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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2_1009_화요일_06:00pm
후원 / (재)대전문화재단_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누다 GALLERY NUDA 대전시 서구 한밭대로 602번길 22(월평동 597번지) 한빛빌딩 B1 Tel. 070.8680.6052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다. 강도들은 그 사람이 가진 것을 모조리 빼앗고 마구 두들겨서 반쯤 죽여 놓고 갔다. 마침 한 사제가 바로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 사람을 보고는 피해서 지나가 버렸다. 또 레위 사람도 거기까지 왔다가 그 사람을 보고 피해서 지나가 버렸다. 그런데 길을 가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그의 옆을 지나다가 그를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들어 가까이 가서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매어 주고는 자기 나귀에 태워 여관으로 데려가서 간호해 주었다. 다음 날 자기 주머니에서 돈 두 데나리온을 꺼내어 여관 주인에게 주면서 '저 사람을 잘 돌보아 주시오. 비용이 더 들면 돌아오는 길에 갚아 드리겠소.'하며 부탁하고 떠났다.(루가 복음 10장 30-35절)
Preview-박은미『SHOOT IT UP!』-인생 착하게 살아야 합니까? ● 이 이야기는 한 율법교사가 예수께 율법서에 적힌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구절을 들먹이며 대체 '이웃'의 정체가 뭐냐 묻자, 예수께서 청중의 이해를 돕기 위해 꺼내든 '착한 사마리아인'의 사례입니다. 굳이 크리스챤이 아니더라도 한 번 쯤은 들어 봤음직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군요. 그렇다면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건네는 교훈이 무엇인지도 대략 짐작들 하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초 간단 요약하자면 이 사례가 선사하는 보편적 교훈은 '착하게 살자' 정도가 될 테지요. 예수라는 위대한 선지자가 인류에게 건네는 일종의 삶의 지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짐작 컨데 '착하게 살자'는 이 거룩한 삶의 지침에 함부로 토를 달 사람은 그닥 없을 겁니다. 모두들 너무나도 당근 빤스한 거라 여기니까요. ● 이 착한 사마리아인 이야기에는 반쯤 죽은 강도 피해자와 그를 둘러 싼 세 명의 주요 인물이 등장합니다. '착함'의 핵심은 당연 사마리아인일 테고, 한 사제와 레위인은 그 반대편에 위치해 있죠. 여기서 잠깐 독자 여러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당시 사제와 레위인, 사마리아인에 대해 간단히 설명 드립죠. 일단 사제와 레위인은 모두 이스라엘 민족, 즉 유대인입니다. 그 중에서도 민족의 제사를 꾸려나가는 매우 주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죠. 요즘으로 치자면 국회의원이나 고위직 공무원에 해당하는 사회 지도층 인사들입니다. 한편 이스라엘 민족과 아시리아족의 혼혈인 사마리아 사람들은 혈통과 종교에 있어 유대인들에게 온갖 멸시를 받던 민족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라는 말만 들어도 퉤퉤 침을 뱉을 정도였죠. 고로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사마리아인은 비천한 사람의 상징입니다. 요즘으로 치자면 돈 없고, 빽 없고, 어쩌다 보니 이 모냥으로 태어나 제대로 인간대접 못 받는 사회적 약자입니다. 이 이야기의 묘미는 이들 등장인물들의 사회적 지위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만사에 솔선수범해야 할 사제와 레위인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통째로 개나 줘버린 채 혼수상태의 강도피해자를 팽하고 지나칩니다. 반면 유대인에게 침팬지 동급 취급받던 사마리아인은 그 불쌍한 이를 정성을 다해 보살피며 선행을 실천하죠. '아니 저 찌질한 사마리아 인이! 저 비천한 이가 나의 소중한 이웃이었다니!' 아마도 당시 예수의 말씀을 듣던 사람들에게는 '식스 센스', '유쥬얼 서스펙트'급 반전이었을 겁니다.
사족 1. 조금 음흉하고 은밀하게 이 사례를 들여다보면, 이 이야기는 이스라엘 민족을 폄훼하려 기독교사회가 꾸며놓은 고도의 디스일 수 있습니다. 신약성경 전반에 흐르는 기류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혀 죽도록 만든 원흉, '저 인간이 지가 유대의 왕이라 사칭하며 세상을 어지럽힌다'며 로마에 꼰질러 그를 처형토록 한 고발의 주체는 유대인이었습니다. 기독교가 유대의 민족종교에 머물지 않고 향후 서구사회의 패권을 거머쥘 거대 담론으로 발전하기 위해선, 어찌 보면 당연한 꼬리 자르기일 테죠.
