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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서울문화재단_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람시간 / 11:00am~07:00pm / 토_11:00am~06:00pm / 일,공휴일 휴관
살롱 드 에이치 Salon de H 서울 강남구 청담동 31-2번지 신관 1,2층 Tel. +82.2.546.0853 www.salondeh.com
태초에 신이 있었다. 그리고 신은 인간을 창조했다. 창조된 인간은 신을 이야기로 다시 만들어내었다. 그렇게 신들의 이야기는 인간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인간의 삶을, 그리고 욕망을 투영시킨 또 다른 이야기가 되어 후세로 전해진다. 전설적인 고대 그리스의 장인 다이달로스(Daidalos, 쪼아서 만든 자라는 뜻을 지님)는, 대장간의 신 헤파이스토스의 자손으로 뛰어난 건축가이자 장인이었으나 자신의 제자였던 탈로스를 시기하여 죽이고 크레타 섬으로 도망쳤다. 거기서 그는 크레타의 왕 미노스의 신임을 받아 유명한 크레타의 미궁을 만들었지만, 도리어 그 안에 자신의 아들 이카루스(Icarus)와 함께 갇히는 신세가 된다. 바다 한가운데에 있었던 크레타의 미궁 감옥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이달로스는 하늘을 날아 탈출하기로 마음을 먹고 밀랍과 새털로 자신과 아들을 위한 날개를 만든다. 멋지게 완성된 날개를 달고 하늘을 날아오르며 아버지는 아들에게 말한다. "아들아, 너무 낮게 날면 바다의 습기로 날개가 무거워질 것이고, 너무 높게 날면 태양의 열기에 날개가 사라져버릴 것이다." 그러나 이카루스는 자만에 빠져 하늘을 향해 더욱 더 높이 날아갔고, 결국 물에 빠져 바다의 이름이 되었다. 이카루스의 이야기는 고대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Ovidius Naso)의 『변신이야기(Metamorphoses)』 속에 등장하여 현대까지 금지된 것을 욕망하는 인간의 어리석음, 또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인간의 동경을 상징한다.
이카루스 신화에서 금기를 어기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습기에 의해 날개가 무거워지기 전, 열기에 의해 밀랍이 녹아버리기 전까지의 높이 안에서만 허락된 이카루스의 자유는 형태만 변용된 상태로 현대의 일상생활에서도 유효하다. 도덕과 관습, 그리고 법의 테두리 안에서 개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금기를 받아들이고, 때로는 그것에 저항하며 살아간다. 비록 그 금기가 죽음을 담보한 것은 아닐지라도, 여전히 유효한 파괴적인 힘을 지닌다. 김성국의 새로운 연작인 「금기의 시대」는 앞서 이야기한 이카루스 이야기의 현대적 해석이다. 목숨을 걸고 자신의 호기심을 위해 태양을 향해 달려들었던 이카루스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자신에게 주어진 법과 관습에 따라야하는 필요성과 동시에 그것을 깨뜨리고 이카루스와 같이 떠나고 싶은 충동을 동시에 느낀다. 이카루스의 날개를 만들어 멘 남자 주인공에서 김성국은 현대인들이 얼마나 크고 작은 주변의 기대에 맞추어 살아가고 있는지 다시 한 번 조망한다. 그 기대는 결국은 현대인들의 금기가 되고, 사소한 일에 목숨을 거는 유약한 단면을 반추한다. 기존에 김성국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이나, 여러 기독교 성화 중에서 「수태고지」를 다룬 그림들을 2000년대 대한민국 일상의 한 풍경으로 불러들여와 화면을 재구성했다. 이러한 형식을 통해 고전 명화에서 다루는 역사적인 순간도 누군가의 평범한 일상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한 순간이라는 것을 환기시켰다. 김성국은 본 연작에서 기존의 그림을 차용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작가가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쓰고, 만들고, 김성국만이 할 수 있는 표현으로 화면에 그림을 그린다.
