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우시절(好雨时节) A Good Rain Knows

이영조展 / LEEYOUNGJO / 李永照 / painting   2013_0424 ▶ 2013_0430

이영조_익명인-괴우(anonym-showers of organic matter)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2.7×53cm_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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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3_0424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목인갤러리 MOKIN GALLERY 서울 종로구 견지동 82번지 Tel. +82.2.722.5066 www.mokinmuseum.com

자기 치유를 향한 미적 수행 - 이영조의 회화적 익명인과 개념 ● 1. 한 작가에게 있어 일관된 주제의 탐색은 그가 구축하려는 미술세계의 고갱이를 더 단단하고 투명하게 하려 함일 터. 더군다나 시대와 현실을 모판에 두고 변화무쌍한 삶의 단면들을 몽타주하듯 길어 올리는 작가에게 있어서는 그 예술노동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우리가 종종 어떤 예술가의 예술 세계와 작품을 '유리알 유희'라고 상찬하며 탄복하는 이유는 그 미학적 세계의 아름다움이 쉽게 성취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작가 이영조가 17년 가까이 핵심 화제(畵題)로 삼고 있는 '익명인(匿名人)'을 미학적 개념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의 많은 작품들 중 어느 하나의 주제가 '익명인'이었다면 그것은 순전히 '익명인'이라는 사전적 개념에 충실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작품 전체를 '익명인'에 두었고 또한 그 '익명인'으로부터 전반적인 작업의 첫 사유를 터트렸으니, 문제가 달라도 한참 다르다. 다시 말하면, 그는 '익명인'을 미학적 사유의 중심에 두고 그것으로부터 수없이 다양한 회화적 이미지를 탄생시켰고 몽타주했다. 그렇다면 그의 무수한 익명인의 이미지들은 어떤 의미로 가득한가?

이영조_익명인-괴우(anonym-showers of organic matter)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2.7×53cm_2012

2. 익명(匿名)은 "이름을 숨긴다"는 뜻이니 익명인은 "이름을 숨긴 사람"이란 뜻이겠다. 이름을 숨겼으니 익명의 그는 한마디로 정체불명의 사람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전적이면서 동시에 사회 통념적인 의미 이상의 개념을 확보하지 못한다. 익명과 익명인에서 중요하게 살펴야 할 것은 '이름(名)'에 있다. '이름'의 들고남에 따라 개념의 편차는 크게 달라진다. '이름(名)'이 빠진 '익인(匿人)'은 목적어가 빠진 상태로 그저 "숨어버린 사람"일 뿐이다. 이름을 남겨둔 채 숨어버린 사람. 그는 왜 숨어야 했을까? '익'의 의미로 살피면 그는 죄가 있는 사람이다. "숨길 익(匿)"은 1)숨기다, 감추다 2)감추고 나타내지 아니하다 3)숨다, 도피하다 4)숨어 나타나지 아니하다 5)숨은 죄 6)드러나지 아니한 죄악 등과 같은 뜻으로도 쓰인다. '익(匿)'이 온전한 단어를 이룰 때는 '은닉(隱匿)'과 동의어로 사용되는 것을 상기해 보라. 그러니 '익인'은 수배자 또는 도망자의 다른 이름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익'이 빠진 '명인(名人)'은 완전히 다른 의미이다. 명인은 한 분야에서 기예의 경지에 오른 장인을 말한다. 명인은 가장 명예로운 이름이기도 하다. 이렇게 볼 때, 어떤 사람이 자신의 '이름을' 숨겼다는 것은 모호한 정체불명의 어떤 상태가 아니라 '존재자'로서의 자기 실존을 완전히 감췄다는 것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하이데거가 말한 존재와 존재자 구별론의 입장에서 보자면 말이다). 또한 익명인의 존재자는 그렇게 '이름'을 숨김으로써 자신의 존재조차 숨기려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영조_익명인-어설픈 위장(anonym-coarse covert)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1×60.6cm_2012

