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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2_1024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30am~07:00pm
갤러리 아트사간 GALLERY ART SAGAN 서울 종로구 삼청로 22 영정빌딩 3층 Tel. +82.2.720.4414 www.artsagan.com
0.3 밀리미터의 집적 ● 작가는 우선 길이3.84자(116.36cm)×넓이2.88자(87.27cm)의 장지(壯紙)를 재단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했음에 틀림없다. 물론 두 손 바닥을 잇댄 크기만한 드로잉 북에는 각 작품마다의 여러 장 밑그림이 고민의 시간을 품고 있다. 작가가 정해진 크기와 형태로 제작된 장지를 각기 다른 비율로 재단하는 이유는 0.3mm 볼펜이 긁어 낼 세계와 보류한 세계 사이의 동적균형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화면은 힘겨워 보이는 필적의 집적으로 이루어져 있다. ● 한지는 먹물(또는 유색 물감)에 발묵의 미덕을 발현케하는 최고의 재료이다. 그렇지만 작가는 한지의 전통적 쓰임을 포기하고 0.3밀리미터 볼펜과의 투쟁적 관계를 시도하고 있다. 수성의 먹물이 흘러갈 길에 유성의 잉크가 들떠 흩날리고 있다. 0.3mm 볼펜 끝에 있는 쇠구슬은 마치 자갈밭을 힘겹게 쟁기질하는 황소 같다.
미세한 먹가루를 품은 빗물이 제각기 헤쳐모여 대지 위를 소요하면 물줄기는 때로 가늘게 때로 굵게 때로 급박하게 때로 온유하게 성질을 부리지만 결국 어미가 아이를 품듯 종이는 먹물과 붓질의 성깔을 하나도 버림 없이 우려낸다. 그렇지만 한지 위에 떨어진 볼펜은 산비탈 자갈밭 위에 거칠게 생채기를 만들어내기 십상이다. 수성의 한지는 볼펜의 유성 잉크를 힘들어한다. 볼펜이 한지를 힘겨워하는 것 역시 매한가지다. ● 한지 위의 볼펜은 깊은 맛을 만들어 내기 쉽지 않다. 게다가 한 번의 쟁기질로는 고랑이 쉽게 생기지도 않는다. 흐리다. 그래서 작가는 고랑을 만들기 위해 0.3밀리미터의 쟁기로 갈고 또 간다. 쟁기질은 몇 날 며칠을 두고 수고를 한 다음에야 길이 나고 고랑이 깊어진다. 인내가 묻어나는 겹침과 집적이 힘겹지만 비로소 한지와 볼펜 사이의 관계를 만들어 낸다. 그렇지만 음영경 작가의 화면은 이질적 존재간의 힘겨운 집적의 장소가 된다.
작가의 작품은 마치 이렇게 저렇게 실타래를 풀어 놓은듯하다. 그 실타래는 이야기를 풀어 놓고 귀를 기울려 달라고 한다. 작품 「drawing2」에서 작가의 나무는 중력의 방향으로 순진한 물길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다. 작가의 나무는 현실에서 볼 수 없는 것이다. 지표 면 위와 아래가 뒤집혀 있는 것도 같고, 태양이 당기는 힘이 너무 거세서 곁눈질 할 조금의 자유도 허용치 않거나, 아니면 작가의 나무는 너무도 유약하여 자유의지를 완전히 상실한 것 같다. 그저 보이지 않는 힘이 당기는 대로 힘없이 간신 표면에 붙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게다가 성장하는 모양새가 마치 실을 뽑아 만든 전돌을 쌓아 올린 탑처럼 보인다. 작은 바람이라도 불라치면 언제라도 휘뜩하니 휘청거릴 것만 같다.
작품 「drawing4」에는 수직방향으로 무성하게 밀집한 풀숲이거나 혹은 가냘픈 나무로 빽빽이 이루어진 나즈막한 구릉과 수평방향으로 촘촘히 쌓여 한 오라기의 빛마저도 놓치지 않고 가두어 버린듯한 호수이거나 혹은 바다가 너무도 고운 그래서 발자국마저 순식간에 흡수해 버릴 듯한 모래해안을 사이에 두고 그 위로는 눈시리게 휑한 허공을 이고 있다.
작품 「drawing1」 등은 마치 산을 담은 풍경처럼 보인다. 작품 「drawing3」는 통영 앞바다에 흩어져 있는 섬 같기도 하다. 이들 작품에는 앞의 작품들에서 볼 수 없었던, 볼펜의 염불과도 같은 반복의 궤적이 주는 질감과도 다르고 장지 표면 질감과도 다른 에나멜의 반짝임이 부가되어 있다. 그것은 조악한 집의 모양을 닮았다. 그 집들은 담장이 되어 볼펜 잉크가 더 이상 확산되지 않도록, 아니면 헝클어지고 혼돈스런 볼펜의 궤적이 더 이상 퍼지지 않도록 막고 있다. 언제라도 집들을 무시하고 터져나갈 듯하지만 의외로 검은 실선들의 집적체를 완강하게 움켜쥐고 있다. 이들 작품에서도 마찬가지로 볼 수 있는 텅 빈 공간은 일견 아무 것도 없는 듯하지만, 꽉 다문 옥니처럼 굳게 결집한 집들의 사슬이 보여주는 완강함의 정도에 반비례하여 가늠할 수 없는 해소되지 않는 욕구가 그 아래에 숨어있는 것 같다. ■ 박종석
Vol.20121025h | 음영경展 / EUMYOUNGKYOUNG / 陰永暻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