현대판 이카루스는 스스로 날개를 만든다. 거대한 화면의 한가운데 위치한 남자는 어딘가 조악한 날개를 등에 메고 잠시 잠깐 아래를 향해 눈길을 돌린다. 완전히 펼쳐진 날개를 단 남자는 이제라도 막 하늘을 향해 날아가 버릴 것 같지만, 한쪽 무릎을 꿇고 애원하는 여자의 애절함에 주저하고 있는 듯 보인다. 「ICARUS-1. 금기의 시대」의 풍경이다. 한 화가의 작업실 풍경으로 보이는 배경에는 화면의 두 주인공이 벌이는 소동에는 아랑곳없이 쓰레기통이나 주전자, 각종 물통들이나 휴지 슬리퍼 등 흔히 보는 사물들이 아무렇게나 뒹굴고 있다. 여자의 애원하는 눈빛과는 상관없이 화면 왼쪽에 차지한 문은 저 날개를 메고는 날아갈 수도 없이 작고, 활짝 펼쳐진 날개가 상징하는 듯 보이는 남자의 큰 야망과는 별개로 현실은 작고 초라하다. 지그문드 프로이드(Sigmund Freud)의 『토템과 터부(Totem and Taboo)』에 따르면 인간의 심리적 제한에 따르는 금기는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재화된 자기 기준에 따라 스스로에게 강제하는 것이다. 따라서 종교 등에서 요구하는 윤리적 기준에 따른 금기와는 다르게 지극히 일상적인 절제를 필요로 하면서도 동시에 필수적인 기준을 따르지 않는다. 구체적인 동기나 기원이 없이 어떤 특정한 '금기'를 믿는 사람들에게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따라서 그 금기의 속박은 그것을 깨뜨리려는 자에게는 더욱 강력한 유혹이 되고, 금기를 지키려는 자나 그 주변인들에게는 금기를 깨려는 그 행위 자체가 공포가 된다. 태양에 가까이 가지 말아야 한다는 아버지의 말은 이카루스에게는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의 말이 되었고 결과적으로 그 금기는 죽음을 맞더라도 꼭 해야 할 행위가 되었다.
따라서 현대판 이카루스인 주인공은 자신을 둘러싼 여러 제약들을 딛고 일어서 모험을 감행한다. 「ICARUS-2. 갈등의 변화」로 이어지는 화면에서, 남자는 여자로부터 등을 돌리고 문을 향해 서있다. 설득에 실패한 여자는 체념한 듯 질끈 눈을 감고 하늘을 향해 애원하듯 손을 내밀고 있다. 여성의 몸짓은 카라바조(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1571~1610)의 「성 바울의 개종(The Conversion on the Way to Damascus)」에서 빌려왔다. 카라바조는 열정적으로 그리스도교를 박해한 바리새파 유대인 바울이 다마스쿠스의 유대교 교회로 향하던 도중 하늘에서 갑작스럽게 내려오는 빛에 의해 눈이 멀어 땅에 쓰러지고 예수의 목소리를 들은 뒤에 개종하게 되는 이야기를 그만의 특유의 화풍으로 완성했다. 김성국의 그림에서 똑같은 포즈를 취한 여성의 충격과 결심이 사도 바울이 개종하게 된 것과 같이 중대한 일임을 암시한다. 남편 혹은 연인의 못마땅한 결심이 그렇게까지 큰 사건인지 화면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 보면 그렇지도 않다. 그러나 그러한 모순으로부터 '평범한 삶'을 살도록 강요하는 여러 요소들이 얼마나 강력한 것이었는지 깨닫게 한다.
