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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3_0616_일요일_04:00pm
Gn 갤러리 경기도 이천시 마장면 회억리 194번지 Tel. +82.1544.8804
그림은 소리를 부르고 소리는 그림을 견인한다. 그림과 소리가 시각과 청각이 서로의 경계를 허물고 넘나드는 어떤 차원이 열리는 것인데, 암시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예술 그리고 창작은 어쩌면 이런 암시를 만들어내는 기술일지도 모른다. 암시란 그림으로 하여금 미처 그려지지 않은 무엇을, 존재로 하여금 부재하는 무엇을 떠올려주는 기술이다. 비가시적인 것을 가시화하는 일이 예술이라는 말과도 통한다. 박병철의 작품'연기(煙氣)로 그리다'는 자신을 태움으로서 보여주는 이미지이다. "연기를 보는 자는 법(法:진리)을 보고, 법을 보는 자는 연기를 본다고 한 말이나, 연기를 보는 자는 불(佛)을 본다고 설(說)한 것과 같이 연기는 법과 동일한 것으로" 이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즉 비워진 것 보다는 연기의 그을음 때문에 인간이 만들어낸 오차가 쌓이고 쌓인 존재의 흔적이다. 그 존재란 동시에 다른 존재가 아니라 존재를 사유하는 상황이 만들어질 수도 있고 그 안에서 오차를 만들며 진행되었던 하이데거(M. Heidegger)가 정의하는 예술작품 존재의 흔적을 발견할 수도 있으며 이러한 사유를 지속해 나감을 해서 존재의 일렁임이 조금 더 풍성해지는 존재론적인 시간을 가질 수도 있다.
이제 박병철의 작품을 작품답게 존재하게 하고 그 있음으로부터 작품을 만나는 방식을 취해 보자. 우리는 작품을 작품으로 '있게' 두어야 한다. 오직 그러할 때만 작품은 그 자신에 즉해서 그 자신의 소리를 낸다. 만일 작품존재가 오로지 작품이 작품답게 머물 때에만 작품에 즉해서 생생히 일어나는 것으로 규정될 수 있다. 어떤 이야기들을 만드는 매개로 작동하는 것으로 작품은 작품으로 존재하면서 이 같은 열림이 끊이지 않도록 지속시킨다. 또 그것이 뱍병철 작품의 작품다운 존재 방식이다.
따라서 작가의 이 행위는 미술/그림이 사각형의 평면 안에서 연기의 그을음으로 이루어지는 조형의 체계임을 새삼 확인시켜준다. 동시에 연기의 명암과 질료, 그리고 신체의 순수한 행위만을 인식시켜준다. 반면 그것은 시간의 흐름과 신체의 떨림, 반응 또한 암시한다. 사각형의 화면 안에서 작업을 하는 동안 무엇보다도 작가는 그림의 표면을 애무하고 쓰다듬는다. 그 밖을 나갈 수 없으니 갇힌 사각형의 공간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이 그림의 일이다. 그것은 또한 깊이가 부재한 오로지 표면뿐이고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절박한 피부인데 다만 그 피부는 색채와 그 색채와의 관계 아래 표면을 난반사시키는 이른바 네가티브(negative)화 하는 시각적 놀이에 관여한다 해서 묘한 일루젼(illusion)을 동반한다. 아울러 몽실 거리면서 흩어지는 연기는 숲이나 수면, 별이나 생명체 등을 연상시킨다. 또한 작품에서의 연기의 그을음은 농도의 차이에 따라 그것들을 풍부한 표정을 짓고 있다. 작은 연기의 단위들, 점에 유사한 것들은 그 자체로 자족적인 세계이자 동시에 무한히 확장되고 연쇄되어 나가는 복수화된 존재들이기도 하다. 개별적인 연기들이 모여 무한한 공간을 창출하거나 우주풍경. 또는 미시적인 존재를 암시한다.
예술작품은 작품으로 존재하면서 세계와 대지의 투쟁이라는 움직임을 일으킨다. 하이데거는 이 움직임이 극도로 격렬해질 때 작품은 가장 작품답게 존재한다고 말한다. 박병철의 작품은 작품존재가 아닌 작품의 사물적 존재자로서의 예술작품과 작품의 존재를 그리고 그럼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사물적 토대에 대한 물음에 답을 할 것이다. ■ 김인철
Vol.20130616a | 박병철展 / PARKBYUNGCHUL / 朴炳澈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