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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8:00pm / 공휴일 휴관
갤러리 피프틴 GALLERY FIFTEEN 서울 종로구 삼청동 63-28번지 Tel. +82.2.733.1120
상처받은 사람들은 대체로 상처의 원인이 되었던 무언가를 억누르고 삭제하여 그를 대신할 기억들을 새롭게 만들어낸다. 긍정적인 생각과 아름다운 인위적 사건들을 통해 자신이 과거의 상처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음을 증명하고 드러내 보이는 행위를 우리는 흔히 치유의 단계라 부른다. 하지만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치유의 첫 단계, 곪을 대로 곪은 상처를 도려내기 위한 가장 첫 번째 단계는 가장 무섭고 두려운 자신의 과거, 상처의 원인과 마주하는 것이다. ● 최희진의 'Going Home'은 이를 통해 과도하게 사용되고 있는 '힐링'이라는 단어의 무기력함을 증명한다. 긍정이라는 가면을 쓰고 과거로부터 멀어져가고 있음을 회상하는 대신, 오히려 가장 피하고 싶었고 두려웠던 순간들을 차례차례 꺼내어 그 또한 현재의 일부분임을 '인정'하는 단계를 거친다. 그리고 이것을 진정한 '치유'의 방법이라 이야기하고 있다. ■ 강민영
화영(花影)에게 ● 바다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으면 내가 바다를 보는 건지 바다를 '본다'는 행위를 연속해서 하고 있는 것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때가 있다. 당신이 지금 '정말로' 보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애석하게도 당신과 나는 그 해답을 찾지 못한 채 깊은 땅 속에 묻어버리고 말았다. <화양연화>에서 차우와 첸이 나누었던 뜨거운 사랑의 시간이 캄보디아의 외딴 사원 구석에 봉인되어 흙으로 묻혀버리듯 그렇게 묻어져 버렸다. 아마도 그걸 파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당신도, 그리고 나도, 그 누구도.
당신과 내가 묻어두었던 상자 ● 종종 방 정리를 하다 보면 이따금씩 옛날에 주고받았던 편지들이나 빛 바랜 사진들을 예기치 않게 발견할 때가 있다. 그것들을 발견하게 되는 날은 하루 종일 감상에 빠지고 만다. 이를테면 그것들은 판도라의 상자와 같아서, 혹시라도 열어보게 되는 바로 그 순간부터 한동안 내가 하고 있던 일은 잊고 마치 정신 나간 사람처럼 옛 기억을 찾아 헤매게 만드는 묘한 마력이 있다. 그런데, 어제 책장을 뒤지다가 그걸 발견하고야 말았다. 먼지가 가득 뒤덮여있지만 분명 나와 함께 내 방안에서 존재하고 있는 나의, 혹은 당신의, 그것도 아니면 우리의 것인 상자. 나는 그걸 발견한 즉시 당신을 불렀다. '화영, 여길 좀 봐. 우리가 보고 있는 건 과거의 현상일까 현재의 착시일까?' 당신은 침묵했고 나도 당신을 따라 침묵했다. 검은 돌담에, 푸른 바다에 둘러 싸여있지만 고개를 내밀고 나를 바라보는 이것 또한 분명 또 다른 나의 모습, 그리고 내가 살아왔던 또 다른 나의 공간, 틀림없는 내 자신임이 분명했다. 그리고 이건 나와 오랜 시간을 알고 지냈던 당신의 또 다른 모습이기도 했다. 그 상자를 아무도 모르는 곳에 묻어두었지만 그 상자가 우리들의 오래되고 낡은 '집'임을 인정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당신과 나는 마음속으로 울고 또 울었을까.
망설임의 순간들 ● 상자 속의 그것들이 실체가 되어 온전히 나에게 다가오기 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나는 줄곧 도망쳐왔고 끊임없이 나를 숨겨왔으며, 당신은 나를 줄곧 숨겨주었고 나 또한 당신을 숨겨주곤 했으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계속해서 우리의 상자를 철저하게 숨겨오는 일이 전부라 믿었던 시간들을 지나, 내가 나의 상자에 숨겨져 있던 나의 지나간 시간들을 하얀 화폭에 그려내기까지 수많은 망설임의 순간들이 나를 가로막았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화영, 당신의 말 한 마디가 나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피하려 했던 시간들은 나라는 사람을 이루었던, 말하자면 수 십 개의 가닥으로 갈라진 뿌리 같은 존재라고. 이제는 희미해서 잘 보이진 않지만 그들과 나는 언제나 함께 해왔고 지금 이 순간도 함께라고. 그게 바로 '나'라는 걸 인정하는 것은 아직도 두렵다. 하지만 이제는 도망치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그렇게 생각하고 상자를 바라보니 어느 날 온전한 내가, 온전한 당신이 그 자리에서 내게 미소 짓고 있었다. 마치 신기루 같은 모습으로.
다시 집으로 ● 당신 말처럼, 그러니까 당신이 말 한 것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어쩌면 내가 상자를 발견했던 바로 그 순간부터 나는 나의 '집'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나의 옛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을까? 당신은 당신이 가졌던 상처를 증오하고 있을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나는 나를, 당신은 당신을, 그렇게 자기 자신을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내가 당신을, 당신이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었던 그 많은 시간들처럼. 타인을 정성스럽게 바라보면서 정작 그 자신에게는 솔직하지 못했던 지난 세월들은 벗어 던지고. 당신의 이름이 '꽃의 그림자' 화영인 것처럼. 그러나 당신도 당신의 그림자도, 모두 다 '꽃'을 뜻하는 것처럼. ■ 강민영_최희진
Vol.20130823d | 최희진展 / CHOIHEEJIN / 崔喜珍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