「ICARUS-3. 깊은 잠」은 비토레 카르파치오(Vittore Carpaccio, 15세기 후반~16세기 초반)의 「성 우르술라의 꿈(The Dream of St. Ursula)」에서 가져왔다. 성녀 우르술라는 잉글랜드 왕국의 공주로 이교도 왕의 아들과 결혼하는 조건으로 3년간 순례여행을 허락받고 11,000여명의 처녀들과 함께 떠났다가 돌아오는 길에 훈족에게 살해당했다고 알려져 있다. 카르파치오는 우르술라의 꿈에서 천사가 나타나 그녀의 순교를 예지하는 장면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성녀 우르술라의 잠은 미래의 자기 자신을 예고하는 것이었다면, 「Icarus-3. 깊은 잠」에서 여성의 잠은 자신의 연인이 모험을 끝내고 돌아오는 것을 고대하는 잠이다. 어둠의 시간이 끝나면 밝은 아침이 돌아오는 것처럼 화면 속의 여성은 순교자의 잠과 같이 자신이 꿈꾸는 미래의 순간을 기다리며 깊은 잠에 빠져든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어둠에 빛이 스며드는 새벽이 오면 남자가 돌아온다. 「ICARUS-4. 귀환」의 주인공은 자신을 둘러싼 여러 제약-가족의 반대, 생계의 위협, 혹은 그보다 더 사소한 여러 가지 제약-을 물리치고 용감하게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다. 하나의 연극 무대에서처럼 일정 거리 이상 떨어져 화면을 보고 있었던 관람자들은 네 번째 그림이자 본 연작의 마지막 그림에서는 어느새 화면의 한 복판으로 들어가 있다. 주인공의 턱 밑까지 클로즈업된 화면 안의 배경은 인물을 기준으로 자연스럽게 4등분이 되며 십자 형태를 이룬다. 새벽에 일을 끝내고 돌아와 다소 지친 듯한 주인공의 표정에서 체념과 다시 도전하려는 연약한 의지를 동시에 읽을 수 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전개되는 이야기 속에서 화면의 풍경은 점점 상황에 가까이 다가가지만, 인물과 관람자의 관계가 가까워지면 질수록 도리어 화면은 보다 평면에 더 가까워지고, 형태가 아닌 색이 강조된다. 작가는 「금기의 시대」에서 이전과는 다른 몇 가지 실험을 추가한다. 하나는 각각의 그림에서 표현 기법을 모두 다르게 사용함으로써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인물들 간의 갈등의 관계가 변화하고 그에 따른 감정의 흐름이 변화하는 지점을 포착하고자 했다. 이러한 일련의 작품 구성은 소설적 장치를 따른다. 「ICARUS-1. 금기의 시대」에서 시작된 사건의 발단은 「ICARUS-2. 갈등의 변화」에서 전개되고, 「ICARUS-3. 깊은 잠」에서 위기를 맞다가 「ICARUS-4. 귀환」과 함께 이야기의 절정과 결말을 가진다. 마지막 화면에 담긴 남자의 눈빛에 담긴 체념과 재도전의 의지가 현대인의 삶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여러 금기들을 벗어나, 자기 자신을 둘러싼 것들을 내려놓고 떠나는 것이 얼마나 버거운 일인지 다시 한 번 깨닫게 함과 동시에, 그 어려운 결심 이후에도 결국은 자신의 일상의 삶으로 돌아오게 되는 진실을 마주한다.
과거 신화의 시대, 원시의 시대에 금기는 도처에 널려 있었다. 문명이 미지의 어둠을 걷힌 현재에도 금기는 여전히 존재한다. 그 금기는 한 국가의 멸망이나, 부족원들의 몰살과 같은 거창하고 불가해한 것은 아니다. 자식이 좋은 성적을 받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던진 부모의 한마디, 사랑하는 연인이 떠나갈 것을 두려워해 던지는 한마디, 혹은 자기 자신이 성취하고 싶은 무언가를 얻기 위해 던지는 한마디 말 속에 새겨져 있는 마음에 있다. 그러나 실제 우리의 삶은 좋은 성적을 받지 못해도, 사랑하는 연인이 떠나가도, 비록 원하는 것을 당장 가지지 못한다고 해도 모두들 잘 살아가고 있다. 심지어 우리는 그러한 고통의 시간을 통해, 끝까지 찾아내지 못한 무언가를 통해, 영원히 잃어버린 어떤 것을 통해서 더 나은 무언가를 깨달으며 살아간다. 「금기의 시대」는 곧 욕망이 일상을 점유해버린 현대인들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거울이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을 걸고 꿈을 쫓는 현대판 이카루스들을 위한 기념비이다. ■ 박경린
Vol.20130802a | 김성국展 / KIMSUNGKOOK / 金成國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