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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3_0605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30am~06:30pm
노암갤러리 NOAM GALLERY 서울 종로구 인사동 133번지 Tel. +82.2.720.2235~6 www.noamgallery.com
뱀, 회화의 소재로 삼기엔 쉬운 대상은 아니다. 그래서인지 뱀을 그리는 사람은 그렇게 흔한 것 같지는 않다. 뱀을 그린 작가들로 '원죄'와 '교활한 뱀'의 미켈란젤로, '뱀을 다루는 여인'의 앙리 루소, '물뱀'의 구스타브 클림트 등이 떠오른다. 그러나 이런 저명한 작가들도 뱀들을 멀리서 보듯 그렸거나 여러 소재들 중 하나로 선택했을 뿐이다. 더욱이 김태인처럼 뱀의 그 징그러운 살갗을 'Close-Up'해서 그리는 작가는 없어 보인다. 그녀의 뱀은 몸뚱이가 화폭 하나 가득 들어차 있고, 비늘 하나하나가 왜곡되다시피 확대되어 있으며, 실제보다 더 환상적인 색감으로 우리 눈을 멀게 한다. 뱀을 아주 가까이에서 볼 때 그 오묘한 형태의 반복적인 문양에서 느껴지는 생동감이 작가 김태인이 체험하고 있는 삶의 흔들림에 던지는 화두이다. ●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뱀의 모습은 이야기 속에서 이성적으로 개념화된 것들이다. 인간 여자를 꿰어 남자와 함께 선악과를 따먹게 했던 악의 상징이거나 뱀 머리카락을 가진 메두사의 모습이거나 용이 되어 승천하지 못한 안타까운 이무기의 모습들이다. 그러나 김태인은 자신의 그림을 통해 이런 류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다. 그녀는 우리들이 만들어냈던 뱀에 대한 이미지와 본능적인 혐오감을 거부하며, 오히려 뱀 그 자체를 보다 충실히 바라봐 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 뱀을 정말 가까이에서 그 표면까지 하나하나 바라본 적이 있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뱀을 가까이에서 자세히 바라보는 것, 그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단 본능처럼 느껴지는 뱀에 대한 혐오감이 방해한다. 미끄러지듯 근육을 움직이며 땅을 스르르 흘러가는 모습은 엽기적이며, 눈이 아릴 정도로 반복되는 뱀 비늘의 문양은 우리를 소스라치게 만든다. 뱀에 대한 경계심은 진화 과정에서 인간의 유전자 속에 박혀 버렸다고 하는 일부 과학자들의 주장도 생겨날만하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태인의 눈은 뱀들을 '사랑'스럽게, 아니 '사람'스럽게 바라본다. 그녀의 눈은 뱀을 천진난만한 어린 아이로 보며, 때로는 수줍은 사춘기 소녀로 보며, 때로는 관능미 넘치는 여인으로 보며, 때로는 질풍노도의 젊은이로 보며, 그리고 때론 황혼을 맞이하는 주름살 잡힌 노부부로 바라본다. 한마디로 말하면 그녀의 눈은 우리들이 본능이라고 믿는 뱀에 대한 혐오감을 해체한다. 이제 그 혐오감은 더 이상 선험적인 혐오감이 아니라 그녀의 눈 속에서는 폐기되어야 할 낡은 도그마 중 하나일 뿐이다.
사실 뱀에 대한 혐오감은 신의 저주에 의해서 아주 쉽게 정당화되기도 한다. 원죄를 저지른 원인이 모두 치사하리만큼 뱀에게로 돌려진다. 우리가 뱀을 저주하리만큼 혐오하는 것도 당연한 것이라고까지 한다. 그러나 우리가 뱀을 똑바로 보지 못하는 것은 뱀이 우리들의 위선을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 그런 까닭일까? 작가의 눈에 뱀은 인간의 위선을 가려주는 희생양으로 보일뿐이다. 특히 작품 「CostumeⅠ, Ⅱ」는 작가의 이와 같은 시각(視覺)이 잘 담겨 있다. 이 작품을 보는 많은 감상자들은 아마도 젊은 여인의 몸매에 매료될 것이다. 하지만 그 매료됨의 뒤편에 수치심을 가려주고 있는 뱀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아주 쉽게 망각될 수 있다. 혹시 김태인의 이 작품을 보고 한 걸음 더 다가가고 싶어진다면, 당신은 여성의 몸매에 매료되어 그랬는지 아니면 몸을 감고 있는 뱀을 더 자세히 보고 싶어서 그랬는지 자문해 보길 바란다. 만일 뱀을 더 자세히 보고 싶어서 그랬다면 아마도 애정 어린 눈길로 뱀을 위로하려는 그녀와 공감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당신은 그녀의 뱀을 통해 나 자신에도 삶에 대한 따듯한 사랑이 있었음을 재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냉혈 동물인 뱀을 '클레오파트라의 피 먹은 양 붉게'(서정주, 1936, 화사(花蛇).) 그리지 않고 밝고 따듯한 색감으로 표현한 작가의 애정 어린 의도를 이해하는 셈이 될 것이다. ● '사람'스럽게 보이는 그녀의 뱀들을 보고 있노라면 한 번 더 놀라게 된다. 