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O SPENDER

홍기성展 / HONGKISUNG / 洪起盛 / mixed media   2013_0329 ▶ 2013_0420 / 월요일 휴관

홍기성_Solar jacket_혼합재료_55×65×5cm_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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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3_0329_금요일_05:00pm

관람시간 / 화~일_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강동아트센터 갤러리 Gandong Arts Center Gallery 서울 강동구 동남로 870(상일동 477번지) Tel. +82.2.480.0500 www.gangdongarts.or.kr

내가 최근까지 관심 깊게 바라 본 것은 대공황에 비견되는 세계 경제 불황과 신자유주의라 부르는 우리 사회 이면의 모습들이었다. 많은 이들은 2008년 미국 발 금융위기를 원인으로 지목하고 해결에 실마리를 그 지점에서 찾으려 하고 있으나, 그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혼란에 징후들은 목격 할 수 있었다. 신자유주의가 출현한 후 자본시장에 자율성이 강조 되고 사회 전 분야에 발전이 가속화 된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피상적인 부분일 뿐 인간 개개인에게 나타난 변화를 설명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논리는 처음 등장부터 인간 고유의 삶을, 경영과 관리 개념으로 전환 하는데 목적이 있었으며, 이로 인해 자율적인 소규모 공동체는 파괴 될 수밖에 없었고, 인간에게 가장 기초집단인 가족이란 단위도 이제 더 이상 안전하지가 못하다. 다시 말해 우리사회 가치판단 과정 즉 가치기준에 자본권력이 작동하는 이상, 인간은 정체성을 통해 삶을 지속하는 존재에서 생산과 소비라는 현대 자본주의 메커니즘을 가동 시키는 일종에 부분품으로 전락될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홍기성_My daughter forest_영수증 Thermal-drawing_900×180cm, 가변설치_2012~3
홍기성_My daughter forest_영수증 Thermal-drawing_900×180cm, 가변설치_2012~3
홍기성_Solar drawing tool kit_이젤, 혼합재료_180×80×70cm_2013

Homo Spender-소비하는 사람은 이러한 시대적 배경과 인간으로서 현대 자본을 바라보며 느꼈던 몇 가지 경험과 감정에 의해 만들어졌다. 우리에게 소비라는 것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입으로 말하는 것처럼 너무나도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으며, 동시에 시대구조가 마련한 소비의 패러다임 안에서 인간은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인간은 이 안에서 어떠한 모습으로 삶을 지탱 하고 있는 것 일까. My daughter forest, Solar series는 맨 처음 예술가로서 느끼는 자본에 대한 일반적인 견해와 환경적 문제에서 출발 하였으나, 할머니와 이모부의 죽음을 통해 보다 구체적인 진술로 접어들게 된다. 물론 모든 인간은 탄생과 죽음이라는 운명에 놓이게 되고 누구도 이를 부정 할 수 없다. 하지만 막상 그들의 자취를 살펴보면, 그들이 살아온 시간은 남은 이가 느끼는 슬픔보다 더 치열하고 고통스러웠음을 가늠 할 수 있게 된다.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존재 한다. 시대가 요구하는 모습에 알맞게 살아왔으며, 대다수의 사람들이 목표로 삼고 있는 기준에 충분히 도달 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것으로 그들은 마땅히 존경받아야하고 좋은 본보기라 치켜세움으로서 죽음은 일단락되어지고 마는가. 우리는 여기서 자본주의가 시간이 거듭 될수록 고지능화 되고 있으며, 동시에 인간 앞에서 얼마나 오만함을 드러내는지 엿볼 수 있다. 안타깝지만 지금껏 자본주의 구조는 인간 개개인이 삶 속에서 느끼게 되는 고통과 슬픔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스스로 정신과 육체를 갉아 먹으면서 살아가는 모습에 노력과 희생이라는 수식어로 치장을 한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이러한 선택을 하는가. 인간은 본래 다른 생물들처럼 종족번식이란 본능뿐만 아니라. 혈연관계 대해서도 강한 애착을 가지고 있다. 이점을 자본주의는 놓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활용하였고 이제 인간이 소비 되고, 인간이 인간을 소비 하는 것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 되었다는 점에서 심한 모멸감을 느낄 수 있었다.

