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간격

서윤희展 / SUHYOONHEE / 徐侖熙 / painting   2012_0906 ▶ 2012_0927 / 일요일,공휴일 휴관

서윤희_기억의 간격(Memory Gap)_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_혼합매체_103×191cm_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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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2_0906_목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요일,공휴일 휴관

유중갤러리, 유중아트센터 3층 서울 서초구 방배동 851-4번지 Tel. +82.2.599.7709 www.ujungartcenter.com

기억의 간격: 시간의 궤적 너머의 기억들 ● 미술에서의 시간은 물리적이라기보다는 관념적이며 추상적인 차원의 것이었다. 매체의 발달로 이미지에 시간이 더해지면서 문학적 플롯을 가진 장르, 즉 영화가 나타나기 전까지 시간은 평면 위에 공간의 전개를 위한 혹은 그것을 따르는 부수적인 구성체제로 존재했었다. 모든 조형예술은 그래서 감상의 시점에서는 항상 현재진행형이며, 해석과 의미구성에 직면해서는 모두 과거완료형의 상황을 띤다. 회화는 다른 공간으로의 진입하는 창(窓)으로서 오랫동안 그 존재성을 각인하였다. 그러나 이제 그것은 다른 시간을 향하는 일종의 타임머신이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가지게 되었다. 이것은 위의 열거된 근거로 인해 역사적인 사실이 된다. 히스토리아(historia)는 회화와 시에 있어 매우 궁극적인 의미론을 형성하게 된다. 히스토리아를 역사로 혹은 이야기로 번역할 경우 모두 이 의미에 적용된다고 할 수 있겠다. 서윤희의 회화는 시간의 활동이 만든 결과물이다. 우선 표면에 다양한 형태의 얼룩을 만들어가는 작업에서 시간의 층을 쌓아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여러 색 재료를 이용하여 한지 위에 우연한 효과인 것처럼 조성된 얼룩 면들은 마치 자연의 풍경이 그런 것처럼 시간의 퇴적을 남겨놓는다. 필자는 이것을 '작업의 유적'이라고 칭하고 싶다. 이 사고는 물론 잭슨 폴록의 추상표현주의식 회화가 그런 것처럼 행위(action)의 결과물로서의 의미를 지니지만, 서윤희의 작품은 여기서 행위의 시간뿐만 아니라, 행위 이후에 재료가 어떤 환경 속에서 고정되어 갔는가를 기억한다. 즉 협곡의 단층이나 해안의 모래톱이 지각의 변동이나 조수의 변화를 형상으로 각인한 것과 같은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서윤희_기억의 간격(Memory Gap)_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_혼합매체_103×191cm_2012_부분
서윤희_기억의 간격(Memory Gap)_달릴줄 알지만 달리지 않는다_혼합매체_149×107cm_2012

이렇게 시간의 지층이 추상적이고 가변적이며 또한 모호한 윤각과 구성으로 마련되고 나면, 작가는 그 위에 기억의 파편을 소환하고 재조립하는 과정에 들어간다. 여기서 파편과 재구성이란 개념은 작가의 기억이 지닌 시간의 원근을 재조정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기억들은 나름의 전치(轉置)나 병치 등의 여러 관계 항속에서 새로운 시간영역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기억들 간의 상호작용은 '기억의 간격'이라 제목을 타당하게 해준다. '간격'이란 여기서 두 물체나 시점이 떨어져 있는 거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기억들이 서로 영향을 주며 서로 바뀌는 동작/현상이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진행형의 운행패턴을 의미한다고 보겠다. 여기서 함께 나타나는 것이 기억의 편린들이 지닌 역동적 구성이다. 역동적으로 섞이고 있는 기억들은 정밀한 재현작업과 다양한 배치를 통해 역동적 상호 작용을 보여주게 된다. 기억은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불분명하고 가변적이다. 언급하였듯이, 모호함과 가변성을 '간격'으로 표현하는데, 예컨대 시간상의 원근이나 심리적으로 기억에 대한 선별적인 태도 등이 회화에 반영되고 있으며, 또한 주제로서 부각되고 있다. 시간의 지속과 단속(斷續)이 기억 편린으로 수습되고, 이 편린들은 나아가 시간의 원근에 비례하여 구체성의 정도를 얻게 된다. 또한 선택적 심리는 기억을 추가, 삭제 그리고 전환하기도 한다. 이러한 가변성을 공간화한 것이 간격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기억의 지층들 사이의 빈틈을 시각화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것이다.

서윤희_기억의 간격(Memory Gap)_덧없음_혼합매체_94×63cm_2012
서윤희_기억의 간격(Memory Gap)_모두의 시간_혼합매체_103×191cm_2012

형식의 역동성과는 별도로 기억 자체가 지닌 시각적 특수성은 다중적인 성격을 띠며 때론 모순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이 모순성은 바로 시간과 공간의 역치 혹은 전치로서 서사의 구조를 뒤틀어버린 부분에서도 찾아질 수 있다. 더 나아가 추상적인 얼룩 배경이 구체적이며 또한 파편화된 인물이나 사물들이 개입되면서, 추상과 구상과의 마찰 그리고 그 마찰을 지나 연상의 상승을 불러일으키는 상황이 전개된다. 결과적으로 기억들은 구체성과 추상성 그리고 현실과 비현실과 같은 대립적 관계로 배치되고, 다중적인(multifold) 혹은 모순적인/갈등적(contradictory) 관계 속에서 새로운 연관관계를 찾게 된다. 결국 시간 간격의 작업을 통해 모든 대립과 모순은 화해하고 융합한다. 그래서 재구성된 기억은 하나의 그림이 된다. 기억의 간격은 작가 자신의 문제만은 아니다. 이 작용에는 관람자의 참여도 포함되어 있다. 그림을 보는 관찰자는 각자의 기억 간격을 떠올리며 회화의 작용에 참여한다. 간격과 대립으로 조성된 역동성은 관객들에게 기억이란 주제에 대해 여러 가지 형상적 사유를 불러일으킬 수 있도록 한다. 물론 이 안에는 가족사적인 면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어서 가독성을 보장하는 듯 하지만, 이러한 구체성은 점경인물이나 그 인물들로 연출되는 상황의 구체성과는 반비례하여 매우 모호한 상태를 이룬다. 그렇게 점경인물의 삽입은 중성적이며, 무의미한 화면에 의미체계를 가져다주고, 관객들에게 연상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이제 추상적인 이미지들은 관객들의 연상 속에서 하나의 풍경이 되어간다. 점경인물은 이미 준비된 초(超)현실(=추상)과 현실(=구상)이라는 이중적인 공존관계이다. 비정형의 배경과 윤각이 뚜렷한 점경 배경화면과 유형적으로는 대립인 관계이지만, 대등한 위치에서 상호작용을 하며, 이 상호작용으로서 서윤희의 회화는 완성된다. ■ 김정락

Vol.20120906a | 서윤희展 / SUHYOONHEE / 徐侖熙 / pain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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