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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2_1018_목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 토요일_11:00am~04:00pm / 일,공휴일 휴관
포스코미술관 POSCO ART MUSEUM 서울 강남구 대치4동 892번지 포스코센터 서관 2층 Tel. +82.2.3457.1665 www.poscoartmuseum.org
대학졸업 후 광주에서 해남으로, 담양에서 화순으로 작업실을 옮기면서 그 때마다 자신에게 그림의 변화를 요구했다. 졸업 직후에는 인간에 대한 상식이 깨어지며 역사가 되는 순간을 형상화했다면, 근래에는 세상과의 소통 그리고 자유의지에 대한 개인적 체험과 사유로 선회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 도심을 떠나 처음 머문 곳이 해남이다. 시골생활은 낯익은 풍경과 항상 마주치는 사람들 속에서 느끼는 무료함과의 대결이다. 지루함과 무기력한 회의와의 갑작스런 대면은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도리어 그러한 것들은 우연찮게도 평범한 일상 공간 속에서의 드라마틱하고 흥미로운 예술적 감성의 발견을 체험하게 했다. 이 과정에서 변화무쌍 하면서도 변함없는 하늘,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구름, 밝음과 어둠을 형성하는 빛, 유기적 역동성을 지닌 바람, 그리고 원초적 향수를 소재로 삼기에 이르렀다. 내가 하늘을 그리는 이유는 일상에서 느껴지는 쓸쓸하고 담백한 것을 표현하고 싶기 때문이다. 가령 해질녘의 노을을 보면서 느꼈던 내재적인 자존감이나 광대한 하늘에 비추어 본 존재에 대한 모호함 등을 말이다. 또한 구름에서 찾고 있는 것은 추상적인 아름다움이다. 하늘이란 실체를 묘사하고 있지만 나는 거기에서 구름과 바람과 음영이 빚어내는 한 수의 서정시를 그려 보고 싶었다. 그러고 보면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생의 첫 이름 자리의 온기를 잊지 못하는 것이 화가로서의 삶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태어날 때 구름雲자를 달고 나온 나에겐 '서정의 장소'가 몸속 깊은 곳에 아로새겨져 있는 게 아닐는지. 구름은 형태들의 유희가 용이하다는 점에서 안이하면서도 덧없는 책임 없는 몽상이다. 느리고 모나지 않는 움직임, 그 하얀 움직임, 소리 없이 생성되고 스러지는 움직임, 그것은 우리 속에서 부드럽고 둥글고 은은하며 고요한 또 솜털 같은 상상력의 생명을 감응시킨다. 푸른 하늘 아주 높은 곳에서 지치지 않고 흘러가고 흘러오는 구름이 초대하는 여행에 저항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자유롭고, 길들어지지 않으며, 무엇이든 가능한 열린 세계, 에너지가 무한히 잠재해 있는, 지속적인 변모 속에 놓인 형태들의 세계이다. 쌈지 스튜디오와 광주 시립미술관 레지던시를 거치면서 고정화, 내성화 되어 가는 구름 유화 페인팅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몸부림 과정 중에 고향의 바람과 하늘빛과 물빛은 나에게 무한한 영감을 제공해 주었다. 청자축제 참여 차 강진을 방문했을 때 우연히 들른 마량 앞바다의 은은한 물빛을 보고 난 그 비취색의 빛깔이 문득 하늘빛과 닮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하늘빛이 내려앉은 물빛의 유희가 마음을 끌어당겼다.
