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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9_1103_화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30am~07:00pm / 일요일 휴관
갤러리 분도_Gallery Bundo 대구 중구 대봉동 40-62번지 P&B Art Center 2층 Tel. +82.53.426.5615 www.bundoart.com
갤러리 분도는 오는 11월 3일부터 조각가 박선기 초대전을 마련했다. 중앙대학교에서 조각을 전공하고, 밀라노 국립미술대학을 졸업한 박선기는 설치 조각 작업으로 많은 전시와 수상 경력을 지닌 작가이다. 숯과 돌을 이용한 거대한 규모의 설치 작품에서부터 부조 형식의 평면 작업까지 아우르는 작가만의 작업 방식은 이미 '박선기 스타일'이라고 불리는 그의 예술 세계가 되었다. ● 그의 작업은 많은 현대 조각 작품이 그러하듯, 대상에 대한 탈 맥락화를 시도한다. 작가는 조각의 역사에서 지금껏 무수히 다루어진 소재-인물이나 사건 또는 관념의 결정체-에 초점을 맞추는 대신, 그것들의 주변부에 위치해 있던 환경적 요소들, 예컨대 주거 공간이나 조경, 의식주 소모품을 작품 중심에 끌어들인다. 따라서 작가의 조각 작품들이 드러내는 의미는 거시적인 역사 서술이나 인문학적인 담론의 표출과는 애당초 방향을 달리 한다. ● 무엇보다 박선기의 작품은 숯이라는 자연적인 소재가 전달하는 감각에 많이 의존하고 있다. 숯의 검은 색은 흰 색의 돌, 혹은 투명한 줄로 엮어낸 텅 빈 공간과 대비되어 강렬한 시각적 효과를 일으킨다. 그 이미지는 면과 덩어리가 구성하는 공간을 재해석하여 삼차원의 일상을 해체하는 작업으로 표현된다. 즉, 작품 속에서 실재하는 대상이 가졌던 색감과 놓여 있던 배열 상태는 저마다 탈색되고, 흩어지거나 압착되어 사라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래 대상이 가지고 있던 원근감과 양감은 오히려 부각된다. 해체를 통하여 좀 더 사물의 본질에 다가서는 박선기의 작업은 심미적으로도 뛰어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 경북 선산에서 태어나, 현재 이탈리아와 미국을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쌓은 작가의 이력은 이번 갤러리 분도의 초대 기획을 계기로 작가에게 금의환향이라는 의미를 추가하게 되었다. 갤러리 분도만이 가지는 비정형적인 공간 구조를 능동적으로 해석한 박선기의 작업은 대형 설치를 비롯한 10여 점의 조각 작품들로 선을 보일 예정이다.
다층적인 시각이 짚어낸 사물의 상태 ●우리는 보이는 것을 보는 게 아니라, 보고자 하는 것을 본다. 모든 것을 각자 스스로가 가진 경험 영역 안에서 보는 우리는 어떤 상황이나 이미지를 인지하기 위해서 하나의 패턴을 세워서 이해하려 한다. 그런데 하나의 패턴이 둘 이상의 다양한 차원이나 맥락을 제시할 때 우리는 혼란에 빠진다. 매우 상식적인 수준에서 작동하는 진선미의 판단 기준을 넘어서는 경우, 예컨대 수학의 연립 방정식, 남녀 간의 에로스적 사랑, 정당의 현실 정치는 단번에 명쾌한 답을 이끌어내기 힘들다. 예술 작품도 그렇다.
조각가 박선기의 작품에서 제시되는 '시점'(point of view) 또한 여러 개의 입장에서 다층적인 속성을 표현하고 있다. 이 시점은 입체와 평면, 부분과 전체, 멀고 가까움 등이 착시(錯視)적인 중복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령 앞에서 보면 입체적인 조각 같은데, 옆으로 다가서면 평면의 부조에 가깝다. 하나의 커다란 형상을 표현한 듯한데, 실상은 투명한 줄에 매달아놓은 낱낱의 조각이다. 액자처럼 보이기도 하는 나무 플레임(나무 재료가 내게는 작가가 선호해 온 흑과 백의 이분법에 대한 일종의 화해로 보인다)은 두 개가 엉키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다. '이렇게' 보이거나 '저렇게' 보이거나, 그 어떤 유동적인 양자택일이나 불안정한 모순 앞에서도 우리의 시 지각은 일단 확정된 이미지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잠정적이지만 확정되어 모순이 없는 단일한 시점에서 비춰지는 이미지, 우리가 그 확실한 논리의 전제를 확인했다면, 우리의 인지 체계는 그 전제들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도록 이차적인 요구를 하는 다음 단계로 들어선다. 박선기의 작품 역시, 우리가 처음에 봤을 때에는 이랬던 것이 다시 보면 저렇게 보이면서, 각각의 인지가 충돌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여기엔 재미가 따라붙는다.
작품 감상이 재미있는 감각의 놀이를 수반한다면, 그 유희는 정-반-합에서 마지막 시점의 합일 과정에서 순간적인 통일성을 구현한다. 그것은 숭고한 완성이다. 중앙의 설치 작품에서 잘 드러나듯이, 모든 단자들은 그 자체로서 독립적인 개체이다. 이 개별적인 낱개들은 다른 것들과 무질서하게 엉키지 않으며 아름다운 전체 이미지를 만든다. 중력에 의해 투명한 줄로 이어진 덩어리들이 그 물리적 공간의 속성을 보장한다. 작품의 전체를 보는 시각과 각각의 부분을 보는 시각 사이에서 벌어지는 인지적 충돌은 한 단계 높은 미적 체험으로 승격된다.
TV나 컴퓨터의 모니터 화면도 따지고 보면, 0과 1이 닫히고 열리면서 쏘는 빛의 점들이 모인 조합이다. 그 이미지는 이차원에서 구현되지만 우리는 삼차원으로 해석한다. 이는 착시라기보다 상상이 더해진 결과이다. 박선기의 작품에게 그러한 모니터의 점에 해당하는 것은 숯 덩어리들이다. 작가는 이미지를 구성하는데 있어서 디지털 기기의 촘촘함과는 반대로 얼금얼금 해체한다. 이와 같이 옅은 구성은 우리의 상상력을 더욱 자극한다.
하나의 덩어리(chunks)로 된 조각들의 패턴, 혹은 원근법의 유희로 재현된 다차원적인 작업은 예컨대 앉을 수 없는 의자, 오를 수 없는 계단, 들고 다닐 수 없는 가방처럼 풍부한 양감을 통해 사용가치를 표상하면서도 그것을 박탈한 상태로 만든다. 그렇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작가가 추구하는 결핍이나 모순 혹은 해체는 좀 더 충만한 논리로 이루어진 미적 질서를 구축하는 방법이다. 그의 작품은 우리로 하여금, 저마다 품은 이미지의 가장 순수한 지점을 향하도록 하는 결정체이다. ■ 윤규홍
Vol.20091103d | 박선기展 / BAHKSEONGHI / 朴善基 / 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