3. 이영조의 작품에서 화자(話者), 즉 익명인은 '등 돌린 사람들'로 표현되었다. 그림 속의 익명인들은 모두 뒷모습만을 보여주고 있다는 얘기다. 등 돌린 사람들의 뒷모습, 바로 그 모습들이 익명인의 존재자요, 존재들이다. 왜 작가는 뒷모습의 존재들로 익명인을 표현했을까? 익명인으로서 뒷모습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것의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 반대, 즉 뒷모습이 아닌 앞모습의 의미를 먼저 이해하면 쉽게 간파할 수 있다. 왜냐하면 미술사는 역설적이게도 '앞모습의 역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미술사에 등장하는 초상화나 자화상은 무수하다. 그리고 그 많은 초상화나 자화상은 앞을 보고 있다. 아니 그게 꼭 초상화나 자화상이 아닐지라도 그림 속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물화는 앞을 향해, 화면의 정면을 향해 열려있다(있게 하려는 것이 최소한의 회화적 윤리일 수 있다). 그러니까 작가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뒷모습을 그리지 않는 이상, 그림 속의 인물들은 측면일지라도 화면 밖을 향해 자신을 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연극배우가 무대 위에서 무대 밖을 위해 항상 열려있어야 한다는 법칙과 유사하다. 관객을 향해 등을 돌리거나, 보이거나, 뒷걸음치는 행위는 사건의 복선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 복선은 대체로 불길한 사건으로 이어진다. 관객으로부터 등을 돌린 '의도된' 행위는 음모의 어두운 그림자를 곧잘 상징하기 때문이다. 문광훈 충북대 교수는 「주체의 탈주체화, 카라바조의 그림하나」에서 자화상이란 자기제시이고 자기표현이며 자기증명이라고 말한 바 있다. 사람에게 있어 앞면(그것은 그야말로 등이 아닌 앞면일 수도 있고 구체적으로는 얼굴일 수도 있을 터인데, 핵심은 '얼굴'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즉 얼굴은 자기증명의 '이름'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영조의 등 돌린 사람들은 자기 증명을 숨긴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얼굴을 볼 수 없으니 그들이 누구인지를 우리는 영영 알 수 없을 터. 그러나 그렇다고 그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흥미롭게도 작가는 존재자의 뒷모습을 그려냄으로써 존재자의 실체를 완전히 숨기지 않았고, 또한 그렇게 함으로써 존재들이 처한 상황을 적시했다.

이영조_어설픈 위장(coarse covert)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30×30cm_2012

4. 그들이 처한 상황, 그들이 서 있는 어떤 곳, 그들이 보는 화면의 안쪽은 어디인가? 작가는 그들 앞에 옛지도를 펼쳐 놓았다. 옛지도의 부분과 전체를 화면의 부분과 전체로 이용하면서 익명인(들)을 배치했다. 익명인은 그림이 증거하듯이 지금 여기의 현대인들이다. 최소한 익명인들의 뒷모습은 멀지 않은 과거의 현대인들임에 틀림없다. 그러므로 화면을 구성하는 두 개의 이미지인 옛지도와 현대인은 낯선 조화일 수밖에 없다. 두 개의 키워드는 적절하게 혼합될 수 없는 상태에서 '합일(合一)'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익명의 현대인들과 옛지도의 지리적 경계선들과 지표들과 산야(山野)가 한데 어울린 불편한 합일. 자, 그렇다면 두 키워드의 '불편의 간극'은 어느 정도일까? 고지도 전문가 장상훈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은 지도란 자기 자신을 직접 그린 자화상과 같다고 주장한다. 그는 "지도에는 그것을 만든 사람들이 뿌리내려 살아 온 고장의 산줄기와 물줄기, 그들이 일구어 만든 고을과 마을이 그들 나름의 시선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그 지도를 통해서 자신들이 사는 세상을 이해한다. 이 때문에 오늘날 우리는 선인들이 만든 지도를 통해 그 시대 사람들의 삶과 생각에 접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얻는다. 옛 지도는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중요한 역사자료"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영조는 옛지도를 차용하면서 옛지도의 회화적 조형성은 물론 그것의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성조차도 고려했다. 그렇게 해야만 옛지도가 단지 회화적 오브제만이 아니라 장상훈이 주장했던 것처럼 "자신을 직접 그린 자화상"이라는 자기제시, 즉 문광훈이 말했던 자기표현이요 자기 증면인 자화상의 의미를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영조_익명인-괴우(anonym-showers of organic matter)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94×97cm_2012