어쨌거나, 저쨌거나, 그래서요? 그래서 사제와 레위인은 누군가에게 눈물 쏙 빠지게 욕을 퍼 잡숫고 머리 조아리며 반성이라도 했답니까? 사마리아인은 강도피해자가 뽑은 베스트 친절시민에 선정돼 나랏님에게서 표창장이라도 받았답니까? 안타깝게도 '사후(事後)에 이 주요등장인물들의 삶엔 어떤 변화가 찾아왔는가?'에 대한 이야기는 성경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저 사제와 레위인은 나쁜 놈들이고 사마리아인은 착한 분 정도로 마무리 되죠. 조금 오지랖을 떨어보자면, 이후의 이야기를 추측 컨데, 적어도 속세에서의 이들 삶에는 큰 변화가 없었을 듯합니다. '뭔 말인고?' 하니, 사제와 레위인은 뱃속 편히 떵떵 거리며 남은 생을 살았을 테고, 사마리아인은 유대인들의 천대 속에 비루한 삶을 지속했겠죠. 너무 세속적이고 비관적인 추측일까요? 헌데 우리네 현실에 대입해보면 마냥 터무니없는 추측만은 아니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 번 스스로의 처지를 돌아보고, 주위를 둘러보고, 인터넷 기사들을 쭈~욱하니 훑어보시죠. 파스텔 톤의 뽀송뽀송한 세상을 꿈꾸며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하루하루를 성실하고 착하게 살아가는 다수의 독자 분들께서는 현실은 군데군데 우중충하고 눅눅하다는 걸 인지하고 계실 겁니다. 이 험한 세상 다리가 되려 마냥 착하게 살아봤자 현실의 삶은 딱 찌질한 정도에서 간당간당 하다는 걸 말이죠. 너무 속물적이고 염세적인 잣대를 들이댔나요? ● 그런데 말입니다. 누구나 짐작할만한 이 어마어마한 이상과 현실의 괴리 앞에서, 예수도 부처도 착하게 살라 말씀하십니다. 그래야 천년 왕국에서 영생을 누릴 거랍니다. 그래야 복 받아 극락왕생할 거랍니다. 저 착한 사마리아인 이야기도 '어찌 영생을 누릴 수 있을까?'란 대담 중에 등장합니다. 영생? 극락왕생? 이 행성에서 너무나 많은 것을 누리기에, 유한한 삶이 지극히도 한탄스럽기만 한 이 만물의 영장에겐 참으로 감사하고 판타스틱한 대박 득템입니다. 하지만 이 득템의 필수코스는 죽음입니다. 살아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그 무엇이죠. 뒤집어 보자면, 이 인류의 위대한 선지자들께서도 속세에선 착한 삶에 대한 합당한 보상을 장담하지 못하나 봅니다. 때문에 한 발짝 물러나 사후세계(死後世界)를 들먹이는 건 아닌지, 쪼까 의심스럽기도 합니다. 그렇담, 대체 왜 착하게 살아야 합니까? 살아있는 모든 이들에게는 듣보잡일 뿐인 사후세계에 올인하기엔 현실이 너무 시궁창이지 않습니까? '착하게 살자'는 이 보편적, 진리에 가까운 교훈이 이쯤 되면 '닥치고 인정'에 가까운 강요처럼 들리지 않습니까? ● 착하게 살지 말자는 얘기가 아닙니다. 당근 빤스 착하게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기적일 필요가 있습니다. 아주 건전하고 절제된 이기심이 동반될 때 속세에서 파스텔톤의 뽀송뽀송한 세상을 꿈 꿀 수 있습니다. 대충 이런 거죠. 착함의 기본은 남에게 폐 끼치지 않는 겁니다. 이기적으로 접근하자면 '내가 널 못 살게 굴지 않을테니 너도 나 좀 내버려 두라'는 얘깁니다. 플러스 알파하자면, 약자를 쓰담쓰담 보살피고 어기영차 끌어주며 방긋방긋 어깨동무를 하는 게 착한 겁니다. 이는 '내가 힘이 빠져 시름시름하면 그대도 나를 외면하지 말라'는 함의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어떤가요? 아마 이 글을 읽는 독자 분 중에는 '거 너무 계산적이네. 쫌 좀스러워 보이는데! 살다보면 손해도 좀 보고 그러는 거 아냐!'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계실 테죠. 그러나 앞서 말씀드린 건전하고 절제된 이기심과 더불어 주고받음이 클리어해야 세상이 페어해집니다. 그러지 않으면 균형추는 어느 한쪽으로 기울기 마련이죠. 이 밸런스가 무너진다는 건 누군가는 '이게 웬 떡!'을 넙죽넙죽 갈취할 수 있게 되고, 또 누군가는 '그러려니~'하고 희생을 감내해야한단 말입니다. 그리고 그 희생자는 불행히도, 하필이면 착하길 강요(?)받는 사마리아인, 다수의 사회적 약자일 테죠.