홍기성_The play as rubbish I_혼합재료_190×70×90cm_2012
홍기성_The play as rubbish IV_혼합재료_100×60×15cm_2013

그들이 떠난 후 나의 유년시절 기억은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었으며, 그것이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는 기억을 더듬어 스스로 새로운 프레임을 마련해야 했음을 깨달았다. 과연 그들이 죽음을 통해 내게 알려 주려고 했던 것은 무엇인지 말이다. 그녀는 곧 잘 나무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젊은 시절 시골뒷산 황무지에서 돌과 거름을 나르며 밭을 일구어 복숭아나무를 심었던 일부터, 정원 가득 심겨진 나무들이 주는 꽃과 열매의 시기, 맛까지 어쩌면 이러한 기억은 내가 인식하고 있는 자연의 섭리와 현재 영수증에 등장한 나무 모습에 상당 부분 영향을 주었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매일 같이 소비를 하고 얻게 되는 영수증은 한 인간의 생활방식은 물론 시대의 자본 흐름까지 간접적으로 추측 할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그러나 감열지 특성상 재생이 까다로운 물질로, 우리가 필요에 의해 현실 속 많은 것을 회복불능 상태로 만드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수 있는 가까운 예이기도 하다. 그런데 만약 그 위에 잉크, 물감 등으로 표면을 덮는 행위를 한다면, 또 다른 소비를 의미하며 앞서 말한 Homo spender-소비하는 사람과 거리감이 발생됨에 따라 기존의 그림들이 보여주었던 기법과는 다른 방법을 고민 해야만 했다. 그리하여 고안 한 것이 이전의 Solar series에서 이용 되었던 태양전지를 통해 전기에너지를 만들고 그것을 열에너지로 변환하여 감열지 고유성질을 이용하는 드로잉 방식이었다. 이는 자연을 통해 얻은 재료로 인간이 만들어낸 마지막 물질을 예술로 전환한다는 점에서 환경적 측면은 물론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진 영수증처럼 한정 된 시간동안 자신을 소모하고 떠나는 이들의 치유되지 못한 감정과 삶이란 시간에 대한 마지막 존중과 배려, 살아있는 자로서의 반성을 의미 한다.

홍기성_Youth-spin_혼합재료_110×30×30cm×9, 가변설치_2013

나는 결코 코뮌니스트도 아나키스트도 아니다. 단지 현재 우리 자본주의 구조를 통해서는 인간이 얻는 것에 비해 잃는 것이 너무나도 많다는 점에 깊은 염려와 고민을 하는 평범한 사람일뿐이다. 얼마 전 몇몇 권력자들은 신자유주의와 결별하겠다는 선언을 하였고 과연 그것이 가능할지, 그들의 성급한 프로파간다에 고민이 앞선다. 다만 확신 할 수 있는 것은 권력집단이 인간을 치유하고 대안을 마련했던 일은 그 어느 시대에도 없었으며, 오히려 인간 누구나 스스로 회복과 전환에 대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통해 변화는 언제 어디서나 가능하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예술 역시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적어도 예술은 홍기성이라는 한 개인의 세상을 바꿔놓았기 때문이다. ● 예술이 사회문제 그리고 정치·경제 이념 앞에서 입을 여는 것을 아직도 못 마땅해 하는 이들이 많다. 인간의 삶과 예술은 결코 분리 될 수 없음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예술이 인간과 가장 가까운 그것들을 말하지 못한다면 어떻겠는가. 예술의 자유로운 비판과 고민에 대해 거부감을 들어내는 이들은 오히려 나보다 더 의심스러운 행동을 하고 있음을 알기 바랄 뿐이다. 이미 우리는 언론·종교 심지어 교육까지 자본의 손발 노릇을 하고 있는 안타까운 사회를 경험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조금이나마 자유로울 수 있는 예술이 인간 옆을 지켜주지 못한다면 예술로서 자격이 없음을 시인하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지금도 적지 않은 이들은 묻는다. "네가 생각하는 우리사회의 해법은 무엇이며 예술은 무엇을 할 수 있냐?"고, 굳이 이런 질문에 아깝게 시간을 버려가며 구체적이고 친절한 설명을 하고 싶지는 않다. 작업실과 1km 남짓 떨어진 전시공간을 통해 한물간 글로벌물결이 어지럽혀 놓은 로컬의 회복을, 300m옆 고등학교 미술반 아이들을 만나 삶과 예술은 절대적인 누군가에게 배우는 것이 아닌 스스로 터득하고 느끼는 자유롭고 아름다운 것임을 말해 준 행위만으로도 내게 질문을 한 그들에게 충분한 대답이 될 것이라 기대한다. ■ 홍기성

Vol.20130329d | 홍기성展 / HONGKISUNG / 洪起盛 / mixed media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