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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3_0130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30am~06:00pm
월전미술문화재단 한벽원 갤러리 WOLJEON MUSEUM OF ART HANBYEKWON GALLERY 서울 종로구 삼청로 83(팔판동 35-1번지) Tel. +82.2.732.3777 www.iwoljeon.org
煙氣에 깃들어 있는 현존의 고통스런 기억들과의 화해 ● 「연기로 그리다」는, 즉 연기(煙氣) 자신을 태움으로서 보여주는 이미지이다. 연기는 자신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그 모습이 속해있는 이 세계가 존재하고 또 지속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런 의미에서 연기는 현실을 창조한다. 연기(煙氣)란 화학적으로는 즉 무엇이 불에 탈 때에 생겨나는 흐릿한 기체나 기운이다. 미립자의 크기는 0.1∼1μm이고, 이보다 큰 입자를 진애(塵埃)라고 한다. 유기물이 불완전 연소할 때 나오며, 주성분은 탄소의 미립자(그을음)이고, 이 밖에 불교에서 연기(緣起)는 나아가 일체현상의 생기소멸(生起消滅)의 법칙을 연기라고 한다. "이것이 있으면 그것이 있고, 이것이 생기면 그것이 생긴다.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고, 이것이 멸하면 저것도 멸한다,"는 등으로 표현되며 patītyasamutpāda 어원을 가지고 있으므로, 연기는 자신의 소멸을 그리는 것을 넘어 또 하나의 자신을 발견하고 내적인 자신을 끄집어내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연기를 통해 작가의 심리상태와 자기애, 자기 행동, 자기 확인, 자기 연민 등의 다양한 내적 인식을 읽어낼 수 있다. 이런한 모든 현상은 무수한 원인(因:hetu)과 조건(緣:pratyaya)이 상호 관계하여 성립되므로, 연기는 그 정의상 원인을 재현한 것이다. 원인을 재현할 수 있기 위해선 내가 내 밖에 있어서 나를 대상화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불가능하므로 연기는 사실은 현실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나를 재현하고 싶은 불가능한 조건이며 욕망에 머문다. 이처럼 연기는 타자에게 보여진 나, 오인된 나, 익명적인 나의 부분적이고 파편적인 이미지를 가시화하고 있다. 작품속에 이미지가 실제의 나이겠는가. 연기로 그리려면 연기를 태워 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연기가 요구되고 자신을 태워 다룬 작품이어야 하니 원인과 직결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작가가 원인의 이미지를 그대로 태움과 동시에 내면적인 모습까지 돌아보게 하는 연기라는 존재는 우리가 어떤 존재 양상을 비추어볼 때 무엇의 태우는 이미지라 칭한다.「연기로 그리다」는 대상을 그대로 비추면서도 거꾸로 보여주면서 태우는 이미지의 양면성 안에서 대상에 대한 성찰과 고민을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 없는 것을 그리고 싶었다. 지난 작품을 정리하면서, 그리고 근래 작업을 하면서 든 생각이다. 무의식속에 고정관념처럼 박혀 있는 어떤 형태들이 나를 가두고 있었다. 고갱이 말년에 자신의 그림을 불태운 것처럼, 도공이 도자기를 깨버리듯이 몸에 밴 익숙한 것들을 깨버리고 싶었다. 물론 배움은 작가로서 첫 단추를 꿰는 것이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것이 장애가 됐다. 교육적인 틀. 감각에 갇혀 진짜 아름다운 것을 표현하지 못하고 고정관념에서 나오는 가시적인 형태에 회의가 들었다. 새로운 창조적인 그림에 대한갈망을 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그을림의 그림 어릴적 불장난처럼 낯설지 않은 발견인 동시에 자신의 몸을 태워 촛불이 그려주는 춤에 매료되었다. 태우면서 연기로 사라지는 동시에 종이에 흔적을 남기는 것. 새벽 첫 공기를 마실 때처럼 풀리지 않은 숙제의 답을 찾은 듯했다. 촛불은 그 모양도 붓을 닮았다. 당분간 이 촛불이란 붓으로 화면위에서 자유롭게 붓질을 하기를 멈추지 못할 것 같다. 내가 갈망하던 세상에 없는 것을 그리는 것이므로..." (박병철)
