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과 을의 변증법 ●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김정현은 『Survival Game』 연작과 허지훈과의 공동작업인 「Protocol」을 통해 이 오래되고도 유명한 경구를 다음과 같이 재해석한다. '인간은 사회적 상품이다.' 그는 다른 사람을 밟아서는 경쟁, 사회적 예절이라는 미명 하에 갖추게 되는 위선을 과장된 극적 상황을 연출함으로써 표현한다. 현대 사회의 보이지 않는 권력 구조와 폭력, 그에 따른 억압을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자세로 관찰해 온 작가의 시선이 이번 작품들에서도 여전히 날카롭다. 사회에 대한 시선의 일관성 속에서 미묘한 관점의 변화도 포착된다. 지금까지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전체 속의 부분으로서 짜인 틀 안에 기계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전체가 지향하는 목적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인간군상이다. 『Survival Game』 연작과 「Protocol」에서는 군상이 개인으로 개별화되어 잠재적 힘을 갖기 시작한다. 개인들은 사회구조라는 거대한 틀에 조금씩 균열을 내고 있다.

김정현_Protocol_1_단채널비디오, CRT 모니터_2012

『Survival Game』은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강한 비판이다. 진열된 다양한 상품들이 비교되고 골라지듯, 인간들도 진열되고 비교되며 선택된다. 사회 속에 진열된 인간들은 선택되길 갈망하면서 다른 이들과 경쟁한다. 남들보다 앞서기 위해 소위 스펙을 만들고 외모를 관리한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을 자기계발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은폐된 인간의 상품화와 인간이 상품으로 전락하는 순간에 대한 고찰이 『Survival Game』이다. 외국인 노동자에서부터 남학생에 이르는 다양한 사회계층들이 『Survival Game』 연작에 등장한다. 남학생과 같은 계층은 우리에게 인간의 상품화가 사회적 소수자들에게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인간의 상품화는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자기계발을 통해 사회에서 승자로 살아남기 원하는 우리 모두에게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인력시장에서 건장한 신체의 남성이 팔리고 단란주점에서 젊고 아름다운 몸매의 여성이 팔린다. 이러한 현상은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것일 뿐, 다양한 이름들로 정당화된 사회적 관계의 속내를 살펴본다면, 우리가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을 상품의 구매자로 여기지만 사실 구매당하는 하나의 상품일 뿐이다.

김정현_Survival Game #1_단채널 비디오_2011

무대로 걸어 들어온 사람들이 정면을 향해 선다. 약간은 긴장한 모습들이다. 무엇인가 일어나기 직전의 긴장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사람들의 행동은 무척 자연스럽지만 그들의 배경은 일상적이지 않다. 『Survival Game』에서 사람들은 일반 상점에서 볼 수 있는 상품의 진열 방식이 아닌, 미술관이나 박물관의 작품 진열과 가까운 형식으로 전시된다. 즉 상황 판단을 가능하게 해주는 주변 배경이 모두 제거된 검정 배경 위에 사람들이 서 있다. 『Survival Game』이 중세시대 종교화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것은 이와 같은 형식에서 온다. 일렬로 늘어선 사람들과 사라진 배경 속에서 사람들은 사도와 같은 모습이다. 시각적 형식만 본다면 화면은 초월적인 숭고미까지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점차 사람들이 현실의 맥락과 연결되면서 바닥으로 떨어진다. 무대에 올라선 사람들은 주변의 맥락과 분리되어 있지만 관람객은 이내 그들이 어떠한 상황에 처해 있는지를 파악한다. 계층에 따른 사람들의 전형이 존재하기 때문에, 관람객들은 사람들의 나이, 옷차림, 인종 등으로 어두운 배경 뒤의 상황을 상상할 수 있다.

김정현_Survival Game #2_단채널 비디오_2011

무대 위 상황에 대한 순간적인 판단이 끝나면 관람객들은 각 사람에 대한 분석으로 들어간다. 작가 즉 카메라의 위치는 철저하게 탐욕스러운 구매자의 위치다. 관람객들은 카메라와 동일한 위치에 서게 되고 따라서 쉽게 구매자의 시선과 일치된다. 갑자기 알 수 없는 미세한 흔들림이 일어난다. 관람객은 순간 작품 속 누군가와 자신을 동일시하게 된다. 갑자기 폭력을 행사하는 자와 폭력에 희생당하는 자 사이를 오가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에 관람객은 어떤 시선과 동일시하게 될까? 누구나 갑의 위치에 자신을 놓기를 원할 것이다. 계약이라는 그럴듯한 제도 속에서 갑은 을을 사서 마음껏 부려먹는다. 그러한 갑을 포기할 사람은 없다. 관람객은 갑의 위치에 자신을 애써 고정시키고 위안을 삼을지도 모르겠다. 『Survival Game』은 그러한 거짓 위안을 버리라고 한다. 아무리 관람객이 갑의 위치와 동일시 하려해도 계속 을의 바닥으로 미끄러진다. 그렇다면 차라리 을을 선택하는 것은 어떨까? 그리고 을의 역할을 화면 속 인물들처럼 성실히 수행하는 것이다.