그것은 그녀의 뱀들이 이제 자신의 자화상처럼 느껴지게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뱀이 예쁠 수가 있는가?'라는 탄성은 나르시시즘적인 도취 때문이 아니라 그동안 잊고 있었던 자신의 순수성을 재확인하게 되기 때문에 나온다. 어린 시절의 순수함을 어느 순간부터 망각한 채 일상생활에 젖어들어 버린, 그래서 원래 순수하지 않았다고 착각했던 우리들에게 다시금 따듯한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김태인의 뱀이 날카로운 눈빛을 가졌거나 혀를 날름거리고 이빨을 드러내 먹이를 삼키려고 하지 않는 것은 그녀의 눈에 비친 인간이 마냥 그런 식으로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녀의 뱀은 오히려 그런 삶의 진면모들을 끌어안으려는 어머니의 따듯함으로 승화되어 있다. 그래서 '그녀의 뱀'은 화폭 속에 꿈틀거리고 화려한 색깔을 지니고 있다. 또 아이의 순진한 눈망울 같기도 하고 때로는 리본을 달고 수줍어하고 바람결에 나부낀다. 그녀의 뱀이 작고 가녀린 뱀들이 아니라 우리에겐 더 징그럽게 보일 수 있는 커다란 이국적인 뱀들이었다는 것이 아이러니할 정도다. ● 뱀, 그것은 징그러우면서도 또한 어쩔 수없이 한 번 더 보고 싶은 존재이다. 미당(未堂)이 화사(花蛇)에서 읊었던 것처럼 '돌팔매를 쏘면서, 쏘면서, 사향 방초길, 저놈의 뒤를 따르는' 그런 존재이다. 눈길을 돌려 돌아서고 싶지만 뭔지 모르게 다시 한 번 더 보고 싶은 묘한 동물. 뱀에 대한 이와 같은 인간 호기심의 이중성은 작가 김태인이 작품 소재로 삼고 싶어 했던 결정적인 이유였을 것이다. ● 그런데 언어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시상(詩想)과는 달리 시각적 상상력을 자극해야 하는 미술가의 부담이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시각적으로 표현된 뱀은 너무도 자극적이어서 언어로 표현된 뱀보다 더 강하게 감상자들의 상상력을 몰아세우기 쉽다. 때론 극단적인 반응이 나올 수도 있다. 인간의 감각 중에 가장 민감한 것이 시각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 까닭에 전투에 임하듯이 큰 맘 먹고 다가온 감상자들의 마음을 어떻게 시각적으로 누그러뜨릴 수 있는가가 작가의 고뇌가 아니었을까? ● 그래서 선택한 것이 참을성 있게 붓을 들어 칠하고 손으로 물감을 비벼서 색감을 펴는 작가만의 표현 방법이었다. 유화 물감이 가질 수밖에 없는 두터움은 작가가 해체하고 싶었던 또 하나의 '굴레'(김태인의 지난 개인전 주제 '찬란한 굴레'에서 빌려온 표현이다.)였다. '이 시대에 유화가 과연 어울리는가?'라고 묻는다면 그녀는 당당히 '인간의 '손'만큼 좋은 붓이 있는가?'라고 반문할 것이다. '유화의 무거움을 손으로 비벼 누르는 것'. 김태인의 대답이다.
가까이에서 본 뱀의 두드러진 비늘을 그런 식으로 하나하나 채색하는 것은 인내심을 요하는 지난한 작업일 수밖에 없다. 이것도 아마 그녀의 '굴레'였을 것이다. 화가에게 작업은 삶 그 자체라고 하지 않았던가? 끊임없이 계속되는 붓질, 그리고 그녀의 손자국들 ……. 각고면려(刻苦勉勵) 끝에 완성해낸 두보(杜甫)의 시가 떠오르는 것은 그녀의 작품을 감상하며 작업 과정이 어떠했을지 상상해 본 사람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 '만일 작품이 신뢰할 만한 가치를 지닌다면, 그것을 만든 영혼이 진정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셈이다.'라고 말한 러스킨(Ruskin, J.)(John Ruskin(1819 ~ 1900), 영국 예술 비평가.)의 표현대로 작가의 영혼과 작품의 가치는 일치하게 마련이다. 그렇다고 해도 김태인의 영혼이 무엇인지, 그녀의 작품이 가진 가치는 무엇인지를 한마디로 말하긴 쉽지 않다. 그것을 확인하는 것은 작가의 몫도 평론가의 몫도 아니다. 그것은 결국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들 개개인의 몫이 될 것이다. 그런 면에서 그녀의 뱀들은 롤랑 바르뜨(Roland Barthes)의 표현을 빌면 하나의 '텍스트'(Te×t)(Roland Barthes, 1971,「작품에서 텍스트로」. 그는 작품(work)과 텍스트(te×t)를 엄격하게 구분한다. 작품(work)은 작가의 의도에 따른 하나의 해석만 존재하는 폐쇄적 구조를 지니지만, 텍스트는 감상자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개방적 구조를 지닌다. )라고 할 수 있다. 작가의 의도에 따라 하나의 해석밖에는 존재하지 않는 폐쇄적 구조로서의 '작품(Work)'이 아니다. 오히려 텍스트로서의 뱀들은 닫혀있는 것이 아니라 감상자들의 해석을 통해 다양한 의미를 갖게 될 열려있는 뱀들이다. ■ 송영호
Vol.20130605b | 김태인展 / KIMTAEIN / 金兌姻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