연기는 '결코 내가 촛불을 태우는 곳으로부터 볼 수 없다'라는 작가의 말은 연기의 일반적인 구조에 맞춰 바꾸어 볼 수 있다. 촛불이란 시각적으로 작가가 말하는 원인의 조건이라는 구조를 실현시키는 장르이다. 여기서 원인의 조건이란 타자가 보는 나를 내가 본다는 의미이다. 촛불은 타자가 보는 자신을 자기 스스로 바라보는 특별한 시각적 상황이다. 때문에 촛불의 연기는 시각적 인식에서 주체가 겪는 타자와의 원초적인 분리와 자기 형성 사이의 관계를 보는 것이다. ● 타자로서 살아가는 생활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잃게 된다. 그런데 그런 상황 속에서도 촛불에서 발견하는 자신의 모습만큼은 그것이 우리 자신일 것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촛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진정 주체의 모습일 수 없다. 촛불의 반영은 허구이지 주체의 실체는 아니기 때문이다. 주체란 자신의 의지와 통제에서 벗어난 일종의 타자와도 같다. 그것이 주체이자 동시에 낯선 타자로 분열된 그의 형상이다. 「연기로 그리다」에서 파편화된, 분열된 주체의 이미지는 불연속적인 기억과 현실 속에서 좌절한 자의 이미지이며 타자와 조화롭게 하나가 되는데 실패한 자의 이미지이기도 하다. 연기는 현재의 불완전한 기억과, 불완전한 이미지들 사이에서 부유하는 무기력하고 무능하고 불확실하고 허구적이고 망상적인 존재이다. 분열된 주체 이미지는 어떤 대상, 즉 주체를 괴롭히는 타자의 형상과 중첩되고 겹쳐져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욕망의 대상인 타자는 절대로 주체에 들러붙어 괴롭히고 분노를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주체에게 죄책감과 수치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작품으로부터 우리는 주체-타자의 욕망의 역학 속에 존재하는 고유한 주체의 정서라고 할 수 있을 만한 두려움, 히스테리적 반응, 성찰 심지어 명상 등의 느낌을 반추해 볼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게다가 연기에서 표출되는 에너지의 표현은 그 타자의 자체가, 주체의 자체와의 연결을 표현하는 필사적인 몸부림으로도 볼 수 있다. 이것은 지극히 현실 주체의 불완전한 측면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것이다. 지극히 현실적이면서도 또한 시간성이나 공간성, 실제성을 초월하고 있는 일련의「연기로 그리다」는 어느 작가보다도 더 설득력 있고 심오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주체-타자의 이미지, 그리고 그것을 더 움직이게 한다. ● 「연기로 그리다」는 연기에 그을린 모습으로 화폭 전체가 검은톤으로 그려져 있다. 생략된 형태로 강한 인상을 준다. 그을음은 마치 촛불에 자신을 태우며 사라진 영혼의 흔적이 대결이라도 벌이는 것 같은 모습으로 다가온다. 이렇게 영혼처럼 다가오는 상, 이상적인 이미지와 실체 그리고 자신의 영혼은 분열되고 파편화된 불완전한 상황 속에서도 우리는 지극히 불완전한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작가의 연기는 자신과 자아 사이의 괴리에서 영혼에 비춰지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연기로 그리는 과정은 자기반영성을 위한 전형적인 매개이며 타자를 상징한다. 작가가 촛불에서 자기가 아닌 타자를 발견한 이후, 촛불은 타자를, 타자의 시선을 경유해서만 나를 인식할 수 있는 존재론적 불안정성과 한계를 암시한다. 어쩌면 모든 촛불의 원형에 해당할지도 모를 연기의 그을음이 시사하듯 촛불을 태우는 행위 곧 자기반성적인 행위는 어쩌면 자기 내면의 욕망과 무의식, 즉 타자(때론 자기 자신에게 마저 낯선, 그리고 타자의 시선이 내재화된, 자기 내면에 숨겨진)에 맞닥트리는 경험일지도 모른다. 이런 점과 관련하여 작가의 작품에서 실존과 자신의 욕망의 문제는 어쩌면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른다. 작가는 그을음 이미지가 실제의 자신이라고 믿는다. 이것이 주체가 주체로 되는 가장 기본적인 근거가 되는 확신이다.
따라서 작가의「연기로 그리다」에서 욕망의 문제를 다루고자 한 것은 실존적 자아를 확인하기 위한 무의식으로의 잠행이자 불행한 기억과의 화해를 모색하려는 태도일 수 있다. 특히 그가 살고 있는 사회의 전체성을 의미하는 것이며, 그의 기억 속에 파편화된 고통, 갈등, 소외 등과 같이 내면에 잠재된 불행한 기억들을 정렬화하려는 의도로 해석해 볼 수 있다. 또한 작가의 기억 속에 유폐된(?) 고난과 현실의 기억들, 고난 속에서 피어난 욕망의 그림자들로 채워져 있다. 그래서 그의 연기에 깃들어 있는 현존의 고통스런 기억들과의 화해하려는 시도이자 사회 현실에 대한 욕망의 흔적들을 불러내는 빛을 볼 수 가 있는 것이다. 작가의 연기는 자신의 고통스런 기억의 파편들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키려는 의지의 소산으로 볼 수 있다. (2013.1.20) ■ 김인철
Vol.20130130c | 박병철展 / PARKBYUNGCHUL / 朴炳澈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