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간직한 초상 PORTRAITS KEEPING LIGHTS

남학현展 / NAMHACKHYUN / 南學鉉 / painting   2013_0403 ▶ 2013_0409

남학현_a portrait keeping lights#17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45.5×38cm_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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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학현 홈페이지_namhackhyun.creatorlink.net

초대일시 / 2013_0403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요일_12:00pm-06:00pm

더 케이 갤러리 THE K GALLERY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2-6번지 B1 2관 Tel. +82.2.764.1389 www.the-k-gallery.com blog.naver.com/thekgallery

빛으로 생동하는 기억과 심리의 초상 ● 색색의 짧은 붓터치가 화면을 가득 메운 그림. 가까이 다가가보니 여러 개의 물감층이 나름의 질서 안에서 차곡차곡 쌓아올려진 그림이다. 하나의 커다란 화면으로 바라보면 색채의 아름다움 조합처럼 보이지만, 붓의 움직임과 방향을 따라 천천히 시간을 두고 바라보면 어느샌가 눈, 코, 입, 귀를 지닌 인물이 그림 속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전체적인 얼굴의 생김을 자세히 살펴보고자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 그림 속 인물은 이내 배경과 함께 어우러져 다시 색면의 형태로 모습을 감춘다. 빛을 머금고 내뿜는 사각의 표면과 마주한 처음의 순간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명확하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것. 또렷한 형체로 기억되지는 않지만, 실재했던 과거의 시공간 속 기억. 눈과 마음을 통해 받아들인 대상의 느낌과 기억이 하나의 감각적 형태를 지녔다고 한다면, 남학현의 그림은 그것을 그리기의 행위를 통해 어떻게 전달할지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출발한다.

남학현_a portrait keeping lights#10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5×53cm_2012

윤곽없는 기억, 불안정한 형태 ● 한 인물의 '초상'이라고 한다면 으레 떠올릴 법한 특징들이 남학현의 그림에서는 쉽게 드러나 있지 않다. 일단 그의 그림이 사실적인 재현과는 거리가 있다는 점도 그러하거니와, 화면 안에서 대상과 배경을 구분하는 뚜렷한 윤곽선이나 인물의 표정을 이루는 구체적인 형체도 찾아보기가 어렵다. 인물사진을 기초로 하지 않고, 특정한 실물 모델도 없이 다만 작가가 만났던 무수히 많은 사람들에 관한 어렴풋한 기억과 심리적 정황에 의존하여 그림을 그리는 방식이 이와 같은 결과를 낳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우리가 대상을 기억하는 방식은 저마다 달라서 혹자는 그것의 구체적인 형태를 기억하고, 혹자는 그것이 존재했던 분위기를 기억하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 그럼에도 이것을 다시 끄집어내어 감각적인 조합으로 다시 만들어 내는 일은 결코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머릿속에 기억이 존재하는 형태를 그리기의 한 방식으로 표현해내는 일은 더욱 그렇다. 신기루와 유령처럼 형체가 불분명하거나 힘, 감정 등과 같이 눈에 보이지 않은 대상을 그림 속에 등장시켰던 2000년대 중반의 작업들도 이렇게 비가시적인 대상을 가시화 하는 법을 탐구한 과정 속에 나온 것으로 보인다. 이전의 작업이 전체적으로 밝은 화면 속에 흐릿한 색채로 얇고 투명한 획들을 무수히 겹쳐 그림으로써 보일 듯 말 듯 한 형체를 만들어 낸 방식을 취했다면, 최근의 인물화에서는 색들의 충돌과 조합, 짧은 붓터치, 얇고 투명한 표면들이 누적된 화면에서 느껴지는 시간의 층위가 대상에 대한 불완전한 기억의 존재방식을 드러내는 형태로 자리를 잡았다.

남학현_a portrait keeping lights#3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5×53cm_2011
남학현_해질녘의 초상 portrait at sunset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227×181cm_2011

색과 획이 만드는 인상(印象) ● 남학현은 색과 획으로 마음속에 새겨지는 대상에 대한 느낌, 인상(印象)을 만든다. 처음에 그려 넣은 다섯 획이 그림 속 인물의 표정과 분위기를 결정한다는 그의 말처럼, 색과 필촉은 그의 그림의 기본 요소다. 구체적인 형태의 묘사가 드러나지 않는 그의 그림에는 납작한 붓이 남기고 간 짧고 경쾌한 붓질이 인물의 형태와 배경이라고 짐작되는 화면을 만들어 낸다. 색이 갖고 있는 본연의 성질들이 짧은 붓터치에 의해 서로를 드러내면서 그림 속에 명암을 만들어 앞과 뒤의 공간감과 형상에 입체감을 부여하고, 색의 맑음과 탁함이 그림 전체에 무게감과 시간성을 부여하여 화면 전체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방식이다. 다양한 색의 변주로 표현된 필촉들은 서로 섞이지 않고 본연의 색이 지닌 명도와 채도, 심리적 느낌을 그대로 유지한 채, 양 옆과 앞뒤 사방에 존재하는 다른 필촉들과 유기적으로 작용하면서 하나의 형태를 만들어 나간다. 특정한 광원과 같은 절대적인 기준 없이, 색들이 지닌 상대적인 명암의 정도와 채도의 차이가 미묘한 긴장감을 만들면서 인물과 배경을 채워나가는 것이다. 인물과 배경의 경계도 엄연히 따지면 없다. <흐린 하늘의 초상>시리즈나 <해질녘의 초상>에서처럼 흐린 날씨나 해질녘을 표현한 색들이 얼굴 속 표정으로 스며들거나 밝은 빛이 얼굴의 테두리로 밀려나면서 인물과 배경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얼핏 추상적인 형태라 생각되지만, 화면 속 색들의 위치나 미묘한 명암과 채도의 차이를 눈으로 쫓아보면 그 안에는 인물의 표정이 있고, 그가 있었을 법한 시간과 공간이 어우러진 풍경이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남학현_a portrait keeping lights#11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45.5×38cm_2012

