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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2_0613_수요일_05:00pm
갤러리 기획초대展
관람시간 / 10:00am~07:00pm
에이블 파인 아트 엔와이 갤러리 서울 ABLE FINE ART NY GALLERY SEOUL 서울 종로구 화동 127-3번지 Tel. +82.2.546.3057 www.ablefineartny.com
오프닝에가면(이젠 잘 가지도 않지만...)대부분의 일정은 작가와 지인들 만나고,작품보고, 뒤풀이 가서는 어색한 자리배치에 신경쓰며 뻘쭘한 인사말과 더불어 축배를 든다. 또 대부분 좋은 분위기이긴 하지만-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오고가는 얘기는 별반 다르지않다. 누가 작품을 얼마에 팔았는지- 누가 전임이 됐다라던지- 연예인의 CF 기대감과 같은 미술장식품 독점에 대한푸념,갤러리의 불공정한 계약,40중반에 불투명한 작가로서의 현재와 미래-등...
뭐-윤진섭도 마찬가지다- 이 시대의 소위"예술가"들은 대부분 삶을 위한 작업이 아닌 생존을 위한 작업을 고민하고 있다. 정부의 예술지원이나 기업의 문화사업은 그들과는 거리가 있는-먼 나라의 잔치일뿐이고,어쩌면 대의를 위한 도구역할이라는 의구심마저 드는 상황에서- 서두에 이런 글을 쓴 이유는 "윤진섭팀장"이"작가윤진섭"으로 안정된 직장, 직위를 버리고 다시"미술판"으로 돌아간 과정을 옆에서 보아왔기 때문이며, 그로부터 지금까지 그의 사고와 환경이 그의 작업에 근간이 되었음을 무시할수 없기 때문이다. 이해하기 힘든-미사여구로 작가를 그럴싸하게 포장할 능력이 부족하기에- 잘라 얘기하자면- 날 때부터:윤진섭은 작가였다-
4년전 평론가가 언급하셨듯이 "매우 네거티브하고 스모그한 원시적인트릭을 근간으로 진화를 거듭-무한대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음"이란 뜻에 공감하며 다시 표현하자면- 그는 결국- "딴따라 원시인"이고 미술을 포함 진실된 예술가들이 본능적으로 가지고있는 "날것"을 여전히 가슴에 품고 그것을 동경하며-그 날의 한 잔 술에 만족하고 용기를 내어 다음날을 준비한다는 평범한 조각가라는 뜻이다. 그 에게는 작업이 천직이었던 것이다. ● 2007년 원시인윤진섭은 남양주동굴에서 :LOOk series를 통해 스스로 진화를 시작했다. "날것"에서의 시작이었기에 당시의 작업은 손이 먼저가고 후에 머리가 따르는 작업의 정석?을 보여줬다. 무더운 여름날 어쩌다 들른 작업실에서 그는 언제나처럼"이건어때? "저건 어때?"라고 묻는다. 내 대답은 언제나처럼"이거 괜찮은데?"와"그건 좀 아닌데?"로 압축되지만 혀끝에서 삼킨 말은 "그거 팔리겠어?"였다. 작품의 매매가 성공작가의 기준이 아님은 잘 알고 있지만 그 당시 윤진섭의 작업은 미술관, 갤러리, 컬렉터의 눈에 안들 것 같다는 생각과 시대적 흐름에 벗어나지 않았나 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음을 뒤늦게 밝힌다. 미안하지만 할수없네-^^; 결과적으로 어떤 이유던간에 그 당시 잘 안팔렸고, 지금와서 그 에게는 다행이었지 않나 생각한다. 대부분 작가들은 작품이 잘 팔려나가는 기간- 그 잠깐 달콤한 협상과 동시에 창작의 더딤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에...
37-41세 나이에, 미술판이 활황이었던 시점에- 상대적 박탈감과 조급함을 분명 스스로느끼고 있었음에도 특유의 넉살과 여유, 긍정마인드로 웃어 넘기고, 닭백숙에 막걸리, 너털수다를 안주삼은 후 다시금 굴 속에서 흙을 빚음에 그는 결국"딴따라원시인"이 맞았다고 기억된다. ● 2011년 그 원시인이"불"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 동안의 남양주동굴에서 벗어나 장흥에서 또다른 원시인들과의 교류를 통해 자신의 작업에 눈을 뜨고 불을 이용한 새로운 요리를 시작한다. 사실은 새로운 것이 아닌 배어있던 능력이 구체화 된 것이고 그 도구- "불"은 그의 뜻대로 fabric과color-였다. 윤진섭의 경우 오브제와 매치되는 의도로서의 패브릭소재와 원시성 짙은 컬러의 작업은 그를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거슬러 올라가서- 04-07년 까지를 자신을 테스트하고 눈과 손의 감각을 다시 길들이는 태동기였다면 08년 첫 개인전을 전후로 작가는 작업의 방향타를 잡고 근본을 확인하여 가장 큰 허물을 벗게되는 원숙기로 접어들게된다. 그 당시 작업들은 현재 작업의 모태가 되었고-누구나 아는 소재의 물성(천과색)을 윤진섭은 태초의"불"과 같은 도구로 활용하게 된다. 이는 마치 그 옛날 딴따라원시인이 사냥한 매머드를"불"에 올려 맛있는 바베큐로 만들었을 때의 느낌이 아니 었을까. 아무튼 윤진섭은 08-11년 그가 가진 고유의 오브제 위에 다양한 fabric과 원시적 color를 절묘하게 다룸으로써 자신만의 바비큐요리를 완성시켰다.
크레용? 학생들에게 작품소재에 관한 질문을 받으면- 전 세계 모든 작가들이 너희가 생각한 대부분의 소재를 썼을 테니 수업에 충실하면서 졸업전까지 자신만의 물성을 가진 새로운 소재를 연구, 실험 ,완성, 매뉴얼화 하라는 얘기를 한다. 작금의 현대미술에서 소재의 중요성이 어느때보다 중요하기 때문이지만 사실 쉬운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 2012년 윤진섭의 전시-LOOk에서는 위에서 언급한 천과색 (fabric & color)에서 좀더 실험적이고 완성도 높은 그만의 소재로 "크레용파스텔"이 보여진다. 어린시절 잘못배운 일본명칭- 크레파스(crayon pastel)... 왜 그렇게 어려운 칠재료를 쓰게했는지 어른이 되어서야 깨닳았지만 얼마전 윤진섭의 연락으로 작업된 크레용의 컬러와 작품마감을 보고는 내 사고의 유연함도 얕았구나라는 반성과 이제 이 원시인은 이쯤에서 바비큐를 지나 스테이크를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간 국내 외 천 여분 이상의 작가와 전시를 진행하면서도 교육프로그램 이외에는 전혀 경험하지 못했거나 부분적으로만 쓰여졌던 크레용을 과감하게 작품 전반에 사용은 무모하지 않을까란 예상이었지만 그는 코팅마감으로 그 핸디캡을 없애고 오히려 페인트로 보여지는 컬러이상 으로 월등한 회화적 오브제의 신 개척자가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상해본다. 딴따라원시인 윤진섭은 앞으로도 같은길을 갈 것은 분명하고.. 지난 10년의 숱한 경험이 그에게는 고진감래의 보약이었음을 확신하며-2012년 이 후를 기대한다. 한 가지 아직도 아쉬운 점은- 왜!!! 큰 작업을 안하나 모르겠다... ■ 박재경
Vol.20120613k | 윤진섭展 / YUNJINSEOB / 尹進燮 / 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