'물 위를 긋다' 작업은 종이 위를 물로 긋는 최소행위만으로 회화가 궁극적으로 도달하려고 하는 지향점을 찾는 작업이다. 도구와 재료와의 대면은 충격을 발생시키고 이 충격은 궁극적으로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에게 각기 다른 생동감 넘치는 그 무엇이 된다. 아크릴판 위에 화선지를 올리고 마치 동양화를 그리듯 한 획을 내리치며 긋는다. 맑고 투명한 파란색들이 서로 스며들고 번져나가며 촉촉한 종이 위에 현상(現狀)이 나타난다. 아니,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순수에너지'에 의해 파장이 인다. 여기선 무의식에서 나온 선이 중요하다. 그래서 무엇을 그린다고 의식하지 않고 덧칠하지 않는다. 한 번의 붓질로 화폭에 생명감을 담으려 한다. 그리고 다양한 공감각을 느낄 수 있도록 색채 선택에 신경을 썼다. 색채감정의 경우, 물과 공기는 실제로 파란색은 아니지만 파랑으로 느껴진다. 유리병에 든 공기나 물은 아무 색도 없지만 깊은 바다나 하늘은 파랗게 보인다. 공간이 깊어지면 모든 색이 파랑 속으로 사라지기 때문이다. 모포가 아닌 불 투과성 물질 가령 아크릴 판 위의 화선지에 붓질 작업을 하면 아크릴 판에 스며들지 못한 그 사이의 무수한 기포들이 담채 작업된 화선지에 오롯이 남게 된다. 이러한 기포들이 작품 위에서 물방울의 모습으로 구현되는 것이다. 기포로 인해 만들어진 영롱하게 빛나는 물방울은 에너지의 응축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 사이의 관계 속에 존재하는 에너지가 생기는 것이다. 즉 '물과 정신, 공기의 조화'가 만들어 내는 배체(倍體)의 예술이다.
'공기와 꿈' 작업은 빛과 소리를 부분적으로 투과시키는 한지의 특성을 통해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다시 태어나게 한다. 특히 캔버스 위에 두께를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얇은 한지를 작게 오려 붙이는 지난한 과정에서 우러나오는 백색은 또 하나의 무한공간이자 여백이다. 보는 이들이 예리하게 각이 서 있는 한지 조각들을 통해 바람이 넘나드는 푸른 하늘의 생생한 결을 느끼며, 끝없이 이어지는 노동을 통해 하늘의 무한함에 다다르고, 그 하늘이 열어주는 추상적인 순수함에 마음을 놓아버리기를 바란다. 더불어 가장 극소하다고 느껴지는 캔버스 위의 한지 조각과 영상으로 표현 가능 한 최소입자인 파티클을 한데 모아 역설적이게도 결과적으로 가장 광활한 존재인 하늘을 표현할 수 있는 힘을 부여한다. 시간과 노력의 과정을 거친 작품 위에서는 양 극에 서있는 모순적인 철학들이 손을 맞잡으며 공존한다. 오랫동안 '순수형태(하늘과 구름)'를 표현해왔다. 유화작업에서는 시간, 공간, 빛의 문제를 표현했으며 종이 배접작업은 동양의 靜・中・動을 공기와 꿈으로 표현했고, 담채작업에서는 농경수묵민족이 갖는 보편적인 감성과 지향점을 표현하려 했다. 유화작업은 보편적으로 그리는 작업으로서 가장 먼저 시도했었고, 반투명 화선지가 무수히 겹쳐지며 구름층을 형성해가는 '공기와 꿈'은 만드는(기도하는) 작업으로 다른 변화를 꾀했다. 또 그와 반대방편으로 일획 작업은 희미한 직관의 좌표를 가지고 유희를 사유하면서 잘 노는 작업으로 다양하게 표현했다. 본래 예술의 품격은 추상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비유를 사용해야만 비로소 그 추상적 개념을 감정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바꿀 수 있다. 즉 눈앞의 사물을 그대로 옮긴 그림들을 그리는 게 아니라 그보다는 스스로 그것들을 바라보고 즐거워하며 사유에 젖어드는 과정을 담는 것이다.
자연을 표현하려고 인위적으로 애를 쓸수록 작품은 도리어 비인위적인 것이 되고 만다. 그러기에 나는 작품 속에서 나의 흔적과 자연 그대로의 순리의 합일을 구현하고자 노력했다. 이는 예술이라는 것이 마땅히 독특하고 특별한 것이어야 함이 아닌, 가장 비근한 소재에서 비범한 감동이 탄생하는 그 무엇이라는 생각과 맥을 같이한다. 자연과 있는 그대로의 소통을 통해서 자연의 말을 받고 나의 화답을 토해내는 모든 과정들이 붓(물과 기름)으로 또는 한지 조각들로 캔버스에 표현된 것이다. ● 예술은 육체적으로 감성과 만나 즐거움을 느껴야 그 내면이 열리는 세계이다. 언젠가 대상, 존재 그 자체가 감성으로, 사유로 하나 되는 날이 가능하리라고 확신하며, 그 날을 기대해 본다. ■ 강운
Vol.20121022g | 강운展 / KANGUN / 姜雲 / painting.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