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돌 Weird stone

장종완展 / JANGJONGWAN / 張宗完 / video.painting   2012_0905 ▶ 2012_0928 / 일요일 휴관

장종완_이상한 돌 Weird stone_색연필 애니메이션_00:04:07_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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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2_0905_수요일_06:00pm

서울시립미술관 SeMA 2012 신진작가지원 프로그램

관람시간 / 11:00am~07:00pm / 토_11:00am~06:00pm / 일요일 휴관

살롱 드 에이치 Salon de H 서울 강남구 청담동 31-2번지 신관 1,2층 Tel. +82.2.546.0853 www.artcompanyh.com

장종완의 이번 작업은 이렇다 할 일 없이 무료한 시간들로 채워져 있던 어느 어둠의 지역에 빛을 품은 이상한 돌이 출현하면서 시작된다. 그곳에 살던 동물들은 처음에는 그 돌을 경계했지만, 어느 순간 그것이 발산하는 기운에 빠져들었고, 아편에 취한 듯 돌이 바꿔놓은 세상의 아름다움에 취하게 된다. 그리고 어느덧 종이 다른 것들끼리 사랑을 나누기 시작하고, 사람처럼 일어나 걷기 시작했으며, 세상이 부여한 규칙을 서서히 파괴하게 된다. 이 돌은 그간 역사 속에서 우리를 현혹시키면서 동시에 혼란스럽게 한 이념들이나 과학 혁명 등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그 돌은 인간의 의식과 문화를 포함하여, 생명체를 이종교배하며, 한때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할 기적의 요소로 여겨졌으나, 결국 이전보다 더 우리를 절망스럽게 만드는 원인이 되어버렸다. 더군다나 그 때문에 이 세계에서 해악의 요소가 되어버린 돌연변이들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하지 않았는가. 장종완은 우리에게 이러한 현실을 일깨워주면서, 그것에 감성과 은유의 막을 덧입혀 여러 해석의 여지를 부여하고 있다.

장종완_천개의 눈을 가진 밤_캔버스에 유채_118×90.5cm_2012

이종교배는 이 세상에 새로운 형상과 염색체를 지닌 생명체를 선사한다. 그 신비로운 모습에 많은 이가 경이로워 하고 감탄하지만, 그들은 후손을 생산할 수 없다는 절망적인 운명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자손을 세상에 남긴다는 것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자신의 일부를 영원히 이 땅에 남겨두고자 하는 의도를 담고 있으며, 실제로 우리 안에는 태곳적 살던 누군가의 일부가 담겨 있다. 하지만 비현실을 현실화하려는 인간의 욕망은 어떤 생명체의 생에 대한 갈망을 무참히 꺾어놓기도 한다. 이종교배된 생명체들처럼 말이다. 그리고 장종완의 이번 작업들 그 중에서도 애니메이션 작품에는 이처럼 이종교배의 장면이 곳곳에 삽입되어 있다. 물론 그들이 생산해내는 새로운 개체가 등장하지는 않지만, 우리는 활활 불타오르는 작품 속 세상의 모습에서 절망적인 결과를 유추해 볼 수 있다.

장종완_마지막 나무_캔버스에 유채_162×112cm_2012
장종완_dear deer_가죽에 유채_48×37cm_2012

이러한 장종완 작업의 시놉시스에는 장용학의 『요한시집』에 삽입된 우화와 유사한 지점이 있다. 땅 속 깊은 굴에서 벽에 비친 무지개빛만이 세상의 전부라 믿던 토끼가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도록 빛의 원천을 찾아 바깥세상으로 나왔고, 결국 빛을 마주하자마자 눈이 멀어 그 자리에서 굳어 거대한 버섯이 되어버렸다는 이야기 말이다. 바깥세상에서 살던 동물들은 언제부터인가 자신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줄 기이한 존재라 여기며, 그 버섯에 제사를 지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결코 세상을 구원할 수 없다. 이 우화는 '나'가 '누혜'의 죽음을 설명하며, 부연한 것이었다. 소설 속에서 누혜는 자유를 갈망했으나, 이념 앞에서 소멸해가는 '휴머니즘'에 염증을 느끼며, 진정한 자유는 죽음 뒤에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스스로 소멸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결국 누혜는 선각자였으며, 우리에게 미래상을 미리 보여준 선지자였다.

장종완_이상한 집_캔버스에 유채_90.5×118cm_2012
장종완_another romance_캔버스에 유채_193.9×130.3cm_2012

결국 이처럼 찬란하여 더 없이 아름다운 빛(이데올로기, 생명연장 장치, 최첨단 테크놀로지 등)은 그만큼의 독을 품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에 더욱 다가가고, 이것의 가능성을 믿고, 수용해야 더욱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이러한 메시지는 장종완의 페인팅 작품에서 엿볼 수 있다. 북한 지도자의 생가로 일렬로 늘어서서 걸어가는 생명체들, 집 가까이 갈수록 그들은 다윈의 진화론에 따라 점점 발달된 형태를 띠고 있다. 이 작품은 특정 이데올로기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이념을 향해 나아감으로써, 스스로 인간임으로 자부하는 우리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보는 것이 옳을 듯하다. 그리고 눈여겨 볼 것은 이 작품 안에서 결국 인간이 된 자는 없다는 점이다. 이 부분에서 나는 작가의 위트와 유머를 엿볼 수 있었다.

장종완_슬픈 로맨스_캔버스에 유채_112×196cm_2012

결국 사람다운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운 시대, 그것은 바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바로 지금은 아닐까? 더욱 사람다운 삶을 살기 위해 많은 것을 좆지만 그 안에 진리는 없다. 진리를 변화와 개혁 안에 있기보다는 원래 살아가던 우리의 세계 - 애니메이션의 배경이 되는 어둠의 세계 - 있기 때문이다. 이는 어둠에서 세계의 기원을 찾는 창세기에서도 어떤 생명체는 어머니의 자궁이라는 어둠의 세계에서 탄생한다는 사실에서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절망할 필요는 없다. 이미 많은 현상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실패를 목도하였으며, 반성하고 있다. 그리고 그에 대한 궁극적 대안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는 자들이 많다. 마치 장종완이 작업을 통해 고민하는 것처럼 말이다. 손으로 일일이 드로잉하면서, 그는 많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생각들 안에서 우리 세계는 새롭게 정립되었을 것이다. 그러하기에 이번 전시를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작업들 안에는 진지함이 머물러 있으며, 진지함 속에 또 다른 유쾌함이 머물고 있다. 진리는 무겁지만 또한 가벼운 것. 그것이 옳기 때문이다. ■ 김지혜

Vol.20120904f | 장종완展 / JANGJONGWAN / 張宗完 / video.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