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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구성, 연출_유진규 / 퍼포머_유진규, 채충명 음악_김진우 / 사운드_이동규 영상_김조호, 박동일 / 설계, 설치_유동규 사진_권영일 / 인쇄디자인_ 타이포그램 프로그래머_임인자 / 인사아트센터_최윤이
주최, 주관 / 유진규네 몸짓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_(사)춘천마임축제_인사아트센터
관람료 / 1,000원 * 고등학생이상 입장_3분마다 한명씩 입장_동반 입장 불가
관람시간 / 10:00am~07:00pm
인사아트센터 INSA ART CENTER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제2전시장 Tel. +82.2.736.1020 www.insaartcenter.com
유진규의 방 시리즈는 감각을 재배치한다. 유진규의 방시리즈는 오방색을 이루는 5개의 방시리즈로 계획되어 있는데, 이번 유진규의 까만방은 빨간방으로 시작해 하얀방에서 이어지는 '방 시리즈'의 세 번째 시리즈이다. 그동안 유진규의 방 시리즈는 '방'에 대한 공간과 시간성에 보다 주목해 왔다. 말하자면, 마임이스트인 유진규가 '더 이상 마임을 하지 않는다'라는 선언과 함께 시작한 '유진규의 빨간방'에서 우리는 유진규의 '신체'가 '방'을 통해 '몸'이 시간과 공간으로 확장되는 경험을 시작했다. '빨간'이라는 색이 주는 '빨강'의 시원적인 공포를 맛보았으며,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이라는 부제에 걸맞게, '빨간방'을 탐색하며, 유진규와 관객은 일종의 '나'와 만나는 '게임'을 벌였다. '유진규의 방시리즈'는 1978년 발표한 『아름다운 사람』, 1998년 발표한 『빈손』 이후 자신의 작업 세계를 뒤바꾸는 새로운 개념의 공연으로, '표현하는 몸'으로서의 마임에 대한 감각을 새롭게 재배치하고자 시작한 마임이스트 유진규의 새로운 도전이었다. 이렇게 시작한 '방시리즈'가 2010년 두번째 작품인 '유진규의 하얀방'을 초연하면서, 하얀색의 가루와 설탕과 같은 이미지에 포근하고 푹신한 그러나 병적인 감각을 다시 한 번 만났다. 춘천몸짓극장에서 초연되었던 '유진규의 하얀방'은 극장 전체를 활용하는 개념으로 1층의 극장 전체에서 '미로'를 탐색하는 꿈틀대는 관객을 2층에서 다시 한 번 볼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2010년 8월에 열린 인사아트센터에서의 공연은 '기억'의 '감각'을 혹은 '실재'하는 것과 '실재하지 않는 것'사이의 감각을 교차하며, 관객들에게 사유의 문턱으로 다가가게 했다.
'유진규의 방시리즈'는 색다른 '공간'과 '시간'에서 행위자가 표현하는 몸이 아니라 관객이 인지하는 몸을 다룬다. 이를 통해, 시간과 공간의 경험을 주체 삼아 관객의 감각을 앞세운다. '유진규의 까만방'은 '완전한 암흑' 속에 '촉감의 방', '거울의 방', '냉장고의 방', '관의 방' 그리고 유진규가 기다리는 '유진규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유진규의 까만방'은 완전한 암흑 속에서 관객들과 벌이는 일종의 심리전이다. '유진규의 까만방'은 눈을 깨운다. '검다'라는 것이 '암흑'으로 곧 연결되지는 않지만, 이것이 '방'이라는 공간과 만났을 때, 공간은 '암흑'이었다. 암흑은 곧 보이는 것이 소멸된 상태의 '공포'를 유발하지만, '유진규의 까만방'은 친절히 암흑 속 공포를 극복하도록 손닿을 곳에 몸으로 갈 길을 보도록 유도했다. 이 친절은 '유진규의 까만방'은 '눈'이 아니라 '몸'이 암흑을 보도록 유도했고, 이내 보는 '눈'은 암흑 속에서 깨어남을 경험케 한다. 실로 오랜만에 '맑은 눈'을 잠시나마 회복케 하는 순간이다. '암흑'속에서 섬광이 내리칠 때, 그 때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이라는 명구도 있지만, 그것은 '본다'는 것에 기댄 발상이리라. 