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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2_0517_목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공휴일 휴관
갤러리 아트사이드 GALLERY ARTSIDE 서울 종로구 통의동 33번지 Tel. +82.2.725.1020 www.artside.org
시점의 상실, 회화적 착시 ● 조각이 3차원인 이유는 표현하려고 하는 대상의 공간 점유율을 극대화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공간 점유율은 표현된 대상의 실재적 존재감과 같은 말이다. 이를테면, 입체가 지니는 존재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입체감은 그 자체로 서 있어야 하는 까닭에 돌, 나무, 쇠 등 단단한 재료들을 주로 이용해 왔다. 물론, 현재는 그 보다 더 다양한 재료들의 개발과 발전으로 다양한 소재 그리고 그 소재를 활용하여 표현의 영역 역시 넓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박선기의 조각은 언제나 조각 자체에 신선한 질문을 던지고 그 해답을 찾아가고 있다. 즉, 공간에 대한 새롭고 감각적인 상상, 재료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와 확장 등 조각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를 통해 가장 전위적인 해답을 찾는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 그 중 단연 두드러지는 것이 일상적인 대상들을압축시켜 표현한 작품들이다. 이러한 작품들은 다양한 소재를 통해 반복적으로 재현되어 왔지만, 그러한 압축으로 인해 수 많은 뷰 포인트를 가지고 있는 조각의 특징을 하나의 뷰 포인트로 전환시킨다는 점에서 언제나 새롭고 신선한 감상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압축된 조각, 시점을 어지럽히다. 박선기의 압축된 조각은 입체주의적 시점 개념을 조각으로 옮겨놓은 듯, 사물을 바라보는 관찰자들의 시점을 어지럽힌다. 사물을 묘사할 때 활용하고 있는 원근법은 사실 그럴 듯 하게 보여지게 하기 위한 법칙이나 개념이지 실제 우리의 시력에 의해 보여지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거리와 무게를 가늠하는 치수들은 사물과 공간을 개념화 하기 위한 인위적인 약속이다. 마찬가지로 원근법 또한, 사물의 거리감을 보다 편리하게 시각화 하기 위한 법칙이며 개념일 뿐이다. 실재 공간에서 인간의 시력으로는 원근법의 메인 개념인 소실점을 절대 찾을 수 없다. 눈높이에 따라 비뚤어진 사각형과 찌그러진 원형들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어쩌면 우리 전통 민화 속 문방사우에서 보여지듯이 어정쩡하게 비뚤어져 보이는 문갑이나 선반들이 우리의 눈에 보여지는 실재의 모습과 가깝게 묘사된 것일 수 있다. 따라서 박선기의 압축된 조각은 그렇게 사물이 압축되어 보이는 한 시점에서는 정확하게 그 사물들을 눈에 보이는 대로 묘사한 것이다. 입체와 평면의 교묘한 합작이 이루어지는 지점이기도 하다. 다 시점이 특징인 조각을 한 곳의 시점으로 제한하고 평면이 지닌 입체감의 한계를 극복했다. 흡사 세잔의 그림을 입체화 시켜 놓은 듯 한 ""Point of View"" 시리즈는 이렇게 탄생되었다. 또한, 이 작품들 대부분은 강한 흰색으로 마무리 되어 평면적 입체의 고상함을 극대화 하였다.
작가는 늘 공간과 우리의 시지각 그리고 그 사이에서 생겨나는 인식의 차이에 대해 고민해 왔다.공간을 인식하고자 할 때, 우리는 많은 부분 시각에 의존한다. 공간에 놓여진 주변의 많은 사물들의 크기와 위치를 통해 전체 공간을 이해하고 해석한다. 즉, 각각 놓여진 사물들을 비교하면서 전체 공간을 이해하고 인식한다는 이야기다. 이는 다른 말로 공간 인식 자체가 지극히 상대적이며 그렇게 상대적인 만큼 오해의 소지가 많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감각기관이 대상 인식의 모든 객관적 정보를 수집해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최종적인 결정은 이러한 객관적 정보를 조합하는 인식기관에서 진행한다. 객관적 데이터에 학습과 경험적 기억이라고 하는 또 다른 정보들을 혼합하여 최종적으로 판단하게 되는 것이 바로 인식기관에서 진행하는 최종 판단의 과정이다. 문제는 이 판단과정에 유입되는 학습과 경험적 기억이라고 하는 것이 어찌 보면 학습과 경험이라고 하는 객관성을 담보하는 듯 하나 기본적으로 이 기억이라고 하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판단 요소다. 따라서 우리의 판단은 늘 오류와 개인적 편견으로 빠져버릴 위험을 항상 지니고 있다. 물론, 이러한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인간의 사고 능력들이 개발되고 객관적 근거를 확보하기 위한 연구가 끊임없이 이루어져 온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개발과 연구는 각 분야에서 다양하게 진행되어 왔으며 특히 미술에 있어서는 보여지는 인상을 더 중요하게 묘사하거나 각각의 사물들을 그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나는 시점에서 본 형태들을 한 화면 내에 동시에 묘사 하거나 아예 인간 내면의 생각들을 끄집어내 도식화하였다. ● 이러한 미술내의 연구과정들은 2012년 현재와 같이 셀 수 없이 많은 형태로 분화되고 변형되어 왔으며 현재의 기술로 가능한 모든 표현방법들을 활용하게 되었다. 그 중 박선기의 연구는 공간과 시점 그리고 회화적 감각이 어떻게 진화될 수 있는지에 초점이 맞춰진다. 앞서 언급했던 압축된 조각은 미술에 있어 시점의 변화에 따라 관찰된 사물 혹은 실재 작품이 어떠한 변화를 가질 수 있으며 또한, 어디까지 표현의 영역이 확장될 수 있을까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는 글의 끝부분에서 설명될 시점의 분할까지 이어지며 연구의 지속가능성을 극대화하고 있다.