5. 옛지도가 자기 증명의 자화상이라면, 익명인의 뒷모습은 '거울'을 보고 있는 자화상에 다름 아니다. 그들은 모두 그들의 과거라는 거울을 향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그렇듯이 작품 「익명인」을 보고 있는 관객들 또한 거울 앞에 서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이나 우리나 '옛지도'의 거울을 통해 '나'의 실체를 엿보고 있는 셈이다. 줄여 말하면, 익명인은 다른 누군가가 아닌 바로 우리, 즉 '나'의 나들이다. 그들이면서 우리이고 또한 나이면서 너인 그 모두들. 우리 모두는 등을 돌린 채 익명으로 서 있으나 실제로는 옛지도의 초상을 통해 '나'를 드러낸다. 나를 숨겨 나를 드러내는 미학적 전략을 통해 작가가 얻고자 한 것은 첫째, 소통이다. 둘째는 표현의 자유이고, 셋째는 치유이다. 그는 옛지도라는 '거울'을 통해 등 돌린 익명의 현대인들과 무언의 소통을 열고자 했다. 무수한 현대인들의 얼굴은 제각각일 터이지만, 그것들이 모여서 하나의 기표를 이룬 것은 지도임으로 그 지도에서 그는 지금 여기를 반추할 수 있는 '얼굴의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예컨대 그의 작가적 체험에서 거울보기는 '아버지'와의 소통이었다. 회화를 통해서였지만 그는 그 소통을 이룬 뒤에야 비로소 자유를 얻게 되었다. 자유로운 표현, 그러니까 숨기위해서가 아니라 과거와 만나기 위해서, 아니 더 정확히는 자신의 실체와 마주하기 위해서 등 돌린 현대인들을 그는 자유롭게 표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마주하기의 자유로움, 존재의 가벼움, 언어의 고요함에서 그는 다시 치유에 도달했다. 그의 작품들은 치유에 도달해서야 본격적으로 색을 얻었다.

이영조_익명인-괴우(anonym-showers of organic matter)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2×97cm_2012

6. '익명인'의 주제를 잠시 내려놓은 자리에 싹 튼 치유의 회화적 이미지들은 그동안 그가 다뤄 온 이미지들과는 사뭇 거리가 있었다. 옛지도를 차용하고는 있으나 그 이미지에 담긴 역사성과 시간성은 만만찮아서 무채색의 인물들과 더불어 회화적 중력이 상당했다. 그런데 치유의 작업들에 이르자 그런 회화적 무게는 순간 가벼워졌다. 색이나 형상, 표현의 모든 영역에서 작품들은 일순간 봄을 맞이한 듯 산뜻해졌다. 또한 인물들과 대응하거나 바탕을 이뤘던 옛지도 이미지도 완전히 사라지거나 기호화 되었다. 그는 '치유'라는 주제어에 밀착했고 때로는 완전히 몰입했다. 그 결과 그의 회화들은 새로운 익명인들의 풍경화로 변화되었다. 이제 익명인의 풍경은 '비(雨)'였다. 익명인과 비의 풍경. 비의 풍경은 빗방울이 쏟아지는 어느 찰나의 순간들이다. 빗방울이 방울방울 멈추어 선 풍경에 혼자 혹은 둘이, 혹은 여럿이 서 있거나 걷고 있는 풍경이다. 그런데 그 빗방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것은 작은 방울토마토이다. 그는 '괴우'를 떠올렸다. 괴우는 말 그대로 '괴상한 비'이다. 그의 작업노트에는 "회오리바람과 같은 이동성 저기압이 호수나 늪, 바다 등지에 나타날 때 공중으로 휩쓸려 올라간 흙이나 벌레, 물고기 따위들이 섞여 내리는 비"라고 적혀있다. 그렇지만 그의 괴우는 방울토마토이니 그것을 말 그대로의 괴상한 비라고 생각해서는 안 될 터이다. 그의 방울토마토 비는 치유의 비라고 해야 할 것이다. 주지하듯 토마토는 현대인에게 치유의 음식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가! 그런 맥락에서 이번 전시 『호우시절(好雨時節)』도 '비의 풍경'의 연장선에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이영조_익명인-소나기(anonym-rain shower)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2×97cm_2013