김정현_Survival Game #3_단채널 비디오_2011

관람객들이 수동적 을의 위치를 선택하면서 거대하고 단단한 사회 구조에 균열이 생길 가능성이 내비쳐진다. 갑에게 오히려 억압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관람객은 약 2분 동안 앞에 놓인 사람들을 바라보게 된다. 이러한 상황은 관람객에게 분석이 오히려 강요되는 느낌이다. 오히려 선택되어야 하는 상품이 선택을 하라고 강요한다. 정면을 응시하고 가벼운 움직임으로 자신을 가다듬는 상품들이 강압적으로 느껴지면서 관계의 균열이 발생하고 전치가 일어난다. 이로써 갑이 최상인가라는 『Survival Game』의 질문이 유효해진다. 「Protocol」에서도 개인들이 지닌 잠재적 힘이 드러난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위선의 측면을 표현하는 「Protocol」은 끊임없는 반복이라는 형식으로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보여준다. 검은 배경 속에서 양 옆에 앉아있는 사람들에게 같은 속도로 인사를 반복하는 사람들은 화면에 리듬감을 주는 하나의 단위다. 좌우로 끊임없이 고개를 숙이는 사람들의 모습은 인사라는 사회적 약속으로 비춰지기보다 전체의 율동감과 시각적 재미를 더해주는 요소로 보인다. 개인들이 전체 속 부분으로 전락하여 개별성이 사라지면서 기계와 같이 움직이는 사람들의 소외가 표면으로 드러난다.

김정현_Survival Game #5_단채널 비디오_2011

반복 속에서 서서히 사람들의 위선에 가득 찬 표정이 떠오른다. 인사를 할 때 웃던 표정은 정면을 바라보면서 차갑게 변해버린다. 관람객은 끊임없는 반복 가운데 전체 속에서 개인들의 표정에 집중하게 된다. 반복의 형식이 전체의 구조를 지탱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서서히 균열을 낸다. 사라져 버린 개인이 다시 등장하고, 이들이 수동적 을의 위치를 성실히 반복적으로 수행함으로써 사회의 구조가 서서히 무너지고 있는 듯 보인다. 『Survival Game』 연작과 「Protocol」은 현대사회의 단면을 극단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작품에서 보는 것과 같이 극단적 모습으로 우리는 사회를 경험하지는 않는다. 그러한 측면 때문에 『Survival Game』과 「Protocol」은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작품이 비현실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가 은폐되고 왜곡되어 있기 때문에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것일 수도 있다. 베일에 싸인 실제를 현실로 받아들이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지금이며, 은폐된 실제가 베일을 벗고 드러난 것이 바로 김정현의 작품이다. ■ 김연주

