쳐지는 화면 속에서 만난 이미지에 대해 도대체 어떻게 이런 형상을 생각해 내느냐는 질문을 하게 되는데, 작가는 "그냥 갑자기 떠오르기도 하고 꿈속에서 본 이미지를 그리기도 해요."라고 답해서 나를 놀라게 하였던 것이다. 꿈이나 혹은 즉흥적으로 떠오른 이미지를 이렇게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였다. 그래서인지 허은경 작가의 작업을 살펴보면 대상을 묘사하거나 관찰하며 만들어냈다고 하기에는 전혀 새로운 형태들이다. 그리고 전혀 낯선 풍경이 가끔 함께 한다. 마치 자신의 머리 속을 맴도는 상상 속의 세상을 어딘가에서 제삼자로서 관찰하고 있는 느낌이기도 하다.
이 책자의 드로잉들은 SF물의 캐릭터들을 연상시킨다. 전시에는 설치되지 않지만 이들은 평소에 작가가 일기처럼 그려온 캐릭터이미지들이다. 이들이 그려지는 것은 흔하게 시각적으로 접하는 일반적인 풍경이 아닌 작가가 평소에 흥미로워하는 미시적인 환경과 이들이 가시적인 세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관심을 반영하고 있다. 즉, 작가가 제작한 실리콘 작업에서 말하고자 하는 '기형'이라는 주제와 통하는 듯 보인다. 작가는 일반적으로 '정형'이라 불리는 것의 기준에 대해 진지한 의문을 던진다. 이는 진화론, 자연도태설 등의 같은 과학적인 가설을 떠오르게 한다. 즉 지금까지 지구상의 환경은 다양한 변화를 겪어왔을 것이고 그 동안 변화하는 환경에 따라 도태되어 사라지는 것들, 그리고 환경에 맞아 선택되어 적응하여 지금까지 유지되어 온 것들 등을 거치면서 수많은 변태를 해 온 것이 인류의 모습이며 우리와 공존하고 있는 각기 다른 종류의 생명체와 환경의 실체인 것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정형으로 취급하는 것은 다수의 적응 가능했던 기능과 형태를 갖춘 모습이다. 그리고 기형은 이 중 다른 형질을 띄며 열외의 선택으로 살아남은 색다른 종류의 생명체로 취급받고 있다. 작가 허은경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우리가 보는 열등함과 우등함의 기준을 모호하게 생각하고 있으며 기형에 대한 것은 '자연스럽다'로 귀결된다. 왜냐하면 이들 역시 우리와 같은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최대한 적응하여 만들어진 형태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같은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나와 다른 형태의 생명체일 뿐인 것이다. 우리는 다른 것에 대해 배척하는 정확한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 단지 다른 것을 거슬려 한다. 그리고 그 다른 형상을 기형이라고 치부하는 것이다.
역공간에서 허은경 작가는 이쪽도 저쪽도 아닌, 이미 우리의 눈앞에 그 모습을 드러냈으나 생소하고 낯설어서 다소 거부감이 들기마저 할 만한 형상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를 둘러싼 이미지들은 이들이 조화롭게 함께 할 수 있는 에너지를 발산한다. 스페이스 윌링앤딜링에서의 에너지가 이들을 함께 포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역공간"으로 구현되고 있다. 알고 보면 미적 감흥에 대한 반응은 색다른 것에 대한 포용력이기도 하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다. ■ 김인선
Vol.20130914d | 허은경展 / HURUNKYUNG / 許恩慶 / 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