7. 여기서 잠깐! 우리는 '치유'를 중간에 두고 그 전과 후가 왜 이렇듯 극명하게 달라지는가에 대해 의문을 가질 필요가 있다. '치유의 시기'는 2004년에서 2007년까지 약 4년이다. 그러므로 그 이전이라 함은 1997년부터 2004년까지의 약 7년간을 말하고, 그 이후라 함은 2007년부터 현재까지 7년여를 말한다. 2004년과 2007년은 치유를 중간에 두고 그 이전과 이후가 조금씩 오버랩되는 시기이다. 이렇게 볼 때 현재까지의 그의 작품세계는 제1기 익명인 시대(1997~2004), 제2기 치유 시대(2004~2007), 제3기 비의 풍경-익명인 시대(2007~현재)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앞에서 세밀하게 살폈듯이 제1기의 익명인 시대는 익명인과 옛지도의 몽타주를 통해 '옛지도-과거'의 거울보기라는 자기증명에 몰두했던 시기라 볼 수 있다. 그것은 작가 스스로도 익명인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현대인의 정체성 혼란에 관한 메시지라 할 수 있다. 그는 '거울보기' 또는 '자기보기'의 과정을 통해 제2기 치유 시대로 진입한다. 결과적으로 제2기는 제1기의 자기존재(자) 찾기라는 지난한 수행과정에서 도달한 자기화해의 시기라 생각된다. 3년 반에 걸친 이 치유의 시대를 거치면서 그는 좀 더 가벼워졌고 좀 더 밝아졌다. 그러나 제1기에 비해 제2기의 시간이 다소 짧은 것이 아쉬운 것은 그가 서둘러서 시작한 제3기에서조차 다시 '익명인'의 화두를 놓지 않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제3기는 제2기의 치유의 개념이 연장된 것이기도 하고(비의 풍경은 치유의 풍경이니까), 제1기의 익명인이 반복되는 것이기도 하다. 어찌되었든 제3기는 제1기를 끝낸 뒤의 '자기화해'를 다시 반복하는 방식으로 익명인을 재등장시키고 게다가 옛지도와 토마토, 조선시대 의궤 속 장면들을 오버랩시킨다. 제3기를 근거리에 놓고 보면, 원거리에 있는 제1기의 '자기거울'은 "딱딱한 널빤지처럼 떠 있"는 거울일지 모른다. 기형도의 시에서 자기거울 이미지는 둔탁하고 불투명해서 명확하게 자신을 드러내지 못한다. "무슨 딱딱한 덩어리처럼/ 달아날 수 없는,/ 공원 등나무 그늘 속에 웅크린" 무엇처럼 아른거릴 뿐이다. 문학평론가 김현은 그것을 두고 "딱딱함이라는 의미소 주변으로 모인다 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그의 시가 그로테스크한 것은 아니다. 그의 시가 그로테스크한 것은, 그런 괴이한 이미지들 속에, 뒤에, 아니 밑에, 타인들과의 소통이 불가능해져, 자신 속에서 암종처럼 자라나는 죽음을 바라다보는 개별자, 닫힌 개별자의 비극적 모습이, 마치 무덤 속의 시체처럼 뚜렷하게 드러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영조의 작품들도 여기 제3기의 근거리에서 보면 제1기의 거울들은 너무 딱딱해서 소통 불가능해 보인다. 그가 제2기의 치유 시대를 거쳐 제3기에 이르러서야 근거리의, 좀 더 투명하고 밝은, 총천연색의 현재를 말하게 된 이유일지도 모른다. ● 8. 『호우시절』의 '호우시절'은 시인 두보의 시 「춘야희우(春夜喜雨)」의 첫 구절 "호우지시절(好雨知時節; 때를 알고 내리는 좋은 비)"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호우시절』은 제3기 "비의 풍경-익명인 시대"에 해당한다. 제1기의 "익명인"과 크게 변별되는 특징은 그때의 바탕을 이뤘던 옛지도가 거의 박제된 상태의 이미지들이었다면, 『호우시절』의 의궤 장면들은 익명의 현대인들과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뿐만 아니라 익명인들 또한 의궤 속의 장면들로 들어가 과거의 그들과 어떤 교감의 상태를 이루려 한다는 점이다. 지금 여기로 불려나온 옛그림들과 익명인, 과거의 현장으로 들어간 옛그림 속 익명인들은 이제 따로따로가 아니라 이어진다. 그리고 그 위로, 그 사이로 비가 내린다. 그는 어쩌면 비로소 제3기에 이르러서야 과거와 현재, 미래를 상상하는 시간의 연결통로를 하나의 장면에 합일시켰는지 모르겠다. 그의 익명인들은 이제 아주 조금씩이지만, 우리를 향해 돌아서고 있다. 거기와 여기를 구분하여 몽타주하지 않고, 하나의 장면으로 묶을 때 그들의 시간은 현재로 넘어오고 있다. 그렇게 넘어와 우리와 마주하게 될 때 그의 작품세계는 다시 변화의 새 변곡점을 이루게 될 듯하다. ■ 김종길

Vol.20130421b | 이영조展 / LEEYOUNGJO / 李永照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