회화적 감각, 공간을 드로잉하다. ● 공간과 회화적 감각의 진화에 관한 박선기의 연구 초점은 그의 숯 작업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숯은 한국 현대미술에서뿐 아니라 음식 혹은 주거 공간 등 우리 문화 내에서 예로부터 다양하게 활용되어 온 재료다. 단순히 음식이나 건축 등 생활 상에 필요한 재료뿐 아니라 숯은 민간 신앙과 의술에도 다양하게 활용되면서 정신활동에도 밀접하게 관계되어 왔다. 예를 들어 숯은 치유와 정화, 정제에 탁월한 효과가 있어 그것을 대문에 걸어 놓아 외부의 병이나 잡귀들로부터 갓 태어난 생명을 보호해 준다는 믿음과 치성을 드린 나무의 숯으로 물을 걸러 마시면 그 나무의 영혼이 우리의 영혼을 정제해 준다는 비과학적이긴 하지만 기복 신앙에서도 충분히 숯에 대한 믿음과 그 활용도를 느낄 수 있다. ● 이러한 다양한 용도의 숯은 박선기의 작품에서는 공간을 드로잉 하는 재료로 활용된다. 작품에 따라 수 천에서 수 만개의 숯을 이용하여 공간에 드로잉 한다. 그는 거대한 그리스식 기둥과 건축물을 드로잉 하고 때로는 계단, 커다란 화분 등 다양한 이미지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석한 공간에 드로잉 해왔다. 작가는 주어진 공간을 시지각적인 정보에서부터 그 공간에 들어서기 바로 직전까지의 모든 경험과 지식들을 혼용하여 해석한다. 이 때 그 주. 객관적인 정보들의 밸런스가 상당히 중요하다. 자칫 어느 한쪽의 정보들로 해석의 방향이 치우치게 된다면 공간 해석 자체, 말하자면 드로잉 할 화면 자체가 잘못 설정되기 때문이다. 배경으로 남게 될 여백도 드로잉에서는 그려야 할 대상 못지 않게 중요한 조형적 요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잘못 해석된 공간에 드로잉 한다는 것은 잘못된 화면에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과 같기 때문에 그의 공간해석에 있어서 주. 객관적 정보의 밸런스는 작품 전체의 완성도를 확보하는 일과 같은 것이다.
그렇다면, 주. 객관적 정보의 밸런스가 어떻게 공간 해석에 영향을 끼치게 되는 것일까. 이는 매우 어려운 질문인 듯 하지만 몇 가지 상황들에 대한 설명으로 간단하게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 앞에 주어진 공간이 단순한 육면체와 같은 큐브형으로 그 내부에 아무것도 없는 상황이라면 그 밸런스를 확보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여러 개의 큐브가 합쳐져 있는 형태로 여러 개의 구조물들이 놓여 있는 공간이라면 상황은 전혀 다른 문제다. 우선, 몇 개의 큐브가 합쳐져 있는지를, 각각의 큐브들의 사이즈들을 객관적으로 파악한다. 그리고 구조물들의 특징들 역시 객관적 수치로 정보화 한다. 다음 그 각각의 객관적인 수치들에 의해 파악된 공간의 형태가 어떠한 모습을 띄고 있는지를 위의 데이터를 활용하여 도면화 작업을 통해 파악한다. 여기까지가 대략적인 객관적 정보들이다. 그 다음 공간에 대한 주관적 정보들의 획득과정이다. 이러한 형태의 공간에서는 세로보다는 가로형태의 공간 분할이 용이했었다. 또한, 저 구조물과 이 구조물 사이에는 원형의 공간 분할이 보다 조형적이었었다는 등 경험적 정보들로 공간에 대한 주관적 해석의 정보들이 확보된다. 따라서 이 두 부분의 정보들이 어떻게 밸런스를 맞춰지느냐에 따라 작업 내용은 판이하게 달라지게 될 것이다. 말하자면, 경험에서 비롯된 정보에 너무 치중하다 보면 공간이 지닌 객관적 사이즈와 관계되는 조형적 특징들을 놓치게 되고 반대로 객관적 사이즈에 치중하다 보면 경험에서 오는 조형성들을 놓치게 된다는 것이다. ● 위의 밸런스를 획득하는 과정은 어쩌면 박선기의 회화적 감각의 진화에 대한 집착이 힘을 발하게 되는 지점이다. 회화적 상상력을 발전시키는 조각가야 말로 어쩌면 미술 전반에 관해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반문을 하게 만드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는 입체를 회화적(평면적) 감각으로 상상할 수 있으며, 실제 평면 드로잉을 입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박선기 만의 감각의 영역 확장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거대한 공공의 공간에서부터 거실의 벽과 같은 지극히 개인적인 평면의 공간까지.