김정현_Survival Game #6-2_단채널 비디오_2011

The Dialectics of the Buyer and the Bought ● Artist Jeong-Hyun Kim attempts to reinterpret an ancient and well known quote of Aristotle, "Human beings are social animals." into his own perception "Human beings are social products.", through his work series titled Survival Game and Protocol a joint collaboration with artist Ji-Hoon Heo. The hypocrisy of dog eat dog competition of people shrouded in the euphemism of social manners is expressed by Kim in exaggerated dramatic situations. In his works, Kim takes the position of an objective and neutral observer of the invisible power structure and violence of society, and its resulting oppression. ● A slight change can be noticed in his recent observation of society. Characters of his previous works were usually an inclusive element of a whole, moving together like machines within a predetermined frame. They represent a mass of people living in conformity towards a collective goal. However in Protocol and his new series Survival Game, the mass is broken down to individual identities, each possessing its own strength, and showing that individuals are beginning to create discord with the gigantic frame of social structure. ● Survival Game is Kim's bold critique on our capitalistic society. Human beings are displayed, compared and selected, just like the various rows of displayed products in stores. People of society tend to compare themselves with others, desperately yearning to be selected. They strive to better their resumes and make up their appearances in order to gain a step ahead, all beautifully wrapped in the pretense of self-improvement. Survival Game is the artist's contemplation on such disguises of commercialization and on the downgrading of people as selectable products. ● The series Survival Game represents various social strata, from foreign laborers to male students. The inclusion of male students makes a point that commercialization of human beings is not limited to the social minorities but is a universally applicable phenomenon of survival of the fittest in a capitalistic society, using self-improvement as a tool. Construction sites bid for men with strong sturdy bodies and adult venues sell young beautiful bodies of women. But these are merely the visible layers, and diving deeper in we will find many other similar situations rationalized as an accepted social relationship. People believe themselves to be consumers of products but in fact they themselves are mere products ready to be bought. ● As seen in Kim's works, people walk out on the stage, with hints of nervousness about them. Viewers can feel the exuding tension, the kind that is felt immediately preceding an action. The actions of the people are natural but the background is not. In Survival Game the people in the scene are not displayed in the usual product rows generally seen in stores but are more like a display in an art gallery or museum. People are made to stand in front of a black screen that has all contextual information necessary for circumstantial awareness removed. ● Perhaps this is the reason why Survival Game gives off the impression of a medieval religious painting. People standing single file in front of a non-existent background makes them appear like religious disciples. Just from the point of view of visual style, the displayed scene calls forth even a somewhat transcendent sublime beauty. But as you begin to link the subjects to the context of reality, they become downgraded. While the subjects are separated from their environment as there are no contextual information in the background, based on the person's age, attire, ethnicity, etc, viewers begin filling in the dark background with the respective social stratum of each subject from imagination. ● Following a momentary assessment of the stage, viewers begin to analyze individual subjects. The position of the artist, hence the position of the camera, is an utterly avaricious seat of a Buyer with the power to select. Viewers take in the scene from this position of the camera, easily trying on the shoes of a Buyer. And in that moment, a subtle trembling arises, as the onlooker realizes he or she can identify with one of the subjects in the scene. With that link established, the viewer assumes the position of a victim of violence and the perpetrator all at once, going back and forth. ● Who will the viewers identify with at the end? Most would want to end with themselves on the top end of the hierarchy. In a rather respectable social system called a contract, the Buyer pays for and freely takes advantage of the Bought. Most would not relinquish this position. Most viewers may forcefully sit themselves on that higher seat and feel comforted. But what Survival Game confronts and suggests to viewers is to throw away such false comfort, because no matter how hard the viewer may stay atop, they will eventually slip down the hierarchy to the position of the Bought. If you cannot fight it, why not choose that lower position yourself? And play the part beautifully, as the subjects in the scene are doing so. ● By viewers opting to choose the position of the Bought, the potential for this gargantuan and sturdy social structure to fissure becomes visible, because the Buyer becomes the position of the oppressed. Viewers must observe the people in the scene for a period of two minutes. In such situations, analysis is forced upon the viewers and the selectable products demands the Buyer to make a selection. The "products" who are lightly straightening themselves with simple movements while staring straight ahead brings forth a sense of oppression to the viewer, disrupting the usual hierarchy of the relationship. And with this, the question of the Survival Game, of whether the position of the Buyer is indeed the best position, becomes valid. ● In Protocol, the potential strength of individuals comes to light. A piece that portrays the hypocritical side of human relationship, Protocol uses the theme of perpetual repetition to show the relationship between human beings. Amidst a dark background, people sitting side by side bow their heads to each other in an act of greeting. Greeting in synchronized speed, they become a rhythmic unit of the scene. But the endless bowing of heads feels more like a dance and a visual amusement, and less like a social promise of a greeting. People lose their individualities and become mere parts of a whole, revealing the alienation of the people who move together like machines. ● And in that repletion, the hypocritical expressions on the people's faces becomes noticed. The smiling faces during a greeting drops cold as they face ahead. The repetitive motion brings viewers to focus on these expressions. The repetition is not the glue that holds the structure together as a whole but acts as dismantling element. The disappeared individual returns, and their willful motivation to earnestly and repetitively fulfill their role of the Bought shows glimpses that the structure of society is slowly crumbling down. ● Protocol and the series Survival Game display the cross section of the modern society in an extreme fashion. We do not experience our society as it is shown in the exhibits. And for that extreme factor the works can seem quite unrealistic. It is perhaps that the work itself is not unrealistic but it may seem that way because in actuality the true face of society is veiled and distorted. We accept the disguised version as reality and Kim's exhibit is reality with blinds removed. ● Generally in the world of recreation, a scene displayed plays the role of concealing reality. In both Protocol and the series Survival Game, viewers move back and forth between the viewpoint of the camera and the subjects in the scene thereby creating discord, revealing the true social structure and causing it to fall apart at the same time. By creating a moment of interchanging of hierarchal positions of the Buyer and the Bought, Kim takes on a role of a social disruptor, a change from his usual societal observer or at times a whistleblower. This is why his works are not those that stop at being mere criticism on modern society. ■ KIMYEONJOO

Vol.20130610b | 김정현展 / KIMJEONGHYUN / 金正炫 / mixed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