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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2012 이랜드문화재단 2기 작가공모展
주최/기획 / (재)이랜드문화재단
관람시간 / 09:00am~07:00pm / 주말 휴관
이랜드 스페이스 E-LAND SPACE 서울 금천구 가산동 371-12번지 이랜드빌딩 Tel. +82.2.2029.9885
4월에는 이랜드문화재단 2기 공모작가의 세번째 전시로 제미영의 회화작품을 한달간 선보일 예정이다. 제미영은 인사동이나 북촌, 삼청동 등 한옥이 있는 풍경을 '전통조각보'라는 형식을 빌어 재현해내고 있다. 제작방식은 조각천을 모으고 색색의 천들을 맞대어 감침질로 만든 조각보를 다시 배접하고, 다시 이들을 잘라내서 새로운 풍경화로 재구성하는 작업이다. 이러한 자투리 한복천을 한땀한땀 꿰매어 완성하는 조각보 형식의 평면작업은 고된 노동과 끈질긴 인내가 필요한 방법이다. 잊혀져가는 한국의 옛 풍경을 전통조각보 기법을 응용하여 회화로 탈바꿈시키는 제미영의 작품들은 매력적이면서도 따뜻한 옛 추억의 세계로 초대한다. ■ 이랜드 스페이스
잊혀져 가는 아련한 풍경들 ● 어린 시절에 태어나서 자란 마을, 동네의 모습에 대한 기억들은 누구나가 하나씩 있을 것이다. 이러한 유년기의 빛바랜 기억들은 시간이 지나면 낡은 책처럼 눅눅해지고 허름해지지만, 그 모습은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 자리잡아 불쑬불쑥 나타나곤 한다. 당시의 말랑말랑했던 감성은 스폰지처럼 그 시간에 체득한 많은 것들을 흡수해버리고 오랫동안 저장한다. 그래서 유년기에 접했던 체험이나 보았던 이미지는 각인되기 마련이다. 특히나 자라고 성장한 고향의 풍경은 죽을 때까지도 잊혀질 수 없는 강렬한 이미지로 남기 마련이다. 시각이미지 생산자, 그러니까 작가들은 시각이미지에 대해 남다른 예민함을 지닌 자들이다. 어린 시절에 접했던 풍경들은 오랜 시간 동안 기억되고, 작가 개인의 무의식 세계에 흔적을 남기다가 그 모습을 바꾸면서 다른 창작물로 번안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제미영의 풍경화는 몸소 체험했던 유년기 마을의 풍경을 상기시키는 이미지를 전통조각보라는 형식을 빌어 재현해내고 있는 것이다.
부산에서 태어나 20여 년을 보내던 작가는 학업을 위해 서울에 오게 되었다. 낯선 서울에 살게 되면서 이곳 저곳을 누비다가 북촌과 삼청동, 인사동의 거리를 처음 만난 순간 강한 이끌림이 있었다고 한다. 그곳에 가면 알 수 없는 친근감과 안정감을 느끼게 되어서 자주 방문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그곳은 자신이 살았던 유년기 마을의 풍경과도 흡사한 서울의 모습이었다. 무의식에 남아있던 기억이 비슷한 이미지를 만나게 되면 감정전이가 이뤄지게 되는데, 한국의 옛 모습이 존재하는 북촌과 인사동의 풍경을 통해 어린 시절의 넉넉함과 유쾌했던 기억을 떠올리게 된 것이다. 이러한 계기로 시작된 풍경화 작업은 여러 실험을 통해 지금의 조각보를 활용한 회화로 안착하게 된다.
제미영의 작업은 도시화로 잊혀진, 잃어버린 1970~80년대 한국의 마을풍경에 대한 오마쥬(homage)이다. 작가는 자신의 어린 시절에 익숙하게 봐왔던 한옥의 풍경, 빽빽하면서도 나지막한 건물들을 재현하고 있는 것이다. 산업화, 도시화가 진행되기 시작했던 작가의 유년기 마을 풍경은 양옥으로 불리는 1~2층의 집들과 한옥이 묘하게 믹스되었던 모습이었다. 그러한 도시의 어귀를 어슬렁거리면서 보았던 무수한 이미지들이 작업의 소재가 된 것이다. 촌스럽고,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따뜻함과 온정이 남아 있던, 가난하지만 마음은 부유했던 그 시절 1970~80년대의 풍경말이다. 작가는 이처럼 잊혀져 가는 우리 기억 속의 아스라한 이미지를 전통 조각보라는 형식을 빌어 전하고 있다.
작가의 이러한 작업은 자투리 천을 한땀한땀 꿰매어 완성하는 전통 조각보를 납작한 평면에 꼴라쥬(collage)해서 완성된다. 조각천을 모으고 색색의 천들을 서로 맞대어 감침질로 꿰매는 방식은 고된 노동과 끈질긴 인내가 필요한 방법이다. 이렇게 바느질로 만들어 낸 조각보는 다시 배접을 통해 하나의 기하학적 패턴의 커다란 면으로 마무리 되는데, 여기서 끝나지 않고 이들을 조각조각 잘라 내서 새로운 이미지로 재구성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구축과 해체, 그리고 재구축을 반복하는 꽤나 많은 정성을 필요로 하는 작업인 셈이다. 이러한 노동집약적이고 수고로움이 요구되는 작업임에도 불구하고 그 과정에서 느끼는 무아지경(無我之境)의 세계는 작가로 하여금 작업에 깊이 빠질 수 있는 원동력이 된 것이다.
작품이 주는 익숙함은 그 소재가 한국의 지나가 버린 옛 풍경이라는 것도 있지만, 전통 한복에 사용되는 색채로 인해 그 친숙함이 더해진다. 총천연색인 조각보의 색은 그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색채가 지닌 고유한 정서로 하여금 친밀감을 주는 것이다. 오방색(五方色)을 이용한 원색과 무채색의 조화가 이루어내는 간결하면서도 대담한 색상 배치, 크고 작은 면들의 중첩, 부분이면서도 전체를 유기적인 구조이자 하나의 작품으로 완결해가는 작품은 하나하나에 생명력이 있다. 의도하지 않는 조각조각들의 만남, 그리고 이들을 다시 잘라내고 계획된 새로운 이미지로 만들어내는 제미영의 작업은 한국미를 '무계획의 계획'이라고 한 우현(又玄) 고유섭(高裕燮)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면서도 몬드리안(Mondrian)의 회화처럼 그 자체가 구성미와 조형감각을 지닌 조각보를 이용하기에 제미영의 작품은 전통적이면서도 모던한 감각이 절묘하게 녹아들었다는 느낌이다. 그리고 바탕을 시원하게 비워냄으로써 여백의 아름다움을 즐기게 해 주기도 한다.
제미영의 풍경은 조각보라는 전통의 형식을 이용하여 새로운 이미지를 생산해 내는 방식을 취함으로써 공예적인 것을 회화로 탈바꿈시키는 생명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는 전통의 현대적인 번안이라는 관점에서 뛰어난 방법론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익숙하지만 지금은 부재한 잃어버린 우리의 아련한 기억을 더듬어가는 그의 작품은 속도의 시대인 현대 사회에서 잠시나마 쉼을 허락하는 여백을 선사해 준다. 조각보라는 공예적인 물건을 전통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회화 영역으로 확장해 나가는 동시에, 조각보의 원래 역할처럼 옛 기억을 고스란히 싸서 보관하고 진솔한 삶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제미영의 작품은 매력적이면서 따뜻하다. ■ 고경옥
Vol.20120403d | 제미영展 / JEMIYOUNG / 諸美英 / painting