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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2_0801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요일_11:00am~05:00pm / 월요일 휴관
아트스페이스 에이치 ARTSPACE H 서울 종로구 원서동 157-1번지 Tel. +82.2.766.5000 www.artspaceh.com
표면의 이면 ● 캐릭터 인형이 가지는 친숙함은 크기와 안팎의 관계가 변조됨으로서 이중으로 낯설어진다. 인형은 그 자체로도 인간의 무의식을 투사하는 기괴한(uncanny) 존재인데, 뒤집기 작업은 이 유사(類似) 인간의 표면 안쪽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여기에서 안은 정확히 바깥의 안쪽이지, 저 깊은 곳의 내면이나 핵심, 본질, 실체 같은 것이 아니다. 뒤집어진 상태의 인형 안을 채우는 것 역시 재단된 천 쪼가리나 여타의 부산물이다.
존재는 그 자체가 표면들의 중층이다. 존재의 표면들은 여기저기에서 연원한 주름들로 인해 더 활성화되어 있다. 이 주름들이 야기하는 감정의 기폭 또한 크다. 우리는 핵심과 표면이라는, 너무나 오래되어 친숙한 이원적 모델을 따라 주어진 것을 파악하려 하지만, 진실은 핵심이 아니라 표면 및 표면들 간에 맺어지는 관계성에 의해 구축 또는 해체 된다. 실로 심오한 것은 표면에 산포되어 있다. 해체주의로 대표되는 현대 철학은 깊이의 강요에 내재된 이데올로기와 형이상학을 폭로 한다. 정문경의 작업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인 면에서, 깊이의 모델을 표면의 모델로 전환시킨다. 모델이 된 원래 인형을 뒤집어서 수십 배로 확대시키는 작업은 조각난 육체들이 짜깁기 하는 장이다. 일일이 수공으로 진행되는 확대 작업은 복사에 복사를 거듭하여 흐릿해진 원본처럼 알게 모르게 변형된다. 관객의 면전에 놓인 것은 다름 아닌 거대한 시뮬라크르이다. 거대한 이불 같은 인조털 원단에서, 몸을 이루는 부분과 전체 간의 유기적 관계는 종종 모호해진다. 한눈에 들어오지 않고 한 손에 잡히지 않는 거대한 표면들은 길(방법)을 잃게 한다. 낯설게 하기는 낯익음을 전제로 한다. 충격은 그것이 낯익은 것에서 출발한 것일 때 더욱 증폭 된다.
물신주의를 조장하는 현대사회에서 인간과 인형, 동물은 도구적으로 다루어진다는 면에서 차이가 없다. 정문경의 뒤집어진 인형이나 가면들은 차이들이 사라진 세계에서 차이를 어떻게 감식할 것인가의 문제를 다룬다. 그것은 동일성과 타자, 실재와 해체, 몸과 무의식 등의 문제를 전면화한다. 정문경의 인형이나 가면들은 원래의 형태를 참조하여 그에 못지않은 꼼꼼한 재단과 봉합이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실재를 실재처럼 응집시키는 자연스러움은 소격된다. 실재는 그 견고함을 잃고 너덜거리는 조각 잇기의 산물임이 밝혀진다. 작품들은 실재가 동질성 대신에 차이적 관계들의 집합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차이는 해체주의의 중심적 범주로, 해체의 주된 대상은 형이상학이다. 마이클 라이언은 [해체론과 변증법]에서 해체론은 형이상학에 대한 비판으로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그에 의하면 형이상학은 최초의 근거 및 궁극적 요인으로, 초월적 관념이나 물질적 실체, 혹은 주관적 동일성, 직관적 의식, 선 역사적 본질, 현존으로서의 존재 등을 상정하는데, 이것들로부터 다양한 존재들이 연역되고 설명되며 의미를 부여 받을 수 있다.
정문경이 시도하는 안팎 뒤집기는 형이상학의 기본 전략인 대립과 우선권을 무화 시키려 한다. 가령, 풀려나가는 가장자리, 마무리 지어 지지 않은 실밥, 내부로부터 자연스럽게 발생한 것이 아닌 밖에서부터 강제로 쑤셔 넣은 눈깔은 본질적 요소를 침식하는 이차적이고 파생적인 요소를 대변한다. 이 배제되고 가려진 것들의 전면화는 순수한 동일성의 밑바탕을 이루는 잡다함을 강조한다. 정문경의 작품에서 평면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지는 끝없는 계열은 궁극적 요인이나 목적을 와해시킨다. 뒤집혀진 인형들은 동일자의 몸통을 이루고 있으면서 동시에 억압되고 은폐된 요소를 드러낸다. 그 결과 작품들은 구조보다는 과정을, 의식보다는 무의식을, 정신 보다는 육신을, 유기체보다는 기관 없는 몸체를 전면화한다. 봉합되기 위해 일련번호가 매겨진 채 여기저기 널 부러진 조각난 신체들은 죽음이나 기형 보다는 과정으로서의 몸의 유연성, 또는 가변성을 강조한다. 정상적 형태를 특징 지웠던 단단한 조직화는 기존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는 과정이 된다.
유기적 조직화가 아니라, 표면들의 절단과 연결로 만들어지는 몸이 바로 '기관 없는 몸'이다. 들뢰즈와 가타리의 개념을 페미니즘에 적용시키는 엘리자베츠 그로츠는 [뫼비우스 띠로서의 육체]에서 '기관 없는 몸'은 환상, 이미지, 투사, 재현의 투자가 철회된 몸 개념을 환기시킨다고 말한다. 그것은 또한 정신적 내부나 비밀스러운 내부가 없는 몸, 내적인 일관성과 잠재적인 의미화 작용이 없는 몸 개념을 환기시킨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계층화되고 통일되고 조직화되고 위계 질서화에 앞서는 것으로서의 몸을 속도와 강도의 표면으로 거론한다. 어느 것과도 접 붙을 수 있는 표면들은 안팎이 연결된 뫼비우스 띠처럼 이원적 구조를 해체한다. 그로츠에 의하면 이원론이란 육체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 몸과 마음처럼 두 가지 상호 배타적인 어떤 것이 있으며, 이런 것들이 우주라는 보편성과 주체라는 특수성을 구성한다는 믿음이다. 이러한 안팎 뒤집기의 목표는 몸의 재형상화를 통해 주체성의 개념에서 마음, 정신, 내부, 의식이 차지했던 중심적 위치를 바꾸어 놓는다. 정문경의 뒤집힌 인형이나 가면은 진부한 키치적 사물을 떠오르게 하지만, 주체성을 잠재성이나 깊이의 모델로서가 아니라 표면의 모델로 간주하는 현대 언어학, 철학, 정신분석학, 페미니즘 등의 담론과 맥락을 같이 한다. ■ 이선영
Vol.20120802g | 정문경展 / CHUNGMUNKYUNG / 鄭文景 / 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