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랑의 노래, La Chanson de Roland, A Song of Roland

오용석展 / OHYONGSEOK / 吳庸碩 / painting   2013_0809 ▶ 2013_0824

오용석_If I had a voice_캔버스에 유채_33×24cm_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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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용석 홈페이지_www.yongseokoh.com

초대일시 / 2013_0809_금요일_06:00pm

본 전시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진행중인 『Emerging Artists: 신진작가 전시지원 프로그램』의 선정작가 전시입니다.

관람시간 / 01:00pm~07:00pm

갤러리 버튼 Gallery Button 서울 성북구 성북동 1가 103번지(창경궁로 35길 83) 1층 Tel. +82.70.7581.6026 www.gallerybutton.com

"그리하여 밤이 밤을 밝히었다" (1) 바루지(Baruzi), 『십자가의 성 요한』, p308에서 인용.) 여기서 어둠이라 번역한 프랑스어의 'obscurité'는 암흑이라 번역한 'ténèbres'와 비교해, 보다 추상적인 상태를 지칭하는 단어로, 단순한 빛의 결핍 상태를 가리킨다. 암흑은 보다 완전하고도 구체적인 빛의 결핍 상태로 이 때의 빛은 현실적인 대상이다. 이에 비해 밤(nuit)은 공간적이고도 시간적인 개념을 수반한다. [역주]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 『사랑의 단상』, 동문선, p249)

오용석_Holy Night_캔버스에 유채_180×1200cm_2012_롯데갤러리 광주점

성스러운 밤 : 빛이 아니라, 암흑이 밤을 밝힐 수 있다는 것. 물리적인 밝고 어두움이 밝음과 어두움을 뜻하지 않는다는 것. 진부하기까지 한 명제가 머리 속에 각인되었다. 언어적인 부조리는 사고의 틈을 여는 독특한 기능을 한다. 12미터에 이르는 롤페인팅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거대한 크기의 사적인 서사. 사적인 서사의 거대한 의미부여. 거대한 이미지의 사적인 역사. 이번 전시『롤랑의 노래』는 3년간의 이미지들이 쏟아 부어진 '성스러운 밤'의 말미에서 시작한다. 일종의 번외편이나 해례본이다. '성스러운 밤'이 침묵같은 이미지의 층위에 대한 것이라면, 『롤랑의 노래』는 그동안 쌓인 내밀한 편지, 말, 목소리와 같은 텍스트와 이미지의 접면에 대한 것이다. 보내질 수 없는 나의 편지에 실려진 많은 응답에 답신을 띄운다. ■ 오용석

오용석_If I had a heart_캔버스에 유채_각 33×24cm_2013

"심층과 표면이 동등하게 파악된다면 사랑과 같은 감정은 더 잘 이해될 것이다" (미셸 투르니에)과잉된 사랑 오용석의 작업 전반에는 사랑과 욕망의 구조적 관계 및 그것들에 의해 파생되는 이야기들로 가득 차있다. 욕망 속에서 사랑을 발견하고 싶은 열망. 작가는 그것의 불가능성을 받아들이기보다는 환상과 아름다움의 영역으로 이동시킨다. 그러나 환상의 영역으로 들어간 작가는 다시 그 속에서 사랑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왜냐하면, 환상은 욕망이 실현되는 시나리오를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라캉 정신분석에서 환상은 '우리로 하여금 무엇인가를 욕망할 수 있도록 해주는, 혹은 욕망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하나의 틀로서 기능한다.'하였듯이. 그는 욕망의 심층으로 들어가 그것의 근원적 이유를 찾는 것이 아니라, 욕망의 표면에서 환상의 환영이 만들어내는 가능성의 영역을 이야기한다.

오용석_Toute La Nuit #2_캔버스에 유채_91×71cm_2013

환상의 접면 ● 오용석의 페인팅에서 보이는 공간은 물리적으로 평평하다. 뚜렷한 소실점이 없거나 약화시킴으로 3차원의 원근법적 깊이가 가지고 있는 현실감을 벗어나 판타지를 극대화한다. 또한, 그림의 얇은 표면이 갖는 의미 작용은 그가 그리는 얼굴의 이미지에서 더욱 선명하게 찾아볼 수 있다. 그는 잘린 머리와 같은 이미지를 반복하여 그리곤 한다. 그것을 거세된 욕망의 이야기로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그에 앞서 인격과 분리된, 표면으로 다루어진 얼굴을 보게 된다. 내면을 반영하는 얼굴이 아닌 얼굴의 껍데기는 표면의 표상이다. 깊이가 없는 표층의 세계가 가질 수 있는 존재의 희미함이 새로운 영역에 들어갈 수 있는 틈으로 작용한다. 그에게 표면의 세계는 현실과 비현실의 접면일 것이다. 욕망의 근원을 찾는 것이 아니라 환상의 세계에서 욕망의 표면들과 조우하는 것, 즉 그의 그림에서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궁금해하는 것보다 현실의 욕망이 치환되는 과정을 추적하는 것이 그의 그림을 읽어내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오용석_Imagined Utopia_캔버스에 유채_91×71cm_2013

보내지지 않은 편지 ● 깊이가 없는 표면이 유발하는 존재의 모호함은 그가 쓰는 소설의 형식에서도 비슷하게 드러난다.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화자는 대부분 1인칭 '나'이며, 서간체 소설의 형식을 주로 사용한다. 객관적 서술이 가능한 3인칭 시점과 달리, 1인칭 시점은 세계를 '나'의 내면으로 끌어들인다. 그렇게 '나'의 독백으로 가득 찬 소설이지만 독백과 방백 사이를 오간다. 편지라는 형식이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데, 그것은 편지의 진정한 수신자가 편지의 내용을 가장 잘 이해해줄 상대자로 설정했기 때문이다. 수신자에게 받을 답장을 기다리듯, 작가는 끊임없이 욕망 속에서 사랑의 가능성 발견하길 기대한다. 오용석은 그의 작업과 소설에서 본능, 충동, 욕망, 사랑을 환상의 프리즘에 투과시킨 스펙트럼으로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그 프리즘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흥미롭게 지켜보면 될 것이다. (『RE: 보내지지 않은 편지』 중에서) ■ 장파

Vol.20130809h | 오용석展 / OHYONGSEOK / 吳庸碩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