그러나 그 '봄'의 순간에 '섬광'같은 깨달음이 전해온다. '봄'이 '깨달음'이라는 '감각'에서 '인지'로 전환되는 순간이다. 바로 '개안(開眼)'의 순간이리라. '본다'는 것은 여러 가지 차원을 포괄한다. 따라서, 이 '암흑'속에서 '본다'라는 개념이 '눈'을 벗어나지 못하면 여전히 우리는 '보기'만 하는 것이다. '유진규의 까만방'은 '본다'라는 개념을 '눈'에서 '몸'으로 전환하면서, 우리 '눈'에게 '다른 것'을 보도록 감각을 재배치한다. '개'의 짖음 소리, 누군가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신발을 벗고 공간을 이동하면서 느끼는 나의 발과 몸이 공간에서 느끼는 촉감의 부드러움과 함께 몸의 감각을 깨웠다. 공간 안에 있는 냉장고 속 소머리가 주는 공포보다 냉장고에서 퍼져 나오는 시원함이 '암흑'의 공간에서 순간 '눈'을 뜨고 다른 상상의 차원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암흑 속에서 유영하던 눈이 어느 순간 맑아지며, 나는 아주 드넓은 평원을 보았다. 보고 느끼던 공간은 어느새 다른 상상의 공간으로 전이되며, 암흑에서 탈출한 '나'와 오롯이 대면한다. 그것은 아무것도 없는 암흑 속에서의 심리전이 된다. 관객들이 몸을 열어 개안(開眼)하는 순간을 암흑 속에서 빈손으로 기다린다. 거기에 유진규가 있다. ■ 임인자
까만방은 완전한 암흑이다. / 우리가 절대 암흑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죽음뿐이다. / 죽음과 같이 까만 공간 속에서 나를 찾는 것이 까만방이다. // 깜깜한 것은 시작인가? 끝인가? / 깜깜한 것은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 암흑은 묻는다. 나는 있는가? // 암흑속에서는 아무것도 안 보인다. / 그래서 나를 분명하게 볼 수 있다. / 암흑에서는 극도의 불안을 느낀다. / 그래서 극도의 자유를 느끼게 된다. // 암흑은 모든 것을 죽인다. / 암흑은 모든 것을 소생시킨다. / 나는 암흑의 힘을 믿는다. // 암흑속에서 개가 짖는다. / 번뜩 놀라는 나. / 번뜩 깨닫는 나. //
까만방의 원리 (까만방은 빛이 전혀 없게 설계되어 있고 까만방 안에는 5개의 방이 설치되어 있다.) ● 3분에 한명씩 입장한다. 들어서는 순간 깜깜한 공간과 직면한다. 낯설고 비현실적인 공간에 놓여지게 된다. 암흑 속에서 5개의 방을 찾아가야 한다. 개 짖는 소리가 위협적으로 난다.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해야 한다. 이제부터 암흑속의 자유다.
관객이 찾아가야 하는 5개의 방 * 촉감의 방 공간 전체가 일상에서 느껴본 적이 없는 감촉의 물질로 감싸인 방이다. 깊이와 넓이를 알 수 없는 공간은 자궁을 연상시킨다. * 거울의 방 아주 희미한 빛으로 자신을 여러 각도에서 비춰볼 수 있도록 거울로 설계된 방이다. 존재에 대한 질문이 계속된다. 자신의 대답은 끝없이 반복되어 들린다. * 냉장고의 방 냉장고를 열면 소머리가 들어있다. 냉동실을 열면 얼어붙은 소의 비명소리가 들린다. * 관의 방 헤드폰을 쓰고 관 속에 들어가 눕는다. 뚜껑이 닫히면서 못 박는 소리가 들린다. 인간생명이 만들어져서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영상으로 보여준다. * 유진규의 방 암흑속에 유진규가 앉아 있다. 소리로 확인하고 호흡으로 교감한다. 이야기를 할 수도 그냥 앉아 있을 수도 그냥 나갈 수도 있다.
까만방은 스스로의 결정이다. 까만방은 자유다. ■ 유진규
Vol.20120818a | 유진규展 / YUJINGYU / 柳鎭奎 / installation.performa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