꿈틀거리는 색, 순간의 기억 ● 작가가 색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은 단순히 대상을 표현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즉흥적으로 그린 그림 같으나, 그의 그림은 상당한 시간을 요한다. 하나의 획이 지나가면, 그에 상응하는 또 하나의 획이 각자의 역할을 부여받아 등장하기 때문이다.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인력과 척력이 작용하는 것처럼 저마다의 색을 입은 필촉은 서로를 끌어당기거나 밀어내면서 화면 속에 강약의 리듬을 만들어 나간다. 개개의 획이 서로 간의 필요충분조건의 상황 속에 존재하며, 불필요한 가감 없이 적당한 위치와 형태로 자리한다. 그러한 점에서 그에게 그리기란 이러한 붓질 간의 유기적인 관계를 만들어 내는 순간적인 판단과 실천의 과정이며, 오랜 기간을 통해 터득한 조화와 균형의 감각으로 대상에 대한 자신의 감성을 전달하는 일종의 수행과도 같다.

남학현_portrait_little#4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33×24cm_2011

한편, 작가는 경험으로 축적된 인물과 상황들에 대한 기억, 당시의 감흥들을 순간적으로 끌어올려 그려낸 것이기 때문에 그림에 사용한 색이나 정확한 획의 위치를 자신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한다. 실제로 하나의 그림에 사용된 색의 종류를 하나씩 헤아려보는 것도 불가능하거니와, 그가 그린 획의 방향도 어느 정도의 성향은 파악할 수는 있지만, 저마다 미묘한 차이를 지니고 있어서 정확하게 구분하기가 어렵다. 그것은 작가가 그림 속 인물을 대하는 태도와 회화적 그리기 사이의 미묘한 관계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이전에 작가는 그리는 과정 속에서 화면 속 인물들과 무언의 대화를 나누는 기분을 즐긴다고 말한 적이 있다. 화필로 형태를 잡아가는 그리기의 행위와 과정이 인물에 대한 파편적인 기억의 조각들을 맞춰나가는 데에서 발현되는 일종의 유희적 요소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붓의 방향을 계속해서 바꿔나가고, 색의 배합을 만들어 저마다의 크기와 위치를 정하고, 화면 전체에 배분하는 과정에 따라 다르게 모습을 드러내는 인물의 표정 속에서 자신이 잊고 지낸 기억들을 마주하는 순간이 그에게는 또 다른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동시에 그리기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지점인 것이다.

남학현_portrait_little#3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33×24cm_2011

지금의 그에겐 인물의 초상을 그리는 일이 마치 변화무쌍한 풍경을 그리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리고 그의 그림에서 인물의 얼굴은 한정된 크기 안에 수많은 변화와 움직임의 가능성을 내포했다는 점에서 회화의 성향과도 매우 닮았다. 얼굴이 시시각각 변화하는 근육의 움직임으로 표정을 만들어 순간의 감정을 전하듯, 그림은 캔버스의 표면 위에서 다양한 붓놀림과 색의 변주를 통해 감성을 전한다. 그에게 초상은 장르적인 특징을 넘어서 회화 본연의 특징을 가장 잘 담아낼 수 있는 표현의 장(場)으로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그에게 인물의 초상이라는 소재는 당분간 그의 관심사에서 벗어나지 않을 듯하다. 끝으로 작가는 다양한 색과 터치의 향연 속에 드러난 인물의 모습이 그것을 바라보는 이들의 마음속에 시각적 여운처럼 남길 바란다고 말한다. 짧은 호흡으로 경쾌하게 채워나간 화면 속에서 보일 듯 말 듯 형체를 드러낸 인물의 초상을 통해 작가는 과연 어떤 여운을 남기고 싶었을까. 기억 저편에 자리했던 과거의 순간이 현재의 시공간 속에 되살아난다면, 그것이 완전한 형상이 아니더라도 눈앞에 나타난 순간만큼은 빛으로 충만하여 아름다운 색의 움직임이 만들어낸 살아있는 형상의 느낌, 그 자체로 기억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전하려던 것이 아닐까. ■ 황정인

Vol.20130402b | 남학현展 / NAMHACKHYUN / 南學鉉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