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VRLND # 003 : MONUMENT

백승민展 / PAIKSEUNGMIN / 白承玟 / painting   2013_0614 ▶ 2013_0714

백승민_The Insignia of DIVERLAND_캔버스에 잉크젯 디지털 프린트_50×50cm_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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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63스카이아트 미술관 12회 MINI exhibition

관람시간 / 10:00am~10:00pm / 입장마감_09:30pm

63스카이아트 미술관 63SKY ART GALLERY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60번지 63빌딩 60층 Tel. +82.2.789.5663 www.63.co.kr

63스카이아트 미술관은 2012년부터 한국 현대 미술을 이끌어나갈 역량 있는 작가들을 지원하는 63스카이아트 미술관 MINI exhibition을 진행하고 있다. 매년 작가를 선정하여 릴레이식 개인전을 열고 있는데 2013년 네 번째는 백승민 작가의 개인전이다. 서울대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동대학원에서 서양화 전공 과정을 수료한 백승민은 본인의 관념 속에 존재하는 텍스트로 작성된 가상의 국가에 대한 내용을 이미지로 구현하는 작가이다. DVERLAND(디벨랜드)라는 허구의 국가에 대한 전반적인 체계와 세부적인 이야기 그리고 국가 디자인 등을 작업의 주요 모티브로 하고 있다. 작업은 세 단계를 거쳐 이루어지는데, 첫 번째는 가상의 국가에 대한 내용을 텍스트로 만들고, 두 번째로 텍스트를 이미지화 하는 작업으로 내용을 드로잉을 통해 이미지로 풀어 나가며, 마지막으로 드로잉을 바탕으로 계획을 시각매체로 구체화한다. ■ 63스카이아트 미술관

백승민_The MONUMENT #1_캔버스에 잉크젯 디지털 프린트_170×100cm_2013
백승민_The MONUMENT #2_캔버스에 잉크젯 디지털 프린트_150×90cm_2013

지나다가 백승민의 그림이 새겨진 인쇄물을 봤다면, 한 장 가져가려고 집었을지도 모르겠다. 백승민은 대번에 시선을 사로잡는 화려하고 정교한 그림을 그린다. 가방에 넣기 전에 한 번 더, 당신은 처음보다는 가까이에 두고 더 자세히 볼 텐데,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고 싶어진다 해도 당신의 변덕을 탓할 필요는 없다. 네온사인에, 첨탑에, 초고층 빌딩에 시선이 가는 건 내용이 아닌 웅변이라는 형식 때문이다. 다만 인쇄물을 "들었을 때는 당신 마음이었을지 몰라도 내려놓을 때는 아니다." 백승민의 웅변은 성량으로 주목을 끌지만, 정작 성량에 이끌려 앞으로 내딛은 한걸음보다는 마침내 가까이에서 그림을 보고 나서 내딛을 한 걸음이 더 중요하다. 처음 『유희왕』 카드를 손에 쥔 아이들의 선택은 평행으로 움직이는 것이었다. 『유희왕』은만화를 기반으로 한, 한때 아이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 카드게임이다. 아이들은 마법 카드를 손에 넣었음에도 몬스터 카드나 함정 카드까지 갖고 싶어 했다. 각각의 카드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어느 정도 자연의 형상을 모방했으나 어쨌든 이형의 존재들이었다. 백승민은 기념물, 화환, 장식장을 연상시키는, 결국은 다른 세계의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형상을 그린다. 하지만 아이들이 『유희왕』 카드를 좋아한 건 형상 때문만은 아니다. 『유희왕』 카드로 대결을 벌이는, 그 안에 숨겨진 이야기가 있었다. 백승민은 이야기를 숨겨놓고 짐짓 『유희왕』 카드인 척 한다. 『유희왕』 카드처럼 독립적인 카드를, 즉 독립적인 세계를 평행시켜놓은 구성은 이번에도 유효하다. 그중에서도 기존의 'MASTER PLAN' 시리즈와 'TRIPTYCH', 'SCENE' 시리즈에 더해 새롭게 선보이는 'MONUMENT' 시리즈에 주목한다.

백승민_The MONUMENT #3_캔버스에 잉크젯 디지털 프린트_60×60cm_2013

『유희왕』 카드는 그 형식만이 아니라, 아이들이 향유한다는 점에서도 백승민의 작업과 관계있다. 백승민은 이 '기념물'을 쌓는 재료로서, 인형과 절단된 신체, 피와 잼을 동일시한다. 오로지 아이들만이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을 수 있다. 천진함은 윤리 바깥을 긍정할 수 있는 근거 가운데 하나다. 덴마크의 청소년 소설 『아무것도 아니야』에는 내내 "세상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주장하는 피에르 안톤에게, 세상이 의미로 가득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아이들이 쌓아올린 '의미의 산'이 등장한다. 의미의 산은 아이들이 돌아가면서 각각 가장 소중한 것을 더한 '기념물'이다. 이 기념물에는 초록색 샌들이나 덴마크 국기, 햄스터도 있지만, 절단된 검지 손가락, 목이 잘린 강아지, 처녀성을 잃으면서 흘린 피를 닦은 손수건도 있다.

백승민_TRIPTYCH #7-Cabinet of curiosities_캔버스에 잉크젯 디지털 프린트_50×50cm×3_2013

'의미의 산'이 그렇듯이 'MONUMENT'의 구성물을 계열화하려는 시도 역시 아마도 실패할 것이다. 백승민은 아이들처럼, 다만 도예가가 그릇을 만들듯이, 목수가 나무를 깎듯이 '의미의 산'을 만들었다. 수공예 작가들과 비교하는 것은 형태보다 상징을, 작품보다 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다는 뜻이다. 백승민은 불가해한 것을 손님을 위해 정돈해서 내놓는, 대체로 원만한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믿는 윤리가 아니라 최대한 숨김없이 꼼꼼하게 표현하는 데 전력을 다하는 방식의 윤리를 택했다. 줄곧 회화만을 고집하다가 처음으로 디지털 작업을 시도했는데, 단순히 붓이 태블릿 펜으로 바뀐 게 아니라 태블릿 펜으로만 할 수 있는 더 세밀하고 더 웅장한 화면을 만든 것만 봐도 그렇다. 그러므로 당신은 백승민의 그림의 첫 인상에 속은 게 아니다. 누구나, 큰 집, 더 큰 돈, 아주 큰 세계에 현혹된다. 하지만 도약할 때, 디딤판이 어디에 있는 뭔지도 못 보는 건 위험하다. 백승민의 그림 속에서 그 거대한 세계가 뭘로 이뤄졌는지, 눈이 아플 만큼 다채로운 대상들에서 들던 소름끼치는 이질감이 뭐였는지, 잊지 않았으면 한다. 당신이 그림 앞에서 내딛을 한 걸음이 인간과 문명에 놀라서 하는 뒷걸음질이 아니라 인간과 문명을 꿰뚫는 전진이었으면 한다. ■ 정우영

Vol.20130615g | 백승민展 / PAIKSEUNGMIN / 白承玟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