사족 2. 이기심이란 말이 나와 잠시 지껄여 봅니다. '인간의 이기심이 시장을 알아서 잘 굴러가도록 할 것'이라는 애덤 스미스의 주장은 현시점에서 참으로 순박해 보입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단순히 스미스 선생께서 인간이란 욕망 덩어리를 너무나 천진난만하게 평가해 버린 탓 때문일까요? 그건 아마도 말이죠... 일단은 다수의 사람들이 이기적이지 않아야 속 편한 족속들이 존재하기에 그럴 테고, 그 다음은 그 균형추를 바른 자리에 가져다 놓아야할 정치(政治)가 부재하기에 그럴 겁니다.
세상이 우리에게, 특히나 세상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사마리아인들에게, 강요하는 착함은 이딴식의 이기적 해석을 쉽게 허하지 않습니다. 보다 이타적이고 더 나아가 희생적이길 바랍니다. 심지어는 선행을 행함에 있어 현실세계에서의 손익계산은 옹졸하고 치사해 보이니 더 큰 미래, 후대, 사후세계까지 염두 하랍니다. 대체! 이런 식의 '착함'은 과연 누굴 위한 거랍니깝쇼! 착하디 착한, 킹왕짱 착한 천사가 발칙하게도 두 팔을 뻗어 살벌하게도 어디엔가 총구를 겨누고 있습니다. 당장이라도 뭔가를 시원하게 한 방 날려버릴 태세입니다. 천사와 총! 작가 박은미의 『Shoot It up!』에서는 이 상반된 두 오브제가 한 팀을 이뤄 아무렇지 않게 사방천지를 돌아다닙니다. 왜 이러는 걸까요? 어렸을 때 보약 잘못 먹은 정신 나간 루시퍼의 후예일까요? 잘은 모르겠지만, 섣불리 알려드는 거겠지만, 꼭 그런 건 아닐 겁니다. 저 천사는 그들의(?) 세상에 의해 강제 된, 사후(死後) 두 세대만 지나면 무명씨로 남게 될, 하루하루를 그들의 입맛에 맞게 착하게 살아가는 우리 누구나의 자화상입니다(라고 필자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눈길이 갑니다. '쟤 뭐야?' 싶다가도 통쾌하고, 씨익 웃음이 나오다가도 그 끝 맛이 쪼까 씁쓸합니다. '이건 뭔가 아니다' 싶음을 깨달은 메이드 천사가 총을 들고 제대로 삐뚤어지기 위해 자리를 박차고 나서지만, 그녀는 방황하고 있습니다. 의식으로 굳어버린 선과 악의 개념이 그녀 안에서 끊임없이 부대끼고 있어서 그럴 테죠. 막상 총을 들었지만 타겟이 불명확해 보일정도로 너무나 거대해 어디에 총을 쏴야 할지 상당히 아리까리한 상태라 그럴 겁니다. 에휴~, 이거 남 얘기 아닙니다.
p.s: 『Shoot It up!』에는 존 웨인부터 이병헌, 장동건까지, 우리가 알만한 분들이 대거 찬조 출연해 주십니다. 저 천사마냥 다들 손에 총 한 자루씩 쥐고 말이죠. 여러분들 혹시 이 액션 무비스타들의 영화를 보신 적 있습니까? 보셨다면, 보는 내내 통쾌, 상쾌, 명쾌, 쾌쾌쾌! 하시던가요? 가상이긴 하지만 이 사람들 나쁜 놈들입니다. 정의구현이고 권선징악이고 간에 총이란 살상무기로 대량 살인을 저지르는 천하의 몹쓸 사람들입니다. 현실에선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희대의 살인마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러닝타임 내내 '가상'이라는 안전장치를 걸어두고 팝콘을 아작아작 씹어가며 그들을 응원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착한 사마리아인 콤플렉스를 앓고 있는 환자들이라 그렇습니다. 대리는 일만하고 운전만 하는 게 아닙니다. 환자들에게 만족도 선사하죠~! ■ 김태정
Vol.20121009b | 박은미展 / PARKEUNMI / 朴恩美 / photography.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