착시, 고정된 관념을 분할하다. ● 박선기의 작품들의 변화 과정을 쫓다 보면, 위와 같이 시점의 변화에 따른 회화적(평면적) 상상력의 입체적 표현, 공간 드로잉 등 평면과 조각의 경계를 허무는. 말 그대로 표현할 수 있는 감각의 영역확장이라는 작가만의 지속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 미술의 지속가능성. 어차피 미술이 그 탄생에서부터 지금까지 지속되어 왔다고 하는 것은 그 지속가능성을 자체 내 지니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듯 하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지속가능성은 생성이나 소멸과 같이 미술이라고 하는 개념, 넓게 창작 행위라고 하는 인간 고유의 정신활동에 의해 자동적으로 확보된 지속가능성일 것이다. 하지만 표현 방법과 테크닉은 여전히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다. 그러는 동안 역사가 생겨나고 모범. 그리고 연구가 이루어지고 학문이 형성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회화적으로 압축된 조각에 분할(slice)이라고 하는 또 다른 개념을 포함시킨 신작은 조각에 대한, 나아가 미술 자체에 대한 지속가능한 근거를 위한 박선기의 새로운 시도가 될 것이다. ● 조각의 다각적 시점을 한곳으로 집중 시킴으로서 평면적 성격과 입체적 성격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조각을 다시 또 날카롭게 분할한다. 이렇게 분할된 부분들은 원래 놓여있어야 할 위치가 아닌 다른 위치에 놓여지며 다시 조립된다. 현대 철학에 있어 해체라고 하는 개념은 기존의 인식론에 폭발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이는 정반합과 같이 이성적 판단을 근거로 하고 있는 변증법적인 방법론을 대체할 수 있을 만큼 가히 그 파급은 대단했다. 물론, 박선기의 분할에서 그와 같은 해체적 개념을 그리고 그 파급을 끄집어 내기에는 아직 시기상조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현대 철학에서 해체 만큼이나 동시대 조각에서 회회적 입체와 분할은 그 표현에 있어 감각적인 설득력을 확고히 할 수만 있다면 충분히 그와 같은 폭발력은 지닐 수 있으리라 짐작한다.
분할된 부분들은 작가에 의해 임의대로 (거기엔 전혀 의도된 바가 없다) 재배치된다. 이렇게 재배치된 부분들은 압축된 조각을 다시한번 애매한 상태에 놓여지게 한다. 거기엔 착시 즉, 흔들림이 있고, 그 흔들림으로 인해 사물이 있기 이전. 말하자면, 그것의 존재와 존재 아님에 대한 흔들림을 상상하게 한다. 부정과 긍정의 연속으로 이루어지는 박선기의 분할 작업은 판단을 끊임없이 유보시키는 해체의 개념과 궤를 같이 하는 듯 보인다. 여기서 해체는 판단을 유보시켜 개체의 다양성과 그 다양성의 근간인 차이에 대한 이해의 폭을 확장하는 의미에서의 해체다. 인간의 판단이 고정화 되고 그것이 사회적으로 시스템화 되면 인간은 자유를 구속당한다. 인간으로서 행복을 추구하고자 하는 기본적인 욕망 역시 그렇게 구속당한 자유만큼이나 해소할 수 있는 방편이 희박해 진다. 가치 판단의 유보, 선악 판단의 유보, 이분법적 판단의 유보 등 우리가 판단에서 유보할 수 있는 모든 가능한 것들을 또한, 기존에 고정 되어있는 모든 판단 조차도 해체하여 그 결정이 유보될 수 있다면, 어쩌면 우리 사회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것 보다는 조금 더 자유로울 수 있고 보다 더 도덕적일 수 있지 않을까. 박선기의 분할에 의해 만들어지는 회화적 착시를 통해 상상하게 된다. ■ 임대식
Vol.20120517i | 박선기展 / PARKSEONGHI / 朴善基 / 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