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30am~06:30pm
리서울 갤러리 LEESEOUL GALLERY 서울 종로구 인사동 23-2번지 2층 Tel. +82.2.720.0319 www.leeseoul.com
인간은 아주 오래 전부터 자신의 뿌리에 관해 고민해왔다. 기원, 창조, 나아가 종의 진화 연구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삶이 시작된 원인을 인간 특유의 도구인 언어로 설명해오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것은 '나'라는 주체, '나'와 1차적으로 연결된 부모세대와 자식세대에 관한 관찰로부터 이루어졌다. 우리는 흔히 이 관계를 '가정'이라 일컫는다. 한 인간이 스스로를 보호하고 보호받기위해 도망칠 수 있는 최종의 안식처인 가정의 중요성을 아이의 언어가 발달하자마자 가르치는 것이 교육자(보호자)의 미덕이었고 인간 사회의 일반적인 약속이었다. ● 하지만 이 일반적인 약속이 도태시킨 다른 인간들-이를테면 평범함을 주장하는 사회인들이 흔히 '소외자'라 이름 붙인 가정이탈 혹은 해체가정의 경험자들은 이로 인한 트라우마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이들을 평생 구속시키는 트라우마가 바로 '가정'이라는 단어로부터 기인될 때 다시 생각해야 할 것은, 우리가 유아기부터 지속적으로 습득해온 가정의 의미가 현대 사회에서 정확히 무엇을 대변하는가 라는 것이다. 가정과 가족의 의미는 시시각각 변화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집단과 이에 속한 집단의 불화는 끊이지 않는다.
언젠가부터 인간의 삶에 대한 고민은 삶 자체가 아닌 출생과 태생, 근본이라는 단어로 변질되어왔다. 주체인 '나' 대신 '나'의 이전 세대에 초점화된, 그리고 주체의 주변을 이루는 가정이라는 경계의 의미로서 말이다. 최희진의 작업에 사용되는 'Home Sweet Home'(즐거운 나의 집)의 이미지는 바로 이런 변질된 삶의 태도를 역설한다. 그녀가 그린 가정과 가족-즉 '섬'은 단일화된 공간, 인간 각자가 보유하고 있는 가정의 상징이다. 'Home Sweet Home'이라는 달콤한 말, 문장의 일반적인 의미와는 다르게 최희진의 작업들은 위태하고 도태된 가정과 이로 인해 작가 스스로가 느꼈을 상처의 역사를 서술한다. 가족의 주거지로 묘사되는 공간에 대한 집착은 곧 일반적인 사회에서 강요하는 가정의 의미에 대한 반향인 동시에 진정한 'Sweet Home'이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생활반경을 따라 도려내러진 섬(집)들은 자신의 태생과는 관계없이 어디에든 편입될 수 있고 어디로든 옮겨갈 수 있는, 하지만 그 과정에 따르는 고통이 개인의 삶에 커다란 파장을 일으킨다는 것을 시사한다.
'Home Sweet Home'은 작가 자신을 포함한 불특정다수의 상실된 과거를 대변한다. 작가는 자신의 과거-또는 타인의 아픔이 섞인 과거를 박제화 시켜 아주 오래된 옛날이야기, 빛바랜 동화책의 한 장을 훑어 내려가는 방식을 택했다. 이 작업들은 낡은 소망-사라져버린 기억들의 환기를 위해 차분하게 쌓아올린 분채와, 이를 다시 '하나의 것'으로 뒤덮는 짙은 색 건 재료의 활용을 통해 먼지 쌓인 오래된 책들을 조심스레 펼쳐보는 행위와 같은 성질의 감성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이는 곧 작가 자신의 상처를 보듬어 안는 과정을 지난다.
최희진의 작업은 쓰지 못했던 일기를 차근차근 정리해나가는 치유의 연대기다. 그녀의 작업에는 가지지 못했던 과거의 가정에 대한 염원과 이를 벗어나 삶을 재정비하는 과정에서 기대되는 미래의 가정, 말하자면 '절망'과 '희망'이 교차한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그 사이에 위치한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들여다보고 있는 셈이다. ■ 강민영
Vol.20121206h | 최희진展 / CHOIHEEJIN / 崔喜珍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